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년 뒤에 쓰는 반성문>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문지 푸른 문학
김도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삼십년 뒤에 쓰는 반성문>

가슴이 아리아리하다...언젠가부터 책을 읽고 '가슴이 아픈' 것에 해당하는 증상에 관해 세밀하게 구분하고 싶어졌는데 뭐랄까 이 감정...봄날 자전거를 타고 가다 신작로길에서 마주오던 무엇에 우연히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한다면, 무릎이 까져 일주일은 반창고 신세를 면하지 못하게 됬다면, 겨우 아물어 갈 때 쯤 막 새살이 올라오려고 하던 그때 하필 체육시간에 뜀틀을 뛰다 엉덩이에 걸려 뒹굴면서 겨우 피어나던 새살위로 벌어지던 그때의 아픔과 비슷하려나...그래, 어짜피 상처는 아물었고 봄은 지나갔다. 얼마나 다행인가...흐드러진 벚꽃이 안녕을 고하며 눈처럼 피날레를 장식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은. 목련이 나뒹굴어 마음 한구석 그 바닥에만 쌓이지 않아도 되는 지금은.

강원도 평창이 고향이라는 김도연(여자이름 같은) 작가의 『삼십년 뒤에 쓰는 반성문』을 덮고는 한참동안 가슴이 어지럽게 간지러웠다. 누군가에게 사과 받는 것 같았고, 나도 누군가에게 사과를 한 것 같았다. 그렇게 퉁치며 무언가 털어 낸 것 같았는데 가슴엔 오히려 소복히 눈이라도 쌓이는 것 같았다. 분명 가슴에 쌓인 눈은 그곳에서 얼음이 되거나 녹아 버려야 할텐데...이상했다. 그들이 흰색으로 위장해온 내 정신의 옷을 원래의 흰색으로 정화(淨化)시키고 있었던 걸까. 그의 반성문은 마치 어머니가 깨끗이 삶아 마른 햇살에 널어 입힌 속옷이라도 된 듯 어머니의 젖냄새가 난다. 어쩌면 내 어린 살냄새 일지도 모르겠다. 목련꽃과 벚꽃이 눈부시던 고향의 흙냄새, 아니 원고지에 글을 써보겠다던 내 동심의 연필냄새였는지 모른다. 옛날 외할머니 댁 문간방 선반 위에 두고 온 오래된 책에서 나는 종이냄새였는지 모른다. 우리 모두가 한번은 꼭 써야할 반성문...두 번은 다시 없을...그래서 나는 내 모든 영혼으로 용서를 구하고자 하며 그럼으로 나도 모두를...용서하겠다.

소설가가 된 주인공은 길어야 세 달이라는 중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병문안을 갔다가 선생님으로부터 '500장의 반성문' 약속을 잊어 버린 것인지...하는 질문을 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삼십년이 흘렀어도 당시 소설가(화자)가 백일장에 써내었던 글의 제목 '정류장'을 기억하는 분이니 반성문에 대한 약속은 농담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침 선생님은 소설가가 쓴 작품을 받아 들고는 '자네 글은 무언가에 막혀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를 자극하고 한술 더 떠 아내는 '당신 글에는 어린 시절 이야기가 없다'며 남편의 상처를 환기시킨다.  

그는 백일장에 참가했다가 수상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학생잡지에서 본 글의 핵심적인 소재와 구성을 가져와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으로 덜커덕 장원에 뽑히게 되고 어찌되었건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현역소설가로서 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작가였다. 그의 말을 빌자면 '내가 훔쳐온 건 원고지 한 두장 분량'에 불과했는데...반성문은 오백장이라는 것이 너무 과한 벌이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지금으로 치자면 A4용지(10P 가정)의 두어 단락 쯤 되 보인다. 엄청난 표절임에 틀림없지만 내가 생각해도 오백장은...(그러니까 다시 A4용지로 60장 정도 되려나, 쉽게 생각해 단편소설 네 다섯 개의 분량)심하긴 했다. 이에 반해 마침 국어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다른 이의 공들인 마음을 마치 내 것인 것처럼' 마음을 훔친 것이니 오백장은 꼭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작품을 집필한 김도연 작가도 소설 속 주인공처럼 교내 백일장에서 어느 학생잡지에 실린 글을 절반쯤 훔쳐와 장려상을 받았고, 그것을 계기로 작가의 꿈을 키웠다고...그러나 평생을 그 한 번의 도둑질이 발각될까봐 악몽에 시달렸다며 고백하고 있다. 그러니까 작가는 소설을 빙자한 자신의 뼈아픈 반성문을 아주 근사하게 써낸 것이다. 자신의 실제 경험이 소재가 된 것이니 만큼 남의 글을 인용한 사람의 당시 상황과 심리, 그 후에 생겨난 공포스런 죄책감, 성장하며 겪었을 지속적인 부채감, 그리고 그것이 결국 소설가가 된 자신에게 어떠한 멍에가 되었는지 너무나 예민하고도 절절하게 그려내어 하마터면 그래 까짓것 두 눈 뜨고도 눈과 코를 베어 가는 표절천국이 되버린 요즘 세상에 비하면 철모를 때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잡지의 한 구절 쯤이야 슬쩍 가져와 각색한 것이 뭐 그리 큰 잘못이야...고, 괜찮다고 충분히 이해하기만 할 뻔 했다...이해야 하지만...잘못은 잘못인데 말이다.

아니..사실, 그냥 잘못이 아니라 막대한 잘못이지. 6년 전인가. 미니홈피와 블로그가 지금의 트위터 처럼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 이미 젊은이들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후였다. 그땐 지금처럼 인터넷상에서 저작권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유료 컨텐츠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다. 한때 무방비 상태로 악성 댓글이 유행할 때처럼 남이 쓴 글을 허락 없이 클릭 하나로 자신의 블로그에 스크랩 하는 일은 일종의 자료조사이거나 좋은 글에 대한 공유에 지나지 않은 범죄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라고는 전혀 인식조차 못하고들 있을 때...나는 그때 검색을 하다가 내가 쓴 글을 버젓이 자신이 쓴 것처럼(스크랩차원이 아닌)게시하고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덧글도 받아 내는 작태(?)를 목격했다. 물론 나는 유명한 작가도 아니었고 그때 내가 끄적인 글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주장할 수 없는(난 너무 소심했다) 일개 네티즌에 불과했지만 그때 놀랐던 건 정작 내 마음을 훔친 것에 대한 상처가 아니라 내 글을 가져간 사람의 무심어린 그 당당함이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였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냥 거대한 바닷가 모래밭에 떨어진 조개껍질 한 조각을 주어놓고 누가 알겠어 주은 사람이 임자지...그런데 그런 일을 이놈의 인터넷이 생기고부터 따지고 세어보지 않아서 그렇지 부지기수로 당했다.(아마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전문을 가져간 것은 살짝 귀엽기라도 하다. 분명히 내 글의 일부 혹은 형식, 소재를 빌어 자신이 새로운 글을 창작해낸 양 글을 올리고 타자와 활발하게 교류하는 사람도 보았다. 더 교활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물증은 없지만 글을 최초로 써낸 사람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우연히 아주 비슷한 글을 비슷한 시기에 써낼 수 있는 확률이 일반인들에게도 해당됨을 모르지 않으나..한자 한자에 예민했던 나는 아마추어 글쟁이 일망정 내 마음 훔쳐간 그 마음을 알아챌 만큼의 눈치는 있었음이다. 그 역시도 그 문장에 딱 어울리는 그 한 단어에 대한 고민을 알고 있는 사람이 틀림없었으니까...그런데 그런 일을 자행하는 사람들 중에 '책 좀 읽고 글 좀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아예 글에 관심이 없고 더 좋은 글을 써보자는 욕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만사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얼굴도 아주 못생긴 사람보다 웬만큼 남들이 보기엔 괜찮아 보이는 여자들이 더 많은 성형에 매달리는 것 처럼.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내 상처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중학교 때 친구들끼리 편지를 거의 매일 주고 받았다. 나를 포함한 여섯 명이 그러니까 매일 다섯통을 써내어야 하는 애틋한 우정을 간직한 나는 어느 날 내가 쓴 편지에 삽입된 문장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도착하는 우스꽝스런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꽤 오랜동안 누군가 나의 글을 슬그머니 훔쳐갈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회사생활에서도 나는 하필이면 수백페이지의 제안서 원고를 써내어야 하는 직무에 종사했는데 그 땐 운없게도 인터넷에서 지금처럼 모든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없었기에 발품을 팔아 도서관이나 서점을 다녀온 횟수가 곧 그가 작성해 낸 페이지의 양을 결정할 시기였다. 기획서...제안서..프리젠테이션 원고...이런 것들은 아직 팀장이 되지 못했을 시기엔 거의 내가 낳아놓은 아이를 탯줄을 끊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윗선에서 훌러덩 가져가는 것과 다름 없었다. 나와 같이 신입시절 죽도록 고생한 어느 동료가 다른 회사로 스카웃 된 후 내가 작성한 기획서 초안을 가지고 잘 가공해 공모에 당선된 적도 있었다.(훗날 어떤 술자리에서 내가 제안서를 최초로 베낀 여자가 저기 있다며 고백 비슷하게 퉁치려고는 하더라..) 그 安은 우리가 같은 공간에서 지독했던 상무를 욕하며 화이트 보드에 끄적이고 정리했던 아이디어(우리끼리 떠들고만)였다. 아이디어만인가... 버젓이 세상에 공개되어 제출된 제안서에서도 뼈대를 그대로 가져가 단어와 영어 스펠링 몇 개만 바꾸어서 새로운 척 안을 작성해 내는 것은 거의 플래너로서 트레이닝의 한 단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길 정도였다. 물론 그 와중에 나 역시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무지막지한 스트레스를 덜어보려 유명한 작가나 정치인들의 저서에서 슬그머니 이거다 싶은 문구를 가져다가 '기획의 배경'이나 '기획의 의도' 쯤 되는 단락 세 번째나 네 번째 문장 어느 구석에 적절히 삽입, 각색(인용에서 발전한)하고는 난 작가가 아니니까....이렇게 인쇄소를 달려간 적도 많았다.(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맨 뒷페이지 참고문헌에 적어 놓았다 !)

블로그를 삭제한 적도 몇 번 있었고 저작권 문제로 재수 없게 벌금을 문적도 있었고,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내 글에 대한 애착만큼이나 남의 글에 대한 존중이 생겨버렸고 그 예절은 웬만해선 남의 글을 읽지 않은 것으로(도용을 안볼 수 있고 혹시라도 내가 안할 수 있다는 1석2조의 효과)발전해 적어도 글에 대해선 남의 마음에 시선을 일절 거두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나의 고해성사인듯 하면서 은근히 자신의 상처를 자랑하며 투정하는 꼴이 되었는데 다시 책으로 돌아와 작품 속 주인공 처럼 작가만 못되었지 서평을 많이 써온 분들이라면 내 이야기가 자신의 사연과 흡사한 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내가 쓰는 반성문이자 또 내가 받아야 할 반성문이라는 생각에 적어도 내 서평을 읽은 분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시라 권해드리고 싶다.

주인공이 중학교 2학년 백일장에 참가해 제출한 글의 제목은 '정류장'이다. '추운겨울, 한적한 시골정류장에서 흩날리는 눈발을 배경으로 버스를 기다리며 울고 있는 낯선 소녀'라는 그림같은 소재에 자신의 마을풍경과 자신의 마을사연을 덧붙인 주인공은 현실에서도 거짓말 같이 정류장에서 한 소녀를 만난다. 삼십년 전의 실수를 기억하는 선생님만큼이나 나는 이 소녀가 내 어린 시절 고향에서 헤어진 풋사랑, 그녀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스라했다. 소녀는 미술반이었고 자전거를 타고 오가면서 만난 소녀와의 인연은 자신이 반은 지어낸 이야기속의 어린시절 환타지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소년이었던 주인공은 결국 그 소녀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함으로써 반성문 보다 더 지독한 자기체벌을 감행한다. 하지만 그 순간 소녀는 동화 속에 등장하는 여학생처럼 소년에게 키스를 선물하고 쌓이는 눈 속에서 소년은 첫 번째 구원을 받게 된다. 주인공(작가)에게 강원도 시골 마을은 동심의 순수를 찾아가는 시발점이었고 끝없이 내리던 눈, 산처럼 쌓이던 그 눈은 세상에 더럽혀진 뭍 때와 각질을 씻어 내리는 자신만의 정화기제로 자리잡은 듯 하다. 나는 이 장면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으며 어쩌면 주인공이 삼십년 동안 반성문을 쓰지 않았어도 견뎌낼 수 있었던 수치이자 동시에 치유의 추억이라 생각한다. 훗날 그 소녀는 결국 화가가 되어 소년이 반쯤 표절한 이야기인 '정류장'을 다시 시골 정류장을 배경으로 중학생인 그들이 키스하는 장면을 그려내며 나머지 반쪽을 완성한 그림을 선물하게 되고 그 그림은 소설가가된 주인공의 거실에 마치 십자가처럼 걸리게 된다.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선생님이 연일 연재되는 반성문을 읽으며 답신하신 글 또한 이 작품의 백미이다. 오백장의 반성문은 실은 자신의 젊은날 과오를 투영한 모진 벌이었으며 자신이 검열 받은 소설과 교사라는 직업을 바꾸게 된 오랜 상처를 고백하는 계기이자 자신처럼 되지 말라는 선생의 마지막 부탁이기도 했던 것이다. 선생님은 소설가가 된 제자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의 마지막 편지는 눈물 없이 읽을수 없었다...소설가가 된 제자가 자신 한명을 위해 쓴 소설이라 자랑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어른 거리는 듯 하다.

“내 마음을 내가 오래 공들여 가꾸지 않고 다른 이의 공들인 마음이 마치 내 것인 양 착각한 채 그때껏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내가 내 발에 걸려 넘어졌을 때 내 힘으로 일어서려 하지 않고 목청 높여 울며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게 버릇이 됐다는 것이다.”

아리아리 하던 가슴팍을 기어이 쿡쿡 찌르고 마는 작가의 말이다. 삼십년 전의 일뿐이겠는가...하루하루 반성만 하고 살아도 그 하루가 모자랄 것 같이 글로 상처 받은 적 있고 또 똑같은 글로 남에게 상처를 준 적이 있는 우리들이다. 오백장의 반성문을 통해, 한편의 서평을 쓰면서도 오로지 내 힘으로, 온전한 내 감성, 진정한 내 감정만으로 남의 도움없이 떳떳이 세상에 내보일 수 있어야 함을 다시금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작가의 목련꽃 반성문이 한 바퀴 돌아 다음 목련꽃이 떨어질 그때 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어쩐지 목련 꽃이파리가 떨어지는 모습이 슬프기만 할 것 같지는 않다. 그때도 아리아리 할 것임에 틀림 없지만.

<진부의 송어낚시>

진부의 송어축제 행사장에서 인터넷에 올려진 방문객의 게시글을 보고 운영진 측에 정보를 전달하는 아르바이트, (업무영역으로 보자면 행사 사이트관리?)를 하게 된 고3 정미의 송어 같은 이야기이다. 정미를 보면서 잠시 나의 고3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수능시험을 보다 말다 뛰쳐나와 마을 다리밑에 마련된 송어축제 행사장을 보게 된 정미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었지만 끝내 공감하기 어려웠음이다.

내가 고 3이었을 땐 전국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개최하는 올림픽에 열광하던 여름밤이 그해의 전부였을 정도로 우리 동네, 우리 학교에선 내 임무가 대학을 합격하는 것인지, 올림픽을 치루어 내는 것인지 헤깔릴 정도였다. 그때 9월 달이었나? 모의고사를 앞둔 그날 밤 양영자와 현정화라는 탁구선수는 중국의 복식조와 결승을 다투고 있었는데 내가 다니던 독서실에선 당연히 사람들의 함성이 3초의 터울을 가지고 반복되며 천지를 흔들어 댈 때였다. 나는 그날 밤 독서실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보며 '내가 대학을 가야 하는 것인가요' 하며 진지하게 물었다. 내가 하늘을 보며 심각하게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이집 저집에선 금메달의 기쁨과 함성소리에 마치 하늘에 볼꽃놀이라도 펼쳐진 듯한, 그래서 더없이 외로웠던 그날 나는 남은 몇 개월은 어머니를 위해 공부하겠다는 나름의 결론을 가지고 옥상을 내려왔다.  

정미의 송어는 왜 내가 다시 공부를 시작한 바로 그날 밤을 떠올리게 했는지...진로를 방황하며 갈피를 못잡던 정미가 흐리멍텅 해보이는 얼음구멍을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송어를 향해 고맙다 인사한 덕분인지, 그때 혹시 정미는 나와 비슷한 두렵지만 버리지 말아야 할 용기 한줌을 집어 삼킨 것은 아니었는지...정미가 시험을 포기 하지 말았으면 하는 내 마음도 알아주길 바라며 작품을 덮었다. 처음에 정미를 이해 할 수 없었던 그 어른 된 심정까지 사과하면서... 

통통튀는 송어와 마찬가지로 톡톡 쏘는 정미의 대사가 잘 어우러 지면서 희망은 절망적인 고민에서 비로소 튀어오른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삼십년 뒤에 쓰는 반성문에 이은 이십년도 더 된 각서였다고나 할까. 송어의 마음을 얻으려고도 했는데 까짓것, 사람의 마음이야...그 마음 한참동안 잊지 않고 싶은 정미의 마음이 옛날 그때, 우리 거기에도 있었다.  

고 3들이여, 고 3이었을 사람들이여...모든 것은 지나왔고, 지나가나니... 
서로가 축하 할 일이 아니겠는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9-13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3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