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칼국수를 맛나게 먹고 섬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찬빈이와 아내의 사진은 정말 잘 나왔다.

아내는 내 옷을 입고 있는데 나는 보기 좋은 데 자기는 영 아니라 했다...

 



 

 

사륜 오토바이는 참 재미났다.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속도감도 쾌 있다.

 



 

날씨가 따듯해 좋았다.

폼 한번 잡고...

 



 

아내와 아내의 뒤로 찬빈이가 사륜을 타고 열심히 질주하고 있다.

찬빈이는 처음인데 굉장히 잘 탔다.

녀석 오토바이 좋아하면 안되는데...



 

아내 차례.

아내도 만만치 않게 잘 탔다.

 



 

 

설빈이와 찬빈이,,,

너희들이 나중에 나이 먹으면 이 사진을 보고 부러워하는 날이 있을 게다.

설빈이 사진찍기 싫고 찬빈이 항상 특이한 포즈로 맛있게 먹고...

 

 



 

 

찬빈이 모타보트 타기전...

우리 귀여운 찬빈이 ...엉뚱한 우리 찬빈이...

 



 



 

모타보트 타고 가족사진 한장.

모타보트는 오랜 만에 타봤지만 여전히 스릴 넘치고 재밌다..

코너링이 예술이다.

 



 



 

즐겁고 행복한 제부도 여행이었다.

집과 1시간 거리에 이렇게 좋은 여행지가 있다는 것은 복이다.

시간만 나면 여행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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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전북진안이다.
흔히들 무진장 골짜기라고 한다.(무주,진안, 장수를 가르킨다) 지금도 차가 하루에 많이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이 시골깡촌놈이라고 소개를 가끔한다, 사실이 그러하니까. 지금생각해보니 그 것이 경쟁력이고 살아가는 데 큰 힘이었다.

내 나이 7살로 기억이 된다.
아버지께서 마을하고 한시간 거리인 곳에 외딴집을 지으셨다.
이웃이라고는 한채도없는 홀로이  말그대로 외딴집.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적 싶은 그런 외딴집이다. 왜 그런 집을 그 먼 곳에 지우셨을까? 궁금하다.
 
집앞에는 강이라 하기에 크고 냇가라 하기에는 작은 그런 강물이 흐르고 그 강물 건너에는 200미터가 넘는 작은 산이 있었다.

집은 대지보다 약간 높은 둑에 집을 세채로 나누어 지으셨다.
한 채는 부모님과 할머니,저의 형제들이 사는집.
두번 째는 오리와 닭,소,염소,등등 짐승이 사는집.
세번 째는 여러 생리 현상들을 하는 곳과  농사지을 때 쓰는 연장 넣어두는곳...
그 주위로 나무들이 굉장히 많았었고 지대가 확트이 듯 넓었다.
그 넓은곳 들 사이로 논과 밭,그리고  여러 곡식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곳들...
친구들의 집은 저 멀리 잘 보이지않는 마을과는 참으로 멀리떨어진  그 외딴집...

그림이 살짝 그려지시나.
좋겠다? 어머 낭만있겠다? 전원생활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짓고......
1달만 살아보면 그 말이 쏙 들어간다.(지금은 하라면 하겠는데...)

그 당시 시골이 다 그렇 듯 시골생활이  참으로 가난했다.
먹고 살기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 먹고, 먹은 힘으로 또 일하고 ...
먹고 살기위해 일한다는 표현이 참으로 맞을 것이다.

어린 시골생활 ,너 나 할 것없이 어린 고사리같은 손으로 열심히 일했다.
국민학교때 2학년때인가 부터 소 꼴베고, 모심고, 돌 나르고, 거름나르고 , 가을이면 낫으로 벼베고(지금 이런 얘기하면 거짓말이라고 안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겨울이면 낮에는 땔감하느랴 밤이면 소죽을 끓이곤했다.
자갈밭을 옥토로 만들고, 개간한다는게 쉬운일은 아니다.

그래도 외딴집 (그곳을 다른 분들은 액기제라고 그랬다)이라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다.

여름이면 고기를 많이도 잡았다.
천렵이라고 그런다.
산수 좋은 곳을 찿아가서 웃통 벗어 젖히고 멱감고 탁족(양말을 벗고 물에 발을담금)하며
물고기잡아 매운탕으로 소주한잔걸치는 (어린나이에는 술이라는 자체가싫었지만 보기에는 좋았음) 모습을 보며 어린나는 고기만 먹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늘어지게 한숨자는 그 순간은 참으로 행복하고 깊은 단잠이었다. 강가에 나가 멱(수영)도 하고 대수리(지금은 고동이나 다슬기라고하죠)도 많이 잡았다.
마을에나가 팔기도 하여 아르바이트도 하기도하고 많이도 먹었다.

이사올 때 심었던 복숭아,사과나무,배나무도 어느덧 국민학교 6학년때쯤에는 엄청 크고 ,엄청 좋으맛을 자랑하기도 했다. 맛있다고 타지에서  손수 찿아와서 많이도 사가곤했다.

당연히 그럴수밖에...추운 겨울날 아버지께서 500원 주신다기에 쾡이와 삽으로 키만큼 파서 키운
과일나무이자, 여러 배설물들과  거름등을 정성드려 키어온 결정체였다.
가을이면 한해 열심히하여 지어진 곡식들과 ,여러 호박,감자 고구마,콩 팥등을 캐내는 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어린애에게도 행복으로 다가왔습니다.

부자라는 것이 무언지 모르는 때였지만 겨우내먹을수있는 양식이 있다 는것은 지금 생각해도 흐뭇하고 뿌듯한 가슴에 행복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차가운 겨울이 오면  외딴집에는 그리할일이 많지 않았다.
낮에만 땔감하는랴 몇 시간 시간보내고 ,저녁이면 짐승들 밥주고 소죽 끓이고 불이 들어오지않는 그 긴 겨울밤을 뭐하고 보내겠는가?

어린 그 시절부터 난 책이라는 소중한 존재를, 인생의 가장 큰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호롱불이 들어오는 그 불빛에서 읽는 그 독서의 의미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각이  저절로 난다.  아스라이 잊혀진것은 잊혀졌지만 그래도 생각이나는 그때 읽었던 위인전들과 모험이담긴 소중한 책들....
몇번을 읽어 지루해지자 눈속을 뚫고 마을로 한 시간을 걸어가 친구들 집집마다 다 들려서 책을 빌려오는 그 즐거움은  아마 모를 것이다.

한 권 한 권,가방에 넣어 매고 오는 약간은 가벼운 ,하지만 마음은 들뜸과 희열이나는 그 기쁨 홀로집에오는 그 발걸음은 책이라는 든든한 친구가있어 외롭지 않았고 발걸음은 더욱 제촉이 됐었다.  방학때 이놈만 있으니  이제 안심이구나...하는 마음이 든거다.

만화책도 엄청 많이도읽었다.
그때 읽은 만화책가운데  최배달선생님의 "대야망"이라는 만화책을 가장 감동적으로보았다.
방학기선생이쓰신 지금은 "바람의파이터"인데 영화로도 아마 나왔다.
최배달선생의 무도의 혼과 집념, 일본의  미야모토 무사시와 줄정도로 돌아가시기전까지 불패의 신화를 창조한 그분의 삶을 얼마나 동경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당시 제꿈이 첫번째 무도가였고 두번째가 만화가이자  만화가게주인이었다.
그때부터 책과 저는 땔레야 땔수없는 지금까지의 독서습관이 된거다.
어렵고 가난한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날그날  부모님과 같이사는즐거움이 있었고,언젠가 우리도 저 멀리 보이는 동네로 이사갈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내 독서습관의 가장 고마운 것이 외딴집 생활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힘들고 외로운 날이었지만 나를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것은 그 때의 소중한 날들이었다. 독서라는 그 거대한 존재를 나는 알게 되었다. 평생의 그 큰 꿈속의 세계로 나는 초대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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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의 대발해 1 김홍신의 대발해 10
김홍신 지음 / 아리샘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시장의 작가 <김홍신>

전직 국회의원을 지냈고 사회자로 활동도 했고 우리 나라 최초의 밀리언셀러 작가다.

그런 그가 12년을 기획 탈고한 작품이 이 대발해다.
그는 글 쓰는 동안 스스로 약속하기를 매일 원고지 20매 이상 쓰고 퇴고할 때까지 모임이나 행사에 참석하지 말고, 하루 12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 있었다 한다. 창문을 내려 햇볕을 찬단하고 너무 앉아 있다보니 요로결석을 앓았다 한다. 티브이를 멀리하고 아프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다고 한다.

스스로 약속을 지키려니 사람 노릇을 못 할 수 밖에 없었다. 오른팔과 어깨가 마비되어 양 한방 민간요법 치료을 받았으며 알레르기를 시달리고 머리칼이 빠지는 산고를 겪었다 한다.
너무 오래 방안에서 책상과 마주 했더니 얼굴이 무표정하게 변하고 체형이 바뀌는 벌을 받았다 한다.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
그 어떤 일에 나도 이렇듯 미친듯이 한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보니 몇번은 그랬다.  미친듯이.... 그래서 알 수 있다.

 

대발해는 그런 작가의 마음을 느끼어 싶어 읽게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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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순간 박사님은 학생이나 학생이나 직장인,자기계발하여 자신의 한단계를 높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하여 좋은 강의를 해주고 계시겠죠. 자신의 등불로 남은 자들에게 등불의 씨앗을 남겨주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고 보람을 얼마나 느끼실까요.. 

오늘 교회 주봉에서 푸른초장양식이라는 글에서 <기도하는 손> 이라는 글처럼 그런 희생을 하시는 것이 아닌가 감히 생각해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보는 그림이 밀레의 <만종> 이라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가장 팔린 그림이 알버트 들러의 <기도하는 손>이라는 것도 오늘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손은 심지어 택시 운전기사들까지 그 그림을 택시에 붙이고 다닌다는데 알버트 들러의 그림인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그 안에는 감동의 이야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들러는 가난하여 그림 공부를 하다가 중단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침 들러의 친구도 가난으로 공부를 중단하고 있었답니다. 둘은 만나서 약속했답니다. 한 명씩 교대로 공부하기로 한 것입니다. 한명이 돈을 벌어서 대기로 한 겁니다. 들러는 그 친구의 도움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그림에서 명성을 얻게 되었답니다. 들러는 이제 그 친구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친구를 찾아 갔답니다. 이제 임무교대의 순간입니다. 들러가 친구를 찾아가자 그 친구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답니다. 그 친구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답니다. 

<하나님! 저는 너무나 심한 일로 손이 굳어져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나이다. 나이도 많이 들고요. 그러나 제 친구 들러 만은 화가로서 성공하게 하여 주옵소서.>   

들러는 눈물을 닦으면서 연필을 꺼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그리기 시작했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기도하는 손> 이라고 합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제 인생의 한부분은 이렇게 남과 다르게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좋게 말하면 투자고 힘들게 말하면 희생입나. 세상에 공짜가 없음을 한번 더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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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쓰기 

 

글쓰기는 자기계발에 가장 큰 힘이 주는 것이다. 기록의 일상화가 어떤 힘을 발휘할까? 작은 한줄의 메모가 어떤 힘을 줄까. 가장 솔직한 것이 글쓰기다. 일기쓰기,편지쓰기도 다 글쓰기의 한 방법이다. 머리속의 생각을 정리하는 기술이 이 글쓰기다. 

보통사람이 쓰는 보통이야기, 보통이야기지만 진실과 작은 감동을 주는 책이 앞으로는 대세라는 생각이다. 어떤 특정의 사람만이 글쓰고 책을 내는 세상이 이제 지났다.  

안철수씨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책에 이런 글이 있다.  

< 10년,20년후에도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 줄때 한점 부그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타개하고자 이해타산 또는 속된 표현으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글을 쓴다면 나중에 자신은 물론 후세까지도 두고 두도 부끄러울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죽어도 글은 남기 때문이다.> 

나또한 마찬가지다. 솔직함이 없는 글은 껍대기 뿐인 허접쓰레기다. 항상 내 가슴속에서 우러나온 솔직한 글 만을 뜨도록 하자. 누가 보고 누가 어떤 평을 하던지 연연하지 않는 그런 마음을 첫째로가져야 한다. 솔직함이 없으면 죽은 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하루도 빠지지말고 써야 한다. 내 글쓰는 감각의 틀을 깨듯이 어떤 근육처럼 생각을 끄집어 글로 표현해내는 그런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 기본은 진실된 마음과 공유하자는 마음이 첫째다. 

삶이라는 마라톤에서 순간순간의 구간 기록은 더 좋은 페이스를 위한 경험이 된다. 생각하고 결정하고 집중하는 과정을 정리하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법이 된다.  

그래서 일기쓰기,편지쓰기, 글쓰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쓸 수 있다면 나는 내가 꿈꾸는 그랜드슬램을 기필코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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