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화를 통해 우리가 얻는 혜택이 비단 물질 재화의 경우만은 아니다. 많은 문화 상품들 또한 개인들이 대규모 관람자의 일원으로서 얻는 혜택 때문에 가치가 있다. 영화를 감상하거나 TV 프로그램을 보거나 혹은 책을 읽는 즐거움의 많은 부분이 나중에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데서 온다. 바로 ‘블록버스터’ 현상을 설명하는 말이다. 영화가 효과적 숫자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 이야기를 해서 다른 사람들이 대화에 끼기 위해서라도 그 영화를 봐야겠다고 느낄 때이다. 책 시장도 같은 구조인 탓에 일반도서와 베스트셀러 도서의 판매량이 그렇게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같은 것을 소비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재화가 고립된 개인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서 소비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확한 답이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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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사무실 앞에 핀 배롱나무 꽃들을 보았다.

거의 만개한 듯. 어제 비가 왕창 내려서 바닥에는 꽃잎들이 그렇게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아주 오래 전, 아무 때나 누구에게나 절친이라고 부를 만한 그런 친구와 함께 남도여행에 나섰다.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그건 뻥이고 그냥 발걸음 닿는 대로 가자는 막무가내 여행이었다.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군산이었다. 아마 8월초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목적지였던 복성루는 휴가 중이었다. 기가 막혔다. 폭우를 뚫고 갔는데 말이지.

대신 다른 곳에 가서 짬뽕을 묵었다.

 

그 다음에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담양과 낙안읍성을 누빈 것 같다.

 

소쇄원을 필두로 담양에 산재한 숱한 정자들을 찾았다. 그리고 사방천지에 핀 배롱나무 꽃들을 보면서 그야말로 속세에 찌든 마음을 힐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다시 오래 시간이 지나 배롱나무 꽃들을 보자니 그 시절 생각이 피어 올랐다.

아, 남도에 다시 가고 잡다. 그 때 그 닝겡과 함께 말이지.


==================================

 

관동제일루가 죽서루라고 한다면, 호남제일루는 명옥헌(누각이 맞나?)

이 아닐까 싶다.

 

명옥헌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곳에서 막걸리 한 잔 땡기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더라는.

물론 명옥헌에도 흐드러지게 핀 배롱나무를 볼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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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7-21 13: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 닝겡이 누굽니까 ㅎㅎ 저희 아이 초등 중등 학교교목이라 눈에 익어요. 꽃들이 탐스럽고 예뻐서 가끔 녹색어머니할때 사진 찍곤 했습니다. 애들이 슈렉어머니회라고 놀렸죠. 배롱나무 사진 참 좋네요 매냐님 *^^*

레삭매냐 2022-07-21 13:56   좋아요 2 | URL
제 대학 동창 친구랍니다 :>

아주 신나게 돌아다닌 기억이!!!

군산 복성루를 필두로 해서 낙안
읍성에 담양 일원, 피아골 연곡사
등등

피아골 계곡에 내려가서 얼음짱
같은 물에 발 담그고 쏘주 마시다
가 취하는 줄 모르고 기절했더라는
전설이 내려 오고 있답니다 ㅋㅋㅋ

그 땐 그랬지 ~

얄라알라 2022-07-21 13: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군산 복성루... 자유여행이신듯 해두 결국 맛기행이셨단 말입니까? 왜하필 문을 닫아서...전 군산은 아구 찜인줄알았어여^^

레삭매냐 2022-07-21 13:59   좋아요 2 | URL
짬뽕 사대천왕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
했다만 그만...

결국 나중에 다시 도전해서 성공하긴
했었는데, 기대가 너무 커서 그런진
몰라도 그냥 그렇더라구요. 허명이 아
니었나 ㅋㅋ

여행하는 재미 중의 하나가 뭐니뭐니
해도 먹거리 아니겠습니까 ^^

stella.K 2022-07-21 13: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우, 배롱나무요? 첨들에 보는데요?
모르면 그냥 철쭉인가 하겠어요.ㅋㅋ

레삭매냐 2022-07-21 14:01   좋아요 3 | URL
저도 책으로 배운 꽃이랍니다 ^^

다른 말로는 목백일홍이라고도
하더라구요. 너무 이뻐요.

페넬로페 2022-07-21 14: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담양의 소쇄원과 죽녹원
메타세콰이어길이 기억납니다.
저도 몇 년전 이맘때 갔는데 날이 흐리고 비가 조금 내려 덥지 않고 더 운치가 있었어요
낙안읍성에서는 하룻밤 지냈는데
친구들이랑 가라, 멈추라 놀음을 한 기억이 ㅎㅎ
배롱나무는 선비를 상징한다고 한 것 같은데 요즘 제 기억을 믿을수가 없어요.
만개한 꽃이 예쁩니다^^

레삭매냐 2022-07-21 14:26   좋아요 3 | URL
죽녹원, 대밭도 너무 멋졌습니다 !!!
나중에 한 번 더 갔답니다. 죽녹원 앞
에서 닝겡이는 국수를 두 사발이나
면치기를 한 기억이 나네요. 니 미친나!

맞아요 메타세콰이아 길도 그 때 갔었
었요. 기억이 믿을 게 못되네요.
비 맞으며 자전거 타던 기억이 솔솔
납니다.

코스가 얼추 비슷한가 봅니다.

얄라알라 2022-07-21 15: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같이 장마 애프터 장마 시즌에 사진만으로 쨍하고 해뜬 기분 들게 하는 배롱꽃이네요^^ 저는 ‘메롱나무‘로 잘못 알고 이야기했다가 망신 당했던 적....

레삭매냐 2022-07-21 15:55   좋아요 1 | URL
장마가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비가 계속해서 오락가락하네요.

저도 처음에 그렇게 기억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셨군요. 배롱나무, 이름이
참 이쁜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2-07-21 15: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군산 좋죠. 오래전에 갔었는데 다시 가고싶네요. 의외로 구석구석 볼것도 많고 맛난것도 많고 말이죠. ㅎㅎ

레삭매냐 2022-07-21 15:59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저도 서너번 가본 것 같은데
갈 때마다 새로운 곳들을 만
나게 돼서 좋았던 것으로 기
억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7-21 17: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옆지기하고 군산 여행 가서 복성루부터 갔었어요~ 짬뽕 생각납니다. 근대 박물관도 갔었고요^^ 담양은 당일치기로 버스 타고 갔었는데요. 어르신들 틈새에서도 인증샷 잘 찍고 돌아다니고 녹차 아이스크림 맛보고 대나무 숲 시원했던 거 기억납니다. 여행 가고프네요~ㅎㅎㅎ
배롱나무꽃 넘넘 예쁩니다!^^*

레삭매냐 2022-07-21 17:42   좋아요 1 | URL
저도 옆지기랑 군산 복성루
가서 줄서서 기둘리다가 욕을
그냥 한 바가지루다가 ㅋㅋㅋ

추분데 기다리게 하고 기대한
만큼 맛도 없다고 해서리 ㅠ

이성당 빵도 무러 가봐야 하는
데 말이죠 -

그레이스 2022-07-21 1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족들이랑 죽녹원 소쇄원 명옥헌 다녀왔어요. 작년에!
비가 부슬부슬 와서 오히려 더 멋있었어요.

레삭매냐 2022-07-21 18:00   좋아요 1 | URL
오오 명옥헌에 다녀 오셨군요 ^^

동해 죽서루와 더불어 저의 최애
정자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쿨한 사람은 고의적으로 자신을 사회의 대중들과 분리시키는 사람이다. 쿨한 사람은 미국 영화와 음악과 소설의 원형적 영웅인 반란자이고 비순응적 암호해독자이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굴"은 첨단의 대안적이고 힙한 것이라고 다양하게 해석되는 한 문화적 입장의 지배적 용어이다. 쿨을 생각하면 "단순히 문화적인" 인물(배우, 작가, 뮤지션)과 물건들(신발, 옷, 전자제품)이 연상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에 쿨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행동을 대단히 정치적인 것으로 늘 해석해왔다. 그들의 입장에서 쿨하거나 힙하다는 것은 일련의 실천에 가담하는 것이고 대중사회의 족쇄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키기 위한 일련의 태도들을 채택하는 것이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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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7-21 0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제목과, ˝아주˝ ˝매우˝ 놀랍게˝ 잘 맞습니다! ^^

레삭매냐 2022-07-21 09:02   좋아요 0 | URL
절판된 책이라고 해서 부랴부랴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 이
상으로 재밌네요.

60년대 혁명세대의 차가 SUV
로 이루어졌고, 반소비주의를
주창하던 세대가 역사상 가장
소비를 많이 세대가 되었다는
지적도 참 아이러니하더군요.

그러니까 혁명과 소비주의
한 끝 차이다?

젤소민아 2022-07-21 0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쿨~~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ㅎㅎ

레삭매냐 2022-07-21 15:56   좋아요 0 | URL
저도 마음은 그러나,
이러저러한 여건 탓에 -
그러하다고 합니다.
 














200759. 아무 준비 없이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향했다. 일찍이 유홍준 선생이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렇게 목놓아 외쳤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빈을 찾았다.

 

그리고 15년이 지나, 유시민 작가의 책을 읽으며 후회를 한다.

왜 내가 거기에 가보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마리아 슈트라스가세? 너무 오래 전이라 거리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커피 한 잔은 마셨어야 했는데 말이지.

 

여하튼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라도, 유시민 작가 덕분에 빈에 대해 다시 알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련다.

 

지난주에 최경영 아자씨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유시민 작가가 출연하셔서 신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바로 보헤미아의 얀 후스였다. 한 며칠 푸욱 쉬면서 책이나 실컷 읽었으면 좋겠다. 뭐 그렇다.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반동(反動)의 시간도 예외가 아니다. 좌절감이 옅어지고,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가 쌓이고, 대중의 이성이 눈 뜨고, 보통 사람들의 마음에 용기가 번지면 어느 날 갑자기 역사의 물결이 밀려와 진보의 모든 배를 한꺼번에 띄워 올린다. 그런 때가 오기까지 작고 확실한 즐거움에 몸을 맡기고 삶을 이어가는 것이 무슨 잘못이겠는가. 비더마이어 시대 전시실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퇴행과 압제의 어둠 속에도 빛이 완전히 꺼지는 법은 없다. 그렇게 믿으며 삶을 이어가면 새로운 시대를 볼 수 있다. 내가 거기서 본 것은 좌절과 도피가 아니었다. 질긴 희망과 포기하지 않는 기다림이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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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7-19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죠. 저도 10년도 훌쩍 전 독일에 갔었는데 공부한다고 하고 갔지만 놓친 것이 참 많더군요ㅠㅠ 지금은 그렇게 길게 여행가기도 어려운데 말입니다ㅋㅋㅋ 빈은 못가봤는데 간다면 가기 전 도움받고 가야겠군요.
이번 여름 휴가 때는 정말 책에 푹 묻혀서 살까 합니다^^*

레삭매냐 2022-07-19 17:53   좋아요 0 | URL
한 곳에서 오래 지내는 이들보다
어쩌면 단기 여행자들이 더 많은
것들을 보게 되지 않나 싶더라구요.

일상이 되면 단기 여행자들에게는
낯선 풍경들도 그냥 시큰둥해지지
않나 뭐 그렇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빈에 대한 추억을
되살려 보게 되네요.

무더운 여름에는 책이 쵝오지요.

바람돌이 2022-07-19 17: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코로나 직전에 다음 여행은 동유럽이다 하면서 준비 시작하다가 좌절! 지금은 또 언제갈지 아직도 기약이 없는 곳이라 지금 이 책 읽으려고 줄세워놨어요. 유시민 작가의 유럽도시기행 1권은 사실 저는 좀 감흥이 없었던.... 제가 최근에 갔다온곳이라 그런지 특별한 임팩트를 잘 못느끼겠더라고요. 이번 책은 못가본 곳이니까 뭔가 좀 더 새롭게 다가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

레삭매냐 2022-07-19 17:58   좋아요 1 | URL
전 1권은 아직 만나 보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1권도 호기심이 생기네요 ^^

어려서는 하나라도 더 보자라는 무모
한 발상으로 정말 발바닥에 땀이 나
게 뛰다니시피 다녔었는데 지금은 그
저 휴양을 하고 싶습니다.

지도를 보니 드레스덴하고 프라하가
정말 가깝더라구요. 베를린 올라가는
길에 드레스덴에 ICE가 잠시 섰었는데
그 때 무작정 기차에서 뛰어 내렸어야
했나 봅니다 :>

단발머리 2022-07-19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방송 봤는데 그래서 얼른 읽어보고 싶고요. 유럽 여행을 갈 수 있는 날이 오겠나, 싶었는데 오긴 오네요.
근데 저는 못 가는 ㅋㅋㅋㅋㅋㅋ 일단 읽어보겠습니다!!!

레삭매냐 2022-07-19 20:06   좋아요 0 | URL
예전에는 돈이 없어서
못 갔었구요... 지금은 시간과
돈 둘 다 없어서 못간다는 -

책은 재미집니다.

그레이스 2022-07-19 18: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럽여행 가고 싶어요.
피렌체, 베네치아, 바르셀로나, 북유럽....!

레삭매냐 2022-07-19 20:08   좋아요 2 | URL
악! 로마에서 표만 사놓고 결국
가지 못한 피렌체 생각이 납니다 !

부끄유럽과 바르셀로나에도 가보
고 싶구요.

가지 못하니 더 애절하네요.

젤소민아 2022-07-21 0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스페인을 다녀왔는데 같은 곳을 가도 생각의 끈이 짧으니 ‘보기‘가 달라지네요. ‘보기‘가 다르니 ‘사유‘도 다르고요. 저는 그만, 짧기만 합니다 그려 ㅎㅎ

레삭매냐 2022-07-21 09:37   좋아요 0 | URL
우와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스페인!
마냥 부럽습니다.

저도 수년 전에 스페인 가보려다가
비행기값이 너무 비싸서 패스했던
기억이 - 아마 그 때 무리를 해서라
도 갔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유럽도시기행 빈 편을 보면서 난
도대체 빈에 가서 뭘 했지 싶더라구요.
 
미즈키 시게루의 라바울 전기 - 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미즈키 시게루의 귀중한 라바울 전투 체험담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미즈키 시게루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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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저자 야마오카 소하치 씨가 쓴 <태평양전쟁>이라는 그야말로 희한한 책을(그것도 5권이나!) 읽은 적이 있다. 아마 저자는 종군기자였던 것 같은데, 남양군도에 전개해서 미군과 싸우다가 개죽음을 당한 일본군을 황군이라 부르며 그야말로 찬양으로 가득한 그런 내용이었다. 야마오카 씨는 그가 그토록 찬양하던 황군이 남양군도의 각처에서 저지른 상상을 초월하는 만행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감았다. 아주 오래 시간이 흐른 뒤, 몇 년 전에 그가 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으면서도 그런 이유로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극우작가 야마오카 씨가 맨 오른쪽에 가 있다면, 진짜 전장에서 자신의 한쪽팔을 잃고서도 저명한 만화가로 활약한 미즈키 시게루는 자신이 직접 전장에서 체험한 사건들을 일체의 미화 없이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돗토리 부대의 일원으로 이미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 일본군의 거대 기지가 있었던 뉴브리튼 섬의 라바울에 미즈키 씨는 파병됐다. 구타가 일상화되었던 구식 일본 군대에서 몽상가로 보이는 미즈키 씨는 그야말로 구타의 아주 적절한 타겟이 아니었을까. 농땡이를 피운다운 이유로 게다짝을 맞질 않나, 20-30분의 연속 따귀 세례는 아예 기본이었다. 오죽 했으면 스스로를 따귀의 왕자라고 했을까. 더 웃기는 건 그렇게 자신을 두들겨 팬 선임병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했다고 한다. 이런 똥군기와 정신무장을 강조하는 건 비단 구식 일본군만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 것이다.

 

그들이 상대하는 미군들은 잘 보급된 식사와 따뜻한 잠자리 그리고 최신 무기와 무진장한 탄약으로 무장했기에 일본군들이 비아냥거리던 개판 같은 군기에도 자신들을 압도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미즈키 씨는 그야말로 뱃속에 거지가 들어 앉았는지 오로지 라바울 현지에서 먹거리에만 관심을 가졌다.

 

솔저 보이(토인)들과 안면을 트고 마을을 다니면서 자신이 가진 담배와 현지의 싱싱한 과일과 야채들을 원없이 먹었다고 했던가. 그에 비하면 정규 일본군이 보급하는 부식과 먹을 것들은 너무나 부실했다. 심지어 그가 우연히 만난 해군들의 보급 상태는 육군의 그것에 비해 월등했다. 하긴 일본 육군과 해군의 갈등이 어제 오늘의 일이었던가. 조슈파와 사쓰마파로 나뉘어진 구 일본 군대 내의 첨예한 다툼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해왔다. 아울러 군대 전체의 기율에 반하는 하극상도 일상 가운데 하나였다.

 

미즈키 씨가 전하는 라바울의 실상 가운데 충격적이었던 점 중의 하나는 현지에서 보급투쟁에 나섰다가 밀림에 사는 악어밥이 된 병사들도 다수 있었다는 점이다. 악어는 일단 먹이를 잡아 부패시킨 뒤 먹는 습성이 있다고 했던가. 그래서 악어에게 반쯤 뜯어 먹힌 시신이 떠내려 오기도 했다고 한다. 일본이 남양군도에 수행한 전쟁 자체가 넌센스였지만, 현지에서 이런 말도 안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는 사실이 참 그랬다.

 

일본군의 상식에 반하는 작전은 적전 상륙이라는 이름 아래, 치러지기도 했다. 사실 라바울에 주둔한 10만에 가까운 일본군을 소탕하는 문제는 당신 전선을 책임지고 있던 미국과 호주에도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고립된 라바울이 전략적 가치를 상실했다고 판단한 연합군 전쟁 지휘부에서는 라바울을 건너뛰고, 다른 지역을 공략하는 것으로 작전을 변경했다. 아마 그래서 과달카날이나 팔라우 혹은 필리핀 전역에 비해 라바울에서 생환한 병사들이 많았던 게 아닐까 싶다.

 

우리의 미즈키 씨는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결국 왼쪽 팔을 잃게 되었다. 상이용사가 되었다고 해서 그에 대한 구타나 노역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만, 그전보다는 나은 생활을 하게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구사일생으로 어느 순간 적으로 돌변한 솔저 보이들의 추격으로부터 벗어난 미즈키 씨는 라바울에서 종전을 맞이하고, 토마로 가서 포로 생활을 하다가 본국으로 귀환했다.

 

토마에서 포로 생활 시절, 미즈키 씨는 현지 제대할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그는 확실히 현지인들을 착취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다른 일본군과는 다른 성향의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자신을 돌보아 준 군의관의 설득으로 귀환선에 올랐던 모양이다. 그리고 토마에서 어렵게 구한 종이와 연필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해서 그림들을 그렸다. 그리고 나중에 일본에 돌아와서도 당장 먹고 살기에도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라바울 시절을 회상하며 기록을 남겼고, 그 기록들이 모여서 <라바울 전기>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미즈키 씨는 태생적으로 특유의 낙천가였는지 <라바울 전기>를 통해서는 비관적인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림 그리는 만화가로 한쪽 팔이 없다는 건 작화에 치명적인 결함일 텐데, 후회나 통한 같은 부분은 아예 등장하지 않는 점이 신기하기도 했다. 하긴 만성적 말라리아에 걸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남양군도에서 생환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지 않았을까.

 

미즈키 시게루 씨가 <라바울 전기>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도 모른 채, 타지에서 어이 없이 죽어간 그리고 학대 받은 병사들에 위해서라도 전쟁의 비극은 없어야 한다. 지금도 지구촌의 어딘가에서 대화나 타협 대신 폭력적 방식에 호소하는 전쟁이 진행 중이다. 부디 무의미한 갈등이 종식되고, 평화의 시간들이 도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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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7-19 14: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군대문화도 일제시대때 굳어진거라 읽었어요. 군장교들도 대부분이 일본군대에서 교육받은 자들에 ㅠㅠ전원 옥쇄하라 예전 해적판으로 봤어요. 책소개 너무 좋네요 *^^*

레삭매냐 2022-07-19 14:59   좋아요 2 | URL
구 일본 군대가 프로이센 군제를
받아 들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서양의 합리적 방식들은 거부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적해 주신 대로, 해방 이후 군
지휘관들의 대부분이 구 일본군
출신이다 보니 구태와 악습의 고
리를 끊는데 실패했다고 생각합
니다.

그리고 못된 하극상만 배워서
결국 군사 쿠데타라는 최악의 결
과가 도출되었지요.

<전원 옥쇄하라>와 이어지는
부분들이 있어서 더 이해가 쉬
었습니다.

그레이스 2022-07-19 17:52   좋아요 3 | URL
공립학교도 프로이센에서 받아들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군인을 만들기위한 교육, 황국신민교육이죠.
당시 교복도 군복에서 온 디자인이라고 알고 있어요.

바람돌이 2022-07-19 18: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주 4.3에 대한 가혹한 진압을 주도한 것도 모두 일본 관동군 출신 장교들이 중심이었지요. 일본 군대에서 배운 것들을 그대로 적용한 놈들이 해방 후 한국 군대를 주도했다는게 우리의 비극이기도 하구요. 이 책도 봐야겟네요. 레삭매냐님 덕분에 놓칠뻔한 책을 챙기게 되는 일이 많네요. 늘 감사합니다. ^^

레삭매냐 2022-07-19 20:15   좋아요 2 | URL
제가 남태평양 전역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라바울 전선에서 실
제 참전했던 미즈키 씨의 기록이 더
와 닿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적해 주신 대로,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후과가 참 아쉬울 따름입니다.

coolcat329 2022-07-19 19: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읽으셨군요!
저 이 책 살까말까 고민했거든요.
꼭 읽어야겠습니다.
사실 책 표지랑 제목이 좀 구려서 ㅎㅎ

레삭매냐 2022-07-19 20:16   좋아요 2 | URL
라바울의 일본어 표기가
라바우루더라구요.

그냥 제목 그대로 번역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

저도 이 책은 사지 않고 도서
관 희망도서로 땡겨서 읽었답
니다.

겨울호랑이 2022-07-19 22: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야마오카 소하치는 2차 대전 당시 종군기자로 참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면 미즈키 시게루는 직접 총을 들고 적과 싸워야 했던 입장 차이가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를 가져온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자가 들고 있는 사진기와 총 모두 ‘shoot‘을 하지만, 동일한 언어가 담지 못한 서로 다른 이들의 처지가 관점과 작품의 차이를 가져온 것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레삭매냐 2022-07-20 09:56   좋아요 2 | URL
겨호님의 말씀이 정확하십니다.
문인과 전투병의 시선을 다를 수 밖
에 없을 것 같습니다.

둘 다 ‘shoot‘을 해야 하는 동병상련
의 처지였네요.

숲노래 2022-09-06 0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이 만화왕국이 되도록 밑바탕을 다진
테즈카 오사무, 미즈키 시게루, 후지코 후지오
이 세 사람이 걸어온 길과
만화로 담은 삶을 보면
그분들이 태어난 일본이란 나라가 저지른
바보스럽지만 무시무시한 전쟁범죄를 온몸으로 겪고 나서
이를 그 나라(일본) 어린이한테
제대로 보여주되, 만화답게 새로 풀어내어 보여주어야겠다는
꿈이 있었다고 느낍니다.
<게게게의 기타로>를 보면 슬쩍슬쩍
일본정부와 일본정치를 엄청나게 꾸짖는 대목을
일부러 집어넣기도 합니다.

미즈키 시게루 님은 일본 요괴 이야기를 그리면서
이웃나라(한국) 요괴 이야기가 궁금해서
이웃나라로 찾아와서 한국 요괴 이야기를 듣고서
이를 <게게게의 기타로>에 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