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전북진안이다.
흔히들 무진장 골짜기라고 한다.(무주,진안, 장수를 가르킨다) 지금도 차가 하루에 많이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이 시골깡촌놈이라고 소개를 가끔한다, 사실이 그러하니까. 지금생각해보니 그 것이 경쟁력이고 살아가는 데 큰 힘이었다.

내 나이 7살로 기억이 된다.
아버지께서 마을하고 한시간 거리인 곳에 외딴집을 지으셨다.
이웃이라고는 한채도없는 홀로이  말그대로 외딴집.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적 싶은 그런 외딴집이다. 왜 그런 집을 그 먼 곳에 지우셨을까? 궁금하다.
 
집앞에는 강이라 하기에 크고 냇가라 하기에는 작은 그런 강물이 흐르고 그 강물 건너에는 200미터가 넘는 작은 산이 있었다.

집은 대지보다 약간 높은 둑에 집을 세채로 나누어 지으셨다.
한 채는 부모님과 할머니,저의 형제들이 사는집.
두번 째는 오리와 닭,소,염소,등등 짐승이 사는집.
세번 째는 여러 생리 현상들을 하는 곳과  농사지을 때 쓰는 연장 넣어두는곳...
그 주위로 나무들이 굉장히 많았었고 지대가 확트이 듯 넓었다.
그 넓은곳 들 사이로 논과 밭,그리고  여러 곡식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곳들...
친구들의 집은 저 멀리 잘 보이지않는 마을과는 참으로 멀리떨어진  그 외딴집...

그림이 살짝 그려지시나.
좋겠다? 어머 낭만있겠다? 전원생활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짓고......
1달만 살아보면 그 말이 쏙 들어간다.(지금은 하라면 하겠는데...)

그 당시 시골이 다 그렇 듯 시골생활이  참으로 가난했다.
먹고 살기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 먹고, 먹은 힘으로 또 일하고 ...
먹고 살기위해 일한다는 표현이 참으로 맞을 것이다.

어린 시골생활 ,너 나 할 것없이 어린 고사리같은 손으로 열심히 일했다.
국민학교때 2학년때인가 부터 소 꼴베고, 모심고, 돌 나르고, 거름나르고 , 가을이면 낫으로 벼베고(지금 이런 얘기하면 거짓말이라고 안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겨울이면 낮에는 땔감하느랴 밤이면 소죽을 끓이곤했다.
자갈밭을 옥토로 만들고, 개간한다는게 쉬운일은 아니다.

그래도 외딴집 (그곳을 다른 분들은 액기제라고 그랬다)이라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다.

여름이면 고기를 많이도 잡았다.
천렵이라고 그런다.
산수 좋은 곳을 찿아가서 웃통 벗어 젖히고 멱감고 탁족(양말을 벗고 물에 발을담금)하며
물고기잡아 매운탕으로 소주한잔걸치는 (어린나이에는 술이라는 자체가싫었지만 보기에는 좋았음) 모습을 보며 어린나는 고기만 먹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늘어지게 한숨자는 그 순간은 참으로 행복하고 깊은 단잠이었다. 강가에 나가 멱(수영)도 하고 대수리(지금은 고동이나 다슬기라고하죠)도 많이 잡았다.
마을에나가 팔기도 하여 아르바이트도 하기도하고 많이도 먹었다.

이사올 때 심었던 복숭아,사과나무,배나무도 어느덧 국민학교 6학년때쯤에는 엄청 크고 ,엄청 좋으맛을 자랑하기도 했다. 맛있다고 타지에서  손수 찿아와서 많이도 사가곤했다.

당연히 그럴수밖에...추운 겨울날 아버지께서 500원 주신다기에 쾡이와 삽으로 키만큼 파서 키운
과일나무이자, 여러 배설물들과  거름등을 정성드려 키어온 결정체였다.
가을이면 한해 열심히하여 지어진 곡식들과 ,여러 호박,감자 고구마,콩 팥등을 캐내는 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어린애에게도 행복으로 다가왔습니다.

부자라는 것이 무언지 모르는 때였지만 겨우내먹을수있는 양식이 있다 는것은 지금 생각해도 흐뭇하고 뿌듯한 가슴에 행복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차가운 겨울이 오면  외딴집에는 그리할일이 많지 않았다.
낮에만 땔감하는랴 몇 시간 시간보내고 ,저녁이면 짐승들 밥주고 소죽 끓이고 불이 들어오지않는 그 긴 겨울밤을 뭐하고 보내겠는가?

어린 그 시절부터 난 책이라는 소중한 존재를, 인생의 가장 큰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호롱불이 들어오는 그 불빛에서 읽는 그 독서의 의미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각이  저절로 난다.  아스라이 잊혀진것은 잊혀졌지만 그래도 생각이나는 그때 읽었던 위인전들과 모험이담긴 소중한 책들....
몇번을 읽어 지루해지자 눈속을 뚫고 마을로 한 시간을 걸어가 친구들 집집마다 다 들려서 책을 빌려오는 그 즐거움은  아마 모를 것이다.

한 권 한 권,가방에 넣어 매고 오는 약간은 가벼운 ,하지만 마음은 들뜸과 희열이나는 그 기쁨 홀로집에오는 그 발걸음은 책이라는 든든한 친구가있어 외롭지 않았고 발걸음은 더욱 제촉이 됐었다.  방학때 이놈만 있으니  이제 안심이구나...하는 마음이 든거다.

만화책도 엄청 많이도읽었다.
그때 읽은 만화책가운데  최배달선생님의 "대야망"이라는 만화책을 가장 감동적으로보았다.
방학기선생이쓰신 지금은 "바람의파이터"인데 영화로도 아마 나왔다.
최배달선생의 무도의 혼과 집념, 일본의  미야모토 무사시와 줄정도로 돌아가시기전까지 불패의 신화를 창조한 그분의 삶을 얼마나 동경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당시 제꿈이 첫번째 무도가였고 두번째가 만화가이자  만화가게주인이었다.
그때부터 책과 저는 땔레야 땔수없는 지금까지의 독서습관이 된거다.
어렵고 가난한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날그날  부모님과 같이사는즐거움이 있었고,언젠가 우리도 저 멀리 보이는 동네로 이사갈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내 독서습관의 가장 고마운 것이 외딴집 생활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힘들고 외로운 날이었지만 나를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것은 그 때의 소중한 날들이었다. 독서라는 그 거대한 존재를 나는 알게 되었다. 평생의 그 큰 꿈속의 세계로 나는 초대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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