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없이 노력하고, 끝없이 인내하고, 끝없이 겸손하자. <좌우명>

■ 지금 자면 꿈을 꿀 수 있다. 하지만 안자면 꿈을 이룰 수 있다.

■ 연습에는 장사없다.
■ 죽을만큼 노력하자.
■ 안심하면 무너진다.
■ 불안하면 연습하라.
■ 나를 넘어서야 한다.

■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식사를 하고싶다면 연습을 해야한다.
피나는 연습을 하지않으면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이 나가게된다.
피나는 연습을 해야만 자연스럽게 "왼손"으로 수저를 쥐고 식사 를 할 수 있다.

■ 내게는 노력이라는 칼이있다.
■ 120%를 준비해야 무대에서 100%를 발휘할 수 있다.
■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시작도 하지 않는다.
■ "몇년을 했느냐" 보다는 "어떤생각" 으로 하느냐가 중요하다.
■ 뭐든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전 "떳떳해요."
■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 해보자.
■ 연기 연습을 하다 지치면 노래 연습을 하고..노래 연습을 하다 지치면 연기 연습을 합니다.
■ 드라마를 찍을땐 최고의 배우가 되고싶고.. 마이크를 잡았을땐 최고의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 저에겐 "고생"이 가장 소중한 재산입니다.
■ "못해서 안하는것"과 "안해서 못하는것"은 다르다.
■ 물질적인 욕심을 버리고 세상을 넓게 보고살자.
■ 자기 자신을 버릴 수 있는사람.. 항상 이거아니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임하자.
■ 파도는 계속밀려온다.
하지만 계속 헤엄치다보면 언젠가는 섬에 도착할 수 있다.
■ "지금 피곤하다고 그냥 잠을 자면 내가 지는거다..." 이런 생각으로 연습을 하고.. "오늘은 내가 이겼다." 라고 되뇌이며...잠이 든다.
가끔 너무 피곤해 그냥 잤을땐.. 반드시 다음날 연습을하고, "이제 무승부다"라고 생각한다.
■ 무대에선 "내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한없이 낮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 지금 못자고 힘들어도... 죽으면 평생 잘 수있다.
■ 온갖 유혹의 손길이 보이더라도.. 잘 참아내고 그 시간을 나한테 투자하자.
■ "무대위"는 팬들과 나의 약속이다. 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
■ 그래도.... 그러라고 해.
■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없다는걸 알고있다. 그래서 더 "노력"한다.
■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리막이 있을 뿐이다.
■ 남한테 지고는 잠을 자지 못한다.
■ 괜찮아.. 이게나야... 다음에 잘하면 돼.!! - 실수에 대해 -
■ 사람들이 나의 무대를 보고 "헉.." 하며 아무생각 하지 못할.. 그 수준을 "목표"로 한다.
■ "너희들은 나를 이기지 못한다." - 무대위에서 -
"내가 가장 부족한 사람이다." - 무대 밑에서 -
■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약속....  뭐든지 열심히만 하면 꼭 이루어진다.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만 하면된다.
어머니와 약속을 했기 때문에 무조건 열심히 한다.
■ 새로운 스타가 나오면 대체 될 수 밖에 없다.  누구도 영원할 순 없어요.
■ 늘 제 자신과 싸우지만 이번에도 싸워서 이기게 해주세요.
■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았기 때문에 죽어라 연습하고... 남들 잘때도 연습하고.. 연습하고.. 노력하고... 그래서 지금의 춤을 출 수 있게 되었다.
■ 정말 자신이 원하는 하나를 잘 해내려면.. 다른 뭔가를 포기해야 하는거 같아요. ...... 다 가질 순 없죠.
■ 대체될 수 없는 인간이 되자. 관객은 냉정하다.
■ 별은 뜨면 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멋있게 지고 싶어요.
■ 일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 "그냥 섹시하다거나.. 멋있다..." 라는 말은 별로다. 자신감있게.. 자신에게 맞게 표현하면, 그것이 "섹시하다" "멋있다"라는 느낌으로 바뀌는거 같다.

- 섹시함에 대해 -
■ 매일 아침 세수를 하면서 "거울"을 똑바로 쳐다봐요.
내일 아침에도 "이 눈빛"을 하겠다고 다짐해요.
그렇게 하루하루 거르지 않고 거울을 볼 거에요.
■ 무대에 오르면 제가 교주가 된 느낌이에요.
■ 자기보다 더 잘 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무대에선 자기가 "최고" 라고 생각하고 해야 200% 실력이 나오는거 같아요.
■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 자신있습니다.
■ 제가 춤을 추는곳... 그곳이 어디든 바로 거기가 "무대"입니다.
-----------------------------------------------------------


<미래의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 "세상은 너의 중심으로 돌아가되, 너를 한없이 낮춰라."

-1집 첫 무대에 섰을때 "세상은 다 내 것이다." 라는 생각과 동시에
"나는 제일 아래다"라는 생각을 하고.. 이 말을 항상 명심하고 실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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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되려면 "후배"나 "선배님"들한테 먼저 가서 인사도하고...
실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자신이 먼저 예의바르지 않으면 인정 받을 수 없다.

■ 저는 "춤 못춘다" "노래 못한다" 라는 말은 참아도... "착하지 않은 것 같다.." 라는 말은 못참아요.. ^^*
■ 구름(팬클럽)이 없으면 비도 없습니다.
■ 저는 연기라는 것보다 사람을 얻었다는 것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얻었다는 것이 너무 기뻐요.
-----------------------------------------------------------
<사랑 &결혼관>

■ 결혼후 3년정도 까진 사랑이고.. 그 후 평생을 같이하는건 그 사람에 대한 예의고 존중.. 존경심이다.
외적인걸 사랑하면 3~4년이면 사랑이 끝나지만... 존중할 가치를 사랑하면 그 사람을 평생 사랑할 수 있다.

■ 키스를 한다면 자신의 모든것을 준 것이라 생각한다.
■ 여자를 이용하는 남자는 혼나야 한다. ^^*
■ 저는 외모보다 마음이 예쁜 여자가 좋아요.
■ 귀엽게 똥배가 좀 나왔거나 팔뚝에 살이 있어서 야들야들~` 흔들리는 여자가 좋아요.. (없는 배도 내밀게 하는남자..ㅋㅋ)
■ 눈물 흘리는 여자를 보면 안아주고 싶다.
■ 여자 친구가 바람을 피웠다면`?.

- 절대 용서 안돼죠.
여자친구의 과거는 모두 덮어주고 이해할 수 있지만... 저를 만난 후 바람을 핀건 절대 용납할 수 없어요.
한번 배신한 사람은 앞으로 또 그럴 수 있거든요. -
■ 나를 확`~ 쥐어잡고 살 수 있는 여자를 만나고 싶어요.
-----------------------------------------------------------
탤런트<김성수> - 인간 정지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정신셰계가 의심스럽다.

사부님<박진영> - "비"는 논리적으로 사람 IQ를 자극시키는게 아니라 EQ를 자극시켜서 가슴에서 가슴으로 얘길한다.

■ 비 1집 시절 라디오 프로그램에 박진영씨가 나와서 했던 말.

- 항상 뭐라고 야단을 쳐도 반응이 없어서, 도대체 내 말을 알아 듣는 걸까 싶었는데 어느날 지훈이의 방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울어버렸다.

방 한쪽 벽에 여태까지 박진영이 꾸중했던 말이나 지적했던 것을 잊지 않고 고치려고 포스트잇에다가 다 써가지고 붙여놓고 있었다고.

그게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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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고향은 전북진안입니다.

흔히들 무진장 골짜기라고합니다.(무주,진안, 장수를 가르킵니다)

그래서저는 제자신이 시골깡촌놈이라고 소개를 가끔합니다, 사실이 그러하니까요...

제나이 7살로 기억이됩니다.

아버지께서 마을하고 한시간이 채 떨어진곳에 외딴곳에 집을 지으셨습니다.

이웃이라고는 한채도없는 홀로이  말그대로 외딴집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적싶은 그런 외딴집이죠.

 

집앞에는 강이라하기에는 크고 냇가라하기에는 작은, 그런강물이 흐르고 그강물건너에는

200미터가넘는 작은산이 있었답니다.

집은 대지보다 약간높은 둑에 집을 세채로 나누어 지으셨답니다.

한채는 부모님과 할머니,저의 형제들이 사는집.

두번째는 오리와 닭,소,염소,등등 짐승이 사는집.

세번째는 여러생리현상들은 하는곳과  농사지을때쓰는 연장넣어두는곳...

그주위로 나무들이 굉장히 많았었고 지대가 확트이듯 넓었답니다.

그넓은곳들사이로 논과 밭,그리고  여러곡식들이 자리를 차지하는곳들...

친구들의집은 저멀리 잘보이지않는, 마을과는 참으로 멀리떨어진  그 외딴집...

그림이 살짝 그려지시나요?

좋겠다구요?

어머 낭만있다...전원생활이다...저푸른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짓고......

3주만 살아보십시요... 그말이 쏘옥 들어갈겁니다...ㅎㅎㅎ

 

 

그당시 시골이 다그럿듯 시골생활(도시생활도 별다를게없죠) 참으로 가난했습니다.

먹고살기위해 일하고 ,일하기위해 먹고, 먹은힘으로 또일하고 ...

먹고살기위해 일한다는표현이 참으로 맞을겁니다.

지금 30~40대 분들은 동감하시리라 생각해봅니다.

가난했는데, 그보다 더 가난했던지라(소있고 짐승있다고 다 부자가아닌시절)

어린시골생활 ,너나 할것없이 어린고사리같은 손으로 열심히 일했죠..

국민학교때 (지금은 초등학교)2학년때인가 부터 소꼴베고, 모심고,돌나르고,

거름나르고 , 가을이면 낫으로 벼베고(지금이런얘기하면 거짓말이라고 안믿는분도계십니다
)

겨울이면 낮에는 땔감하느랴,밤이면 소죽을 끓이곤했죠.

자갈밭을 옥토로 만들고, 개간한다는게 쉬운일은 아니었죠.

제자신도 했지만 ,30~40대분들은 (특히 40대분들)거의일상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가난하고 먹고살기가 참 각박하니까(지금도 어려운 이웃은 많습니다) 다들 그랬죠.

 

그래도 외딴집 (그곳을 다른분들은 액기제라고 그랬습니다)이라 재미있는일들도 많았답니다.

여름이면 고기를 많이도 잡았습니다.

천렵이라고 그러죠.

산수좋은곳에 찿아가서 웃통 벗어젖히고 멱감고 탁족(양말을 벗고 물에 발을담금)하며

물고기잡아 매운탕으로 소주한잔걸치는 (어린나이에는 술이라는 자체가싫었지만 보기에는 좋았음) 모습을 보며 어린나는 고기만 먹고, 나무그늘아래에서 늘어지게 한숨자는 그순간은

참으로 행복하고 깊은 단잠이었지요.

강가에나가 멱(수영)도 하고 대수리(지금은 고동이나 다슬기라고하죠)도 많이도잡아

마을에나가 팔기도 하여 아르바이트도 하기도하고 많이도먹었죠.

 

이사올때 심었던 복숭아,사과나무,배나무도 어느덧 국민학교 6학년때쯤에는 엄청 크고 ,엄청 좋으맛을 자랑하기도 했죠.맛있다고 타지에서  손수 찿아와서 많이도 사가곤했죠.

당연히 그럴수밖에요.

추운겨울날 아버지께서 500원(당시는큰돈)주신다기에 쾡이와 삽으로 키만큼 파서 키운

과일나무이자, 여러 배설물들과  거름등을 정성드려 키어온 결정체인걸요...

가을이면 한해 열심히하여 지어진 곡식들과 ,여러 호박,감자 고구마,콩 팥등을 캐내는 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어린애에게도 행복으로 다가왔습니다.

부자라는것이 무언지모르는 때였지만 겨우내먹을수있는 양식이 있다는것은 지금생각하여도 흐뭇하고 , 뿌듯한 가슴에 행복이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름에 비가많이오거나 홍수가 날때면 가슴이 콩알만해집니다.

100여 미터앞의 강에 비가많이만오면 항상걱정이됩니다.

물이 불기시작하고 ,그물들이 둑있는 집근처까지오면 어이구 그만와야지합니다.

84년도인가?

대홍수가 났을때에는 온천지가 다 바다였습니다.

논이며 밭이며 ,다 쓸어가버리고 나무며 , 온갖것들이 다떠내려오고 (심지어 돼지며,개,닭등)

집앞마당까지 넘쳐 금새 집안으로 오게되는상황에 앞산에서는 사람들이 다죽게생겼다고

몰려오고 핼리콥터까지뜨는 상황이 되었답니다.

그많이오던비가  그런데 어찌된 상황인지, 집이 10분만 더비가오면 다죽게되는그상황에...

그많던 어머니의 기도덕분인지  기적이 일어나더구요.

멈췄습니다.

세상에 그 많이오던비가, 기적처럼 멈추더라구요.

전 그때 알았습니다.

기적은 존재하는구나.

그때 제가 물에빠져죽었음 이글도 남기지못하겠죠...ㅎㅎㅎ


 

 

차가운 겨울이 오면  외딴집에는 그리할일이 많지않습니다.

낮에만 땔감하는랴 몇시간시간보내고 ,저녁이면 짐승들 밥주고 소죽끓이고

불이들어오지않는 그긴 겨울밤을 뭐하고 보내겠습니까?

어린그시절부터 전 책이라는 소중한 존재를, 인생의 가장큰스승을 만나게되었습니다.

호롱불이 들어오는 그불빛에서 읽는 그독서의 의미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각이저절로납니다.  아스라이 잊혀진것은 잊혀졌지만 그래도 생각이나는 그때읽었던 위인전들과 모험이담긴 소중한 책들....

몇번을 읽어 지루해지자, 눈속을 뚫고 마을로 한시간을 걸어가 친구들집집마다 다들려서

책을 빌려오는 그즐거움은  아마 모르실겁니다.

한권한권,가방에 넣어 매고오는 약간은 가벼운 ,하지만 마음은 들뜸과 희열이나는 그기쁨

홀로집에오는 그발걸음은, 책이라는 든든한 친구가있어 외롭지않았고 발걸음은 더욱 제촉이됩니다.  방학때 이놈만 있으니  이제안심이구나...하는 마음이든거죠.

만화책도 엄청 많이도읽었습니다.

그때 읽은 만화책가운데  최배달선생님의 "대야망"이라는 만화책을 가장 감동적으로보았죠.

방학기선생이쓰신 지금은 "바람의파이터"인데 영화로도 아마 나온다그러죠.

최배달선생의 무도의혼과 집념,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미야모토 무사시와 견줄정도로

돌아가시기전까지 불패의 신화를 창조한 그분의 삶을 얼마나 동경했는지 모른답니다.

그래서 그당시 제꿈이 첫번째 무도가였고

두번째가 만화가이자  만화가게주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책과 저는 땔레야 땔수없는 지금까지의 독서습관이 된거죠...

어렵고 가난한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그날  부모님과 같이사는즐거움이 있었고,언젠가 우리도 저멀리보이는

동네로 이사갈것이라는 희망이있어 좋았답니다.

 

그런데 왜 농부이야기인가?

 

농부이야기? 글쎄 이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린시절 저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농부가 하는일이무얼까요?

겨우내 여러씨앗이며,거름,봄에쓰일 농기구들을 다듬고 봄이오는 그시기를 준비합니다.

 

봄이면 씨를 뿌리고 모를심고, 대지위에 한해에지을 농사의 기초를 시작하게됩니다.

여름이면 무엇을 할까요?

어느덧 자란 벼에 농약을하고, 비료를 주고, 피를 뽑아주고(여기서 피라하면 사람몸에서나는피가아니라 벼와 똑같이생긴녀석인데,생긴것이 비슷하지만 자세히보면 전혀다르다.

이놈은 사람몸에 붙어 피를뽑아먹는 모기같아 벼성장과 발육에 큰 피해를준다)

물조절을 잘해주면서  벼농사에 가장큰 시기라합니다.

그래서 할일도많고 소중한시기죠.

 

맞습니다.

저는 지금의 제여정이 농부의 여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가을 겨울이 옵니다.

언젠가는  추수할 곡식들이 나오는 가을 겨울이 올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농부의마음처럼 이여름을 잘보내고저합니다.

 

인생이라는 논과밭에서 벼를가꾸고, 밭을 일구는 농부의마음이고저합니다.

농부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간입니다.

여름이라는 이 중요한 시간앞에서, 여정은 길고 시간은 많지만

하루하루를 조급하지는 안하도록, 헛되이 보내지말면서 살고저합니다.

 

비가오지 않으면, 가뭄이들어 바닥이 갈라져서 밑이보이면 멍하니 하늘만바라보지않을것입니다. 어떻게든 개울물이라도, 옹달샘에있는 물이라도 퍼다가 가뭄을 이겨나갈것입니다.

이시기는 열심히 산다고하는데도 마음처럼 안되는 시기라생각이 듭니다.

비료도 때에따라 잘주어야겠죠.

요소비료,복합비료(이부분은 전략과 전술이라는표현이듭니다)로도 때에따라 잘주어야합니다.농약도 비가온후나 가물었을때 주는 방법과용기도 다릅니다.

이부분은 저는 자극이라는 표현이 맞을성 싶습니다.

잡초와 피도 잘 뽑아주고 처리해줘야하는데

저는 이부분은 실천과 도전이라는 생각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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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입 ]




ㅇ 나는 외모에 컴플렉스가 있다. 아시겠지만, 대학교 때 고시 3개를 합격했다.

 사법고시 합격, 외무고시 2등, 행정고시 1등, 그리고 서울대 법대를 수석 졸업했다.

 학교 졸업 후 부모님께 큰 절을 했었다.

 똑똑한 머리를 물려줘서가 아니라, 사실은 변변찮은 외모덕에 그저 고시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 줬기 때문에 감사하다는 의미로.




[ 본 론 ]




ㅇ 내 직업은 ① 변호사이면서, ② 방송도 하고, 3년 전부터 ③ 책을 쓰고 있다.

 평생 소원이 1년에 1권씩 평생 책을 내는 것이다. ④ 글도 쓴다.

 모 신문사에 경제기사를 1주일에 2개정도 쓴다. ⑤ 또 오늘과 같은 특강도 한다.

 평균 1주일에 2회 정도. ⑥ 증권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운영하고 있는

 사이트가 있는데 회원수만도 3만 5천명 정도 된다.

 나름대로 홈페이지 관련 사업을 하나 구상중인 것도 있다.

 ⑦ 마지막으로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처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척 많은 것 같고 어떻게 이걸 다 할까 생각이 들겠지만

다 가능하다. 이 중에서 한가지만 하더라도 힘들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다 가능하다.




ㅇ 무엇이든지 목표가 중요하며, 그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확신이다.

 사람들은 어려운 일일수록 확신을 갖지 못한다.




ㅇ 사람들은 나의 삶을 보면서 머리가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다 노력의 결과다.




ㅇ 학교 다닐 때 누구나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해 봤을 것이다.

 고 2때 수학 45점의 낙제점수를 받은 적이 있다. 그 때 대학을 못 간다는

 선생님의 말이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집안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외를 한다는 것은 생각 할 수 없었다. 그래서 6개월간 죽어라고 했다.

 그리고, 그 해 9월 2학기 때 400점 만점에 400점을 받았다.

 그 이후로 매 시험마다 1등 했고, 석달에 한 번 정도 2등을 했었다.

 학생시절 나는 여러 차례 내가 결코 남들보다 머리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남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ㅇ 인생에 있어 2가지 자세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남보다 적게 노력하고 결과는 남들과 같은 똑같이 나오게 하려고 한다.

 사실은 이것이 경제학 법칙에 맞는 것이다. 투입을 적게하고 효과를 많이 내는 것.




반대로, 다른 사람들 만큼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의 경험상으로 보면 후자가 훨씬 좋은 결과를 낳는다.




남보다 노력을 더 많이 해서 비슷한 결과를 가져 오는 것이 비효율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 이것은 어느 시점이 지나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이 내가 인생을 살면서 내 스스로 내린 결론이다.




ㅇ 그럼 노력이란 무엇이냐?

 나는 “노력이란 성공의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라고 정의 내린다.

 하지만 물론 결과를 반드시 보장하지는 않는다. 노력에도 함수 관계가 성립한다.




* 노력 = f(시간 × 집중)

내가 실제 노력을 했는가 안 했는가를 판단하려면 시간을 많이 투입했거나 집중을 잘 했는가를 살펴보면 된다.




ㅇ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3시간만에 끝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5시간만에 끝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3시간만에 끝내는 사람이 실제 일을 더 잘하는 것 같지만

 나머지 2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하다. 더 많이 알기 위해 그 2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다면 노력하지 않은 것이다.




ㅇ 집중에 대해서 얘기해 보면, 고시 공부할 때 예를 들어 보겠다.

 나는 고시 공부를 1년간 해서 합격했다. 어떻게 가능 했느냐?

 첫째는 된다고 생각하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보통 고시에 합격하려면, 봐야 할 책이 50권, 권당 페이지는 500P,

 그 책을 5번을 봐야 합격하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나는 7번을 보았다. 이를 계산해 보면

50 × 500 × 7 = 175,000 페이지를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것을 1년을 360일로

계산해보면 1일 목표량이 나온다. 즉, 1일 500 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봐야 한다는 계산이다.




ㅇ 이처럼, 목표를 세울 때는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 막연한 목표는 달성하기 힘들다.




이 결론을 보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라고 생각할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들은 포기하게 된다.

설사 하게 되더라도 하다가 흐지부지 된다. 이렇게 목표에 대해 확신이 없고, 목표를 의심하는 사람은 집중을 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목표에 확신을 가져라.




ㅇ 된다는 사람만 되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안 된다. 일단 안 된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85%의 사람들은 이미 나의 경쟁상대가 아닌 것이다.

 된다고 생각하는 일부만 나의 경쟁이 된다.

 그럼 경쟁대상이 줄어드니 훨씬 마음도 한결 가벼워 진다.




ㅇ 세상도 절대적으로 잘 하는 사람은 원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

 남 보다만 잘 하면 된다. 그럼, 다른 사람보다 잘 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판단하느냐?

 그것은 나 자신을 판단 기준으로 삼으면 된다. 인간은 거의 비슷하다.

 내가 하고 싶은 선에서 멈추면 남들도 그 선에서 멈춘다.

 남들보다 약간의 괴로움이 추가되었을 때라야 비로소 노력이란 것을 했다고 할 수 있다.




ㅇ 고시 공부할 때 7시간 잤다. 장기간 공부를 해야 할 경우라면 일단 잠은 충분히 자야 한다.

 하루 24시간 중 나머지 17시간이 중요하다.

 고시생의 평균 1일 공부시간은 10시간 정도다.

 그러나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은 잠자는 시간 빼고 17시간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정말,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웠다. 남들과 똑같이 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반찬 떠 먹는 시간도 아까웠다. 씹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래서 모든 반찬을 밥알 크기로 으깨어 밥과 비벼 최대한의 씹는 시간도 아꼈다.

숟가락을 놓는 그 순간부터 공부는 항상 계속 되어야 했다.

나의 경쟁자가 설마 이렇게까지 하겠냐 하고 생각들면 노력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ㅇ 미국에서 생활 할 때 보면 소위 미국의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간단한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운다. 점심시간 1시간 다 쓰고, 이래저래 20~30분 또 그냥 보내는

 우리 나라 사람들은 그들에 비하면 일 하는게 아니다.




ㅇ 집중을 잘 하는 것은 벼락치기 하는 것이다. 벼락치기 할 때가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한다. 우등생은 평소에 벼락치기 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막연한 목표를 가지면 이렇게 긴장이 안되지만 분명하면 항상 긴장되고 집중을 잘 할 수 있다.




ㅇ 방송하면서 인생이 많이 바뀌었다. 처음 주변 사람들은 말렸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세상을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사람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이란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면 해도 되는 일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에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ㅇ 나에게는 인생 철학이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A와 B가 있을 때 나는 A가 더

 중요하지만 B를 선택해야 할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학교 다닐 때 나는 A는 여자친구 였고, B는 고시 합격 이었다. 대학시절 한 때 A는

내게 무척 중요한 시기가 있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t1,t2 판단법이란게 중요하다.

내가 A를 선택하면 난 B를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줄어든다.




그러나, 나의 외모 컴플렉스 때문에 A를 성공하는 일 또한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B를 먼저 해서 좀 더 유리한 조건이 되면 A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 고시합격을 더 빨리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집중도 잘 되었다.




이것이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낀 것이다. 장기간 동안 시간의 흐름을 계산해 볼 때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ㅇ 그래서 난 남들이 말려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코미디 프로에도 나갈 수 있었다.

 난 " 할 수 있을 때 뭐든지 해 버리자 " 라는 생각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

 그러면서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쌓아 가면 된다. 하다가 안되면 포기하더라도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아예 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ㅇ 나의 징크스는 시험에 합격하려면 10번을 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합격의 확신을 갖는다. 3~4번만 보면 불안하다.

 그래서 그냥 뭐든지 기본적으로 10번을 본다. 몇 번 3~4번 책을 보고 시험을 본 적 있다.

 역시 떨어졌다.




[ 결 론 ]




ㅇ 앞으로는 이렇게 해 보자.




첫째는 남보다 많이 노력하는 것이다.




둘째는 어려운 목표일수록 확신을 가져 보자. 그러면 정말 되는 일이 훨씬 많다.




셋째는 남보다 최소 3배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ㅇ 직장에서 윗 사람이 일을 시킬 때 남보다 더 많은 일을 시키고, 나한테만 어려운 일을

 시키더라도 신나는 표정을 지어보자. 대부분의 사람, 아니 나의 경쟁자는 이럴 때

 얼굴을 찌푸릴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기려면 그들 보다는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

 힘들더라도 괴로움을 추가해 보자.




ㅇ 남들에 비해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3배의 노력만 한다면 4번째 부터는 분명 가속도가 붙어 급속도로 차이가 날 것이다.




ㅇ 마지막으로 대인관계에 대해 강조하고 싶다.




세상을 살다보면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노력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나 혼자의 노력 외에 대인관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경우가 있다.

어떤 상대를 만나든 최소 5분은 상대방을 위해 생각하는 시간으로 할애해 보자.




ㅇ 남과 똑같이 해서는 절대 노력했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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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밤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 의 밤이었습니다.

 

하루가 가기전에 꼭 해야 할일을 하지못한,   화장실을 다녀온후

뒷처리를 하지못한 그 찝찝한 마음이 다시 이글을 쓰게 하는힘이 됩니다.

저는 분명히 졸필이고 많은 고수님 들처럼 화려한 수식어로 글을 미화시켜 공감가게 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먼저 말씀을 드리고 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저 항상 이 카페에 와서 많은걸 배우고있고, 또 깨우치려 노력하는 개미군단중의 한사람임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누군가 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저는 갈 길이 멀고도 험합니다.  지금도 배우고 있고 열심히 라는 그 몇배의 힘으로 그저 살아가고픈 마음 뿐 입니다.    이 글을 쓴다는 이 시간도 저는 분명히 배우고 있는 것 입니다.

자 ... 이제부터 먼 기억의 이야기들의 편린들을 모아 이제 하나하나 끄집어 내어 보겠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문득 참아왔던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창가 쪽에 다가가 담배연기를 내품으며,  저 달빛속에 무수한 기억들속에서 1997년의 나의

기억들이 다시금 손짓하면서 나를 회상하게한다.

 

1997년 참으로 고통 스러웠고 힘들었던 내20대의 자화상이다.

나에겐 당시 3살난 큰 아들과 착하고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

이런 소중한 가족들이 있는데도,당시 나는 책을보아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하지만 그당시도 책은 많이 읽었다.)  술 한잔을 마셔도 낭만과 즐거움이 들지않는 가난한 젊은이 철부지 애 아버지였다.

 

아내와 나는 20살에 운명적으로 만났다.

착하고 내 의견을 항상 존중해주고 부모님을 공경하며, 나를 끔직이도 사랑 해 주었던

그 착하디 착한 나의 아내를 만났던 것은 나에게 첫번째 행운이자, 기회이자,인생의 가장 커다란 성공 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에서 가장 큰 성공은 배우자를 잘 만나는 것이다.

100% 이라는 인생의 성공이 있다면  아내를 잘 만나는 것은 51% 의 성공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다.    나머지 49% 의 나의 열정과 의지 로 남은 생에 최선을 다 한다면 내가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결코 없으리라...

그렇게 나는 운이 굉장히도 좋은  사람 이다.

 

사랑하고 사랑하다 나는 군대를 갔었고 기나긴 2년이 넘는 시간들을 나의 아내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이 담긴 편지와 면회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의 부모님게 잘하였고 고통의 시간 이었을  그 시간과 힘겨운 사회생활의 유혹 속에서 철저히 이겨 나갔다.   오직 나를 위하여,    어쩌면 같이 할 우리 두사람의  그 미래의 시간들을  위하여 사랑 이라는 그 단 하나의 이름으로 희생 하였다.

기회가 된 다면 언젠가 아내의 이야기를 올리고 싶다...

 

 

 

정작 하고픈 이야기는 이제 부터가 시작이다.

그 암울하고 힘들고 고통 이었다는 그 시간에 나는 몇가지  많은 일들을 해 보았었다.

소위 인력시장 이라는 건축 인부일도  해 보았었고, 용접일에 , 아파트 공사일도 해보고 여러 힘으로 되는일들을 그저 땀흘리면 되는구나 !    이렇게하면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있는 것이구나...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딛쳐 악으로,  어쩌면 죽기 살기로 닥치는 대로 했었다.

그것이 그 당시는 내가 먹고 사는 유일한 일인 것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러나 독 에는 밑이 깨져 있는지 항상 그 자리일 뿐 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소위 처 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말인가?

처절히 고민하고,  까만밤이 원망스러워 술잔을 기울인 밤이 피운담배에 연기속으로

사라져 가고픈 그런 불면의 밤들을 숨죽여 소리죽여 마음속으로 울었다.

 

그러던중 1997년 드디어 나에겐 기회 라는것이 찿아 왔나 보다.

우연 이자 운명 적이라 는말이 맞을것이다.

내가 그회사를 가기전에 아마 그회사가 나를 기다린 듯 한 느낌이 지금에 와서 느껴진다.

 

 

 

 

모음료회사.

나는 이 회사에서 있었던 나의 회사 이야기를 쓰고저   도전 하는 것 이다.

나에게 크나 큰 지표와 , 나의 종자돈을 , 지금 하고 있는 이사업을 이끌어 주었던 빛과 소금이 되었던  그 간절한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저는 분명히 말씀 드렸습니다.

저는 절대하수 이고  졸필에 개미군단 중의 미약한 한명 이지만 이글을쓰는 단 하나의 이유는 초심을 잃지 않고픈 저의 절실한 마음을 다시 한번 세게고저 쓸 뿐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음...  사람 마다 이런 생각도 하면서 사는구나...   그저 캔맥주 하나 마시면서 편하게  읽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자랑하고픈 마음도, 비난 받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그저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고 싶고  목마른 마음에  공부하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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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구 강재구




이 친구를 처음 만난 곳은 논산훈련소 30연대에서이다.

같은 중대, 같은 소대, 같은 내무반을 같이 쓰는 훈련소 동기이다.

이친구는 별 말이 없는 묵묵한 친구였기에 이 친구의 존재를 많이 느꼈던 것은 아니다.




그당시 나는 훈련소에서 남들 다 쉴때에도 일하는 식사당번을 맡고 있었기에 아침,점심,저녁 식사후에 항상 하는 그 짬돌이 생활이 훈련소생활중 가장 힘들엇던 것으로 기억이된다.

남들 쉴때 쉬어도 체력과 몸이 덜 힘들판에 항상 쉬는 시간이 없었던 그 순간이 지금도 힘들게 느껴진다.




동병상련이라고 했던가?

그 친구가 군오기전에 안양에 집이 있다는 그 말이 너무도 절절한 동지로 다가왔다.

안양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뛸 때였다. 안양은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 아니던가?  항상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고 혹 꿈 속에서 만나면 만난 그 순간을 더 가슴에 느끼고 싶도록 아린 내 사랑하는 그녀가 있는 곳이 아니던가?  힘든 그 날카로운 군 훈련소를 견딜수 있었던 것은 내 사랑 그녀가 보내준 한통한통의 편지와 그리움이었다.

그리고 이 친구 강재구 친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견딘 삶이었다.




항상 귀담아 귀기울여 주었다.

내사람의 이야기와 앞으로의 일들에 대하여 말이다.




훈련도 중반을 넘어서 그날밤 야간 사격하는 날이었다.

한겨울 12월에 입대한지라 사격하는 날도 1월의 칼바람으로 기억이 된다.

저녁을 먹고 야간사격장에서 자기 차례가 올때까지 아마 2시간은 기다려야 하였나보다.

춥고 더디게가는 그 시간에 나는 이 강재구친구와 무수히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양에서의 이야기들 , 제대후의 이야기들, 얼큰한 국물에 소주한잔 하고싶다.

우리 제대후 아니 휴가때 꼭 만나자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추웠던 그 야간사격장의 밤은 그 친구가 있어 너무도 따뜻했다.




다음날 주간사격...

여전히 추웠던 날씨 

이친구와 시간만 나면 이야기하고 그 냄새나는 구화장실에서 추위를 피해 웃으면서 먹었던 그 식사와 담배 한가피....  그렇게 훈련은 서서히 가고 있었다.




퇴소후  나는 광주의 기갑학교로, 그 친구는 멀리 경기도 수원 특공연대로 제대를 명받았다. 그리고 가끔식 오가는 편지에서 많은 우정과 힘을 얻었다.

일병휴가때 친구 면회를 갔다. 나도 휴가가 금같은 시간인데 면회를 간다는 것은 보통정성이 아니겠지만 나는 면회를 갔다. 면회를 신청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 인지라 훈련을 나갔단다.   아쉬운 마음에 또 상병휴가때 면회를 갔다.

면회를 신청후 만나 수원역으로 호프집에 도착하여 회포를 풀었다.

몇잔의 술잔이 오간후 그렇게 할말이 많고 보고팠던 친구지만 막상 얼굴이 보니 할말이 없어 졌다.  그래서 잠시 머뭇거린다는 것이 둘다 잠들어버렸다.

피곤하고 지친 군생활이 긴장의 끈을 놓지못하게 하였나보나...




드디어 군제대후 그 친구를 만나기 위하여 전화를 걸었다.

안양역쪽 본백화점이라는 곳에서 일한다 하여 찾아갔다.

그런데 그 친구를 멀리서 보는 순간 사자가 토끼들과 어울려 야성을 잃는 느낌을 받았다.

캐벼보조하면서 봉투에 물건을 집어넣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저녁에 술잔을 기울이면서 한마디하였다.

너하고는 도저히 맞는 일이 아니다.   포기하여라.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이있는 법이다.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은 이래서 나온 말인 듯 하다.

그냥 그렇게 잘 하고 잇도록 나둘것을

방황도 참 많이 했었다.  일찍 애 아버지가 된다는 마음에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마음에도 언젠가는 이 친구와 같이 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쥐가 있다는 주인의 말을 듣고 그 쥐를 잡아주다가 쥐가 최후의 반격을 하는 통에 쥐에게 물리는 일이 발생되었다.

피가 많이도 났다.  다음날 친구의 학교인 경기대를 가서 그 물린 자가 찝찝해서 병원에 들러서 주사를 맞게도 했다.




같이 수원 거목이라는 술집에서 술을 마셧다.

샌님처럼 생겨서 그리 힘을 쓸 것같아 보이지 않는데 정말 선수다.

무술과 노가다로 단련이 더 되다보니 어찌 그리도 힘이 좋고 일을 잘 하는지 그 바닥에서 아예 소문이 나버렸다. 거목에서 술을 마시고 나는 술이 쉬했다.

다음날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가 전철에서 담배를 피우는 파렴치한 일까지 저 질렀다는 것을 알고는 화끈한 마음에 ...




항상 나에게 힘이 되어준 친구이다.

곁에 있기만 해도 좋은 친구이다.  그 자리를 항상 지키고 나를 지켜주는 친구.

항상 진지하게 나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주면서 내가 옳지못한 판단을 내려도 묵묵하게 나를 바라보면서  그 일이 비록 잘못되어도 탓을 하지 않는 그 친구.




사업이 어려워서 정말 울고 싶노라는 말을 하니...   자기가 가진 돈 이 있는데 빌려주는 것이 아니고 주는 것이니 아무 부담같지 말고 쓰라는 멋진 친구...

내가 세상 헛 산것은 아니구나...

너무도 고마웠다.




경찰 10년이 다 되어간다.

경찰이 순찰 잘하고 일 잘하면 되는데 어찌도 그리 공부를 많이 하던지 내가 언젠가는 그렇게 공부하면 고시도 붙었겠다. 대단 하구나   하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고맙다 친구야    네가 있어 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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