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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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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30일 걸려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었다. 물론 30일 동안 내내 이 책만 잡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 사이에 무려 15권이나 되는 책을 읽었으니까 말이다. 시간과 기회가 될 때마다 소세키 작가의 책들을 사들이긴 했는데 정작 읽은 건 몇 권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달에 한 권씩이라도 소세키 읽기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4월에는 <갱부>를 읽는다.
다른 책들에서도 그랬지만 소세키 작가의 책에는 무언가 이렇다 할만한 그리고 자극적인 서사가 펼쳐지지 않는다. 요즘 워낙 그런 부류의 책들이 넘쳐나서 그런 걸까? 왠지 심심한 맛이 난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이번에 만난 <마음>도 그랬다.
도쿄 제대에 다니는 화자 “나”는 시골 출신이다. 책이 발표된 해는 1914년으로,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의 승리로 메이지 유신 이래 탈아입구라는 모토를 이루었다고 착각할 만한 그런 시기였다. 물론 내부 모순들을 해결하지 못해 혼란스러운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보니 소설의 어느 부분에서 메이지 국왕이 죽었다는 뉴스가 나오지 않았던가. 고향의 아버지 병세와 맞물리는 그런 시점이 기억난다.
대개의 경우 리뷰는 시간/서사의 흐름에 따라 기술하는 게 보통인데, 이번에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써보고 싶다. 일본 최고 대학에 다니는 나는 어느 해 여름, 가마쿠라의 휴양지에서 중년 남성 나중에 선생님이라 부르는 한량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를 따르며 선생님이라 부르게 된다. 무언가 비밀을 품고 있는 이 양반과의 만남은 스릴과 미스터리 두 가지를 모두 청년 화자에게 준다.
자식도 없이 그리고 마땅하게 하는 일도 없이 작고하신 부모님이 물려주신 재산으로 먹고 사는 선생님이 지닌 특징 두 가지는 우울함과 무력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반복해서 읽다 덮다를 반복했다. 화자와 선생님이라는 캐릭터에 좀처럼 몰입할 수가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선생님처럼 화자 역시 당시 청년들처럼 졸업하고 나면 야심을 품고 무언가가 되겠다는 생각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냥 되는 대로 하루하루를 사는 인생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막연하게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정작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어쩌면 청년 시절의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외면하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되고 싶지도, 그렇다고 해서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이런 화자에게 선생님은 딱 안성맞춤의 짝꿍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그 와중에도 청년 화자는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졸업 논문을 부지런히 준비하고, 또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일자리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 제국군의 일원으로 아시아 정복이라는 황당무계한 야심을 키우고 있던 일단의 청년 장교들과는 정말 결이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독자들을 궁금하게 만들던 선생님이 자주 찾던 묘지 미스터리는 세 번째 이야기에서 선생님이 남긴 유서로 풀리게 된다. 뭐랄까 느릿느릿 굴러가던 서사가 막판에 가서 거의 산꼭대기에서 굴린 눈덩이 같은 무게로 독자들을 강타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화자와 선생님의 관계의 밸런스가 맞지 않았던 것처럼 서사의 갑작스러운 해소 역시 기대와 달랐다. 그 뒤에 찾아오는 스산함과 무력감은 더 말할 것도 없었고.
화자와 선생님의 관계 속에서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마음”들은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궁금해졌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없을 적에는 상대방에 대한 나의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얼마나 애달파 했던가.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과연 그렇게 했을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안되면 안 되는 대로 그리고 되면 되는 대로 살아가는 게 속은 편하지 않을까.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런 감정의 고개를 넘어야 비로소 서로의 마음을 나누게 되는 건 또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걸 적당한 거리라고 해야 할까? 상대방의 어느 지점에서 마음의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면 그 이상의 관계로 넘어가는 게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래서 대개의 경우 ‘똑똑’ 마음의 문을 두드려 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마음을 접고 회군하여 그저 그렇고 관계가 되고 만다. 이래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쉽지 않다고 하나 보다.
다음에는 나의 성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화자나 선생님에 비추어 볼 때 과연 나는 그 시절보다 성장했을까? 아마 누군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겠지. 그런데 실제는 거기서 한 두 단계 정도는 빼야 되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을 주고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나는 성장하게 되고, 나라는 인격을 만들게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3월에 <마음>을 읽다 말다 하면서 달을 넘기지 않고 다 읽는데 성공했다. 내가 소세키 작가의 이 책을 쓴 ‘마음’을 모두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소세키 읽기 프로젝트를 일단 시작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만족하다고 자평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