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으로
모신 하미드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수첩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2년 전에 따끈따끈한 신간으로 산 책을 구간으로 만들어서 읽었다. 모신 하미드의 <서쪽으로>. 파키스탄 출신으로 서구에서 공부하고 다시 자신의 뿌리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간 남자. 이것은 판타지인가 아니면 우리네 일상을 적나라하게 후빈 그런 르포르타주인가.

 

10년 전 독재자 알아사드를 축축하겠다고 시작된 시리아 내전의 끝은 아직까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정부군과 반군의 무력충돌로 수백만 난민이 발생했다. 그렇게 발생한 난민들의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바다 건너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이는 유럽 땅을 밟아 보겠다고 일엽편주 신세로 지중해 바다에 나섰다가 죽은 이들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것도 한 때 뿐이다. 나와는 다른 피부색과 종교 그리고 관습을 가진 이들에 대한 생래적인 거부감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난민 수용에 찬성하지만, 그런 내 생각에 대해 너희 집에 난민을 받아 들여 준다면 너의 진정성을 이해해 주지란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나의 난민들에 대한 관용은 아마 거기까지였나 보다.

 

소설 <서쪽으로>의 주인공들은 내전이 벌어진 어느 곳의 남녀 사이드와 나디아다. 둘은 대학 강의실에 만나 조금씩 사랑의 싹을 틔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평온한 일상을 위협하는 가공할 만한 내전이 발발한다. 그냥 아주 평범한 청년들이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연애 좀 하겠다는데 극한의 폭력투쟁이 발생하다니... 조금 소심한 남자 사이드의 어머니가 총에 맞아 돌아가시면서 사이드와 나디아는 새출발을 꿈꾼다.

 

여기서부터는 판타지의 영역이다. 도서의 어딘가에 이 있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이드의 아버지는 같이 떠나자는 아들과 어쩌면 미래의 며느리의 제안을 거부한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죽은 아내의 곁이라는 이유를 대면서. 어찌 슬프지 않을소냐. 그리고 그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이 낯선 땅에 가서 난민이자 이방인으로 살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점을 말이다. 어쩌면 죽음이 난무하고, 죽은 이의 머리로 공을 차는 극악한 상황이 그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이드와 나디아는 그런 아버지를 두고 비교적 안전한 서방행을 택한다. 아 참, 그전에 세계 곳곳의 잔잔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그야말로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네들의 삶과 당장 떠나지 않으면 죽을 지도 모를 사이드와 나디아의 이야기가 무슨 상관이란 말이지? 다른 곳의 안온한 일상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주인공들의 서사를 극적으로 만드는 그런 장치로 작동한다.

 

을 통해 사이드와 나디아가 도착한 곳은 난민들의 중간기착지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의 미코노스섬에 도착한다. 그런데 모신 하미드는 너무 쉽게 문을 통한 공간이동이라는 방식으로 난민들의 이주를 그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단 좋다. 그런데 그곳에서 사이드와 나디아는 여전히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하긴 난민들이 어디에서 환영받는 존재였던가. 미코노스인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용변을 해결하는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위들이지만, 정작 위기 상황에서는 정말 쉽지 않은 그런 일들이지 않은가 말이다.

 

주인공들이 이동하는 다음 무대는 런던이다. 런던의 빈 집들에 세계 곳곳에서 온 난민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나이지리아, 소말리아 같은 곳에서 더 이상 머무를 수 없게 된 이들이 시공간을 초월해서 모이기 시작한다. 나디아에게 가장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첫 번째 스텝은 샤워였다. 그리고 보니 예전에 물이 귀한 에티오피아에 간 서구의 선교사들이 무너지는 게 바로 샤워였다지. 하루에 물 한 양동이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부족과 결핍을 모르고 자란 이들이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런던에서 사이드와 나디아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이들도 있었지만 또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반이주자들이 구사하는 폭력은 무시무시했다. 모두가 자신들의 일상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준다면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말일까?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본고장에서 벌어지는 토끼사냥 같은 진압작전에 입안에 쓴맛이 도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사이드와 나디아 같은 난민들에게는 숙명 같은 일일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연인을 넘어 굳은 동지애로 뭉친 사이드와 나디아의 관계에도 미세한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그 균열을 무엇으로도 봉합할 수가 없는 그런 수준의 것이었다.

 

마지막 무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근의 머린이라는 곳이었다. 대서양 바다가 아닌 또다른 바다가 보이는 곳에 둥지를 튼 사이드와 나디아. 원래부터 독립적이었던 나디아의 주장 대로 런던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사이드는 군말 하지 않고 따라나섰다. 하지만, 고향을 그리고 돌아가신 부모님들을 그리워하던 사이드는 점점 종교와 영적 세계 그리고 자기나라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이드와 나디아의 파국은 어쩌면 예고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이란 그렇게 가는 거지 뭐.

 

오래전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휴대전화라는 물건으로 이제는 모든 게 가능해진 모양이다. 이국땅에서 휴대전화로 나디아와 사이드는 각지에 흩어진 지인들과 소통을 시도한다. 그리고 휴대전화로 뉴스를 접하고, 동시에 뉴스의 주인공이 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동시에 당혹스러워하기도 한다. 뉴스원인 동시에 뉴스의 소비자라. 아니 어쩌면 21세기 모바일 시대에 휴대전화는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수단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전기와 수도가 아니고 휴대전화가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책의 어디에선가 만난 우리는 모두 시간을 통과하는 이주자들이라는 표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시간을 모든 것을 조용하게 파괴한다. 시간을 이기고자 노력했던 인간들의 노력을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니 같은 시간을 통과하는 이들에게 조금은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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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8-03 1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신간 사서 구간으로 읽는 신비한 독서나라네용~ㅎㅎㅎㅎ
마지막 따뜻한 시선 넘 좋습니당~

레삭매냐 2021-08-03 13:4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뭐 그래도 2년을 넘기지 않고
읽었다는 데 의의를 두려구요 ㅋㅋ

새파랑 2021-08-03 14: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정도시면 2년 쯤이야 ㅋ 더 오래 묵힌 책들도 있으실거 같아요^^

레삭매냐 2021-08-03 15:28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10년이 넘어가는 책들도... 쿨럭.

바람돌이 2021-08-03 15: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에게 2년 넘게 묵힌 책 아주 많습니다. ㅎㅎ
내전을 피해 이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판타지 형식을 빌려 이야기하는 책인가요? 난민 문제가 전 지구적인 문제가 되어가는데 우리나라라고 해서 관련없다고 내버려둘수는 없는거 같아요. 자기 땅에서 강제로 내쳐져야 하는 삶들이 더 없었으면 합니다.

레삭매냐 2021-08-03 15:29   좋아요 2 | URL
난민 문제와 판타지를 적절하게 섞은
수작입니다.

적어 주신 말에 자극을 받아 검색을
해 보니 다음과 같은 정보들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1. 2021년 세계 난민수 : 7,950만 명

2. 전 세계 인구의 1%가 난민이다.

3. 세계 난민의 50%가 어린이들이다.

4. 개발 도상국들이 85%의 난민들을 받아 들이고 있다.

5. 시리아 난민 가족의 80% 정도가 빈곤선 이하다.

6. 매 2초마다 한 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고 합니다.
 

매주 금요일이면 한겨레신문에 실리는 <책과 생각>이라는 코너를 기다렸다.

사실 신간 정보는 램프의 요정을 거의 매일 같이 문질러 대면서 기다리는 사람이라 특별한 기대도 없지만 습관적으로 찾아보는 그런 섹션이었다.

 

그런데 오늘 들어가 보니 그 코너가 사라진다고.

그것은 마치 동네책방들이 사라져 가는 느낌이랄까. 내가 어린 시절에는 동네마다 책방이 있었다. 아니 그 시절에는 온라인서점과 택배라는 시스템이 없어서 책을 사려면 무조건 책방에 가야했다.

 

그 시절에 책방에 가면 한나절은 우스웠었지. 마땅히 살 책이 없으면서도 그렇게 책방의 곳곳을 훑고 다녔다. 아마 그 습관이 남아서 지금도 헌책방에 가면 곳곳을 후비나 보다. 그리고 보니 이제는 헌책방도 그리고 동네책방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헌책방 가는 것도 이제는 큰 일이 되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헌책방이 없어서 멀리 안양이나 수원에까지 나가야 하는데... 안양 도토리책방에 처음 갔을 적에는 나름 갠춘했었는데. 그곳 주인장이 헌책을 인터넷 가격을 조회해 보고 매기는 통에 쫌 그렇더라. 인천 아벨서점처럼 연필로 책가격을 정해 놓으면 좋을 텐데. 그리고 보니 아벨서점 가본 지도 오래되었구나.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항상 그렇듯이.

 

뉴욕타임즈에서는 계속해서 책 코너를 운영하는데 국내 언론에서는 책소개가 더 이상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나 보다. 이제는 더 이상 책코너를 운영하지 않는단다. 그러니까 우리가 점점 새로운 책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책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도 그 경로가 없어진다는 말이니. 네이버에서도 오래 전에 책 섹션을 운영하다가 애진작에 돈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바로 접어 버렸지.

 

이제 책읽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그야말로 희귀종이 되어 가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지하철에서 책읽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프로젝트가 다 있다고 했지 아마. 그 시절에는 지하철에서 신문이나 책읽는 이들이 참 많았었는데. 이젠 신문도 책도 지하철 승객들의 손에서 사라져 버리고 대신, 스마트폰만 주구장창 쳐다본다. 재미진 웹툰에, 신박한 이야기들이 넘쳐흐르는 너튜브를 책이 상대하기란 역부족이다.

 

지금 당장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해서 책 읽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언가 읽을 거리를 찾을 것이고, 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대로 살아가겠지. 그런 게 세상이 아니었나.

 

뭐 그렇다고.

 


참 기다리고 있던 맥스 포터의 <래니>가 출간된 모양이다. 집에 가서 주문해면 내일 받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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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7-23 17:2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전 어릴 때 모르는 게 나오면 백과사전을 찾아봤는데 ㅎㅎ 아이들은 네이버 구글 검색. 요즘 아이들은 너튜브로도 검색을 하더라고요. 활자보다 영상이 편한 세대ㅠㅠ 그렇게 세상은 변하고 흘러가지만 또 변하지 않는 것도 있지요 ㅎㅎ

레삭매냐 2021-07-23 17:55   좋아요 5 | URL
제게는 그 시절에 종이접기가 정말
난관이었죠... 책으로 봐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는데 - 요즘에는 아마
너튜브로 친절하게 알려 주니 그 시
절보다는 수월하지 않을까 싶네요.

시시각각 변해가는 세상에 점점 더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1-07-23 17:4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게 사라지는건 너무 아쉬운거 같아요 ㅜㅜ 그래도 어떻게든 좋아할만한 새로운게 나오더라구요😔

레삭매냐 2021-07-23 17:59   좋아요 3 | URL
사라진다는 건 아쉬움의 다른
말이 아닐까요...

새로운 책들이 그런 게 아닐까
제 맘대로 생각해 봅니다 핫하.

청아 2021-07-23 19: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짐 캐리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영화 <캐이블 가이>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집의 티브이가 꺼지자 어떤 사람이 책을 펼치면서 끝났던걸로 기억하는데 떠오르네요. 북플하기전에 지하철에서 책 보는 분들 발견하면 때로는 연락처라도 물어보고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너무 귀해서ㅋㅋㅋ

레삭매냐 2021-07-24 00:12   좋아요 2 | URL
바로 케이블 가이 엔딩 시퀀스
를 찾아 봤습니다. 예전에 분명
본 영화인데 1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텔리비전이 먹통이 되자 바로
끄고 침대 맡에 있던 책을 펼쳐
들고, 바로 미소를 띄는 장면이
어찌나 어색하던지요 ㅋㅋㅋ

그땐 그랬지...

stella.K 2021-07-27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소개를 돈벌이와 연결시키는 자체가 좀 씁쓸하네요.
그냥 공익을 목적으로 해도 좋을 텐데.
책이 원래 돈벌이가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럼에도 독서의 중요성을 알면 말임다.
조선일보는 어떤지 모르겠어요. 오래 전 주말이면 아예 섹션을 따로 만들어서
속으로 거의 환호하면서 봤는데. 인터넷 서점이 생기기 전에 말임다.
그러고 보면 매냐님도 디지털 보단 아날로그가 익숙한 나이신가 봅니다.ㅋ

레삭매냐 2021-07-28 08:13   좋아요 1 | URL
언제나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존재
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책을 만들어 내는 출판사
부터 돈벌이에 치중하니 말이죠.
독서의 중요성과 비즈니스는 뭐랄까
다르다고나 할까요.

그렇습니다, 전 누가 봐도 아날로그
세대지요. 요즘에는 메타버스가 대세
라고 하여 공부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물론 다른 이유(?) 때문이긴 하지만요
ㅋㅋㅋ
 
보존지구 지만지 고전선집 571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지음, 김현정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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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7월의 작가는 에밀 졸라가 아니라 왠지 세르게이 도블라토프가 된 그런 느낌이랄까. 헌책방에서 만나게 된 <여행가방>을 필두로 해서 도블라토프의 책들을 연달아 읽고 있는 중이다. 그 다음에는 <외국 여자> 그리고 다시 지만지에서 나온 <보존지구>를 읽었다.

 

로씨야 소설들은 왠지 엄근지하다는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뽀개준 작가가 바로 세르게이 도블라토프다. 이 작가의 책들을 만나볼수록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쏘비에트식 유머라고나 할까? KGB, 보드까 그리고 시베리아로 압축되는 쏘비에트 시절에 대한 통념 대신 그 동네 역시 사람 사는 곳이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해주는 글들이다.

 

일단 <보존지구>는 그전에 읽은 <여행가방><외국 여자>와는 결을 달리한다. 쏘비에트 체제에서 지난 15년 아니 20년 동안 글을 썼지만 주인공 보리스 알리하노프는 한 편의 글도 발표할 수가 없었다. 왜냐구? 검열이 일상인 나라에서 반체제 서정 시인을 자처하는 작가의 책을 내줄 출판사가 없으니까. 하지만 공산주의 시스템 속에서도 돈을 필요했고다. 비록 이혼했지만 전처 타냐와 딸 마샤를 위해 돈벌이에 나서는 보리스.

 

로씨야의 대문호 푸시킨 보존지구에서 보리스는 가이드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돈벌이다. 보존지구를 찾은 관광객들은 푸시킨과 관련된 별의별 질문들을 던지면서 보리스를 괴롭힌다. , 이런 게 궁금할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의 어처구니없는 질문들이 이어진다. 아니, 푸시킨을 그렸나 하는 그림이 얼마에 팔렸는지 둘째 아들의 부칭이 어떻게 되는지 그게 알고 싶다고? 놀라울 따름이다. 어쨌든 남자 동무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그 동네에서 지식인 노릇을 하며 보리스는 가이드로 자리잡는데 성공한다.

 

푸시킨 보존지구에 활동하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따라지 인생 같다는 인상을 준다. 비상한 기억력으로 천재 대우를 받았지만 응용력은 전무하고 심지어 귀찮으면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배짱의 사나이 미트로파노프, 벽촌에서는 제법 실력 있는 작가 취급을 받았지만 대처에 나와서는 전혀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는 포토츠키가 대표 선수들이다.

 

무식하고, 냉소적이며 금전욕을 지녔다고 보리스는 자신을 비하한다. 재밌는 건 또 그 분석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는 점이다. 착실하게 가이드로 돈을 벌어 아내에게 보내는 보리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보리스 앞에 어느 날 이제 소련은 지긋지긋하니 딸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겠다는 선언을 위해 아내 타냐가 등장한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갈등상황이 연출된다. 비록 책을 낸 작가는 아니지만, 작가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보리스는 모국을 떠나는 순간, 그것이 작가에게는 사망 선고라며 아내의 미국 이주를 반대한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결정을 내린 타냐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보리스는 그 순간, 과연 저 여자가 내가 사랑해서 결혼한 그 여자가 맞는가라는 10여년의 연애와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마저 느낀다. 자고로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하기 마련이다. 그건 아마도 사랑이라는 감정에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썸타는 남녀가 우리나라에서는 라면 먹고 갈래라는 말을 한다면, 로씨야에서는 아마 보드까 한 잔 마시고 갈래 이런 식으로 진행되려나. 그 생각을 하다가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보리스, 그러니까 도블라토프의 페르소나에게는 이 순간이 그렇게 절체절명한 순간이었을 때 동방의 어느 나라 독자는 그런 그의 감정을 훔쳐보면서 웃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타냐는 보존지구를 떠나고 홀로 남은 보리스는 그야말로 술에 쩔어 고주망태가 되어 세월을 보낸다. 게다가 보리스의 곁에는 로씨야답게 그의 고통과 음주를 함께 할 동료 주정뱅이 마르코프들이 넘쳐난다. 다른 거에는 인심이 박하지만, 서로 술 사겠다고 다투는 아름다운 장면은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로씨야에서도 그랬던 모양이다. 얼마 전, 제천을 찾은 대학 동기가 다른 동기가 하는 식당에 가서 가족들이 식사를 하고 계산하면서 격투에 가까운 몸싸움을 했다고 하던데 그것 참.

 


어쨌든 그렇게 술독에 빠져 살던 보리스는 타냐가 딸과 함께 조국을 떠난다는 전보를 그들이 떠나기 바로 전날 수령한다. 문제는 요주의 인물이었던 그에게 KGB 소령인 벨랴예프의 소환령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보리스는 벨랴예프의 태클을 돌파하고, 타냐와 마샤가 조국을 떠나기 전에 레닌그라드에 도착해서 과연 그들의 이주를 막을 수 있을까.

 

이미 결과는 <여행가방><외국 여자>에서 나왔다시피 결국 도블라토프는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에게 우상은 푸시킨이었다. 그리고 그의 언어사랑은 가족애를 뛰어 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그는 미국으로 이주하지 않았던가. 쏘비에트는 위대한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된 유대인과 요주의 인물들에게 해외 이주를 허용했다. 냉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절, 동서방의 인적 교류는 전혀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또 아닌 모양이다. 어쨌든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사는 미국으로 건너간 도블라토프는 마음대로 글을 쓸 수가 있어 과연 행복했을까?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 책을 읽거나 글쓰기보다 돈벌이에 나서야 했던 한 무명시절의 작가가 남긴 삶의 기록들은 참 애잔하다. 오늘 <수용소>가 도착할 예정이다.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지 않아 결국 샀다. 며칠 전에 <보존지구>와 같이 빌린 에밀 졸라의 <쟁탈전>도 읽기 시작했는데... 언제나 그렇지만 나의 독서는 뒤죽박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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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22 11:3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오, <보존지구>가 도서관에 있나 보군요? 저희 동네 도서관은 도블라토프 책 1권도 없어서 제가 다 주문해 넣었습니다만.... <보존지구>는 출간 년도 5년이 이미 지난 책이라 희망도서 신청 안 받아주드라고요. ㅎㅎ 걍 제 돈 주고 사서 일으려고 중고 뜨길 기다리는 중인데 워낙 읽는 사람이 없어서 안 뜰 듯 싶습니다... ㅋㅋㅋ

레삭매냐 2021-07-22 11:42   좋아요 6 | URL
저도 깜딱 놀랐답니다.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더라구요. 그래서
며칠 전에 빌려다 바로 읽었지요.
하나 더 있는데 그 책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이 리모델링 휴관에 들어가는
바람에 내년에나 읽을 수 있을 것 같습
니다.

이기 찾는 이들이 없어서 중고책으로
는 거의 로또가 아닌가 싶습니다.
 
외국 여자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지음, 서상국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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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알라딘 동지 잠자냥님께 쌩유를. 아마 잠자냥님이 <여행가방>의 친절하게 덧글을 달아 주시지 않았다면, 난 아마 세르게이 도블라또쁘의 책은 한국에 달랑 한 권만 있는 줄 알았으리라. 그리고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 추천해 주신 <외국 여자>를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일단 분량부터 마음에 들었다. 아주 가뿐했다. 더더욱 읽기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가끔은 이런 불량식품 스타일의 책들도 읽어야 제 맛이지.

 

<여행가방>에서도 말했지만, 세르게이 도블라토프가 추구하는 쏘비에트 리얼리즘은 소련의 스타일이 되어 버린 진지하고 엄숙하고 무언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충만한 체제 비판적인 그런 글들이라는 편견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도블라토프 동지는 그런 고리타분한 편견에 핵펀치를 날린다. , 도블라토프의 아버지가 유대인이고 어머니가 아르메니아인이라고 하는데 인종적 분류는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하다. 유대인은 모계로 전승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긴 나의 가계도 잘 모르는 판에, 외국 사람까지.

 

소설 <외국 여자>외국 여자는 바로 주인공 마루샤 타타로비치다. 이 여성은 쏘비에트 체제의 수혜를 잔뜩 받은 소위 특권층이라는 노멘클라투라 출신이다. 아버지는 공장장에 어머니는 무슨 디자이너였지 아마. 그러니 쏘비에트 체제에서 무엇 하나 아쉬울 게 없는 그런 존재였다. 학교에서도 인기 만점이었고, 학교와 직장 모두 원하는 것을 얻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마루샤의 연애사업은 그닥 성공적이지 않았다. 첫 애인인 라지카라는 녀석은 프롤레타리아 유대인이었고, 마루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마루샤는 장군의 아들 디마와 결혼했는데, 그녀의 첫 번째 결혼은 당근 실패로 끝났다. 너무 바른 싸나이였던 디마의 무심함에 질린 마루샤는 가능한 모든 이들과 바람을 피운다. 두 번째 결혼은 유명 가수 브로니슬라프 라주달로프와 했는데, 가수의 바람기 때문에 결국 아들 료부시카만 덜랑 남기고 역시 실패로 끝났다. 마루샤가 죽겠다고 협박하자, 브론카는 물 속 가장 깊은 곳을 알려 주겠다는 노래로 화답한다. 끝내 주는 커플이 아닌가!

 

, 소설은 미국으로 이주한 마루샤네 동네에 사는 러시아 사람들에 대한 묘사로 시작했지 아마. 108번가에 사는 러시아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하면서도 또 동시에 이질적이기도 하다. 뉴욕의 케이타운 같다고나 할까. 뉴욕에 도착해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햄버거 대신 케이타운에서 순댓국을 한 사발 먹고 구겐하임 뮤지엄을 찾았던 시절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어디 사나 다 마찬가지인가 보다.

 

문제는 마루샤의 친구이자 작가의 페르소나가 분명한 작가세르게이 도블라토프의 경우는 다르다는 것이다. 모국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망명이나 이민을 떠난 작가에게 그것은 언어적 사망 선고라는 것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롤리타>의 나보코프 같은 대작가도 있지만, 그것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일 따름이다. 모국 소련에 창작의 자유는 없는 대신 독자들이 있었지만,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는 창작과 출판의 자유는 보장되었지만 정작 예의 문학을 소비할 독자들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바로 문제였다. 오호 통재라.

 

소련에 남아 살아도 무엇 하나 아쉬울 게 없었던 마루샤는 아무 생각 없이 라지카와 결혼한 뒤, 아들 료부시카와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의 퀸즈에서 마루샤 모자는 1도 모자라지 않는 완벽한 이방인이었다. 아무리 볼셰비키가 지배하는 조국에서 잘 나가던 이들도 모두 미국식 자본주의 앞에서는 조금 더 평등했다. 아니 평등하다 못해, 누가 돈을 더 많이 버느냐가 최우선하는 가치가 되었다. 쏘비에트식 평등주의에 물들어 있던 이들에게, 돈벌이에 혈안이 된 미국의 살벌한 경쟁이 달가울 리가 있나 그래. 특권층으로 무엇 하나 부러울 게 없이 산 마루샤의 추락은 예상한 대로 그대로 진행된다.

 

그렇게 버거운 이방인으로서의 살이에 지친 마루샤는 자본주의 본고장에서 암약하는 조국의 KGB 요원들에게 포섭되어 조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자본주의에 물들어 외국 여자가 된 마루샤에게 쏘비에트 조국은 그렇게 만만하게 응대하지 않았다. 조국의 대리인들인 KGB 요원들은 마루샤에게 반성문인지 논문인지를 요구한다.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 같은 반체제 인사라면 당연 씨도 먹히지 않는 수작에 거창한 방식으로 대응했겠지만,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이민길에 오른 마루샤는 그런 KGB 공작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흘려버린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미주 공연에 나선 브론카의 공연을 찾기도 하고, 그런 마루샤를 질투하는 바람둥이 라파 곤잘레스의 질투를 사기도 하는 마루샤의 좌충우돌 미국 생활기는 계속된다. 결국 그렇게 속을 썩이던 라파와 결혼에 골인하게 되는 마루샤. 소설에서 이기적인 조지아인들이 아름다운 여자들을 모두 다 차지한다고 하는 부분이 등장하는데, 이는 명백하게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과 비밀경찰 엔카베데(NKVD)의 수장이자 스탈린의 멍멍이로 불렸던 라브렌티 파블로비치 베리야를 겨냥한 냉소적 비판이다. 그 둘이 활개를 치던 시절, 이런 글을 썼다면 도블라토프는 당장 총살형 아니면 시베리아 종신형에 처해졌을 것이다.

 

도블라토프는 이국땅에서 고유의 정체성을 잃고 살게 된 신산한 이민자들의 삶이라는 층위에 바스락거리는 페이스트리 같은 망명 작가 세르게이 도블라토프의 어떤 모습들을 고명처럼 얹었다. 밀푀유 같은 맛이라고나 할까? 어떤 이유로 그곳에 흘러들었건 간에, 그들 모두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여행가방에 자신의 과거를 바리바리 싸서, 물 건너온 이들을 맞이한 미래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들보다 그렇지 못한 따라지들의 이야기가 더 매력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읽을수록 더 땡기는 맛이다. 잘 버무렸다.


[뱀다리]



우연히 도플라토프의 사진이나 검색해 보려고 하다가 2018년에 나온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런 영화들은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구나.


이 작가의 삶은 영화로 만들어질 법도 하다 싶었는데, 내 생각에 앞서 아예 영화로 만든 이가 다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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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7-19 22: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행가방> 오는 중요.
내일 온대요^^
품절이라 중고로.. 알려주신대로!
언제 읽고 올리게 될지는 모르지만.ㅎㅎ

레삭매냐 2021-07-19 23:26   좋아요 4 | URL
일단 사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또 언제 구할 수 있을 지
모르니깐요. 읽는 건 천천
히 가셔도 됩니다, 넵.

독서괭 2021-07-19 23:3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우와 책 구해서 읽는 속도가 엄청나시네요. 여행가방 리뷰 본지 얼마 안 됐는데..!

레삭매냐 2021-07-20 00:19   좋아요 5 | URL
<여행가방>이 넘 재밌어서
다 읽고 나서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빌려다 어제 출근길
버스에서 다 읽었답니다.

다른 책(보존지구)도 빌려다 읽을라구요.

청아 2021-07-20 00: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리 말씀하시니 안 담을 수가 없네요! <여행가방>도 <외국여자>도 쏙😊

레삭매냐 2021-07-20 00:21   좋아요 4 | URL
<우리들의>라는 책도 있는데
그 책을 소장 도서관이 이달
부터 리모델링에 들어가는
바람에 내년에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행가방> <외국 여자> 모다
모다 재밌습니다.

새파랑 2021-07-20 00: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품절이군요 ㅜㅜ 글이 아주 흥미 만땅이네요. 러시아는 역시 KGB, 보드카, 그리고 시베리아~!!

레삭매냐 2021-07-20 07:25   좋아요 5 | URL
지만지에서 나온 <외국 여자>는
시중에서 구하실 수 있고,
뿌쉬낀하우스에서 나온 <여행가방>
은 품절이랍니다.

로씨야는 역시 KGB-보드까 그리고
싸이베리아로 귀결된다는 말쌈,
핵심이네요.

바람돌이 2021-07-20 01: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처음 들어보는 작가! 세상에 읽을 책은 정말 널리고 널렸습니다. ^^ 그동안 잘 지내셧죠? 좀 오랫만에 들어왔어요. ^^

레삭매냐 2021-07-20 07:25   좋아요 4 | URL
웰컴 백입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세상에 책은 정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
같습니다.

잠자냥 2021-07-20 09: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잘 읽으셨군요! 정말 피식피식 약간 헛웃음 나오는 작품이죠? 도블라토프의 참맛을 아는 독자 분이 또 한 명 나타난 것 같아 기쁩니다. (내가 왜;; ㅋㅋㅋㅋ)
전 얼마전에 중고로 <우리들의>가 나왔기에 덥석 구매했어요.
<여행가방> 그 책은 아주 오래전 사 읽고 갖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품절, 레어템이 되니까 왠지 볼때마다 더 흐뭇? ㅋㅋㅋㅋ
<수용소>나 <외국여자>는 지만지 책이 좀 비싸서리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었고요. ㅎㅎ

레삭매냐 2021-07-20 10:50   좋아요 4 | URL
피식피식 헛웃음이야말로 도블라토프
작가의 맛이 아닌가 싶습니다.
피식스~

도블라토프의 책들이 대중적이지
않아 더 찾아 보는 재미가 있네요.

지만지 책들은 왜 이렇게 비싼지
모르겠네요. 희귀한 작가들을 번역
해서 그런지 어쩐지...

잠자냥 2021-07-20 09:4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자살하겠다는 아내에게 불러준 이 노래 진짜 웃기지 않습네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대가 만일 강으로
빠져 죽으러 갈 것이면,
내게 안녕을 고하러 와 주오.
내가 그대와 함께 강으로 가서
가장 깊은 곳을 가르쳐 주리다. (56쪽)

레삭매냐 2021-07-20 10:55   좋아요 4 | URL
그렇지 않아도 잠자냥님의 리뷰를
보고 기대하던 시퀀스였는데
역시나 빵빵 ~ 터졌습니다.

로씨야식 유머?

mini74 2021-07-20 22: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댓글도 내용도 홈쇼핑 매진임박보다 더 혹하게 하는 ㅎㅎㅎ 러시아소설 은근히 매력있고 재미있는거 같아요. 이름은 낯설지만 ㅠㅠ

레삭매냐 2021-07-21 06:05   좋아요 2 | URL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그동안 도끼 선생이나 톨스
토이의 엄근지 모드에 질려서...
로씨야 소설들을 멀리 하였으나
도블라토프를 통해 그렇지 않은
작가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답니다.

이달에는 에밀 졸라가 아니라
도블라토프로 급변경했네요 ㅋ

초딩 2021-08-06 17: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2관왕 축하드려요~

레삭매냐 2021-08-14 10:35   좋아요 0 | URL
아이구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08-06 18: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레삭매냐 2021-08-14 10:35   좋아요 0 | URL
부랴부랴 책 사들이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08-06 18: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관왕 완전 축하드려요~!!

레삭매냐 2021-08-14 10:35   좋아요 1 | URL
앗 한 개가 아니었군요 :>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8-06 1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행가방도 받았고, 덕분에 재밌는 독서!
축하도 드려요^^

레삭매냐 2021-08-14 10:35   좋아요 0 | URL
졸라 읽는다고 하고선
다른 작가로 ㅋㅋㅋ

감사합니다.

강나루 2021-08-06 2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레삭매냐 2021-08-14 10:3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 달에는
뽀나스를 더 주셨네요.

하나의책장 2021-08-14 0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레삭매냐 2021-08-14 10:3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thkang1001 2021-08-14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여행가방
세르게이 도나또비치 도블라또프 지음, 정지윤 옮김 / 뿌쉬낀하우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내가 이 작가를 어떻게 알게 됐지? 이 책은 나의 램프의 요정 중고책 장바구니에 고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사냥감이 뜨자, 주저하지 않고 구매했다. 같이 산 책 중에 올리비에 롤랭의 <수단 항구>. 절판된 책들을 만날 때의 즐거움이라고나 할까.

 

왠지 구소련 작가들의 책들은 엄근지하고 재미가 없다는 인식이 머리에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반체제 서정 시인임을 자처하는 세르게이 도나또비치 도블라또프가 쓴 여덟 개의 단편들은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쏘비에트 작품들에 대한 인식과 그 궤를 달리한다. 한 마디로 재밌다는 말이다.

 

가난을 벗 삼아 살아온 도블라또프는 구소련 시절, 모국에서는 반체제 작가로 낙인이 찍혀 자신의 이름을 단 책이 하나도 출간되지 못하는 그런 비운의 작가였다. 하지만, 미국으로 망명한 후 명성이 알려져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아쉬운 점 중의 하나는 50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심근경색으로 이국땅에서 영면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 후에 요절한 작가의 전설을 선호하는 미국 팬들이 그를 전설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로베르토 볼라뇨처럼 말이다.

 

도블라또프는 미국으로 가는 망명길에 싼 여행가방에 든 여러 아이템들을 추억을 회고한다. 마치 셰헤라자데가 폭군 앞에서 술술 이야기보따리를 풀 듯 그렇게 작은 가방에 담긴 사물들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들은 흥미진진하다.

 

분명 구 쏘비에트는 공산당과 KGB가 인민의 삶을 통제하는 독재사회였다. 도블라또프가 전면으로 그런 사회 체제를 비판했다면, 아마 그가 구수하는 리얼리즘은 빛을 보지 못했으리라. 대신 작가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체제 비판에 나선다. 이놈의 나라는 술 그러니까 알코올로 대변되는 보드까가 들어가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는 그런 나라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보드까도 내가 아는 스미노프 따위는 짝퉁 알코올이고 진짜배기는 따로 있었다. 이름이 어려워서 외우지도 못하겠다. 그러니까 공산당도 결국 보드까의 벽은 넘지 못했다는 말일까.

 

소설의 화자는 도블라또프의 분신으로 보인다. 청년 도블라또프는 대학 진학 후,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상류 계급의 일원들과 어울리기 위해 숱한 빚을 지게 되고 손쉬운 돈벌이를 생각하게 된다. 결국 우연히 만난 친구와 핀란드산 양말 밀수업에 나선다. 왜 그런데 미국처럼 코카인 같은 마약이 아니라 양말일까? 이게 바로 도블라또프가 쏘비에트 체제를 비판하는 방식이다. 고작 이웃나라 양말을 수입해서 일확천금을 노린단 말이지? 밀수범들의 계획과는 달리 전혀 품질이나 가격에서 수입산 양말에 뒤지지 않는 국내산 양말이 시중에 대량으로 풀리면서 나는 20년 동안 연두색 핀란드산 양말을 신어야 했다는 점이다. 그것 참.

 

그의 조국 어딘가에서는 항상 도둑질이 행해지고 있다는 신랄한 비판도 빠지지 않는다. 자신도 엉터리 기념 조각상 작업을 하면서 일보다 현장의 막내로 보드까 사러 다닌 추억만 가득할 뿐이다. 아슬아슬하게 납기일에 맞춰 위험천만하게 작업을 마치고 개통식에 등장한 시조프 레닌그라드 시장의 구두를 저자는 훔쳤다고 고백한다. 그게 진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자신의 상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게 바로 도블라또프가 자신의 조국을 비판하는 방식일 테니 말이다.

 

죄수 호송 중에 보드까에 취한 동료에게 쇠 벨트로 얻어맞은 불상사는 또 어떤가. 가만 보면 모든 사단의 근원은 바로 그놈의 보드까다. 그런데도 그들은 당최 문제의 원인을 제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니면 체제의 억압적인 상황으로부터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는 안식을 제공하는 게 보드까라서 그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쏘비에트 인민들에게 공급한 게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기도 했다.

 

직장 동료에게 배우 역할을 제안 받고 레닌그라드를 건설한 황제 표트르 황제로 분장해서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은 마치 할리우드 영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워낙 이상한 주정뱅이들이 많으니 황제 복장을 하고 거리를 다녀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다. 대신 쏘비에트 인민들은 술을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 새치기하는 건 참을 수가 없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그런 그들의 분노를 유발하라는 주문을 저자에게 날린다. 그게 바로 쏘비에트식 리얼리즘의 날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도블라또프의 <여행가방>을 읽으면서 예전에 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쌌던 여행가방에 대해 생각해봤다. 장거리 여행이기 때문에 짐은 최소한으로 싸야만 했기 때문에 정말 꼭 필요한 것들만 담았던 기억이다. 그런데 도블라또프는 자신이 나고 자란 쏘비에트를 떠나 새로운 땅으로 향하는 이주였기 때문에 내가 싼 짐하고 아마 차원이 달랐으리라. 도블라또프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품이라기보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아마 자신의 여행가방에 담지 않았나 싶다. 아니 어쩌면 그 여행가방을 싸는 순간부터, 작가는 훗날 이런 이야기를 써야지 하는 기획을 세우지 않았을까? 원래 작가는 그런 종족들이 아니었던가. 언제나 글밥 소재에 시달리는 그런.

 

도블라또프의 또 다른 책이 있나 싶어 검색해 보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이 책이 유일무이한 번역서였다. 그의 유쾌한 서사에 매료가 돼서, 얼마든지 그의 팬이 될 요량이 있는데 더는 읽을 책이 없으니 그게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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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18 09: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도블라토프 책 여러 권 번역되어 있습니다! 도블라토프로 검색하세요. 지만지에서 <수용소>, <외국 여자>, <우리들의>, <보존지구> 그리고 이 책 <여행 가방>도 있습니다. 제가 도블라토프식 유머를 좋아해서…. ㅎㅎㅎ <외국 여자>부터 추천드립니다.

레삭매냐 2021-07-18 17:47   좋아요 1 | URL
도블라토프였군요 !!!

지만지가 하도 축약 번역을 한
다는 소문이 있어서 그동안
꺼렸었는데...

오전에 당장 달려 가서 <외국
여자> 빌려다 절반 정도 읽었
습니다. 역시나 재밌네요.

도서관에서 도블라토프 책들
은 그닥 애용하지 않는가 봅
니다, 띄엄띄엄 있더라구요.

잠자냥 2021-07-18 20:22   좋아요 1 | URL
지만지는 제가 그 부분에 대해 출판사에 질문한 적이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축약본은 ‘천줄읽기’라고 표시되어 있는 책이라고 합니다. 도블라토프는 축약본 아닙니다. <외국 여자>, <수용소>는 장편(?)인데도 제가 읽은 바에 따르면 확실히 축약본 아니더군요.

레삭매냐 2021-07-18 22:35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그렇다면 안심하고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레이스 2021-07-18 09: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유머를 품은 쏘비에트 리얼리즘!
제목이 호기심을 일으키네요.
몰랐던 작가와.!

레삭매냐 2021-07-18 17:47   좋아요 3 | URL
헌책방에 뜨길 기다렸는데
냉큼 가서 업어 왔습니다.

잠자냥님이 추천해 주신
<외국 여자>는 이번에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벌어
지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네요. 다 재밌습니다 !!!

얄라알라 2021-07-18 18: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연두색 밀수 양말을 20년 신게 되는 상황설정이 참신하네요.
대박을 치고 요절이라니, 아쉽습니다.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그런 극적인 인생 굴곡 때문에 팬심이 더 커졌는지도 모르지만요^^

˝세르게이 도나또비치 도블라또프˝ 이 이름 어찌 기억할까요?^^일단은 [여행가방]이라는 책 제목으로 기억해놓고 갈게요. 덕분에 좋은 책 담아 갑니다. 감사드려요^^

레삭매냐 2021-07-18 19:58   좋아요 1 | URL
달랑 한 권만 나온 줄 알
았는데, 여러 권이 있더라구요.
이래서 닝겡이는 더 배워야
하는가 봅니다 ㅋㅋ

추천 받은 <외국 여자> 읽고
있는데 쏘비에트 시절과는
또 다른 스탈의 미국 생활기
가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다만 지만지 책이라는 게 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