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세 가지로 변화한다.


책을 읽어 다른 사람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살아보며 변화하고

사람을 만나 그 내면의 힘을 축척하고


낯선곳에서 여행하며 자신을 반성한다.
고단한 일생생활에서 벗어나 썬크루즈에서의 멋진 여행은 사계절 대 만족이다.
그 풍광,멋진 바다,추억을 쌓기에 이만한 곳은 없다.


안개인지,연기인지 모를 그 아득한 풍광속에서 썬크루즈의 멋진 자태가 더욱 빛난다....
지인이 보내준 한장의 사진에 나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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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한 친구는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였고 또 한 친구는 그나마 상태가 양호했다.

나는 양호와 많이 취함의 중간에서 헤메고 있었다. 밤 10시를 넘어선 시간이다.

한 여름 날씨지만 무덥던 한 낮의 열기는 사라지고 시골 밤은 피부로 쌀쌀함을 충분히 느끼게 한다.  막차는 끊기고 술들은 취해있고 잘 곳은 없는 우리는 한심한 젊은 청춘들이다. 상당히 큰 저수지의 물들만이 그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그랬다.

고교를 졸업하기 얼마전 취업을 몇일 남지 않은 날이었다.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익산에서 여기 완주 깡촌 시골 저수지까지 차를 몇번 갈아타고 왔는지 모르겠다. 전화통화 후 출발했었다.

먼저 텐트치고 일박을 한 친구들이 술만 사가지고 오면 된다하기에 친구 3명이서 밤 새워 놀아보자고 해서 이동했다. 도착하니 어떤 사연인지 텐트친 곳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묵었던 흔적만 남기고 친구도, 텐트도 없다.

무슨 사연이 있으려니...

그저 한 여름에 얼어 죽기나 하겠냐 하고 사왔던 술들을 마시고 또 마셨다. 

 밤이 깊어오고 취한 친구가 속출하니 생각이 바뀌었다. 시골 밤 바람이 쌀쌀해 장난이 아니었다. 이거 어디든 밤 이슬 피해 잠을 자야지 안되겠다. 취한 친구를 깨워서 인가가 몇 채 있는 마을로 내려갔다.

내려가다가 술에 취해서 뒹굴어 이마가 까지는 놈, 먹었던 것을 게워내는 놈, 소피를 보면서 노래를 부르는 놈... 여러 놈들이 많이도 취한 채 아무집이나 문을 두드리니 시골 적막한 밤에 우리는 불청객이자 아주 몰지각한 건달로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이다. 얼른 들어와 자라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들이다. 시골분들이라  초 저녁부터 주무셨는데 새파랗게 젊은 놈들이 그냥 재워달라고 해도 시원찮은데 술에 취해 얼굴도 불량하지, 완전히 인간말종 흉내를 내니 당연한거지. 문전박대는 당연한거다. 아무리 애원하고 부탁해도 소귀에 경읽기였다.

 

 

그러던 중 어느 한 집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오셨다.

어떻게 이야기를 드렸는데 흔쾌히 들어와서 자라고 하셨다. 술취한 놈씨를 방안에 밀어놓고 그대로 뻗었는데 이불을 가져오시는 할아버지와 양은주전자와 컵을 가져다 주시는 두 분을 뵈고 그저 아무 기억도 없이 쓰러졌다.

해가 중천에 떴나 보다. 할머니의 소리에 눈을 비비며 대청마루에 나갔다. 한상 가득 차려진 진수성찬이 우리를 기다린다. 보기에도 시골냄새가 물씬 풍기는 음식들이다. 갖은 야채와 반찬들, 고추에 오이,그리고 강된장으로 만든 쌈장,특히 육개장같이  김치를 넣고 끓인 해장국이 눈에 띄였다.

밥 그릇과 국 그릇도 인심만큼이나 크고 넓다. 완전히 뚝배기같다. 옛날 할아버지들이 드시던 쇠 밥그릇이다.

말 그대로 시골밥상 그 자체다. 보기만 해도 인정이 듬뿍 담긴 시골밥상 말이다.

 

"너그들, 밤새 술 마시드랴 힘들었제. 자 여그 밥 많이 묵고 정신들 후딱 차리그라! 내 너그들 내 막내 자석 같아서 어젯밤에 재워준 거래이. 젊은 놈들이 어째 이기지도 못하는 술들을 그렇게 쳐묵고 정신 못차리고 댕기는 거여. 막내아들이 서울로 돈 벌러갔는데 아마 너그들 보다는 몇살 더 먹었을 걸. 그리고 이거 한잔들 혀!"

 

하시면 주시는 것이 무엇인가? 밥상옆에서 꺼내시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저것은 소주다. 그냥 작은 소주가 아닌 사홉들이 소주다. 작은 대접에 한잔씩 가득 따라 주시면서 하시는 할머니 말씀.

 

"야들아! 술은 말이여. 술로 푸러야 하는 벱이여. 한잔씩들 쭉 마셔불면 속이 싹 가라않을 것이여. 어서들 먹더라고..."

하시면서 할머니가 먼저 주욱 드셨다. 고추를 장에 찍어드시면서 찌개를 한 수저를 맛깔스럽게 드시는데 그렇게 멋져보일 수가 없었다. 영감이 없어서 아쉽다는 말씀도 하셨다.

친구들과 한잔씩 마셨다. 도저히 못 마실것 같은 술을 마셨다. 그런데 와이리 시원하고 입에 좍 달라붙는지 모르겠다. 밥을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모른다. 끓여주신 해장국은 수저가 바쁘게 움직였다. 국에 밥을 가득말아 넣어 정말 맛깔스럽게 먹었다. 중간 중간 소주를 한잔씩 반주를 하는 데 그 맛이 그렇게 명품이 될 줄은 정말 그때는 몰랐다. (그날 이후로 지금껏 나는 술 많이 마신 다음날 아침에도 소주 한병은 기본이고 두병까지 마셔본 날도 내 인생에 쾌 된다.) 한 여름날에 대청마루에서 산과들을 마주보면서 숙취를 깨야하는데 더 한잔하는 그 맛을 어떻게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할머니는 떠나는 우리를 보시면서 금새 정이 드셨는지 꼭 또 놀러오라고 하시면서 서운함을 내 비치셨다. 그리고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셨다. 펴보니 오천원짜리 지폐였다.

" 얼마 안되는구마. 너그들 차비하고 취업 잘 다녀오거래이. 술좀 작작 조금만 쳐묵고 말이다."

세상 그 어떤 말로도, 감사하다는 말의 몇 백배의 말로도 표현 못 할 감동이었다. 내 마음을 송두리채 빼앗아가버린 진정한 감동이었다.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할머니의 손을 잡아드리면서 꼭 다시 들려서 맛난거 사가지고 놀러오겠노라고 약속을 드렸다. 버스는 먼지를 휘날리면서 멀어져갔다. 할머니는 하염없이 서 계시면서 손을 흔드셨다.

정말 내 친할머니보다 더 한 감동이 휘몰아쳐와 안 보이는 곳까지 계속해서 할머니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그렇게 하지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내 마음의 무언가가 울컥 올라와 나를 잡아 끌고 있었다...

 

 

 

그리 많이 살지 않은 내 인생에서 기억을 더듬어 가장 행복한 기억이라고 떠오르는 그날의 회상이다. 나는 할머니게서 우리에게 왜 그렇게 잘 해주셨는지 지금도 모른다. 하지만 할머니께서 베풀어주신 따뜻한 인정과 시골밥상의 배려, 사홉소주의 진한 술 맛은 내 남은 삶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기억저편의 충전이자 소중한 재산임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추억은 충전을 수반한다. 깊은 충전은 살아가는 힘이다. 매 힘든 순간마다 지친 에너지에 잔잔한 충전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나는 알고 있다.

삶은 거대한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한걸음도 옮길 힘이 없어 발걸음이 지쳐 쓰러질 때 앞에서 잡아끄는 손목의 힘은 소중하고 감사한 선물이다. 때로는 폭풍과 같은 힘처럼, 더운 여름날 간절히 기다려온 단비처럼, 소중하고 소중하게 서로 충전을 도와주자. 할머니가 주신 그 따스한 인정과 깊은 배려의 충전을 같이 나누고자 한다.

고갈되어가는 삶의 한 여정에서 나는 이 글을 쓰는 순간 이미 힘찬 에너지의 충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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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장봉도

누구와- 나,아내,동생 승상,제수씨,한빛,단비

펜션- 장봉도 바다풍경펜션

 

여행의 목적- 먹고 마시고 즐기자,그리고 이야기하자!

 

 

 

 

 

 

 

 

 

 

 

 

누구나 일상에서의 탈출을 시도한다.

여행이 주는 즐거움은 단연 일상탈출만이 아닌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시도하면서 낯선곳에서의 아침을 맞이하고자 하는 새로움 때문이다.

삶은 때론 힘들고 때론 외롭다.

따뜻하다 싶으면 차게 느껴지고 다 알고 있다 생각했던 순간들이 무지의 촌로처럼 까막눈이 되는 순간도 있다.

내가 믿고 있던 것도 아무 의미가 없는 순간이 된다.

 

삶은 항상 친절하게 TV리모콘처럼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혹독한 시련과 잦은 방황속의 충돌에서 스스로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하고 때론 방전된 밧데리가 된다.

 

이런 것들을 충전시키는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여행이다.

여행은 일상의 탈출이면서 새로움을 창조하는 가장 솔직한 행위다.

그런 여행의 또 다른 백미는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추억을 쌓았느냐이다.

지금 글을 쓰는 순간도 행복한 장봉도 여행 이야기를 이제 시작하고자 한다...

 

 

 

 

 

 

 

 

 

 

 

 

 

 

 

 

 

멀리 삼목 선착장이 보인다.

 

삼목 선착장은 인천대교를 지나서 영종도의 한 곳에 위치해있다.

안양에서 이곳까지 37km 가까운 거리다.

삼목 선착장에서 신도를 지나서 장봉도까지는 30분 거리다.

 

배를 타면 항상 반가이 맞아주는 것은 역시 갈매기다.

갈매기는 바다의 파수꾼이다.

 

 

 

 

 

 

 

 

 

 

 

 

 

 

 

 

 

 

 

 

오늘 여행을 계획한 동생네 부부의 아들과 딸.

한빛이와 단비다.

한빛이와 단비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맑고 아름다운 생각과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동생과 제수씨의 영향을 받은 덕이다.

한빛이가 백사장 모래에서 뒹굴 때 아우가 한 말을 그랬다.

 

"더 뒹굴어~ 더 재미있게 놀아라!" 였다.

 

나는 조카에서 옷 다 더러워지고 모래묻으면 어떡하냐고 말 할 참이었는데 동생의 그 말에 놀랬다.

동생의 말을 그랬다.

 

"어차피 모래 묻었는데 못하게 하면 어떡해. 놀고 싶을 때 더 놀게 해주어야지..."

 

철학자 소크라테스 말 보다 더 값진 말과 행동과 사상이었다.

 

 

 

 

 

 

 

 

 

 

 

 

 

 

 

 

 

장봉도에는

제수씨의 이모님이 펜션을 운영하고 계신다고 했다.

 

6개월 넘게 공사를 하고 이제 오픈 하셨는데 깔끔하고 이뻐서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신다고 한다.

이모님이 성격이 좋고 음식도 잘하시고

( 6분이 김치찌개를 시켰는데 추가 공기밥도 안 받으시고 세상에 1만원 받으셨단다. 제수씨가 이모님~~그러시면 안되죠..말씀드리니

펜션 손님에게 어떻게 많이 받느냐!  하시더란다.)

 

 

 

 

 

 

 

 

 

 

 

 

 

 

 

이모님이 운영하시는 '바다풍경 펜션'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아늑하고 편안하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여행을 온 것이 실감난다...

 

 

 

 

 

 

 

 

 

 

 

 

 

 

 

 

'바다풍경펜션'에 도착하여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광어와 우럭을 회뜨는 일이었다.

 

아~~ 얼마나 꿈꾸어 왔던가?

 

카니발에서 6년을 묵혀둔 일본산 사시미회칼을 드디어 꺼냈다.

그러니까 나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회를 뜨는 남자가 된 것이다.

 

신풍물산 사업할 때 친하게 지낸 거래처 사장형님께 일본산 정품 회칼을 하나 얻었다.

형님이 20년전 60만원 주고 샀다고 했다.

길이가 50센치가 넘었는데 쓰고 갈고 했더니 지금은 요만해졌다.

 

예전에 회를 뜨는 모습은 유심히 보았는데 그렇게 해봤다.

 

등쪽을 회를 치면서 몸통을 사르르 갈랐다...

그리고...

 

 

 

 

 

 

 

 

 

 

 

 

 

 

 

 

 

 

 

 

 



이렇게 회를 떴다.


 


난생 첨으로 떠봤던 회는 생각보다 더 잘 떠졌다.

나중에 아내가 회를 떴는데 이거 나는 영 아니올시다.

아내가 훨씬 더 잘 뜨는 거라...

일식집 주방장 솜씨여...

대체 못하는 게 뭐???


 

이  회 덕분에 얼마나 많은 처음처럼을 작살냈는가?

 

 

 

 

 

 

 

 

 

 

 

 

 

 

 

 


 

아내와 제수씨는 자매같다.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두 사람.


감사하다.


좋은 사람들이 우리 집안에 들어와주셔서...


힘든 시월드에서 인내하고 배려하고 사랑해주는 두 분이 감사하다...

 

 

 

 

 

 

 

 

 

 

 

 


 

나는 동생복이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 지지고 볶고 싸웠던 내 동생.


서로가 이제 불혹이 다 되어간다.


죽이 잘 맞는 동생이 있다는 건


평생친구를 얻은 행복이다.


 


 


그렇게 우리들만의 밤이 깊어간다.


 


사진에 보이든 데크 테이블에서의 낙지 구이와 라면..


 


펜션 방에서의 회와 소주,이모님의 개그와 이야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소중한 하모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날들이 있어 행복하다.

때론 마음껏 웃고 마음껏 이야기 나누고 마음껏 술 마시고


이야기한다.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저 이야기가 아니다.

그 이야기에는 서로를 치유하는 휠링이 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와 아픔을 사람이 치유한다.

내가 많은 사람들을 사귀지 않고 좋은 사람들에게 더 정성을 쏟는 것은

진짜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을 나누기도 우리네 인생은 짧기 때문이다.


 


그 날밤,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가족이 있어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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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선물 8--  나도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최후의 결정을 통보받고,고통스런 시간이 흐르고 아들과 학교에서 걸어 내려왔다.

작은 슈퍼에 들러 소주 한 병과 계란을 샀다.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채워서 단숨에 마셨다.

소주는 갈증과 열병이 난 내 속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쓰다는 생각이 전혀 안들었다.

 

계란을 깨서 소금에 찍어 먹었다.

다시 잔에 남은 소주를 채워 마셨다.

 

그 오랜 시절,아버지의 마음에 이렇겠구나.

정말 울고 싶은 마음 뿐이군....

 

 

 

 

 

 

 

 

 

 

 

 

 

 

 

2014년 12월의 여행 이야기가 2015년 6월 9일에 마무리 되었다.

 

 

 

부산을 다녀온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년이 흘렀고 여행기를 쓰면서 여행을 더듬어 보았다.

역시 여행기로 마무리해야 여행이 완성되는 것 같다.

부산 여행기를 쓰면서 아버지를 많이 회상했다.

나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아버지와 나와 행복했던 순간은?

아버지는 과연 어떤 분이었는가?

생각하는 내내 아버지가 그리웠고 보고 싶었다.

 

아들과 떠난 부산 여행은 한번도 가보지 못한 아버지와의 여행인 것같은 착각과 생각이 든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내 자신이 아버지가 됨으로써 진짜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선물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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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7 아버지의 선물

 

 

 

 

 

 

 

1990년 6월의 어느 날.

 

 

 

아버지와 나는 군산 터미널에 위치한 허름한 슈퍼에 앉아 있다.

아버지는 자리에 앉자마자 소주 한 병을 주문하시고 맥주 컵에 가득 부으셨다.

한번도 쉬지않고 소주를 마시고 계란 하나를 소금에 찍어 안주로 드셨다.

목이 타셨나보다. 그래 목이 타실만도 하셨을 것이다.

 

30여분 전, 군산지방법원에서 여러 서류에 도장과 지장,탄원서, 등등

많은 서류에 사인을 하시고 젊은 검사에게 사정 아닌 사정을 하셨었다.

그리고 마침내 미성숙하고 치기어린 아들의 사고에 대한 처벌이 이제 다 끝난 순간이었다.

 

화가나셔서 자식에게 욕을 한 마디라도 하실 수도 있으련만

술 드시고 소리쳐 "우라질 아들 놈 덕분에 이런 데도 와보는구나..."  한탄이라도 하셨으면 좋으련만

아버지는 그저 남은 술을 잔에 따라 드시며 계란을 소금에 찍어 드실 뿐이셨다.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참으로 면목없고 죄송스러운 마음밖에 없다.

 

 

 

 

" 이제 다시는 이런 일 없었으면 좋겠구나.

  아버지는 너를 믿는다!"

 

 

이리에 와서 헤어지는 순간에 아버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씀을 하셨다.

 

 

 

 

 

 

 

 

 

 

 

 

 

 

찬빈이와 남포동,광복로,국제시장 구경을 마쳤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축제도 보았다.

따뜻한 부산의 날씨, 저마다 사람들의 웃음과 사연들,옷깃을 스치며 추억을 만드는 그 순간들의 찰나를

아들과 함께했다. 아무리 힘든 시간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렇게 헤쳐온 시간들.

 

 

 

 

 

 

 

 

 

 

 

 

 

 

 

 

 

 

 

 

자갈치 시장 근처에서 숙소를 구했다.

 

저녁에 야간열차로 안양으로 갈까도 생각했는데

언제 아들과 또 이런 여행을 올까...그래 하루 더 자고 가자.

 

숙소는 밖에서 보는 것 보다 더 허름하고 시설이 낡았다.

돈을 지불하고 방을 보는 순간

 

"그냥 갈까? 아니면 다른 곳을..."

 

비위에 강한 나인데도 영 아니다..

그때 든 생각이

 

"이것도 여행의 한 부분이다. 어제는 준호텔급에서 잠을 잤으니 오늘은 이렇게 허름한 곳에서 묵는 것도

아들에게 색다른 경험일 것이다."

 

자는 내내 후회했다.

생각보다 더 청결하지 못하고 오래된 묵은 냄새,이상한 소리,귀신 나올 것 같은 방의 분위기.

살다살다 그렇게 후진 곳은 첨 봤다.

 

 

 

 

 

 

 

 

 

 

 

 

 

 

찬빈이가 산낙지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 회를 먹으러 가자!

숙소 근처의 횟집에 들어갔다.

 

 

"요녀석,싱싱한 놈으로 한 마리 떠주쇼!"

 

30여분이 되어도 안 나오는 회.

성의가 너무 없다.

오가는 손님에게 회를 파느랴 정작 안의 손님에게는 무관심하다.

 

사장을 불러  날카롭고 야무지게 한마디 했다.

회는 5분도 안 걸려 나오고 사과의 말과 또 다른 한 접시의 회가 서비스로 나왔다.

옆 테이블의 중국관광객에게 그 서비스 회를 건넸다.

 

"나도 여행을 좋아하오!! 선물이니 드세요~~"

 

 

 

 

 

나는 소주와 맥주를 찬빈이는 사이다로 건배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의 마음과 아들의 진심어린 마음을 서로 나누었다.

소주는 달고 맛났다..

그렇게 부산에서의 마지막 밤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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