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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퍼케이션 1 - 하이드라
이우혁 지음 / 해냄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Beyond the story ..... 다다를 수 없는
우선 미안하다. 먼저 책을 읽었다고(선택이 아닌 기회였기에), 평을 하는 기회가 생겼다고 함부로 입이나 손을 놀리고 싶지 않았다. 변명을 하자면 이 작품에 대해 그 어떤 의견도 덧붙이고 싶은 마음이 일절 생기지 않은 이유로 나는 책을 덮고는 얼마간 뜸을 들였음이다. 혹시라도 먼저 취한 자에 대한 통상적인 예우로 질문을 받을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그냥 읽어봐...' 이렇게 말하곤 또 입을 굳게 다물었을 것이다. 그것이 15년이나 준비기간을 거쳐 치밀한 분량의 장편을 엮어낸 작가와 작품에 대한 예禮라 생각했기에 굳이 내 방식대로 '침묵'의 답을 고집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게라도 15년의 결과물을 단 며칠 안에 독파했다고 이러쿵저러쿵 해야 하는 일개 독자로서 먼저 사과의 인사는 해야겠다.
또 하나, 어줍짢은 글 실력으로 가끔 소설 창작에의 의욕이 충만해질 때, 혹은 그 옛날 어렴풋한 꿈을 더듬어 책이라도 한권...하는 희망을 가져볼 때 여지없이 그 의지를 단번에 무너뜨리는 작가와 작품은 그 의지를 불타오르게 한 작가와 작품들만큼이나 많았는데, 내 인생에 있어『바이퍼케이션』은 애석하게도 전자에 속하게 될 듯하다.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경지로 느껴졌다고나 할까. 혹시라도 비슷하게 흉내를 내기도 힘들 것 같은 - 이것은 작품에 대한 감동의 깊이나 작가에 대한 평가의 정도와는 다른 이야기다 - 무언가, 어딘가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格으로 느껴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밀도와 완벽함에 압도당했다고 해야 할 듯하다. 작가로서, 이 작품을 관통하는 '보이지 않는 힘과 오감을 초월한 감각'을 자신이 그대로 재현해 낸 것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이제는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에서 자연스레 '얼마나 고민하고 파헤쳤을까'하는 존경심이 그 의구심을 대신한다. 그동안 편협했던 내 독서취향에 대해서도 조금은 수정이 불가피 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나는 애석하게도 작가의 대표작인 『퇴마록』을 접해보지 못했기에(영화로만 만나본) 전작과의 비교나 변화에 대해서는 언급할 자격이 없다. 生의 이력을 보니 이과를 졸업하고 예술분야의 직업을 가진 후 지금은 문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관심을 가지고 홈피를 방문하였더니 그의 인사말엔 틀에 박힌 주례사가 아닌 진솔하면서도 정중한 부탁이 전부였다. 근황을 알리는 게시판에는 작품 마무리로 인해 세상과의 연을 끊고 며칠 다시 칩거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마지막이었다.(2010. 8.28) 순간, 그렇다면 이 작품을 집필하기 위해 그가 세상과 인연을 끊었던 시간은 얼마나 될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무언가 보통사람들이 가늠할 수 있는 삶의 내공을 훌쩍 뛰어 넘은 사람으로 느껴졌고, 약간의 神적인 기운까지 감지되었다. 시쳇말로 '신들린 듯' 이야기를 창조해 내지 않았을까하는 무례한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론 그 인내와 고통의 과정에 자못 숙연해지기도 했다. 작품 속에서 아주 오랜 기간 풀리지 않는 무언가를 놓고 고민하고 부딪히며 그것을 부수어 보려는 각고의 노력과 의지를 읽는 내내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온라인 만의 약간은 어둡고 뒤틀린 분위기를 내는 공간은 너무도 많고, 저는 그런 것에는 지쳤습니다. 얼굴을 마주 보는 것처럼 실명을 드러내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며, 나이 많은 사람은 어린 사람을 이끌어주고 어린 사람은 윗사람 혹은 선배를 존중하는, 그런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http://www.hyouk.kr/ 이우혁 공식 홈피 인사말 中에서
『바이퍼케이션』이라는 학문적 용어를 제목으로 한 이 작품은 세권 분량의 장편으로 장르 소설의 추리, 범죄, 판타지, 스릴러등의 영역에 분류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부분에 이의를 달고 싶지는 않으나 나는 굳이 '심리' 혹은 '철학'이라는 수식어를 차용해 '심리판타지'나 '철학스릴러'라는 타이틀을 추가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잔혹한 살인장면이나 피로 물든 공포분위기 보다는 작품의 근간이 된 심리학과 철학적 배경이 상당히 탄탄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로인한 논리성이 무서우리 만치 과다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무게감은 이 작품이 공포나 범죄소설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에 충분했고 궁극에는 인간의 본질이나 능력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향하고 있었기에 혹시 이 작품을 '재미' 나 '쾌감'을 주목적으로 집어들 생각이라면 과감히 권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내 의견이기도 하다.
작품의 영역과 작가의 문체는 독자인 내가 리뷰를 작성하는데 있어서도 영향을 주었던지 전에 없이 감수성과 서정적 분위기를 지양하고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하이드라'로서 작가가 글로써 독자를 조종한 것은 아닐까 할 정도로. 내가 이 작품을 덮으면서 가장 경외로와 보였던 것은 에이들이라는 FBI 프로파일러의 숨쉬기도 힘들 정도의 더할 수 없는 논리성이었다. 두 번째로는 그 논리성을 더욱 완벽하게 부각시키는 피라미드적 구성이었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천착한 문제인 세상은 '우리가 인식하는 느낌과 힘'으로만 구성되어있는 것인지의 여부,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종류의 감각이나 차원에 대한 신비로운 문제의식이었다. 이를 정리하면 소설적 구성에의 완벽성, 등장인물의 매력성, 문제의식의 참신성으로 귀결된다 할수 있겠다.
Pyramid Construction ..... 소설적 구성의 완벽성
우선 작품 전반에 해당 장의 첫머리엔 그리스 신화의 인물이나 실제사건의 경위 및 결과, 범죄자의 인터뷰 혹은 니체나 세익스피어, 애드가 앨런 포, 에밀리 브론테와 같은 작가의 작품 속 문구와 대사가 등장한다. 이 반복되는 장치들은 물론, 이야기로서의 황당함이나 이해불가한 상황들을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반신반의성 도구로 사용되었음에 틀림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법의학자'만 해도 '법의병리학자'와 '법의곤충학자'로 분류될 수 있다는 사실과 '범죄생물학자' 로도 칭해진다는 지식을 마치 수학예습처럼 훑을 수 있고 실제 일어난 사건의 살인자와 소름끼치는 인터뷰 기록을 보고는 이야기가 아닌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공포적인 신뢰감을 조성한다.
1권에 주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프로파일러나 법의학, 실험 및 검사기법, 통계 및 분석 등의 객관적 자료가 제시되어 연이어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들을 피해자나 가해자의 입장이 아닌 냉철한 프로파일러나 수사경찰의 입장으로서 사건을 침착하게 바라보게 한다. 이때 이 객관적 자료들은 사건에 도움을 준다기 보다는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해결에의 공동의 책임감과 중압감을 더 드높이는 교묘한 장치로도 느껴졌다. 도무지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로서 각 사건이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총체적 난국에 빠진 듯한 느낌을 갇게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은 마치 힌트나 자료를 얻고도 답을 풀지 못하는 무능력한 소시민이 되는 무력감을 제공해 추후 그것을 논리정연하게 풀어 나가는 프로파일러의 천재적인 사고능력과 그 전개에 완전히 몰입할 수 밖 에 없도록 하는 치밀한 전략으로 생각된다. 물론, 다른 공포 추리 소설에서도 던져진 사건들을 좇아가다 보면 도대체 범인이 누구인지, 배경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지 그 궁금증 자체가 소설을 읽는 재미를 불러 일으킨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으며 그것은 장르소설에 있어 가장 필수적인 기본요소 일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범인과 배경에 대한 정당한 일차적 궁금증 외에 그보다 한 차원 높은, 도대체 이 이야기가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컨텐츠인지 내가 파고들 수 있는 범위와 깊이의 수준인 것인지 어디까지 이야기가 벌어질 것인지 읽어갈수록 서사의 파도와 그 파워에 압도된다는 것이다. 항해를 해보기 전에도 아예 눈앞에 펼쳐진 거친 파도로 격랑을 헤쳐나갈 용기가 상실되는 경우에 비유할 수 있을까. 작가는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가능성'에 대한 동의를 처절하게 구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2권에서는 프로이드와 융의 심리학 저서에 인용된 문장들이 에이들이라는 냉철한 프로파일러와 가르시아라는 인간적인 수사경찰관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갑론을박에 대한 이해에 힘을 실어 준다. 3권에서는 세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대사나 노래가사 등이 자주 등장하며 해결국면으로 치닫는 과정에서도 시적인 은유로 이야기에 대한 감수성을 자극한다. 전권에 걸쳐 헤라클레스, 오레스테즈, 탄탈로스, 파에튼, 악타이온와 같은 그리스 신화속 인물의 탄생 배경과 전적, 의미 하는 것들을 미리 들려주고 그 인물을 적용시킨 소설 속 주인공들이 어떻게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지 관찰자의 시각으로 좇아가게 만든다. 신화 속 인물들은 바로 작품속 범인의 성격과 범죄유형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며 사건으로 나타난 양상 자체 보다 그러한 일이 벌어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에 더 마음이 가도록 유도한다. 가끔 순수문학작품의 한 구절을 뜬금없이 제시하며 작가가 고민하고 질문하려 했던 메시지를 암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스치듯 지나갔던 그 질문은 세권을 다 읽은 다음에도 오랜 여운으로 남아 섬뜻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전 분량에 걸쳐 이같은 순도높은 배경으로 같은 정도의 밀도를 고르게 유지 한다는 것이 놀라웠고 결국 처음에 우스워 보일 수 있었던 카드나 지폐의 글씨만으로도 사람의 의식을 조종할 수 있다는 허무맹랑하고 유치해 보이는 설정도 나중에는 충분히 가능할 수 있겠다는 공감을 도촐 해 내는데 성공한다. 이렇듯 작품의 맨 하부에 이론적 지식과 객관적 자료, 신화적 배경을 흩뿌리고 맨 상층부에 가이드 팁을 배치한 후 중간부분에 방대한 이야기를 펼쳐놓은 방식은 거대한 피라미드가 되어 내구성 있는 건축물로서 뼈대의 튼튼함은 물론 외양적인 신비감까지도 한껏 높여주는 효과를 발휘했다. 소설적 구성에의 완벽성을 추구했다는 점이 문학적으로 완벽하다는 뜻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나는 범죄심리학에서 출발해 인문분야의 인지부조화나 심리학 전반, 그리스 신화, 수학적 현상, 서양철학, 다양한 고전작품에 이르기까지 개개의 퍼즐이 딱딱 들어맞게(시쳇말로 아구가 들어맞게)소설을 축조한 작가의 완벽적인 성향에 후한 점수와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Character Match ..... 등장인물의 매력성
이 작품에는 따지고 보면 범죄와 살인에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이 조종에 의한 우발적 사건이었건, 치밀한 계획에 의한 복수이었건 사람들은 외견상으로 모두 칼이나 총을 들고 자신을 포함한 타자에 잔혹한 피를 뿌린다. 그런데 내가 매력을 느낀 건 총기가 아닌 입이라는 무기를 사용해 상대를 공격하고 방어하는 전면전에서 끝까지 대립하는 인물들의 말싸움 이었다.
즉, 프로파일러 에이들과 수사관 가르시아의 심리적 대결구도와 헤라와 헤라클레스간의 내면적 대결이 이 작품을 더욱 심리소설의 영역으로(물론, 내 주관이지만) 확장시키는데 큰 몫을 한 듯하다. 1권이 연이어 터지는 사건 속에서 점점 고조되는 긴장의 연속이 감상포인트라면 2권은 에이들과 가르시아간의 지칠 줄 모르고 파고드는 설득과 의견주장이 핵심이라 할 것이다. 에이들이 가르시아와 벌이는 긴 시간 설전양상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심리적 압박감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에이들의 타고난 천재성과 논리정연한 의견, 상대를 눈치 채지 못하게 함정에 빠뜨리는 능숙한 두뇌는 의외로 가독성과 흡입력이 높아 몰입의 무아지경을 체험케 하는 마법을 함께 선사한다. 내가 놀란 것은 에이들이 사건을 분석하고 단서들로만 하나의 구심점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 상당히 전문적으로(물론, 내가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는 전제하에서)아니, 천재이상의 초월적으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도저히 풀 수 없어 보이는 암호나 퍼즐을 맞추는 영화 속 주인공에다가 과거의 상처에 자유롭지 못한 음울한 분위기,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냉철함이 더해져 어느 한사람의 고착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을 정도였다. 오히려 그러한 에이들에 짓눌려 보다 인간적이고 따스한 성품의 가르시아 반장의 캐릭터가 제대로 부각되지 못한 것은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더불어 에이들이나 가르시아 역시 과거 누이와 아버지의 끔찍한 죽음으로 인한 지울 수 없는 내면의 상처를 지니고 있는 인물들로 그려지는데 이 두 사람이 그 어둠을 헤쳐 나오는 방식은 각기 '복수'와 '용서'라는 상반된 코드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결말도 대치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 인간본성이라는 것이 과연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고 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 본질적 질문에 귀착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초반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나는 에이들과 가르시아의 설득, 대결, 동맹, 의리, 연민, 이해등의 다층적구조가 섬세한 감정묘사와 어우러져 펼쳐지는 일종의 팽팽한 두뇌게임과도 같아 빠른 속도로 작품에 빠져들었다.
결혼, 출산, 가정의 수호신인 헤라와 그리스 신화의 최고의 영웅 헤라클래스와의 대립구조도 심상치 않은 재미를 선사하며 에이들 대 가르시아 다음으로 흥미로왔음이다. 특히, 융의 심리학에서 여성안의 남성성을 상징하는 아니무스를 적용시켜 해라부인의 아니무스로서 헤라클레스를 창조한 것은 무릎을 탁 칠만한 독창적인 선택이었다. 해라와 헤라클래스의 인격대립은 이 작품의 주제와도 연결되는 가장 중요하고도 상징적인 모티브였기에 앞으로 벌어질 다소 작위적일 수 있는 연출까지도 어느 정도 반론을 무마할 수 있는 논리성을 획득했다고 본다. 결국 동일인물이면서 한명의 인간 안에 두 개의 인격으로 그려진 광기어린 혼돈의 도가니는 그야말로 인간이 이렇게 까지 무서운 존재일 수 있을지 등골이 오싹해지는 순간이 적지 않았음이다. 3권에 이르면 헤라와 해라클레스의 내면적 분열과 그 결과로 나타는 참혹한 인명의 피해가 그 수위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견디기 힘들어진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그들간의 대립양상에 피곤함이 감지되면서 해결국면을 바라게 된다. 그러던 중 나는 해라에게 조종당해 3권의 어느 페이지에서 정말 숨이 멎을 만큼의 경악과 소름을 몸서리치게 경험했는데...아마도 작품을 몰입하며 읽었던 독자라면 글자의 힘을 새삼스레 체감한 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경고하건데, 심장이 멎을 만한 페이지가 있을 것이라 절대로 미리 책을 뒤적이지 말기를 바란다.
Theory & me ..... 개인적인 견해
나는 학부에서 인지발달이론, 인지학습이론 등을 연구하는 교육심리가 전공과목에 있었기에 인지의 적절한 불균형 상태를 말하는 '인지부조화'와 그 이론의 광범위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 편에 속한다. 그런데 여지껏 그러한 복잡한 심리학 이론을 인물의 캐릭터에 적용해가며 작품 속 대사에서까지 그것을 소재로 토론을 하는 소설은 보지 못했다.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된 공간으로 정신병원이 등장하는데 만약 그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하나하나 분석해가며 환자의 성장발달과 가정환경 속에서 심리학적 용어와 이론을 언급했다면 독자로서 정작 소설읽는 재미를 반감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을지도 모른다.
쉽게 말하면 인간은 누구나 어떤 일을 대하는 태도와 실제로 그것을 행하는 행동이 균형을 이루려는 심리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내적신념과 일치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일치되지 않을 때는 부조화를 기피하고 조화를 선택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부조화(불일치)를 피해 조화(일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쉽게 나타나는 태도변화가 합리화라 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사교육이 필요없다는 평소신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아이를 학원으로 내보내야 하는 불가피 상황이 발생할 때 학원을 보내지 않기 보다는(행동변화) 사교육에 대한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꿈으로써(태도변화) 인지의 조화를 추구하게 된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는 이 당연해 보이는 이론의 기본공식을 사용하지 않고 응용버전을 제시한다. 즉, 소설 속 인물들은 에이들, 가르시아, 해라, 뱀파이어 할 것 없이 대부분 '인지부조화 현상'을 겪었거나 그로인해 이미 혼란스러운 상태로 등장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미 저질러 버린 자신의 행동이나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은 것과 같은 단순한(학원문제 같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일생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한 극적이고도 우발적인 상황이었다.(해리성 장애, 살인, 돌이킬 수 없는 실수 등) 그렇다면 당연히 사람들이 자신의 원래 신념을 교정할 때 무리수를 두게 될 것이며 그 과정과 결과로 에이들처럼 과다한 논리로 자신을 합리화 한다든지, 해라처럼 새로운 근거나 추론을 만들어 낸다든지, 파에튼처럼 아예 파멸에 이르던지 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내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연속되는 사건 속에서 각자의 인지가 부조화 되는 현상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부조화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의 대응방식이나 방어기제가 더 중요했다고 생각하기에 이 작품에서 굳이 '인지부조화 이론'을 언급하며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 내게는 논리적인 옥의 티로 보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왜 그러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는 이미 그리스 신화적 배경이나 사건의 개연성으로 충분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작품의 제목이 된 '바이퍼케이션'현상에 대해 언급을 하자면 바이퍼케이션 현상은 작품 속에서 치명적인 충격을 받은 해라에게 일어난 일로 보여 지는데 세권의 분량에 비하면 현상에 대한 이해를 완벽히 하는데 조금은 부족했다고 느껴졌다. 해라 외에도 다른 인물들이 인지부조화 현상이 발화되는 그 시점을 바이퍼케이션지점으로 보고 그 현상 이후 주인공들이 어떻게 불확실하게 변모했는지를 더 자세히 그려 내었다면 바이퍼케이션에 대한 인지가 더 확실해 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바이퍼케이션'은 원래 불확실한 결과를 뜻하는 수학용어로서 작가는 쉽사리 정의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을 이 단어에 비유한다고 들었기에 내가 이과적인 용어에 익숙치 않아서 그런 것인지 인문학적인 사람의 본성에 대한 결과론적 입장에서는 쉽사리 연결되지는 않았다. 사람이나 세상에 일어나는 하나의 극적인 순간 정도로 인식되었고 그 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상할 수 없는 결과로서의 인물들의 행동들로만 인식되었던 것이 아쉬웠던 부분이다. 차라리 증상이나 현상을 상징하는 의미보다는 결과로서의 의지를 지향하는 '균형'이나 '조화'같이(오만과 편견처럼) 진부하지만 여러 함의를 지닐 수 있는 제목이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무례함을 범해보았다. 불확실한 인간본성에 대한 의견은 전공분야마다 다른 의견이 나오지 않을까?
Agenda for next ..... 문제의식의 참신성
하지만 작가가 끝까지 질문하려 했던 문제는 상당히 참신하다고 느껴진다. 왜냐하면 내 수준에서 적절한 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인식하는 느낌과 힘만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만약 신적인 힘이나 능력 그 이상의 인간 너머의 감각과 존재를 가진 무엇이 있다면... 이 질문은 철학적이면서 과학적이고, 사회적이면서 개인적인 아주 고난이도의 난제가 될 것이다.
이미 작가는 작품에서 질문에 대한 가설을 세운 후 그 대답의 하나로서 자신만의 창의적인 답안을 제출하였다. 우리가 그것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작가는 앞으로도 이 문제에 대해 더 고민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번이 끝이 아니고 사실 앞으로 더 무궁무진하다는 뜻으로도 읽혀진다. 어쩌면 그것에 대한 동의를 구하기 위해 작품 속에서 이미 우리를 지독히도 설득해 오진 않았을까.
우리는 살다보면 자신과는 다른 종류의 감각이 더 발달한 사람들을 만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예지력이나 보통사람 이상의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들도 만난다. 그러다가 이해가능 범위를 넘어선 영혼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그것은 일종의 정신병이거나 접신의 결과로 치부해 버린다. 그리고선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현실 불가능한 상황에 대리만족 하고 공감하며 현실로 돌아와 금새 잊어 버린다. 그러다가 뉴스를 통해 도저히 인간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범죄소식을 들었을 땐 대부분 정신이상적 징후를 거론하며 결론지으려 한다.
실생활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어느 정도 자신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다중인격을 행사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작품에서 범죄를 저지른 인물들은 하나같이 정신적으로 병적인 징후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 곳도 마무리 된 곳도 정신병원이었다. 현대인은 이제 더 이상 정신병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음을 실감하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세상이 발달할수록 정신이 더 다양화된 인간이 출현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신이상이 아닌 다양한 정신세계의 인간군상들 이라면 삼차원, 사차원이 아닌 더 깊고 넓은 차원의 힘과 감각을 가진 사람도 출현할 날이 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더 다양화된 인간의 감각과 능력에 대해 상상해볼 수 있었고 앞으로 우리보다 훨씬 더 뛰어난 감각으로 작가가 그려낼 다음 작품에서 그러한 내 상상력의 한계를 또 한번 넘어 볼 수 있기를 기대하겠다. 쉽지 않았지만 나또한 무언가 해내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으로서 인간이기에 인간을 더 이해하고 싶었던 아주 근본적인 내안의 인간성이었음을 조용히 깨우쳐 본다.
"인간은 스스로 소유한 자유의 현기증속에서 무엇을 하는가? 그는 안정을 원한다. 그런데 그는 신앙같은 의지할 것을 거부한다. 대신에 그는 상상력 속에서 사는 삶으로 후퇴함으로써 '자기자신'의 지성과 '자기자신'의 건강과 '자기자신'의 힘을 의지해 '자기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휘하려 함으로써 안정을 얻으려 노력한다." - 키에르케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