중국화 하는 일본 - 동아시아 ‘문명의 충돌’ 1천년사
요나하 준 지음, 최종길 옮김 / 페이퍼로드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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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몰입하며 읽은 책..

 

최근 몇년 사이에 "과연 지금의 일본이 내가 전에 알던 일본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이라면, 이 책에 꽤 많은 흥미를 느낄 듯 싶다. 당연시되어왔던 통념들(예를 들어 왜 일본만이 근대화를 성취했는가")을 과감하게 뒤집으면서, 기존 문제틀을 전환시켜내는 것이 이 책의 미덕..

즉, 메이지유신의 신화로 시작하는 일본 근대의 통설을 깨고, 메이지유신은 중국화와 재에도화의 투쟁의 분기점이었고, 결국 쇼와 일본은 <재에도화: 아름다운 애도로>의 길을 갔다는 것, 그리고 전후 일본의 부흥은 너무 오래 지속된 에도시대의 결과물이며, 혼란과 방황의 헤이세이 일본이야말로 그러한 '긴 에도시대의 종언'의 산물이라는 것. 그런 점에서 지금의 일본사회는 다시 중국화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거기에 한중일 삼국의 동아시아사회에 대한 최근의 논의성과들을 그야말로 과감하게 주파하면서, 현재 일본사회가 처한 여러 위기들을 진단하고, 그 곤경을 극복해나가는 사상사적 응답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현실적인 대안들까지 제시하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이 가진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를 찾기가 꽤 어려웠다고 후기에서 밝히고 있지만, 정말 이 책의 진가를 읽어줄 편집자는 많지 않았을 것 같고.. 그래도 결국 출간되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보면 일본이라는 사회가 가진 저력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왜 결과적으로 현실정치는 아쉽게도 저자가 탄식하는 것처럼 재에도화, 아니 나아가 '북한화'로 귀결되어버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최근의 급격한 정치적 변화, 나아가 코로나 19라는 초유의 위기에 직면해서 불거져나오는 한국사회의 여러 정치적 현상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꽤 많은 '떡밥'들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도 일독을 권한다..

 

예를 들어 진보와 보수/우익(?)라는 이데올로기적 차이는 있지만, 경기지사 이재명씨와 오사카 하시모토 지사의 정치방식의 형태상의 동형성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한국사회에서 최근 나타나는 지나친 평등주의 -다른 사람의 별 것 아닌 특권이 없어지고 자신 정도로 끌어내리는 것 자체로 쾌재를 부르는 민중의 증가-와 그에 영합하는 정치세력들의 난립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나..

 

등등..

두 사회가 처해 있는 공통의 위기들을 떠올리면서, 이 책을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듯 싶다..

 

 

물론 세세한 지점들에 이르면, 굉장히 논쟁적인 부분도 많고, 궤변에 가까운 억지논리도 때로 보이지만..

그래도 30대 초반의 연구자가 이런 거침없고 유쾌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도 한국사회와는 다른 일본 사회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 낄낄대며 읽었지만.. 조만간 함께 읽어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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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아담 미친 아담 3부작 3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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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1, 2편 만큼의 긴장도를 유지하지는 못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전작들에서 이미 대재앙으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들은 보여준 셈이고, 이제 남은 것은 극소수의 인류, 크레이커들, 그리고 돼지구리, 늑개, 너구컹크와 같은 변종생물들이 공존하고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개 그렇듯이 비전을 그리는 작업은 자칫하면 진부해지기 쉽다..

 

또 하나의 질문.. 왜 작가는 삼부작의 마지막 권의 주인공을 젭, 즉 '미친 아담'으로 설정한 것일까.. 왜 그의 탄생과 성장과정의 기나긴 이야기를 했어야 했을까.. 살아남은 인간공동체가 젭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모습은, -심지어 2권에서 그토록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토비마저도 젭에 대한 사랑, 질투 때문에 흔들리는- 왠지 역시 가부장적 질서의 연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절실하게 희망을 떠올리지만, 막상 그 단어를 입에 담는 순간 진부해져버리는 경험은 아마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글쓰기'라는 것을 매개로 한 토비와 어린 크레이커 소년과의 교감.. 그리고 공동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와 크레이커, 그리고 돼지구리라는 이종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합의, 그리고 생각지 못한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엮어내는 작가의 상상력에는 여전히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미친아담 삼부작 정주행을 마쳤지만.. 여전히 코로나 19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우울하고 나른한 봄날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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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의 해 미친 아담 3부작 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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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의 마지막날..

2월 초만 하더라도 조기 종식될 것처럼 보였던 신종 코로나(코로나 19)가 한 교단(?)의 수상쩍은 전도에 의해 대구/경북을 진원지로 하여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지 10여일이 흘렀다.. 이미 코로나 확진자수는 현 시점에서(2020.02.29. 오전 10시 37분) 2,931명, 사망자 수도 16명에 이르렀고, 아마 오늘을 넘기면 숫자는 3천명을 훌쩍 넘길 것 같다.. 문제는 이제 몇몇 확진자들의 동선만으로 전염을 막기에는 불가능한 상황에 도달한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는 점이다.. 미국의 한 신용평가사가 예측한 것처럼, (그들이 신봉하는 수학적 계산에 따른다면, 그리고 그건 불행히도 대부분 다 들어맞지만) 신종 코로나 확진자 수는 아마 2만을 넘을 것이고, 이제 사태는 중국, 한국, 일본, 이탈리아 등 몇 개의 국가만이 아닌 전 세계로 확산될 것이라는 점이다.. 징조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 19의 '판데믹'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번 사태가 과연 자연발생적인 것인지, 아니면 (잠깐 유행했던 괴담처럼) 중국 우한의 한 연구소의 실험 과정에서 발생한 것인지 밝혀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니, 원인 규명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어떤 집단의 의도적인 생화학 테러는 아닌 것 같으니까.. 코로나 19의 낮은 치사율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제 얼마든지 이런 바이러스균을 퍼뜨리는 것에 의해 한 국가가, 아니 전세계가 파국의 상황에 치달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악마적인 유혹에서 인류사회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우리의 과학기술은 놀랍게도, 아니 안타깝게도 이미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는 충분한 성취를 이루어내지 않았는가.. <인류멸종계획>, <인간종말마라톤>은 가시적인 것이 되었다..

 

2월 28일 하루 꼬박 <홍수의 해>를 읽었다..

전작 <오릭스와 크레이그>를 읽은지 2개월 만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로 접어들면서, 책 한 권을 하루에 읽을 수 있는 집중력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됐지만.. 어제는 날도 음산하고 비도 내렸고.. 또 몸상태도 안 좋아서.. 일찌감치 다른 작업들을 포기하고 점심을 먹고 바로 책을 꺼내들었다..

 

<오릭스와 크레이그>의 무대가 최첨단 바이오기술을 관리하는 기업체 단지의 세계였다면, <홍수의 해>의 무대는 전작에서 얼핏얼핏 보였던 단지 바깥의 평민촌 세계다. 이미 전작이 구축한 세계를 서로 다른 두 명의 여성의 시점에서 재서사화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전작의 세계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텍스트이다.. 더구나 소설의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저자는 전작의 주인공들인 글렌과 지미의 동선을 토비, 렌의 동선과 연결시키면서 독자들의 흥미를 배가시키는 친절도 베풀어준다..  

하지만 전작의 지미, 즉 스노우맨의 무기력함에 비한다면, 홍수 이후 살아남은 주인공 여성들이 끊임없이 현 상황을 개척해내고, 또 이를 통해 성장해나간다는 점에서, 마치 예전에 보았던 <델마와 루이스>를 연상시키는 페미니즘적 로드 무비같다는 느낌도 들었고.. 또 파국의 시대에서 <여성성>의 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준다는 점에서 페미니스트로서 저자의 입장도 강하게 드러난다.. 하긴, 두 작품에서 '젭', 즉 '미친 아담'이라는 다소 수상한 인물을 제외하면 호감을 주는 남성형은 찾아보기 어렵기도 하고.. 실제로 파국적 상황에서 남성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봐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 -우리가 람보나 슈퍼맨을 소환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굳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이 쪽이 훨씬 개연성이 높은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어쨌거나 두 편의 작품을 통해 저자는 치명적 바이러스의 전염(홍수)으로 인한 인간사회의 파국, 인간의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너구컹크, 돼지구리, 사자양, 늑개와 같은 새로운 치명적인 종들의 출현,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유포자이자 인류종말계획의 입안자이기도 한 한 미친 과학자가 만들어낸 새로운 인류, 즉 섹스경쟁이나 탐욕이 없고 동물성 단백질 없이 광합성을 통해 살아갈 수 있는 종족인 한 무리의 크레이커들-이들을 인류라는 종 속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속에, 살아남은 극소수의 인간들을 집어넣고,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 속에서 우리 인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물음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종종 언급되듯, SF소설이 아니라 사변소설이라고 주장하듯이, 저자는 판데믹 시대에 '이야기꾼'이라는, 이제 그 기능을 상실해버린 듯이 보였던 고전적인 직업군에 속하는 이 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혹은 해야 하는가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 그렇다면 3부작의 마지막 권인 <미친 아담>에서 그녀는 2권에서 멈춰버린 그 종말론적 세상에 다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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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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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거의 5년 전에 구입했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꺼내어 읽다..

<1984>, <동물농장>, <카탈로니아 찬가>, <버마 시절>,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나는 왜 쓰는가>.. 책장에 꽂힌 오웰의 책 중에 아직 읽지 않은 두 권의 책 중 한 권..

 

내게, 오웰은 무엇보다 <카탈로니아 찬가>의 저자였다.. 유명세로 따진다면야 <1984>나 <동물농장>이 훨씬 유명하겠지만.. 20대 중반에 켄 로치의 <랜드 앤 프리덤>을 보고나서 한 동안 정신없이 스페인내전에 대한 책들을 골라 읽다가 눈에 띈 <카탈로니아 찬가>는 스페인 내전을 다룬 가장 성실하고 치열한, 그리고 무엇보다 객관적인 내적 기록이었다.. 내전이 한창이던 당시 스페인 사회의 슬라이드 영상을 영국의 노동조합 지부에서 상영하면서 "우리의 투쟁을 당신의 투쟁으로 만들라"면서 영국 노동자들의 동참을 요구하던 붉은 여단 장교, 그리고 참석자들 모두 <노파사란Nopasarán: 너희들(파시스트들)을 결코 통과시키지 않겠다>을 함께 외치며 회의를 마치는 도입부의 강렬한 이미지는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슬라이드 필름들과 함께 흐르던 노래가 20세기 초 <인터내셔널가>보다 더 유명했던 <바리케이트를 향해A las Barricadas>라는 투쟁가였다는 것, 그리고 그 노래가 일제 강점기 우리 항일무장투쟁대원들이 <최후의 결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던 곡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나중의 일이었다..

 

그리고나서 한참의 세월이 흐른 것 같다.. 얼마 전 이런저런 일로 규슈의 탄광지대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제는 모두 폐광이 되어버린 치쿠호 탄광, 미쓰이 미이케 탄광, 또 크고 작은 탄광들이 있었던 장소들을 걸어다니면서, 이상한 방식으로 기념공간이 되어버린 이 장소들에 다시 과거의 온전한 모습을 되찾아주기 위해서는 역시 이 탄광에서 일했던 광부들의 잊혀진 삶들에 빛을 비출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과거 이들의 삶을 기록했던 논픽션 다큐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역시 120여년이 넘는 탄광 역사를 가진 일본 사회는 그 환경이 가혹했던 만큼이나 당시 광부들의 삶을 추적한 훌륭한 논픽션이나 사진집들이 많이 있었다. 거기에 비한다면, 적어도 노동강도에서는 일본보다 훨씬 고되었을, 한국의 탄광에 대해서는 그런 지적 기록들을 찾아보기 너무 어렵다.. 그 이유는 글쓰는 인간들의 직무유기, 혹은 태만이었을까, 아니면 당대 한국사회에서는 글쓰는 인간들이 해야 할 훨씬 중요한 다른 일들이 많았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전자일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꺼내 읽게 된 것도 그런 작업의 연장선이었다.. 처음 제목만 봤을 때는 부두 하역노동자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읽다보니 탄광이야기였다.. 그것도 실제 오웰 자신이 스스로 탄광촌에 들어가 직접 체험하고 관찰하고, 또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록한 작품.. 가장 오래 된 탄광 개발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그리고 가장 강력한 노동계급 문화 전통을 가진 사회에서, 부르주아 지식인계급 출신의 작가가 탄광 노동자들의 마을에 직접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썼던 한 장의 제목 그대로 "노동계급과 정말 가까워진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라고 스스로 의심하면서, 일상적으로 그들을 대변하는 척 하는 설익은 좌파 지식인들의 태도를 경계하며, 그는 1936년이라는 비상시국에서 파시즘이라는 공통의 적에 맞서, 이 사회의 여러 세력들이 어떻게 '연합'을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어려운 과제에 착수했던 것이다.. 아마 이 주제는 다른 지면에서 좀 더 길게, 그리고 깊게 고찰해야 할 것 같다..

 

다만, 에피소드로 하나만 기록해두자면..<계급과 냄새>라는 주제에 대한 오웰의 탁월한 통찰이다.. 2020년 다시 화제가 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냄새', 즉 지하의 냄새이자 계급의 냄새에 대한 언급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계급문제라는 오래 된 사회과학적 물음에서 계급과 냄새는 이전부터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져 온 듯하다.. 영화를 보면서는 피에르 부르디외의 <계급과 아비투스>를 떠올렸었는데, 직접적으로 계급과 냄새를 연관시키는 통찰은 오웰이 한 수 위인 듯 싶다..

 

여기서 우리는 서구 계급 차별 문제의 진짜 비밀과 맞닥뜨린다. 그것은 요즘에는 차마 발설하진 못하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꽤 자유롭게 쓰곤 하던 섬뜩한 말 한 마디로 요약된다. "아랫것들은 냄새가 나"

그게 우리가 듣고 자란 말이다. "아랫것들은 냄새가 나."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넘을 수 없는 장벽과 마주친다. 어떤 호감도 혐오감도 '몸'으로 느끼는 것만큼 근본적일 수는 없다. 인종적 혐오, 종교적 적개심, 교육이나 기질이나 지성의 차이, 심지어 도덕률의 차이도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신체적인 반감은 극복 불능이다. 살인자나 남색자에겐 호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입냄새가 지지독한(상습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사람에겐 호감을 가질 수가 없다. ... 아주 어릴 때부터 노동 계급 사람의 신체에는 묘하게 역겨운 데가 있다는 믿음을 습득하게 되는데, 그러고나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도 모르게 그런 사람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려워진다. 길에서 덩치 큰 건설 인부가 곡괭이를 어깨에 걸치고 땀을 흘리며 걸어오는 모습을 봤다고 하자. 셔츠는 색이 바랬고, 코르덴 바지는 10년 묶은 때로 뻣뻣하다. 기름때 절은 상하 누더기 속에는 벌레가 우글거리고 속옷은 말도 못할 것이며, 맨 마지막에는 씻지 않아 온통 누런 몸뚱이가 베이컨 비슷한 악취를 풍기는 것 같다. 부랑자가 시궁창에서 장화 벗는 꼴을 봤다고 하자. 우욱! 부랑자라고 해서 제 발이 시커먼 걸 딱히 즐기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통찰력때문에 오웰의 글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그런 통찰력은 심지어 섬머셋 모옴이나 혹은 다른 부르주아 작가들의 글에도 종종 엿보이는 것이니까.. 오웰의 태도가 갖는 훌륭함은 바로 그 냄새를.. 정상적인 부르주아라면 질겁을 하고 코를 쥐게 될 그 냄새를.. 부르주아들은 가끔씩 직접 맡아볼 의무가 있다고 지적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코 문명화된 우리랑 다른 인간들이 아니며, 그들 역시 근대 세계 특유의 산물이라는 것, 그들을 만들어낸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오웰은 한 마디 덧붙인다.. "가서 너무 오래 머무르지는 않는 게 낫다."라고..

 

그러고보니 봉준호 감독 역시 사회과학 전공이었으니.. 계급과 냄새라는 이 오래된 학문적 통찰에 어느 정도 빚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식장에서 조지 오웰에게도 한번쯤 오마주를 바쳤다면, 그의 발언이 훨씬 빛나는 것이 되었을텐데.. 너무 뜬금없는 먹물의 생각일까..

 

 

이제 남은 한 권의 책은 <버마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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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6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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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의 작품에 별 넷을 주다니.. 하지만 규슈의 탄광들을 거닐다보니, 탄광은 소세키 역시 들어갈 수 없는 장벽이었음을 거듭 실감한다. 교양소설로서의 가치, 또 몇몇 잊을 수 없는 장면들도 있지만, ‘갱부‘의 삶이 갖는 리얼리티는 소세키에게도 버거운 것이었나보다. 물론 그 역시 고백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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