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설만 주로 읽는다.
다른 책들은 읽지 않는다. 참고로 시도 읽지 않는다.
시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소설 말고 이렇게 역사책들도 읽는다. 나는 조금 부끄럽지만 역사 전공자다.
학교 때 읽지 않은 다양한 역사를 다 커서, 이제야 읽는다. 삶은 그런 것이다.
어제 휴가지 속초에서 집에 복귀해 보니 주문한 존 리드의 <반란의 멕시코>가 도착해 있었다. 만사 제쳐 두고 이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볼세비키 혁명을 다룬 <세계를 뒤흔든 열흘>을 쓴 바로 그 존 리드다.
그 책은 오래 전에 수배해서 집에 잘 모셔 두었다.
<세계>를 쓰기 전에 존 리드는 멕시코 혁명이 한창이던 1913년 여름 멕시코 북부를 취재차 방문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4달을 보내며, 보고 들을 것들을 <반란의 멕시코>로 묶어서 1914년에 발표했다. 이 책이 우리에게 도착하기까지 109년이 걸렸다.
판초 비야가 이끄는 헌정군이 우에르타 연방군에 승리를 거두기 시작한 시점인가 보다. 존 리드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 결국 멕시코 혁명에 대해 공부가 필요했다. 그전에 마데로 정부와 우에르타 독재정권 그리고 카란사에 대해서도 알기 위해 일단 몇 가지 정보들이 담긴 서류들을 출력해 왔다.
나같이 게으른 인간이 무언가를 알기 위해 이런 노력을 하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내 모토 중의 하나가 귀찮은 건 절대 하지 않는다 아니었던가 말이다. 하지만, <반란의 멕시코>를 읽기 위해서는 좀 필요한 절차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대신 서두에 실린 <해설>을 패스했다. 내가 오롯하게 접한 정보가 아닌 누군가가 알려주는 정보로 책이 전달하는 무언가를 오염시키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자만일지도 모르겠다. 해설은 뒤에 달아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방법론의 차이일 지도 모르겠지만.
속초에서 만난 겨울바다는 너무 추웠다. 겨울은 아직 물러가지 않고 봄의 기운을 막아서고 있었다. 눈이 시리게 푸른 바다를 오롯하게 마음에 담아오기엔 생각거리가 너무 많았나 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드디어 보라돌이 네그리타의 빛깔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머틀리 크루의 <Home Sweet Home>을 듣고 있다. 언제 들어도 명곡이다 참.
보너스컷으로 숙소 루프탑에서 매서운 영하의 바닷바람을 맞아 가며 찍은 속초 시내의 야경 사진이다.
신경 써서 찍는다고 찍었지만, 추위 때문에 속이 떨린 모양이다. 문득 오래 전, 필카 시절 숨을 참아 가며 그리고 손떨림을 최대한 참아 가며 셔터를 누르던 시절 생각이 났다. 그땐 그랬지.
송지호 바닷가에서 만난 조개껍질.
어디선가 화분에 칼슘을 공급하기 위해 조개껍질이 좋다는 말을 듣고는
바닷가에 즐비한 조개껍질들을 주워왔다.
나의 보라돌이 네그리타들이 부디 즐거워하길.
그런데 정확하게 중앙에 빵꾸가 마치 드릴로 뚫은 것처럼 보인다.
누가 이런 구멍을 뚫었는지 궁금해라.
아바이갯배 타러 가는 길에 만난 뚱냥이 녀석.
추븐데 니가 고생이 많구나 그래.
그나마 그날은 날이 덜 추워서 다행이었지.
다섯 개에 만원빵이었다. 다들 신나게 국자에 설탕을 두 숟가락씩 듬뿍 퍼담고 어린 시절로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그렇게 여행 중이었다.
나도 이런 건 참을 수가 없지 그래.
설탕이 다 녹으면 소다를 넣어야 하는데, 이기 관건이다. 너무 많이 넣으면 달고나가 써서 맛대가리가 없어지거든. 옆의 테이블에서는 소다를 거의 때려 붓들이 넣어서 거의 달고나가 폭발 수준으로 부풀어 올랐다. 당연히 그러면 먹지 못하는데 말이지.
다양한 달고나틀이 있는데 첫 번째는 별로 당첨.
그리고 보니 <오징어 게임>이 유행할 적에 프랑스 파리의 거리에서 달고나 체험을 했다가 서로 하겠다고 나섰다가 아수라장이 벌어졌다고 하지 아마. 케이 소프트파워가 대단하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