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름다운 제프 다이어 선집
제프 다이어 지음, 황덕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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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라이브로 재즈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주변에 있는 이들이 모두 재즈 음악을 해서, 내가 원한다면 언제라도 재즈 음악에 심취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록과 헤비메탈을 듣던 이에게 재즈는 사실 무리수였다. 기껏 따라간 재즈 공연에서 애꿎은 맥주만 들이켜다가 돌아왔다. 그 뒤로 재즈하고는 담을 쌓고 살았다.

 

사실 지금까지도 스윙이니 비밥이니 하는 걸 몰라서, 재즈 좋아한다는 옆지기에게 물었더니 잘 모른단다. 역시 음악도 좋아해야 보이는 모양이다. 지금도 오래 전에 즐겨 듣던 음악이 나오면 스토리며, 아는 걸 주절댈 수 있는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 다른 에피소드 하나,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영어 학원에 다니던 시절에 영어 학원 재즈 좋아하던 캐나다 출신 영어 선생님이 엘라 피츠제럴드의 <맥 더 나이프> CD를 선물해 준 적이 있다. 그 음악도 역시나 당시 내 음악 취향이 아니라 패스했었다. 내가 그 쏘울을 어찌 아나 그래. 그건 어디에 가 있을까. 사연 있는 음반들이 주변에 참으로 많다.

 

제프 다이어는 장인다운 손길로 이제는 만나고 싶어도 오로지 음악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재즈 역사의 한 시절을 주름 잡은 거장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쩌면 신화가 되어 버린 구전들 속에서 또 어떤 순간에는 재즈 뮤지션들을 찍은 사진을 문학적으로 해석해 낸다고나 할까? 상상이나 해봤는가. 흑백의 사진 속에서 서혜부의 바짓단들이 서로 부대끼는 사운드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바로 그런 놀라운 상상력이야말로 제프 다이어의 <그러나 아름다운>을 특별하게 만드는 마성의 조미료라고 생각한다.

 

재즈의 원류는 블루스라고 어디선가 들었다. 끈적끈적한 빌리 할리데이의 목소리에 한 스윙과 비밥의 전성기를 장식한 재즈 뮤지션들의 합주는 그야말로 끝내줬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쟁쟁한 연주자들의 음악을 찾아 들어 봤다. 나름 맛깔나는 리뷰를 쓰기 위해 별 짓을 다하지 싶었다.

 


전설의 듀오 듀크 엘링턴과 해리 카니가 연주 여행에 나선 에피소드들이 막간을 장식한다. 아티스트들에게 매 순간이 중요하다. 떠오른 악상을 바로 바로 메모해 두어야 잘 써먹을 수가 있는 것이다. 냅킨이건 뭐건 간에 바로 바로 떠오르는 악상들을 그 자리에서 메모한다. 어쩌면 영화 등을 통해 너무 이미지화되어 너무 식상해져 버린 장면들일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재즈가 흑인 연주자들의 영역이다 보니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장면들도 숱하게 등장한다. 색소폰 연주자 레스터 영이 병역기피자로 몰려 강제징집당하고, 백인 장교에게 모욕을 듣는 사건을 보자. 백인 여자가 웹스터의 아내라는 사실을 장교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니 맹렬한 구타와 깜둥이라는 모욕이 이어지는 건 순서일 지도 모르겠다. 매독과 암페타민 중독자를 군대에 입대시킬 정도로 미국 군대에 군인의 수가 절대적으로 모자랐다는 것일까?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리자 헤로인 봉투를 내던지고 친구 버드 파월 대신 감옥에 간 텔로니어스 멍크의 경우는 또 어떤가. 음악 외에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그저 배회하며 자신의 섬세한 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자 했던 위대한 재즈 아티스트인 멍크.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에서 끝없이 자아와 싸우는 전사여야 했던 그에게 세상은 잔혹 그 자체였는지도 모르겠다. 호텔 직원에게 물을 요구하는 멍크에게 직원은 경찰을 불러 응수한다. 출동한 야만적인 경찰은 경광봉으로 재즈 피아니스트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두 손을 마구 내려치지 않았던가. 이 부분을 읽는 순간, 그야말로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그 가치를 모르는 무자비한 존재에 의해 부서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탈레반이 파괴한 바미안 석불이 떠올랐다.

 


재즈는 단 시간 내에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동시에 그 대가로 귀중한 연주자들의 영혼과 목숨을 담보로 요구했다. 멍크가 보호하려고 했던 자신 못지않은 섬세함 감성의 소유자 버드 파월은 정신병원행이었다. 야만스러운 경찰이 멍크에게 경광봉 세례를 퍼부었다면, 버드 파월을 알아본 경찰은 그를 보호하려고 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니. 야수 스타일의 색소폰 주자 벤 웹스터는 유럽 대륙을 누비면서 자신을 알아보는 이들에게 술을 얻어 마시고, 대신 환상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술이라는 이름의 영혼의 진정제는 재즈 뮤지션들에게 어쩌면 삶의 원동력으로 작동하기도 했지만, 장기를 파괴시켜 천국으로 가게 만드는 불길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들을 숱하게 집어 삼킨 술과 약물의 오남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외에도 자신에게 어떤 음악을 연주해 보라는 이에게 니가 해라고 외친 깡다구 넘치는 찰스 밍거스의 패기, 아트 블레이키와 디지 길레스피, 백인 재즈 뮤지션 쳇 베이커와 아트 페퍼 등등의 이야기가 오선지에 수놓아지듯 사실과 신화 사이를 오가며 전개된다. 아무래도 재즈에 일천하다 보니 이런 저런 명곡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제프 다이어 만큼 재즈에 대한 조예도 없으니 그저 저자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 따라갈 수밖에. , 나도 제프 다이어처럼 왜 현대 재즈 뮤지션들의 연주가 고전 연주자들의 주법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지 그렇게 줄줄이 설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전에 먼저 재즈부터 좋아해야 하는데, 사실 그건 좀 난망하지 싶다. 여전히 재즈에 잘 모르니 말이다.

 

[뱀다리] 그래도 오래 전에 내 친구 브래들리의 초대로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해서, 그 푸른 잔디밭에 누워 데이브 브루벡의 <Take Five>를 들었던 기억은 정말 최고였다. 사진이 어디에 없나 그래. 땡볕에서 듣느라 햇볕에 얼굴이 홀라당 타서 며칠 고생한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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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3-05 16: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친구가 재즈피아노를 좀 칠줄 알아서 참 부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체르니도 낑낑..😆

로비 윌리암스가 부른<맥더 나이프>너무 좋아하는데 앨라 피츠제럴드 버젼도 흥겹네요ㅎㅎ

coolcat329 2022-03-05 22:01   좋아요 2 | URL
많은 가수들이 맥더나이프를 불렀지만 엘라의 맥더나이프를 능가하는건 없다고 생각해요.
ella in berlin/ mack the knife 앨범을 정말정말 많이 들었네요.
아 엘라 정말 최고에요.

미미 2022-03-05 22:05   좋아요 2 | URL
제가 재즈는 몇곡밖에 모르고 로비 노래를 워낙 좋아라해서ㅋㅋㅋ베를린서 공연한 영상인가봐요?! 들어볼께요~🥰

coolcat329 2022-03-05 22:07   좋아요 2 | URL
영상은 못봤구요. 저는 앨범을 갖고 있어요.

미미 2022-03-05 22:11   좋아요 2 | URL
쿨캣님 제대로 즐기시는군요👍너튜브에도 노래만 있어요!

레삭매냐 2022-03-05 23:42   좋아요 3 | URL
오오 체르니의 추억이란...

그런데 너튜브로 찾아서 들어
보니 아주 흥겹네요.

[쿨캇트님] 여윽시 오지지나루
가 쵝오인 것 같습니다 ^^

맥 더 나이프가 이런 곡이었나
싶네요. 역시 기억은 믿을 게
못되나 봅니다.

mini74 2022-03-05 21: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 재즈는 잘 모르지만 그나마 무라카미 하루키 덕에 검색하고 들어보고 했어요 ㅎㅎ 과거 흑인예술가들의 삶은 너무 비참하도라고요. 빌리 홀리데이도 그렇고요. 제프 다이어란 사람 저도 궁금하네요.

레삭매냐 2022-03-05 23:43   좋아요 3 | URL
제프 다이어가 설터쌤과 더불어
작가 중의 작가라는 평들이
자자~하더라구요.

다시 만나게 되어 아주 좋습니다.

저도 재알못이라 헷 ~

coolcat329 2022-03-05 21: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예전에 샀다가 번역이 너무 이상해서 바로 팔아버렸어요.
근데 이번에 황덕호님 번역으로 다시 나와 넘 기대됩니다. 매냐님 벌써 읽으셨군요.
저도 주문하려구요. 😊

레삭매냐 2022-03-05 23:45   좋아요 2 | URL
[ O ] 번역으로 결국 재개정판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재즈도 재즈지만 전 이번에
사진 평론? 에세이가 더 기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