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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러 - 솔로몬의 성전에서 프리메이슨까지, 성전기사단의 모든 것
마이클 해그 지음, 이광일 옮김 / 책과함께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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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한 달 걸려서 십자군 원정기에 팔레스타인에서 결성된 성전 기사단에 대한 서사를 다룬 마이클 해그의 <템플러>를 읽었다. 내가 이 책을 산 게 7년 전이라는 사실은 안비밀이다.
그동안 다양한 종류의 십자군 원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섭렵해서 그런지 출발은 좋았다. 고대 이스라엘의 솔로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또 무슬림의 기원까지 다루면서 중근동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분쟁의 단초를 마이클 해그는 독자에게 잘 전달해 준다. 무슬림이 발흥하고 나서, 수백 년 동안 큰 무리 없이 이어지는 기독교인들의 성지 예루살렘 순례를 이슬람 지도자들이 막아서면서 서방 기독교 세계에서는 성지 탈환이라는 소위 십자군 운동의 전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잘 알려진 대로 교황 우르반 2세의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라는 말로 시작된 십자군 전쟁에 내로라하는 서방의 기사들과 다수의 민중들이 참여하면서 1099년 예루살렘이 기독교도들이 손에 떨어졌다. 뒤이은 숱한 양민들의 학살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과연 신이 그것을 원하셨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십자군 원정의 초기단계에서이 성공은 이슬람 세력의 분열도 한몫했다. 이집트의 카이로와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양분된 이슬람 세계는 베르세르크급의 기독교 전사들을 우트르메르에서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다.
장기와 누레딘 그리고 살라흐 앗딘의 등장으로 드디어 이슬람 세계가 통일되고, 그들에게 역시 성지였던 예루살렘 혹은 그들은 알쿠드스라 부르는 성지탈환을 위한 지하드가 개시되면서 기독교도들이 지배하던 우트르메르에 위기가 닥쳐오게 됐다. 이에 불신자들의 무리로부터 성지 수호를 위해 성전 기사단이 창설되기에 이르렀다. 소위 템플러라 불리는 성전 기사단의 목적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성지 예루살렘을 목숨을 바쳐 지키자. 엘리트 군사 집단으로 구성된 수도자인 동시에 뚜렷한 목적 의식을 지닌 전사들이었다.
문제는 살라흐 앗 딘이 이끄는 통합 무슬림 세력의 매서운 파도가 템플러들이 지닌 각오와 전의 그 이상이었다는 점이다. 서방과 달리 우트르메르에서 병력 증강은 요원했다. 물자 역시 서방의 지원에 많은 부분을 의존해야만 했다. 서방 기독교 왕국에서 성전 기사단의 대의에 동참하는 많은 이들이 인적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물적으로 부유해진 기사단의 자산을 훗날 역설적으로 그들이 파멸하게 되는 원인 중의 하나가 된다.
하틴 전투에서 우트르메르 기독교 세력이 살라흐 앗 딘에게 궤멸적인 패배를 당하고, 뒤이어 88년 만에 성지 예루살렘마저 무슬림들에게 빼앗기게 되면서 성전 기사단은 위기를 맞게 된다. 물론 성지를 빼앗긴 책임을 모두 성전 기사단에게 물을 수는 없었다. 모든 일들이 그렇듯 항상 일이 이성적으로만 전개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지중해 연안의 아크레(오늘날의 아코)로 기사단 본부를 옮기고 이집트 맘루크 왕조에게 우트르메르의 마지막 기독교 세력이 말소되는 1291년까지 근 1세기 가량을 버티었지만 모든 기독교인들을 팔레스타인에서 죽이겠다는 무시무시한 무슬림 세력의 도전 앞에 중과부적이었을 따름이다.
<템플러>의 저자 마이크 해그는 성전 기사단이 맹활약을 펼쳤던 방어전에서 소수의 거점에 난공불락의 요새들을 건설하고 맹렬하게 불신자들에 맞서 싸운 성전 기사단의 활약상 묘사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병력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수의 전사들로 엄청난 수의 무슬림 전사들을 상대해야 했던 성전 기사단의 전투력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점과 선의 확보만으로는 적진에서 저항 거점의 유지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살라흐 앗 딘에 맞선 사자심왕 리처드가 예루살렘 수복을 눈앞에 두고서, 예루살렘의 배후지를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지 탈환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물러서는 장면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십자군 전쟁 초기, 유리한 상황에서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를 쳐서 확보해 두었다면 우트르메르가 좀 더 유지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 그리고 성지 수복에 앞서 이집트와의 고리를 떼어 놓아야 한다는 전략은 좋았지만, 이집트 술탄의 역습으로 숱한 성전 기사단 전사들이 학살당하고 십자군 전쟁이 종언을 가져온 사실에 대한 지적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13세기 초, 프랑스에서 알비 십자군이 결성되어 카타리파 이단을 섬멸했다. 끝까지 저항하던 이단들을 모두 화형에 처했다. 교황에게 공식 인가를 받고 국가와 상관없이 독자적인 무장과 자산을 지니고 성지 수호라는 대의명분 아래 활약하고 있던 성전 기사단의 어두운 미래에 대한 하나의 징조가 아니었을까.
중세 은행이 부재하던 시기에 성전 기사단은 금융과 무역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 주었다. 각지에서 답지하는 후원 자금을 관리하고, 성지에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서방으로부터 우트르메르로 수입업을 맡기도 했다. 한 때, 성전 기사단이 실질적으로 프랑스 재무부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십자군의 이집트 원정 당시 무슬림에게 포로가 된 프랑스 국왕에 대한 몸값 지불을 거절하기도 했다고 하던데, 혹시 이때부터 프랑스 왕들이 성전 기사단에 앙심을 품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성지 실지로 위상이 급격하게 추락하기 시작한 성전 기사단은 결국 카페 왕조 출신의 필리프 4세의 음모에 의해 와해되기에 이르렀다. 1307년 10월 13일, 필리프 4세는 성전 기사단의 단장 자크 드 몰레와 나머지 기사들에게 이단 혐의를 씌워 모조리 체포했다. 당시 필리프 4세의 수중에 있던 교황 클레멘스 5세의 성전 기사단 구명에도 불구하고 단장 자크 드 몰레가 화형에 처해지게 되면서 화려했던 성전 기사단 활동은 끝이 났다.
이젠 거의 신화가 된 성전 기사단의 비밀주의 덕분에 후세에 그 유명한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비롯한 사이비역사 및 소설들이 범람하게 되었다는 지적이 가장 흥미로웠다. 음모론 신봉자들에게는 아무리 사료에 근거한 이야기들을 해도 그들이 듣지 않는다는 점 역시나 탈진실 시대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2001년 바티칸 서고에서 발견 <시농 양피지>의 존재다. 사실 성전 기사단에 대한 모든 저서들은 이를 기점으로 다시 쓰여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문서가 아닐 수 없다. 교황 클레멘스 5세가 성전 기사단원들이 재판에 회부되기 이전에 이미 이들에게 씌워진 이단혐의가 무죄라는 점과 이들을 사면 복권했다는 점이 <시농 양피지> 기록을 통해 드러났다. 당시 서유럽 각국에서 민족주의가 발흥되던 시기에, 세계주의자들이었던 성전 기사단의 존재와 자산에 눈독 들인 필리프 4세가 벌인 자작극이었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가 있었다.
성전 기사단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던 프랑스에서 성전 기사단이 비참한 최후를 맞은 뒤, 잔존 성전 기사단원들은 잉글랜드와 에스파냐/포르투갈에서는 비교적 나은 대우를 받았다. 동방의 예루살렘에서 성지 회복이라는 기치 아래 싸웠다면 서방에서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슬림을 몰아내기 위한 레콩키스타 무대에서 성전 기사단은 가공할 전투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 다음에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무대를 옮겨 프리메이슨 조직으로 변신했다는 사이비역사 음모론도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역사에서 호사가들과 음모론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바로 성전 기사단의 화려했지만 비참한 최후의 서사가 아니었나 싶다.
나중에 소설과 영화 장르에서도 성전 기사단의 서사는 무한반복된다. 특히, 인디애너 존스 시리즈 3탄인 <최후의 성전>에는 성배를 지키는 800살 먹은 성전 기사단원의 등장이 기억을 소환해냈다. 나치는 금으로 만든 화려한 성배를 들었다가 바로 죽었고, 우리의 히어로 인디애너 존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목수였다는 점에 착안해서 허름한 나무로 만든 성배로 죽어가는 아버지 헨리 존스를 살려내는데 성공한다.
근 한 달 걸려서 드디어 다 읽었다. 십자군 전쟁에 대해 내가 모르고 있던 사실들과 성전 기사단의 전체 모습에 대한 고찰이 마음에 들었다. 뭐 이런 재미에 계속해서 책을 읽는 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