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름다운 제프 다이어 선집
제프 다이어 지음, 황덕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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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라이브로 재즈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주변에 있는 이들이 모두 재즈 음악을 해서, 내가 원한다면 언제라도 재즈 음악에 심취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록과 헤비메탈을 듣던 이에게 재즈는 사실 무리수였다. 기껏 따라간 재즈 공연에서 애꿎은 맥주만 들이켜다가 돌아왔다. 그 뒤로 재즈하고는 담을 쌓고 살았다.

 

사실 지금까지도 스윙이니 비밥이니 하는 걸 몰라서, 재즈 좋아한다는 옆지기에게 물었더니 잘 모른단다. 역시 음악도 좋아해야 보이는 모양이다. 지금도 오래 전에 즐겨 듣던 음악이 나오면 스토리며, 아는 걸 주절댈 수 있는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 다른 에피소드 하나,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영어 학원에 다니던 시절에 영어 학원 재즈 좋아하던 캐나다 출신 영어 선생님이 엘라 피츠제럴드의 <맥 더 나이프> CD를 선물해 준 적이 있다. 그 음악도 역시나 당시 내 음악 취향이 아니라 패스했었다. 내가 그 쏘울을 어찌 아나 그래. 그건 어디에 가 있을까. 사연 있는 음반들이 주변에 참으로 많다.

 

제프 다이어는 장인다운 손길로 이제는 만나고 싶어도 오로지 음악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재즈 역사의 한 시절을 주름 잡은 거장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쩌면 신화가 되어 버린 구전들 속에서 또 어떤 순간에는 재즈 뮤지션들을 찍은 사진을 문학적으로 해석해 낸다고나 할까? 상상이나 해봤는가. 흑백의 사진 속에서 서혜부의 바짓단들이 서로 부대끼는 사운드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바로 그런 놀라운 상상력이야말로 제프 다이어의 <그러나 아름다운>을 특별하게 만드는 마성의 조미료라고 생각한다.

 

재즈의 원류는 블루스라고 어디선가 들었다. 끈적끈적한 빌리 할리데이의 목소리에 한 스윙과 비밥의 전성기를 장식한 재즈 뮤지션들의 합주는 그야말로 끝내줬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쟁쟁한 연주자들의 음악을 찾아 들어 봤다. 나름 맛깔나는 리뷰를 쓰기 위해 별 짓을 다하지 싶었다.

 


전설의 듀오 듀크 엘링턴과 해리 카니가 연주 여행에 나선 에피소드들이 막간을 장식한다. 아티스트들에게 매 순간이 중요하다. 떠오른 악상을 바로 바로 메모해 두어야 잘 써먹을 수가 있는 것이다. 냅킨이건 뭐건 간에 바로 바로 떠오르는 악상들을 그 자리에서 메모한다. 어쩌면 영화 등을 통해 너무 이미지화되어 너무 식상해져 버린 장면들일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재즈가 흑인 연주자들의 영역이다 보니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장면들도 숱하게 등장한다. 색소폰 연주자 레스터 영이 병역기피자로 몰려 강제징집당하고, 백인 장교에게 모욕을 듣는 사건을 보자. 백인 여자가 웹스터의 아내라는 사실을 장교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니 맹렬한 구타와 깜둥이라는 모욕이 이어지는 건 순서일 지도 모르겠다. 매독과 암페타민 중독자를 군대에 입대시킬 정도로 미국 군대에 군인의 수가 절대적으로 모자랐다는 것일까?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리자 헤로인 봉투를 내던지고 친구 버드 파월 대신 감옥에 간 텔로니어스 멍크의 경우는 또 어떤가. 음악 외에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그저 배회하며 자신의 섬세한 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자 했던 위대한 재즈 아티스트인 멍크.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에서 끝없이 자아와 싸우는 전사여야 했던 그에게 세상은 잔혹 그 자체였는지도 모르겠다. 호텔 직원에게 물을 요구하는 멍크에게 직원은 경찰을 불러 응수한다. 출동한 야만적인 경찰은 경광봉으로 재즈 피아니스트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두 손을 마구 내려치지 않았던가. 이 부분을 읽는 순간, 그야말로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그 가치를 모르는 무자비한 존재에 의해 부서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탈레반이 파괴한 바미안 석불이 떠올랐다.

 


재즈는 단 시간 내에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동시에 그 대가로 귀중한 연주자들의 영혼과 목숨을 담보로 요구했다. 멍크가 보호하려고 했던 자신 못지않은 섬세함 감성의 소유자 버드 파월은 정신병원행이었다. 야만스러운 경찰이 멍크에게 경광봉 세례를 퍼부었다면, 버드 파월을 알아본 경찰은 그를 보호하려고 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니. 야수 스타일의 색소폰 주자 벤 웹스터는 유럽 대륙을 누비면서 자신을 알아보는 이들에게 술을 얻어 마시고, 대신 환상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술이라는 이름의 영혼의 진정제는 재즈 뮤지션들에게 어쩌면 삶의 원동력으로 작동하기도 했지만, 장기를 파괴시켜 천국으로 가게 만드는 불길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들을 숱하게 집어 삼킨 술과 약물의 오남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외에도 자신에게 어떤 음악을 연주해 보라는 이에게 니가 해라고 외친 깡다구 넘치는 찰스 밍거스의 패기, 아트 블레이키와 디지 길레스피, 백인 재즈 뮤지션 쳇 베이커와 아트 페퍼 등등의 이야기가 오선지에 수놓아지듯 사실과 신화 사이를 오가며 전개된다. 아무래도 재즈에 일천하다 보니 이런 저런 명곡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제프 다이어 만큼 재즈에 대한 조예도 없으니 그저 저자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 따라갈 수밖에. , 나도 제프 다이어처럼 왜 현대 재즈 뮤지션들의 연주가 고전 연주자들의 주법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지 그렇게 줄줄이 설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전에 먼저 재즈부터 좋아해야 하는데, 사실 그건 좀 난망하지 싶다. 여전히 재즈에 잘 모르니 말이다.

 

[뱀다리] 그래도 오래 전에 내 친구 브래들리의 초대로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해서, 그 푸른 잔디밭에 누워 데이브 브루벡의 <Take Five>를 들었던 기억은 정말 최고였다. 사진이 어디에 없나 그래. 땡볕에서 듣느라 햇볕에 얼굴이 홀라당 타서 며칠 고생한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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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3-05 16: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친구가 재즈피아노를 좀 칠줄 알아서 참 부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체르니도 낑낑..😆

로비 윌리암스가 부른<맥더 나이프>너무 좋아하는데 앨라 피츠제럴드 버젼도 흥겹네요ㅎㅎ

coolcat329 2022-03-05 22:01   좋아요 2 | URL
많은 가수들이 맥더나이프를 불렀지만 엘라의 맥더나이프를 능가하는건 없다고 생각해요.
ella in berlin/ mack the knife 앨범을 정말정말 많이 들었네요.
아 엘라 정말 최고에요.

청아 2022-03-05 22:05   좋아요 2 | URL
제가 재즈는 몇곡밖에 모르고 로비 노래를 워낙 좋아라해서ㅋㅋㅋ베를린서 공연한 영상인가봐요?! 들어볼께요~🥰

coolcat329 2022-03-05 22:07   좋아요 2 | URL
영상은 못봤구요. 저는 앨범을 갖고 있어요.

청아 2022-03-05 22:11   좋아요 2 | URL
쿨캣님 제대로 즐기시는군요👍너튜브에도 노래만 있어요!

레삭매냐 2022-03-05 23:42   좋아요 3 | URL
오오 체르니의 추억이란...

그런데 너튜브로 찾아서 들어
보니 아주 흥겹네요.

[쿨캇트님] 여윽시 오지지나루
가 쵝오인 것 같습니다 ^^

맥 더 나이프가 이런 곡이었나
싶네요. 역시 기억은 믿을 게
못되나 봅니다.

mini74 2022-03-05 21: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 재즈는 잘 모르지만 그나마 무라카미 하루키 덕에 검색하고 들어보고 했어요 ㅎㅎ 과거 흑인예술가들의 삶은 너무 비참하도라고요. 빌리 홀리데이도 그렇고요. 제프 다이어란 사람 저도 궁금하네요.

레삭매냐 2022-03-05 23:43   좋아요 3 | URL
제프 다이어가 설터쌤과 더불어
작가 중의 작가라는 평들이
자자~하더라구요.

다시 만나게 되어 아주 좋습니다.

저도 재알못이라 헷 ~

coolcat329 2022-03-05 21: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예전에 샀다가 번역이 너무 이상해서 바로 팔아버렸어요.
근데 이번에 황덕호님 번역으로 다시 나와 넘 기대됩니다. 매냐님 벌써 읽으셨군요.
저도 주문하려구요. 😊

레삭매냐 2022-03-05 23:45   좋아요 2 | URL
[ O ] 번역으로 결국 재개정판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재즈도 재즈지만 전 이번에
사진 평론? 에세이가 더 기대
됩니다.
 


간만에 올리는 독서 기록장이다.


지난달에는 총 10권의 책들을 만났다.


1. 바퀴벌레 / 이언 매큐언

2. 안개의 왕자 /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3. 바람의 그림자 1 /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4. 바람의 그림자 2 /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5. 만화가의 여행 / 크레이그 톰슨

6. 책 좀 빌려줄래? / 그랜트 스나이더

7. 하비비 / 크레이그 톰슨

8. 나치 의사 멩겔레의 실종 / 올리비에 게즈

9.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8 중종실록 / 박시백

10. 하버드 스퀘어 / 안드레 애시먼


역시 최고는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와 안드레 애시먼의 <하버드 스퀘어>였다.

북플 동지들을 통해 알게 된 크레이그 톰슨의 그래픽 노블도 두 권 읽었다. <담요>도 읽어야 하는데, 지난번에 도서관 근처까지 가긴 했는데 주차할 곳이 마땅하지 않아서 그냥 지나쳐 버렸다. 책과 만나기가 쉽지 않구나.

 

지난달에는 사폰을 읽겠다고 잔뜩 사두었는데 <천사의 게임>에서 잠시 멈추게 되었다. 그 다음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책들이 우수수 쏟아지니 말이다.

 

지금은 잠시 타리크 알리의 <술탄 알라딘> 읽기를 멈추고, 이번에 새로 나온 알레호 카르펜티에의 신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 책부터 읽을 생각이다. 그전에 나온 <이 세상의 왕국>도 읽어야 하는데... 읽다 말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완독하지 못했다.

 

어느새 일 년의 1/6이 그렇게 후딱 지나가 버렸다. 뭐 딱히 한 일도 없는데 이렇게 시간들이 스르르 손에서 빠져 나가는 기분이라니.

 

중고서점에 <오스카와 루신다>가 나와 있던데... 사러 가야 하나. 피터 케리의 <켈리 갱>도 읽다 말았는데 새로 사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새로운 번역으로 나온 제프 다이어의 신간들이 낫지 않을까. 그건 신간이라 바로 땡겨올 수 없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지만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3월에도 나의 독서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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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3-03 13: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술탄 알라딘 말고 살라딘요 ㅎㅎ 오타가 너무 귀여워서.... ^^
책이 우리 읽는 속도 맞춰서 나와주면 좋을듯요. 너무 좋은 책이 너무 많이 나와서 슬픈, 아 내가 저거 다 못읽고 죽겠구나니 말이죠. ㅠ.ㅠ

레삭매냐 2022-03-03 16:11   좋아요 2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
읽고 싶은 책들이 계속해서
나오니 일단 사제끼고 읽지
못하고의 반복입니다 ^^

급해 맞아서 그만 술탄 알라
딘으로다가 핫하 -

새파랑 2022-03-03 16: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좀 빌려줄래> 딱 한권 겹치는군요~! 모두가 극찬하는 <하버드 스퀘어>가 몹시 땡깁니다 ㅋ 레삭매냐님의 3월 독서도 쭉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레삭매냐 2022-03-03 16:11   좋아요 1 | URL
<하버드 스퀘어>는 달 넘기지
않고 지난 달에서 사서 다 읽
었네요 :> 아주 뿌듯합니다 네.

3월에도 열심으로 달려 보겠습
니다.

mini74 2022-03-03 1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일년의 1/6 이라니 ㅠㅠ 정말 후딱 지나가네요 ~ 항상 매냐님 글에서 새로운 좋은 작가들 마니마니 알아갑니다 ~ *^^*

레삭매냐 2022-03-03 16:16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져서 예전
만 못하지만 그래도 열심으로
닐거 보겠습니다.

미니님도 3월 빠이팅~

페넬로페 2022-03-03 1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년의 육분의 1~~
2월엔 저도 책을 열심히 읽었는데 지나고 나면 시간을 좀 더 잘 썼더라면~~
같은 후회가 듭니다.
항상 선두에서 좋은 작가와 작품 알려주셔서 감사드려요**
3월도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레삭매냐 2022-03-04 10:43   좋아요 1 | URL
적어 주신 부분에 대해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좀 더 시간을 알차게 썼어야
하는데 그놈의 너뷰트에 미쳐
서 그만...

3월에도 알레호 카르펜티에
의 책을 읽습니다.

coolcat329 2022-03-03 18: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헬스장에 붙어있더라구요.
˝3개월 후면 여름˝
순간 슬퍼졌지요.
근데 일년의 1/6이 갔다는 매냐님 글도 슬픕니다 😭
2월 10권~ 성공하셨네요.
3월도 화이팅하세요!

레삭매냐 2022-03-04 10:44   좋아요 1 | URL
크하! 그런 자극적인 방법
이 있었군요. 벌써 여름이 !

그나저나 코로나 땜시 어딜
가질 못하니 아쉬울 따름입
니다.

라로 2022-03-03 22: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월에 10권 성공하셨다니!! 저는 9권인 것 같은데 역시 기록인 것 같아요.^^;;
매냐님 쫓아간다는 목표를 잡으면 저도 비슷하게 읽게 될 것도 같고요.^^;;
요즘은 책 읽는 것이 아주 재미납니다요.
덕분에 고맙습니다.^^
하버드 스퀘어 곧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근데 글자가 작아서리,,ㅠㅠ

레삭매냐 2022-03-04 10:47   좋아요 0 | URL
원서는 글자가 우리나라
책에 비해 상대적으로 글자
가 더 작은 듯 합니다 :>

3월에도 열심으로 읽어
보갔습니다 넵 !
 
석류나무 그늘 아래
타리크 알리 지음, 정영목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4년 만에 다시 타리크 알리의 <석류나무 그늘 아래>를 읽었다. 좋은 책은 거듭 읽어도 잔좋음의 잔향이 가시지 않는다. 내게는 <석류나무 그늘 아래>가 그런 책이다. 여전히 슬프고, 아름다운 서사가 아닐 수 없다.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523년 전인 14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스티야 왕국 주도로 이른바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가 성공하면서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무슬림 근거지였던 가르나타(그라나다) 왕국이 결국 함락됐다. 가르나타의 마지막 술탄은 수세기 동안 이베리아 반도에 살아온 무어인들에게 종교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한다는 카스티야의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말에 저항 없이 투항했다. 하지만 모리스코인들에게 예정된 비극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중이었다.

 

실존 인물인 프란시스코 히메네스 데 시스로네스, 톨레도의 대주교는 코란을 비롯한 수십만권의 이베리아 반도 아랍 문화의 정수가 담긴 서적과 원고들로 벽을 세웠다. 그리고 거기에 불을 질렀다. 모리스코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를 말살하고, 궁극적으로 자신들을 반도에서 내쫓으려는 그를 사탄의 사제라며 경멸했다. 어느 거리의 노숙자는 배울 책이 없는 사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불길 속으로 뛰어 들기도 했다. 그들이 약속한 관용과 공존은 공허한 메시지일 뿐이었다.

 

, 이제 이 방대한 서사를 이끌어갈 바누 후다일 가문의 일족들이 등장할 차례다. 그들의 선조인 이븐 파리드는 로맨틱한 중세 기사도가 살아 있던 시절의 인물로 자신들의 땅을 엄습해 오는 기독교 전사들에 맞서 싸운 영웅이었다. 하지만 신자들의 고질적인 내분으로 안알달루스의 무어인들은 전성기 때처럼 결집하지 못했고, 결국 마지막 거점인 가르나타까지 내주게 되었다.

 

알후다일의 영주인 우마르에게는 다음의 세 가지 선택지만이 존재했다. 첫 번째로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조건은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의 삼촌인 미칼, 아니 이제 쿠르투바의 주교가 된 미겔은 다른 이유로 바누 후다일 집안을 떠나 적진에 투항해 버렸다. 그리고 대고모 자라는 마리스탄에 감금된 신세였다. 그녀는 나중에 밝혀지지만 반세기 전 금지된 로맨스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두 번째 선택은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는 기독교 카바예로들과 맞서 마지막 1인까지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는 것이었다. 우마르의 피 끓는 장남 주하이르 알팔 같은 세대들은 이런 선택을 선호한다. 하지만 남은 이들은 어떻게 될 거란 말인가. 마지막 선택지는 안알달루스 무어인들의 출발지인 마그레브의 사막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다는 점이 바로 그들이 직면한 문제였다.

 

소설에서 최고 빌런으로 등장하는 시스네로스는 이제 무어인들로부터 막 수복한 이베리아 반도에서 모든 이교도들을 몰아내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광신자였다. 무어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최고사령관 돈 이니고가 아무리 시스네로스에게 관용과 공존을 이야기해도, 광기에 물든 대주교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가만히 있는 이슬람 청년들을 선동해서 봉기를 유도하는 악역을 자처한다. 그러니까 단 한 번의 빌미만 제공한다면, 눈엣가시들은 이교도 무슬림들과 가짜로 개종한 유대인들을 모두 청소하겠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다. 아니 실제로 카스티야 초대 종교재판장으로 악명을 떨친 토르케마다를 능가하는 그런 종교적 광신이 사로 잡힌 이가 바로 시스네로스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알후다일 사람들은 무사태평이다. 사실 그들이 무엇을 한다고 해도 거대하게 돌아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역진할 수는 없었다. 시간은 알후다일 사람들의 편이 아니었다. 선대로 올라가는 가문의 비밀은 중세 시절 계급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었던 알진디크와 자라의 사랑에 그만 방점을 찍고 만다.

 

타리크 알 리가 구사하는 팩션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분노와 혐오 그리고 배제의 시대에 관용과 공존이란 이상이 존재할 공간이 없다는 걸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걸까. 게다가 종교까지 개입하게 되면서 문제는 더더욱 복잡해진다. 무슬림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시절에는 그나마 어느 정도의 관용이 허용되었지만,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 기독교 왕국의 지배자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저자는 증언한다.

 

더 무서운 점 중의 하나는 그들이 개종자들도 전혀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슈퍼 빌런 시스네로스는 정확하게 이베리아 반도의 이교도들이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종을 택한 것이지 온전하게 정신적 투항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교도들과의 공존이 아닌 제거를 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비극으로 이어진다.

 

혈기 넘치는 청년답게 주하이르 알팔은 회의주의자 알진디크의 가르침이나 아버지 우마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저항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저명한 기독교 전사와의 대결에서의 승리는 가족에게 재앙이 되었다. 시스네로스의 명을 받은 레콩키스타의 영웅 코르테스(당시 16)는 알후다일을 공략해서 바누 후다일 사람들을 몰살시킨다. 주하이르의 막내 동생 야지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나마 양심적이었던 카스티야 전사 한 명이 민간인들을 죽이라는 코르테스의 명령에 저항하는 패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코르테스에게 언제부터 이 땅의 기독교 전사들이 저항하지 않는 죄 없는 아이들과 여자들을 죽이는 게 관습이 되었느냐고 따진다.

 

알카히라에서 온 교사 이븐 다우드와 사랑에 빠져 그와 결혼한 다음, 마그레브의 페즈로 이주한 힌드만이 이 재앙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주하이르 알팔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가족의 복수를 맹세하고, 그들이 그렇게 목놓아 찾았던 알라가 자신들을 수호하지 않는다는 말로 소설의 대미를 장식한다.

 

이슬람 문화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공공연한 무신론자 작가다운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타리크 알리의 분석과 서사는 너무 냉정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이들에게 환호를 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의 <석류나무 그늘 아래>는 팩션의 전범을 보여준다. 역사적 인물과 가공된 인물의 조화는 가히 환상적이다. 자신들이 나고 자란 땅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무어인들의 결의는 비장했지만, 도도하게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을 되돌릴 수 없는 그런 수준의 저항일 뿐이었다. 꽃이 필 때가 있으면, 또 질 때도 있는 법이다.

 

기독교 왕국들의 파도 같은 공격 앞에 무슬림 왕국들은 단결하지 못하고 분열을 거듭했다. 그리고 위대한 베르베르 전사들의 후예들은 수세기 동안 자신들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 속에서만 살았다. 과거에 사는 이들이 현재와 미래를 얻겠다고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이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카스티야의 전사들은 레콩키스타의 경험을 토대로 결국 신대륙으로 진출해서 대제국을 건설하지 않았던가. 물론 시절이 지나 그들 역시 쇠락해 버리고 말았지만. 역사란 그런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500년 전에, 자신의 근거지를 버리고 물설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는 건 더더욱 일이 아니었으리라. 그런 점에서 결국 이주나 개종 대신 알후다일에 남아 맹렬하게 돌진해 오는 기독교 병사들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스러져간 우마르 가문의 최후는 더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4년 만에 다시 만난 타리크 알리의 <석류나무 그늘 아래>는 여전히 슬프고 아름다웠다. 구성과 주제 그리고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캐릭터들의 향연은 이 책이 고전에 반열에 들기에 조금도 부족한 점이 없다고 증언한다. 책은 절판된지 오래다. 이렇게 좋은 책이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바로 타리크 알리 이슬람 퀸텟의 유이한 생존자 <술탄 살라딘>을 바로 읽기 시작했다. 원서로 <팔레르모의 술탄><황금 나비의 밤>도 구비해 두었다. 십 수 년 전에 근간 예정이었던 <돌기둥 여인>이 출간되지 않은 점이 너무 나 아쉽다. 원서로 구해서 읽는 시늉이라고 해봐야 하나 싶다.


[뱀다리] 소설의 엔딩에 에르난 코르테스(1485~1547)가 등장하는데, 고작 16살의 나이에 알후다일을 전멸시키는 임무를 맡는다. 그가 신대륙으로 넘어가 또다른 악행을 저지른 것을 지적하고 싶은 저자의 마음은 알겠지만 이건 좀 무리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신대륙에 카스티야 세력이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무어인들의 식탁에 토마토 샐러드가 오르는 것 역시 역사적 오류라는 지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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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22-03-02 09: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라나다에 4년 살았었는데 이런 책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꼭 방문하셔서 알함브라도 가보시고 도시 전체에 깔려 있는 석류 문양도 보시면 책이 또 다르게 읽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어인들이 번성할 때의 이야기는 많이 알고 있었는데 그 이후 이야기도 흥미롭군요.

레삭매냐 2022-03-02 10:42   좋아요 2 | URL
우와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가르나타에서 4년이나 사셨다고
하시니까요 ^^

잘 나가던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쫓겨나는 이야기는 참
슬프고도 아름다웠습니다.

바람돌이 2022-03-02 09: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라콩퀴스타에 대한 무어인들의 관점이 궁금했는데 이 책이 바로 그 책이네요. 다 절판!!! 다행히 중고매장에는 나와 있어서 볼 수 있겠네요. 저에게는 이 글이 오늘자 득템같은 기분입니다. ^^

레삭매냐 2022-03-02 10:45   좋아요 2 | URL
아니 이런 책들이 왜 절판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더 꾸준하게 발표해 주어야
하는데, 보아 하니 역자분
도 작업을 하신 것 같던데
말이죠.

부디 좋은 컨디션의 책으로
만나게 되시길 기원합니다.

mini74 2022-03-02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빌려왔어요 매냐님 ㅎㅎㅎ 그래서 살짝만 보고갑니다. ~~

레삭매냐 2022-03-03 11:35   좋아요 1 | URL
모쪼록 이런 좋은 책들이
널리 알려져서 많은 분들
이 읽으셨으면 하는 바램
입니다.

절판된 게 흠이네요.
 
하버드 스퀘어
안드레 애치먼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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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허겁지겁 그렇게 책을 읽어댄다. 결말이 너무나 궁금하기 때문에 한 번 궤도에 오르면 멈출 수가 없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일부러 책읽기의 속도를 조절할 때가 있다. 너무 빨리 엔딩에 도달해 버리기가 싫을 정도로 내용이 좋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이번에 내가 만난 <하버드 스퀘어>가 그랬다.

 

사실 안드레 애시먼 작가의 팬을 자처하는 나는 <하버드 스퀘어>의 번역을 기다리지 못하고 2년 전, 원서를 주문했다. 하지만 모국어도 아닌 영어 읽기의 스트레스 때문에 조금 읽다가 내팽개쳐버렸다. 그러다 보니 번역이 되어 출간되었지 무언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 하버드 스퀘어의 밤거리를 누비는 택시의 불빛이 아른 거리는

원서의 표지는 정말 일품이다. 국내 번역서도 차라리 그냥 원서

의 표지를 그대로 쓰지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버드 스퀘어>는 안드레 애시먼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때는 1977년 여름, 하버드 스퀘어가 위치한 케임브리지를 배경으로 한다. 이집트 출신 유대인인 나는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에 도전하고 있다. 세 번의 종합시험 가운데 두 번을 떨어지고 1월에 있을 마지막 시험마저 떨어진다면 그 후의 기약은 없다. 아니 모든 것이 불확실한 그런 삶 속으로 내던져진 느낌이랄까. 그런데 제법 살다 보니,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어떤 것도 우리에게 확실하게 약속해 주는 법이 없더라. 그저 오늘 하루를 살 뿐.

 

그리고 화자인 나는 카페 알제에서 요즘 말로 하면 관종격인 택시 드라이버 칼라슈니코프, 아니 칼라지를 만나게 된다. 내가 이 자전적 소설을 통해 접하게 된 튀니스의 시디 부 사이드 출신 칼라지는 대단히 뻔뻔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일전에 창조한 그리스인 조르바와 너무 많이 닮았다는 기시감을 느끼게 해준다.

 

이 칼라지라는 남자는 자신감의 화신이고, 세상에 모르는 게 없는 그런 남자다. 세상에 두려울 게 하나 없는 칼라지는 미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권리인 영주권을 원한다. 반대로 나는 영주권을 가지고 있고, 박사 학위를 원한다. 엘리트 코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박사 학위, 그것도 다른 대학도 아닌 하버드의 박사 학위라니. 이런 두 이질적인 존재가 과연 치고 박고 싸우면서 과연 우정을 직조해낼 수 있을 것인가?

 

소설을 읽다 보면 나라는 캐릭터는 정말 비겁한 엘리트의 전형이라는 점이 등장한다. 지중해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아메리카에서 도리 없는 이방인이라는 점까지도 똑같다. 자기혐오라는 특질도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아니 처음에 그 둘을 이어준 것은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였다. 한 명은 자신감에 넘치는 아랍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소심한 엘리트 유대인이기도 했다. 서로 상극이 아니던가. 아니 그런데 초반에는 이런 형식적인 온갖 장애물들을 뛰어 넘는 우정의 탄생을 목격하는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점점 더 박사 학위에 가까워질수록 칼라지와는 거리를 두게 된다. 나는 칼라지가 누리는 자신감 넘치는 자유를 부러워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무분별한 행동에 질려 하고 결국에 가서는 관계를 정리하겠다고 마음먹기도 한다. , 그 둘을 이어주는 또하나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바로 가난도 있었다. 특별한 즐거움을 원하면서도, 나는 항상 호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야 했다. 월세는 물론이고, 먹을 것부터 시작해서 연애에 이르기까지 돈이 필요하지 않은 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여름방학이면 유럽으로 어디로 새로운 경험을 찾아 떠나는 이들을 부러워한다. 그들이 떠나면 나는 에어컨도 하나 없는 무더운 케임브리지에 남아 종합시험 준비와 호구 걱정을 해야했다.

 

그런 순간에 등장한 칼라지라는 존재에 나는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걱정하기 시작한다. 특히 부잣집 딸인 앨리슨 집안과 관계를 맺고, 하버드의 동료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 칼라지가 등장할 때는 더더욱 신경이 쓰였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 나는 어쩔 수 없는 속물이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결국 사단이 나고 만다. 그리고 칼라지는 조국을 떠나 17년간 이룬 것 하나 없는 타국생활에 대한 환멸을 나에게 털어 놓는다. 그렇게 강할 거라고 생각한 남자가 미래의 잘나가는 교수이자 작가가 될 하버드 대학원생에게 기대는 장면은 참...

 

그렇게 시작된 관계의 미세한 균열은 치유할 방법이 없다. 아니 내가 동료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그를 의식적으로 외면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파국은 시작되었다. 아니 관계의 용도가 이미 폐기되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까. 우리 모두는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된다면, 귀찮음도 마다하면서 기꺼이 상대방을 도울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바로 등을 돌리기 마련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이런 이중성에 대해 칼라지가 신랄하게 비난했다면 의 속은 아마 후련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우리의 칼라지는 결코 그러지 않았다. 이미 숱한 그런 관계의 순환을 경험한 칼라지는 물러설 때를 잘 알고 있었다. 칼라지가 쏘아 보내는 비난의 눈빛에 아마 나의 양심을 산산조각이 났을 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양심이란 게 있었다면 말이다.

 

다시 한 번 소설 <하버드 스퀘어>를 통해 인간관계가 가지는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소설의 화자는 칼라지가 도움의 손길을 뻗을 때마다, 그의 요청에 어떤 방식으로든 응했다. 물론 얄팍한 계산과 변명도 첨가되긴 했지만 말이다. 과연 타인에게 그가 원하는 완벽한 도움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관계에서 일방의 희생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데, “의 노력에도 많은 점수를 줄 만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심지어 택시 운전을 못하게 된 칼라지에게 하버드 대학 객원 프랑스어 강사직도 마련해 주지 않았던가. 21세기에는 어림도 없었을 그런 일이 지난 세기에는 가능했던 모양이다. 하나의 에피소드로서는 정말 제격이 아니었나 싶다.

 

이방인들의 안식처로 등장하는 카페 알제도 인상적이다. 소설의 출발점이 바로 카페 알제가 아니었던가. 외로운 영혼들은 말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안식을 주는 공간으로 발걸음을 하기 마련인가 보다. 화자(저자)는 카페 알제에 우연히 들렀다가, 결국 칼라지를 만나게 되고 이렇게 수수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양한 각도의 생각들과 오래된 추억들을 되새기게 하는 그런 멋진 이야기의 출발을 선보여 주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가 아닌 타인의 삶 속에 침잠하기가 어려운 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부단하게 나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타인의 행복도 존중해 주는 그런 스탠스를 취하기란 너무 어렵지 않나 싶다.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들에 대한 오기가 못내 아쉽다. 아무래도 역자가 현지 사정을 모르다 보니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좀 더 세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자전적 소설 <하버드 스퀘어>를 읽으면서 이제는 거의 휘발된 빈타운에 대한 기억들이 구석에서 슬며시 피어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고 하던데, 기억 혹은 추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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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3-01 07: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안드레 애치먼 작품을 한편밖에 안읽었지만 정말 섬세하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이 책도 왠지 그런 느낌인가 보네요. 레삭매냐님 별다섯에 너무 좋았다고 하시니 더 기대가 됩니다 ㅋ

레삭매냐 2022-03-01 09:48   좋아요 4 | URL
앞으로 애시먼 작가의 책이
두 권 더 나온다고 하니
기대만빵입니다 :>

지명에 대한 오기 때문에
별을 하나 빼려 했으나...
그건 저자의 잘못이 아니
니.,. 암튼 그랬다고 합니다.

mini74 2022-03-01 09: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페이지 줄어드는게 아까웠어요.~

레삭매냐 2022-03-01 09:49   좋아요 4 | URL
뭐랄까 새로운 관계 속으로
뛰어 드는 사람에 대한 심
리 묘사가 탁월했습니다.

누구나 다 공감할 만한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 책장 넘기는데 살짝
괴로웠더라는.

청아 2022-03-01 12: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저 지역에서 지내셨었나봐요!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더듬어 가는 추억이
제 추억이 된 것마냥 즐거웠습니다.

저도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다면 훨씬 더 흥미롭게 읽었을것 같아요.
음미하시면서 아껴 읽으신거 넘 이해가 됩니다.^^*

레삭매냐 2022-03-01 13:44   좋아요 2 | URL
이십대의 초큼을 보낸 곳이라
그런진 몰라도 격이 새록새록 -

그 시절에는 참 사진도 많이
찍고 그랬었는데... 싸이가
망하는 바람에 사진이 다 사
라져 버렸네요 ^^

책은 참 재밌었습니다.

얄라알라 2022-03-01 12: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책 거의 못 읽고 지낸 이번 주, 간만에 알라딘 들어와서 플친님들 리뷰 읽는데
독서를 넘 행복하게 하셨구나....샘이 날 지경으로 재미있게 읽으셨다는 걸 느끼겠어요

레삭매냐님, 2년 전 원서로 읽으시고 재독이시니
더 깊이 읽으셨을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2-03-01 13:48   좋아요 2 | URL
새책으로 안드레 애시먼의 책을
그리고 구간으로는 타리크 알리
의 책들을 다시 읽고 있는데 넘나
재미지지 뭡니까 그래.

원서로는 못 다 읽었어요 힝~~~
그래서 이번에 번역서로 다 읽었
답니다 ㅋㅋㅋ
 


 

4년 만에 다시 타리크 알리의 이슬람 5부작 가운데 한 편인 <석류 나무 그늘 아래(1992)>를 읽는다. 여전히 아름답고 슬픈 소설이 아닐 수 없다.

 

타리크 알리는 펀잡 출신의 저널리스트로, 많은 저작들을 발표해왔다. 여전히 활동 중이신지 궁금하다.

 

알함라에서 수십만 권의 서적과 원고를 불태운 야만적인 밤으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그리고 7세기 이래, 이베리아 반도에 거주해온 무어인들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가르나타(그라나다) 왕국이 1492년 카스티야 왕국에 넘어간 뒤 7년 뒤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타리크 알리는 무신론자라고 알려졌는데, 이 소설에서 무슬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자신의 신념과 상관없이 전개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팩션이라고 하지만 이런 상상을 해낼 수 있다는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캐릭터들은 마치 살아 숨쉬는 것처럼, 나를 알안달루스로 인도한다. 타리크 알리가 구사하는 문장은 수려하고, 애초의 약속과 달리 이교도 취급을 받으며 곧 자신의 땅에서 쫓겨날 운명에 처한 알후다일 사람들의 번민에 대한 묘사는 가슴을 저민다.

 

이런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절판이라니 아쉬울 따름이다. 책의 뒤편에 근간이라고 표기되어 있던 또다른 5부작 가운데 한 편인 <돌기둥 여인>은 끝내 출간이 되지 않았다. 3년 전에 북디파지토리에서 영문판으로 <팔레르모의 술탄><황금 나비의 밤>은 샀더라. 물론 어디에 두었는지는 모르고. <하버드 스퀘어>도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지명 때문에라도 한 번 찾아서 비교해 봐야 하는데...

 

<석류 나무 그늘 아래>는 과연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읽을수록 책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곁에 두고 오래 읽을 만한 그런 책이다. 양장본에 비닐 커버까지 해서 무장이 튼튼하기까지 하다. 만족스럽다.


타리크 알리 이슬람 5부작


1. 석류 그늘 나무 아래 (1992) 국내 출간 / 절판

2. 술탄 살라딘 (1998) 국내 출간 / 절판

3. 돌기둥 여인 (2000) 국내 출간 예정 / 미출간

4. 팔레르모의 술탄 (2005) 국내 미출간

5. 황금 나비의 밤 (2010) 국내 미출간


전 세계 무료 배송이라는 북디파지토리로 읽지도 못하고 소장각인 <돌기둥 여인>을 주문할까 말까 고민 중이다.



타리크 알리의 이슬람 5부작 가운데, <돌기둥 여인>만 빼고

모두 보유 중이다.


오늘 <석류나무 그늘 아래>를 다 읽고 바로 <술탄 살라딘>

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팔레르모의 술탄> 읽기에 도전해 볼까 한다. 하루

에 한 장씩 읽으면 올해 안으로 다 읽을... 그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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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2-28 12: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1, 2번은 마침 도서관에 있네요
근본주의에 대한 타리크 알리의 다른 책도 있는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2-02-28 17:05   좋아요 3 | URL
타리크 알리의 소설 말고는
아직 만나본 적이 없네요...

모쪼록 다른 책들도 속히
번역이 되길 바랍니다.

stella.K 2022-02-28 16: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목 근사하네요. 석류 먹으면서 읽고 싶네요.ㅎ
근데 알지도 못했는데 절판이라니!ㅠㅠ

레삭매냐 2022-02-28 17:09   좋아요 1 | URL
제목 만큼이나 소설의 내용
도 아주 일품이랍니다 ^^

이런 책들은 계속해서 팔아
주어야 하는데, 아쉽네요.

mini74 2022-02-28 16: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앗 다행 저희 동네 도서관에도 석류 그늘이 있네요 ㅎㅎ

레삭매냐 2022-02-28 17:09   좋아요 3 | URL
한 권 일독을 감히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읽어 보시면 후회하시지
않으시리라고 믿습니다.

라로 2022-02-28 17: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냐님의 뽐뿌질에 그냥 파닥 넘어갑미다,,, 못살아..^^;;;

레삭매냐 2022-02-28 21:31   좋아요 0 | URL
타리크 알리의 소설들은
참으로 아름답고, 슬픕니다.

그래서 4년 만에 다시 읽습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