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지구 지만지 고전선집 571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지음, 김현정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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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7월의 작가는 에밀 졸라가 아니라 왠지 세르게이 도블라토프가 된 그런 느낌이랄까. 헌책방에서 만나게 된 <여행가방>을 필두로 해서 도블라토프의 책들을 연달아 읽고 있는 중이다. 그 다음에는 <외국 여자> 그리고 다시 지만지에서 나온 <보존지구>를 읽었다.

 

로씨야 소설들은 왠지 엄근지하다는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뽀개준 작가가 바로 세르게이 도블라토프다. 이 작가의 책들을 만나볼수록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쏘비에트식 유머라고나 할까? KGB, 보드까 그리고 시베리아로 압축되는 쏘비에트 시절에 대한 통념 대신 그 동네 역시 사람 사는 곳이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해주는 글들이다.

 

일단 <보존지구>는 그전에 읽은 <여행가방><외국 여자>와는 결을 달리한다. 쏘비에트 체제에서 지난 15년 아니 20년 동안 글을 썼지만 주인공 보리스 알리하노프는 한 편의 글도 발표할 수가 없었다. 왜냐구? 검열이 일상인 나라에서 반체제 서정 시인을 자처하는 작가의 책을 내줄 출판사가 없으니까. 하지만 공산주의 시스템 속에서도 돈을 필요했고다. 비록 이혼했지만 전처 타냐와 딸 마샤를 위해 돈벌이에 나서는 보리스.

 

로씨야의 대문호 푸시킨 보존지구에서 보리스는 가이드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돈벌이다. 보존지구를 찾은 관광객들은 푸시킨과 관련된 별의별 질문들을 던지면서 보리스를 괴롭힌다. , 이런 게 궁금할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의 어처구니없는 질문들이 이어진다. 아니, 푸시킨을 그렸나 하는 그림이 얼마에 팔렸는지 둘째 아들의 부칭이 어떻게 되는지 그게 알고 싶다고? 놀라울 따름이다. 어쨌든 남자 동무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그 동네에서 지식인 노릇을 하며 보리스는 가이드로 자리잡는데 성공한다.

 

푸시킨 보존지구에 활동하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따라지 인생 같다는 인상을 준다. 비상한 기억력으로 천재 대우를 받았지만 응용력은 전무하고 심지어 귀찮으면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배짱의 사나이 미트로파노프, 벽촌에서는 제법 실력 있는 작가 취급을 받았지만 대처에 나와서는 전혀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는 포토츠키가 대표 선수들이다.

 

무식하고, 냉소적이며 금전욕을 지녔다고 보리스는 자신을 비하한다. 재밌는 건 또 그 분석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는 점이다. 착실하게 가이드로 돈을 벌어 아내에게 보내는 보리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보리스 앞에 어느 날 이제 소련은 지긋지긋하니 딸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겠다는 선언을 위해 아내 타냐가 등장한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갈등상황이 연출된다. 비록 책을 낸 작가는 아니지만, 작가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보리스는 모국을 떠나는 순간, 그것이 작가에게는 사망 선고라며 아내의 미국 이주를 반대한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결정을 내린 타냐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보리스는 그 순간, 과연 저 여자가 내가 사랑해서 결혼한 그 여자가 맞는가라는 10여년의 연애와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마저 느낀다. 자고로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하기 마련이다. 그건 아마도 사랑이라는 감정에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썸타는 남녀가 우리나라에서는 라면 먹고 갈래라는 말을 한다면, 로씨야에서는 아마 보드까 한 잔 마시고 갈래 이런 식으로 진행되려나. 그 생각을 하다가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보리스, 그러니까 도블라토프의 페르소나에게는 이 순간이 그렇게 절체절명한 순간이었을 때 동방의 어느 나라 독자는 그런 그의 감정을 훔쳐보면서 웃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타냐는 보존지구를 떠나고 홀로 남은 보리스는 그야말로 술에 쩔어 고주망태가 되어 세월을 보낸다. 게다가 보리스의 곁에는 로씨야답게 그의 고통과 음주를 함께 할 동료 주정뱅이 마르코프들이 넘쳐난다. 다른 거에는 인심이 박하지만, 서로 술 사겠다고 다투는 아름다운 장면은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로씨야에서도 그랬던 모양이다. 얼마 전, 제천을 찾은 대학 동기가 다른 동기가 하는 식당에 가서 가족들이 식사를 하고 계산하면서 격투에 가까운 몸싸움을 했다고 하던데 그것 참.

 


어쨌든 그렇게 술독에 빠져 살던 보리스는 타냐가 딸과 함께 조국을 떠난다는 전보를 그들이 떠나기 바로 전날 수령한다. 문제는 요주의 인물이었던 그에게 KGB 소령인 벨랴예프의 소환령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보리스는 벨랴예프의 태클을 돌파하고, 타냐와 마샤가 조국을 떠나기 전에 레닌그라드에 도착해서 과연 그들의 이주를 막을 수 있을까.

 

이미 결과는 <여행가방><외국 여자>에서 나왔다시피 결국 도블라토프는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에게 우상은 푸시킨이었다. 그리고 그의 언어사랑은 가족애를 뛰어 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그는 미국으로 이주하지 않았던가. 쏘비에트는 위대한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된 유대인과 요주의 인물들에게 해외 이주를 허용했다. 냉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절, 동서방의 인적 교류는 전혀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또 아닌 모양이다. 어쨌든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사는 미국으로 건너간 도블라토프는 마음대로 글을 쓸 수가 있어 과연 행복했을까?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 책을 읽거나 글쓰기보다 돈벌이에 나서야 했던 한 무명시절의 작가가 남긴 삶의 기록들은 참 애잔하다. 오늘 <수용소>가 도착할 예정이다.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지 않아 결국 샀다. 며칠 전에 <보존지구>와 같이 빌린 에밀 졸라의 <쟁탈전>도 읽기 시작했는데... 언제나 그렇지만 나의 독서는 뒤죽박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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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22 11:3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오, <보존지구>가 도서관에 있나 보군요? 저희 동네 도서관은 도블라토프 책 1권도 없어서 제가 다 주문해 넣었습니다만.... <보존지구>는 출간 년도 5년이 이미 지난 책이라 희망도서 신청 안 받아주드라고요. ㅎㅎ 걍 제 돈 주고 사서 일으려고 중고 뜨길 기다리는 중인데 워낙 읽는 사람이 없어서 안 뜰 듯 싶습니다... ㅋㅋㅋ

레삭매냐 2021-07-22 11:42   좋아요 6 | URL
저도 깜딱 놀랐답니다.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더라구요. 그래서
며칠 전에 빌려다 바로 읽었지요.
하나 더 있는데 그 책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이 리모델링 휴관에 들어가는
바람에 내년에나 읽을 수 있을 것 같습
니다.

이기 찾는 이들이 없어서 중고책으로
는 거의 로또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