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나무 그늘 아래
타리크 알리 지음, 정영목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4년 만에 다시 타리크 알리의 <석류나무 그늘 아래>를 읽었다. 좋은 책은 거듭 읽어도 잔좋음의 잔향이 가시지 않는다. 내게는 <석류나무 그늘 아래>가 그런 책이다. 여전히 슬프고, 아름다운 서사가 아닐 수 없다.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523년 전인 14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스티야 왕국 주도로 이른바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가 성공하면서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무슬림 근거지였던 가르나타(그라나다) 왕국이 결국 함락됐다. 가르나타의 마지막 술탄은 수세기 동안 이베리아 반도에 살아온 무어인들에게 종교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한다는 카스티야의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말에 저항 없이 투항했다. 하지만 모리스코인들에게 예정된 비극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중이었다.

 

실존 인물인 프란시스코 히메네스 데 시스로네스, 톨레도의 대주교는 코란을 비롯한 수십만권의 이베리아 반도 아랍 문화의 정수가 담긴 서적과 원고들로 벽을 세웠다. 그리고 거기에 불을 질렀다. 모리스코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를 말살하고, 궁극적으로 자신들을 반도에서 내쫓으려는 그를 사탄의 사제라며 경멸했다. 어느 거리의 노숙자는 배울 책이 없는 사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불길 속으로 뛰어 들기도 했다. 그들이 약속한 관용과 공존은 공허한 메시지일 뿐이었다.

 

, 이제 이 방대한 서사를 이끌어갈 바누 후다일 가문의 일족들이 등장할 차례다. 그들의 선조인 이븐 파리드는 로맨틱한 중세 기사도가 살아 있던 시절의 인물로 자신들의 땅을 엄습해 오는 기독교 전사들에 맞서 싸운 영웅이었다. 하지만 신자들의 고질적인 내분으로 안알달루스의 무어인들은 전성기 때처럼 결집하지 못했고, 결국 마지막 거점인 가르나타까지 내주게 되었다.

 

알후다일의 영주인 우마르에게는 다음의 세 가지 선택지만이 존재했다. 첫 번째로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조건은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의 삼촌인 미칼, 아니 이제 쿠르투바의 주교가 된 미겔은 다른 이유로 바누 후다일 집안을 떠나 적진에 투항해 버렸다. 그리고 대고모 자라는 마리스탄에 감금된 신세였다. 그녀는 나중에 밝혀지지만 반세기 전 금지된 로맨스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두 번째 선택은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는 기독교 카바예로들과 맞서 마지막 1인까지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는 것이었다. 우마르의 피 끓는 장남 주하이르 알팔 같은 세대들은 이런 선택을 선호한다. 하지만 남은 이들은 어떻게 될 거란 말인가. 마지막 선택지는 안알달루스 무어인들의 출발지인 마그레브의 사막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다는 점이 바로 그들이 직면한 문제였다.

 

소설에서 최고 빌런으로 등장하는 시스네로스는 이제 무어인들로부터 막 수복한 이베리아 반도에서 모든 이교도들을 몰아내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광신자였다. 무어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최고사령관 돈 이니고가 아무리 시스네로스에게 관용과 공존을 이야기해도, 광기에 물든 대주교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가만히 있는 이슬람 청년들을 선동해서 봉기를 유도하는 악역을 자처한다. 그러니까 단 한 번의 빌미만 제공한다면, 눈엣가시들은 이교도 무슬림들과 가짜로 개종한 유대인들을 모두 청소하겠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다. 아니 실제로 카스티야 초대 종교재판장으로 악명을 떨친 토르케마다를 능가하는 그런 종교적 광신이 사로 잡힌 이가 바로 시스네로스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알후다일 사람들은 무사태평이다. 사실 그들이 무엇을 한다고 해도 거대하게 돌아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역진할 수는 없었다. 시간은 알후다일 사람들의 편이 아니었다. 선대로 올라가는 가문의 비밀은 중세 시절 계급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었던 알진디크와 자라의 사랑에 그만 방점을 찍고 만다.

 

타리크 알 리가 구사하는 팩션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분노와 혐오 그리고 배제의 시대에 관용과 공존이란 이상이 존재할 공간이 없다는 걸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걸까. 게다가 종교까지 개입하게 되면서 문제는 더더욱 복잡해진다. 무슬림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시절에는 그나마 어느 정도의 관용이 허용되었지만,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 기독교 왕국의 지배자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저자는 증언한다.

 

더 무서운 점 중의 하나는 그들이 개종자들도 전혀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슈퍼 빌런 시스네로스는 정확하게 이베리아 반도의 이교도들이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종을 택한 것이지 온전하게 정신적 투항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교도들과의 공존이 아닌 제거를 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비극으로 이어진다.

 

혈기 넘치는 청년답게 주하이르 알팔은 회의주의자 알진디크의 가르침이나 아버지 우마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저항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저명한 기독교 전사와의 대결에서의 승리는 가족에게 재앙이 되었다. 시스네로스의 명을 받은 레콩키스타의 영웅 코르테스(당시 16)는 알후다일을 공략해서 바누 후다일 사람들을 몰살시킨다. 주하이르의 막내 동생 야지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나마 양심적이었던 카스티야 전사 한 명이 민간인들을 죽이라는 코르테스의 명령에 저항하는 패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코르테스에게 언제부터 이 땅의 기독교 전사들이 저항하지 않는 죄 없는 아이들과 여자들을 죽이는 게 관습이 되었느냐고 따진다.

 

알카히라에서 온 교사 이븐 다우드와 사랑에 빠져 그와 결혼한 다음, 마그레브의 페즈로 이주한 힌드만이 이 재앙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주하이르 알팔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가족의 복수를 맹세하고, 그들이 그렇게 목놓아 찾았던 알라가 자신들을 수호하지 않는다는 말로 소설의 대미를 장식한다.

 

이슬람 문화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공공연한 무신론자 작가다운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타리크 알리의 분석과 서사는 너무 냉정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이들에게 환호를 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의 <석류나무 그늘 아래>는 팩션의 전범을 보여준다. 역사적 인물과 가공된 인물의 조화는 가히 환상적이다. 자신들이 나고 자란 땅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무어인들의 결의는 비장했지만, 도도하게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을 되돌릴 수 없는 그런 수준의 저항일 뿐이었다. 꽃이 필 때가 있으면, 또 질 때도 있는 법이다.

 

기독교 왕국들의 파도 같은 공격 앞에 무슬림 왕국들은 단결하지 못하고 분열을 거듭했다. 그리고 위대한 베르베르 전사들의 후예들은 수세기 동안 자신들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 속에서만 살았다. 과거에 사는 이들이 현재와 미래를 얻겠다고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이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카스티야의 전사들은 레콩키스타의 경험을 토대로 결국 신대륙으로 진출해서 대제국을 건설하지 않았던가. 물론 시절이 지나 그들 역시 쇠락해 버리고 말았지만. 역사란 그런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500년 전에, 자신의 근거지를 버리고 물설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는 건 더더욱 일이 아니었으리라. 그런 점에서 결국 이주나 개종 대신 알후다일에 남아 맹렬하게 돌진해 오는 기독교 병사들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스러져간 우마르 가문의 최후는 더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4년 만에 다시 만난 타리크 알리의 <석류나무 그늘 아래>는 여전히 슬프고 아름다웠다. 구성과 주제 그리고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캐릭터들의 향연은 이 책이 고전에 반열에 들기에 조금도 부족한 점이 없다고 증언한다. 책은 절판된지 오래다. 이렇게 좋은 책이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바로 타리크 알리 이슬람 퀸텟의 유이한 생존자 <술탄 살라딘>을 바로 읽기 시작했다. 원서로 <팔레르모의 술탄><황금 나비의 밤>도 구비해 두었다. 십 수 년 전에 근간 예정이었던 <돌기둥 여인>이 출간되지 않은 점이 너무 나 아쉽다. 원서로 구해서 읽는 시늉이라고 해봐야 하나 싶다.


[뱀다리] 소설의 엔딩에 에르난 코르테스(1485~1547)가 등장하는데, 고작 16살의 나이에 알후다일을 전멸시키는 임무를 맡는다. 그가 신대륙으로 넘어가 또다른 악행을 저지른 것을 지적하고 싶은 저자의 마음은 알겠지만 이건 좀 무리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신대륙에 카스티야 세력이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무어인들의 식탁에 토마토 샐러드가 오르는 것 역시 역사적 오류라는 지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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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22-03-02 09: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라나다에 4년 살았었는데 이런 책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꼭 방문하셔서 알함브라도 가보시고 도시 전체에 깔려 있는 석류 문양도 보시면 책이 또 다르게 읽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어인들이 번성할 때의 이야기는 많이 알고 있었는데 그 이후 이야기도 흥미롭군요.

레삭매냐 2022-03-02 10:42   좋아요 2 | URL
우와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가르나타에서 4년이나 사셨다고
하시니까요 ^^

잘 나가던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쫓겨나는 이야기는 참
슬프고도 아름다웠습니다.

바람돌이 2022-03-02 09: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라콩퀴스타에 대한 무어인들의 관점이 궁금했는데 이 책이 바로 그 책이네요. 다 절판!!! 다행히 중고매장에는 나와 있어서 볼 수 있겠네요. 저에게는 이 글이 오늘자 득템같은 기분입니다. ^^

레삭매냐 2022-03-02 10:45   좋아요 2 | URL
아니 이런 책들이 왜 절판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더 꾸준하게 발표해 주어야
하는데, 보아 하니 역자분
도 작업을 하신 것 같던데
말이죠.

부디 좋은 컨디션의 책으로
만나게 되시길 기원합니다.

mini74 2022-03-02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빌려왔어요 매냐님 ㅎㅎㅎ 그래서 살짝만 보고갑니다. ~~

레삭매냐 2022-03-03 11:35   좋아요 1 | URL
모쪼록 이런 좋은 책들이
널리 알려져서 많은 분들
이 읽으셨으면 하는 바램
입니다.

절판된 게 흠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