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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방
세르게이 도나또비치 도블라또프 지음, 정지윤 옮김 / 뿌쉬낀하우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내가 이 작가를 어떻게 알게 됐지? 이 책은 나의 램프의 요정 중고책 장바구니에 고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사냥감이 뜨자, 주저하지 않고 구매했다. 같이 산 책 중에 올리비에 롤랭의 <수단 항구>도. 절판된 책들을 만날 때의 즐거움이라고나 할까.
왠지 구소련 작가들의 책들은 엄근지하고 재미가 없다는 인식이 머리에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반체제 서정 시인임을 자처하는 세르게이 도나또비치 도블라또프가 쓴 여덟 개의 단편들은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쏘비에트 작품들에 대한 인식과 그 궤를 달리한다. 한 마디로 재밌다는 말이다.
가난을 벗 삼아 살아온 도블라또프는 구소련 시절, 모국에서는 반체제 작가로 낙인이 찍혀 자신의 이름을 단 책이 하나도 출간되지 못하는 그런 비운의 작가였다. 하지만, 미국으로 망명한 후 명성이 알려져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아쉬운 점 중의 하나는 50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심근경색으로 이국땅에서 영면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 후에 요절한 작가의 전설을 선호하는 미국 팬들이 그를 전설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로베르토 볼라뇨처럼 말이다.
도블라또프는 미국으로 가는 망명길에 싼 여행가방에 든 여러 아이템들을 추억을 회고한다. 마치 셰헤라자데가 폭군 앞에서 술술 이야기보따리를 풀 듯 그렇게 작은 가방에 담긴 사물들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들은 흥미진진하다.
분명 구 쏘비에트는 공산당과 KGB가 인민의 삶을 통제하는 독재사회였다. 도블라또프가 전면으로 그런 사회 체제를 비판했다면, 아마 그가 구수하는 리얼리즘은 빛을 보지 못했으리라. 대신 작가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체제 비판에 나선다. 이놈의 나라는 술 그러니까 알코올로 대변되는 보드까가 들어가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는 그런 나라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보드까도 내가 아는 스미노프 따위는 짝퉁 알코올이고 진짜배기는 따로 있었다. 이름이 어려워서 외우지도 못하겠다. 그러니까 공산당도 결국 보드까의 벽은 넘지 못했다는 말일까.
소설의 화자는 도블라또프의 분신으로 보인다. 청년 도블라또프는 대학 진학 후,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상류 계급의 일원들과 어울리기 위해 숱한 빚을 지게 되고 손쉬운 돈벌이를 생각하게 된다. 결국 우연히 만난 친구와 핀란드산 양말 밀수업에 나선다. 왜 그런데 미국처럼 코카인 같은 마약이 아니라 양말일까? 이게 바로 도블라또프가 쏘비에트 체제를 비판하는 방식이다. 고작 이웃나라 양말을 수입해서 일확천금을 노린단 말이지? 밀수범들의 계획과는 달리 전혀 품질이나 가격에서 수입산 양말에 뒤지지 않는 국내산 양말이 시중에 대량으로 풀리면서 나는 20년 동안 연두색 핀란드산 양말을 신어야 했다는 점이다. 그것 참.
그의 조국 어딘가에서는 항상 도둑질이 행해지고 있다는 신랄한 비판도 빠지지 않는다. 자신도 엉터리 기념 조각상 작업을 하면서 일보다 현장의 막내로 보드까 사러 다닌 추억만 가득할 뿐이다. 아슬아슬하게 납기일에 맞춰 위험천만하게 작업을 마치고 개통식에 등장한 시조프 레닌그라드 시장의 구두를 저자는 훔쳤다고 고백한다. 그게 진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자신의 상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게 바로 도블라또프가 자신의 조국을 비판하는 방식일 테니 말이다.
죄수 호송 중에 보드까에 취한 동료에게 쇠 벨트로 얻어맞은 불상사는 또 어떤가. 가만 보면 모든 사단의 근원은 바로 그놈의 보드까다. 그런데도 그들은 당최 문제의 원인을 제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니면 체제의 억압적인 상황으로부터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는 안식을 제공하는 게 보드까라서 그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쏘비에트 인민들에게 공급한 게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기도 했다.
직장 동료에게 배우 역할을 제안 받고 레닌그라드를 건설한 황제 표트르 황제로 분장해서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은 마치 할리우드 영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워낙 이상한 주정뱅이들이 많으니 황제 복장을 하고 거리를 다녀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다. 대신 쏘비에트 인민들은 술을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 새치기하는 건 참을 수가 없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그런 그들의 분노를 유발하라는 주문을 저자에게 날린다. 그게 바로 쏘비에트식 리얼리즘의 날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도블라또프의 <여행가방>을 읽으면서 예전에 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쌌던 ‘여행가방’에 대해 생각해봤다. 장거리 여행이기 때문에 짐은 최소한으로 싸야만 했기 때문에 정말 꼭 필요한 것들만 담았던 기억이다. 그런데 도블라또프는 자신이 나고 자란 쏘비에트를 떠나 새로운 땅으로 향하는 이주였기 때문에 내가 싼 짐하고 아마 차원이 달랐으리라. 도블라또프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품이라기보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아마 자신의 여행가방에 담지 않았나 싶다. 아니 어쩌면 그 여행가방을 싸는 순간부터, 작가는 훗날 이런 이야기를 써야지 하는 기획을 세우지 않았을까? 원래 작가는 그런 종족들이 아니었던가. 언제나 글밥 소재에 시달리는 그런.
도블라또프의 또 다른 책이 있나 싶어 검색해 보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이 책이 유일무이한 번역서였다. 그의 유쾌한 서사에 매료가 돼서, 얼마든지 그의 팬이 될 요량이 있는데 더는 읽을 책이 없으니 그게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