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의 멕시코 - 존 리드, 멕시코혁명을 기록하다
존 리드 지음, 박소현 옮김 / 오월의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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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즐겨 부르던 노래가 있다. 멕시코 민요라는 <라쿠카라차>. “병정들이 전진한다, 이 마을 저 마을 지나~” 참 많이도 불렀다. 그런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파라과이 살던 스페인어를 할 줄 알던 아는 누나가 라쿠카라차가 무슨 뜻인지 아냐고 물었다. 당연히 몰랐고 뜻을 물었더니 바퀴벌레라고 했다. 믿어지지가 않아서 찾아 보니 바퀴벌레가 맞았다. 그리고 더 나중에 이 노래에 멕시코 혁명의 전설적인 영웅 판초 비야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번안된 노래에 판초 비야의 이름은 없었다.

 

러시아 혁명을 르포르타주로 다룬 전설적인 저널리스트 존 리드(이하 후안 리드로 부르겠다)가 앞서 이름을 날리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책인 <반란의 멕시코>였다. 멕시코의 현대화에 일부 공헌도 했지만, 30년에 걸친 장기통치로 결국 독재자로 변신한 포르피리오 디아스에 대항해서 멕시코 민중들이 무장봉기를 일으켜 정권을 뒤집어엎었다. 후임 대통령으로 선출된 프란시스코 마데로는 보수주의자들과 기득권층에 포위되어 민중들이 원하는 적극적인 개혁을 할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빅토리아노 우에르타의 반혁명이 발생하면서 마데로 대통령은 암살당하고, 해산했던 민중 혁명군이 다시 우에르타 정부군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이게 1914, 그러니까 우리의 후안 리드가 멕시코 북부에 침투한 시점의 이야기다.

 

<반란의 멕시코>를 읽기에 앞서 시간을 들여 러시아 혁명에 앞선 20세기 최초의 민중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멕시코 혁명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한 나라의 현대사를 주마간산식으로 공부한다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몇 편의 논문들과 너튜브(특히 정성태 교수님의 콘텐츠가 도움이 되었다)로 멕시코 혁명에 대해 얄팍하나마 지식을 쌓고, <반란의 멕시코>를 읽기 시작했다. 읽는데 한달 정도 걸린 건 다른 책에 대한 외도도 있었지만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멕시코 혁명은 러시아 혁명 같은 이데올로기가 우선한 혁명이 아니었다. 전 국토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대지주들의 횡포에 맞선 다수 민중들이 앞장서서 싸운 혁명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층은 자신들이 가진 것과 권력을 순순히 내려놓지 않는다. 그래서 헌정군이라 불리는 멕시코 반란군(?)들은 정당성이 결여된 우에르타 연방군에 맞서 변변치 않은 무기로 무장한 채 투쟁에 나섰다.

 

헌정군에 소속된 전사들과 동행하면서 후안 리드는 그들의 내면을 관찰했다. 사실 처음에 미국인 후안 리드는 그링고 스파이라는 의심도 받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미국인이라는 후안 리드의 정체성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게다가 멕시코 민중들이 가진 반미감정은 수위가 높았다. 이미 전쟁으로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 애리조나 그리고 텍사스에 이르는 방대한 자국의 영토를 빼앗기지 않았던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멕시코 내정에 개입하는 모습도 민중들에게는 불만의 원천이었다.

 

어쨌든 헌정군과 함께 연방군과 콜로라도 민병대에 맞선 최전선을 달리면서 후안 리드는 멕시코 반군들의 심리 상태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들은 아시엔다에서 반노예 상태로 일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 토지를 원했지만, 기존의 시스템 아래서 그것은 미션 임파서블한 판타지였다. 그래서 세상을 뒤집어엎어야 했고, 판초 비야의 북부군과 에밀리나오 사파타의 남부군에 들어가 먹고 살기 위해 무력투쟁에 나섰다. 멕시코 혁명은 소위 먹물들을 위한 정치투쟁이 아닌 자신들을 위한 싸움이었다. 아무리 오랜 시간과 희생이 뒤따른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 싸움의 결과는 뻔했다.

 

후안 리드는 멕시코 민중군의 입을 빌려 지식인들이 혁명의 과정에서 지도자 반열에 오를 순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예리하게 지적한다. 자고로 잃을 게 많은 이들은 위기의 순간에 슬쩍 발을 빼기 마련이다. 잃을 게 없는 이들이야말로 끝까지 투쟁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이야기들을 지난달 달궁 독서모임에서 책동지들과 함께 나눈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후안 리드는 북부군의 사령관 판초 비야를 직접 만난 에피소드에 대해서도 말한다. 멕시코 혁명에서 그의 활약은 그야말로 전설 그 자체였다. 신출귀몰한 전술 전략으로 비야가 이끄는 헌정군은 압도적인 병력과 무장을 갖춘 연방군을 패퇴시켰다. 물론 콜로라도 민병대의 기습으로 전초기지에 머물던 헌정군과 우리의 후안 리드도 목숨을 잃을 뻔 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도주하는데 성공한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반란의 멕시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그것은 마치 스타워즈의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와 반란군들이 <제국의 역습>에서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지만 결국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된다는 서사가 연상되기도 했다. 비야가 이끄는 헌정군 역시 토레온 격전을 통해 두 번째 혁명을 성공시키는 계기를 가져오게 되지 않았던가.

 

후안 리드는 또다른 문제적 인간 베누스티아노 카란사와의 만남에 대해서도 기록을 남겼다. 상당히 귀족적 취향의 카란사는 많은 피를 흘린 멕시코 혁명의 최고 수혜자가 아닐까 싶다. 혁명의 지도자랍시고 거드름 피우는 꼴은 정말 보기 싫을 정도였다. 판초 비야는 투박하고 잔혹스러운 점도 없지 않지만, 민중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만 카란사는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지도자의 면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장에 나서는 혁명의 투사들이었지만, 전투가 끝나고 나서 휴식시간에는 밤새도록 춤을 추고 또는 토레온 전투가 끝나고 나서 카지노에 몰려와서 얼마 안되는 돈으로 도박을 즐기는 장면에서는 역시 그들도 보통의 대중들과 다를 게 없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명민한 저널리스트 후안 리드는 민중의 틈에서 언론의 중립적인 자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체험한 사건 사고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모름지기 언론인이란 이런 게 아닐까. 진실을 전달하는 역할 말이다. 왜 자신들이 플레이어가 돼서 사실을 왜곡하고, 조종하거나 판단하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반란의 멕시코>를 읽으면서 방대한 멕시코 혁명의 한 자락 정도를 맛본 느낌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멕시코 혁명 전반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혁명투쟁에 나선 민중들의 솔직한 심정에 대해서도 후안 리드는 정확한 필치로 그려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정선태 교수님의 강좌를 통해 멕시코 혁명에 직접 참가했던 의사 출신 혁명가 마리아노 아수엘라의 <천민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무려 35년 전에 나온 책이라 구할 수가 없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한 세기 전, 혁명의 최전선에서 귀중한 기록을 남긴 후안 리드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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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4-07 21: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지만 멕시코의 역사도 파란만장하지 않았나 싶어요.
멕시코혁명이 러시아혁명 전에 일어난 사건이군요~~
역사를 다룬 책도 많이 읽어야하는데 매번 시간부족만을 핑계로 대고 있습니다 ㅠㅠ

레삭매냐 2023-04-08 10:01   좋아요 2 | URL
메히코의 역사도 우리의 그것
만큼 파란만장하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스페인 제국의 4백년에 걸친
지배 그리고 독립, 전쟁, 혁명
까지 아주 버라이어티했지요.

전 요즘 성전기사단의 이야기
인 <템플러>를 읽고 있답니다.

서니데이 2023-04-07 22: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라 쿠카라차는 처음에 악보로 보고 알게 된 건데, 스페인에서 온 노래라고 하더라구요.
그게 바퀴벌레였어? 했던 생각이 나는 걸 보니, 나중에 알게 된 것 같긴 해요.
멕시코도 근대사를 찾아보면 여러 사건들 많을 거예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세계대전이 2번이나 있었던 지난 세기였으니, 아무일 없던 나라는 없었을지도요.
잘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좋은 하루 되세요.^^

레삭매냐 2023-04-08 10:02   좋아요 2 | URL
흥겨운 노래 자락과 달리
혁명 영웅의 이름이 들어
가 있다는 점에 저는 더욱
놀랐답니다.

메히코 작가들의 책들을
제법 모아 두기는 했는데
게으름 덕분에 읽지는 못
하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3-04-09 2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아침 기온이 낮지만, 낮에는 따뜻한 날씨입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시고, 좋은 밤 되세요.^^

레삭매냐 2023-04-10 09:03   좋아요 1 | URL
저도 아침에 추운 줄 알았는데
낮에는 또 덥더군요 :>

활기찬 한 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