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자라는 물고기 - 목어 이야기 우리 문화 그림책 14
김혜리 글.그림 / 사계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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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절이 참 많다. 특별히 목적지를 염두에 두지 않고 길을 떠나거나 유적지를 찾아가더라도 꼭 만나는 곳이 바로 절이다. 그러나 절은 모두 비슷해서 한바퀴 휘 돌아보고 나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절에 대해 잘 몰랐을 때 이야기다. 하지만 문화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절에 대해서도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은 것이 사실이다. 

절에 가면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풍경과 범종이 아닐까 싶다. 유명한 절의 범종은 주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서 먼 발치서 볼 수 있고. 그런데 범종 주변에 나무로 만든 물고기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목어다. 간혹 구름 모양 운판(운판은 평평한 판을 매달아 놓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 쉽다.)을 볼 수도 있다. 이 네 가지를 일컬어 '사물'이라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 중 목어에 대한 전설을 들려주고 있다. 

절에서 수행을 하는 중에도 나쁜 짓을 일삼는 멋대로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물고기로 태어났는데 역시 사람이었을 때처럼 남을 괴롭히고 못된 짓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멋대로 몸에서 싹이 돋고 순식간에 커다란 나무가 되는 바람에 멋대로는 고통스럽게 파도에 휩쓸려 다니고 만다. 드디어 벌을 받은 것이다. 사람일 때도 그토록 남에게 못된 짓을 하고 물고기로 다시 태어나서도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계속 못된 짓을 했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멋대로가 그냥 고통을 받으며 뉘우치기만 했다면 목어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멋대로를 본 큰스님은 멋대로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고 결국 그렇게 됐다. 멋대로는 자기와 같은 사람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기 등에서 자란 나무를 베어다 물고기를 만들어 달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바로 목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목어에 대한 전설인 셈이다. 작가는 <교원청규>라는 책 속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이야기라고 밝히고 있다. 투박해 보이는 판화 그림에 생생한 표정이 들어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물고기 모양일까. 풍경 또한 마찬가지다. 거기에는-모두 알고 있겠지만-물고기가 언제나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으니 수행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있다.  

우리나라 문화재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불교 문화재. 이것은 종교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문화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아무것도 모르고 절에 가서 둘러보고 나오기 보다 이렇게 간단하게라도 알고 간다면 그곳에 있는 것들이 달라 보이지 않을까. 특히 이 시리즈는 뒷부분에 짧게 정보페이지가 있어서 꽤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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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라가 꿈꾸는 세상 레인보우 북클럽 6
카시미라 셰트 지음, 부희령 옮김, 최경원 그림 / 을파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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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득 관습과 전통의 차이가 뭘까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전통이란 '한 집단에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것'(보리국어사전)이라고 정의되어 있고 네이버에서 찾아본 사전에는 거기에 사상, 관습, 행동 따위가 있다고 덧붙여져 있다. 또한 관습이란 '한 사회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굳어진 풍습이나 방식'(보리국어사전)이라고 되어 있다. 주관적으로 느끼기에 전통이라는 말에는 긍정적인 것들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반면 관습에는 긍정적인 것도 있고 부정적인 것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위의 정의대로라면 꼬이기 시작한다. 전통에 관습이 포함된다고 보면 내가 생각하던 의미가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 명시된 관습은 긍정적인 의미의 관습일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 역시도 주관적인 생각이다. 

왜 이렇게 관습과 전통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느냐면 이 책의 이야기가 시종일관 그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느 나라에서는-물론 우리나라도 포함된다-옳지 않은 관습을 전통으로 착각하고 계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20세기 초 인도에서 카스트 제도가 엄격히 시행될 때를 배경으로 하는 이 이야기가 있잖은가. 하지만 이 이야기는 카스트 제도에 대한 부당함을 이야기한다기 보다 남녀차별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당시 인도의 여자는 이른 나이에 부모가 맺어준 사람과 결혼을 하고 남자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하며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여기던 시대였다. 그 뿐만 아니라 남편이 죽으면 여자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하긴 어디 그게 인도만의 모습이라고 하겠는가. 많은 나라에서 신분제도가 있고 여자는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곤 했으니까. 

주인공 릴라는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어리광부리고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브라만 계급의 열세 살 소녀다. 결혼을 앞두고 꿈에 부풀어 있던 릴라의 행복은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아홉 살에 결혼식을 치렀지만 정식으로 남편집으로 가서 살기 전에 남편이 죽어버리자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일 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생활을 해야 하고 옷차림도 남들과 달라야 하며 부당한 욕을 먹는 일만이 릴라에게 펼쳐질 미래다. 그러나 릴라는 결코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처음에는 자포자기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지만 오빠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결국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열게 된 것이다.  

만약 릴라에게 오빠가 없었다면 그런 변화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만약 오빠가 시골 동네에서 그냥 남들과 같은 방식대로 살았다면 세상에 눈을 뜨지 못했을 것이고 동생의 불행을 그대로, 그야말로 관습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릴라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릴라 오빠는 도시로 나가 새로운 사상을 접했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거기에는 간디의 영향이 컸음은 말할 것도 없다(이야기는 줄곧 간디의 행적을 따라가며 당시 인도의 상황을 함께 서술한다). 그런데 아들을 더 넓은 곳으로 보내 교육시키려고 하고 영국의 횡포에 반대하는 릴라 부모는 어느 정도 의식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즉 비록 관습에 얽매여 살고 있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충분히 변화가능한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미망인인 릴라가 도시로 공부할 수 있게 허락을 한 것이다. 

릴라는 자신의 처지가 불행하게 되고부터 왜 남자와 여자가 차별을 받아야하는지, 왜 계급에 따라 행동이 달라야 하는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릴라의 고민은 자기 안에만 머물렀다(그것은 결국 릴라의 입을 빌어 이야기한 작가의 문제의식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남자는 가능한(아니 당연한) 재혼이 왜 여자는 불가능한지, 또 다른 계급은 여자라도 재혼이 가능한데 왜 브라만은 안 되는지에 대해서만 부당하다고 느낀 것이다. 계급 자체에 대한 회의보다 자신은 높은 계급인데 낮은 계급 사람보다 못 누리는 것에만 집착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샤니와 릴라 자신이 다른 찻잔으로 차를 마시는 것만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것을 바꿀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부당한 관습(그냥 관습이라 하면 긍정적인 의미의 관습도 포함되므로 반드시 '부당한' 이라는 말을 붙여야겠다.)과 맞서 싸우는 릴라의 모습이 멋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아쉽다. 물론 그 단계에서는 이 정도의 변화만으로도 굉장한 것이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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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짜 나일까 - 제6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미래의 고전 5
최유정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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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이제 막 초등학교를 벗어난 시점에서 이 책을 보니 새로운 기분이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게 과연 아이들의 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전 어른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생각도 든다. 가끔 아이로부터 남자애들이 정말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한 두 번은 선생님께 심하게 대든 친구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건주처럼 그런 아이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아이들의 생활을 일일이 파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기초로 전체를 평가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건주와 같은 아이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아서 억지를 부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개 동화에서 두 가지 형태의 인물이 등장한다. 건주처럼 가정에서 충분히 인정받거나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상태-즉 문제가 있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문제아로 찍히는 아이와, 은찬이처럼 학교에서 모두로부터 인정받는 그야말로 성격 좋고 공부도 잘 하지만 본 모습은 비열한 아이다. 후자의 경우 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지나치게 보호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자칫 남의 아이를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도 그 두 가지 인물상이 그대로 나타난다. 다만 여기서는 은찬이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우라는 인물이 은찬이를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건주와 시우의 시점이 교대로 서술되다가 마지막 화해할 즈음에서는 둘을 모두 아우르는 시점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깔끔한 기분마저 든다. 아무래도 우리는 아직까지 확실하게 마무리 해주는 방식을 좋아하나 보다. 

아이들의 문제에 어른이 지나치게 끼어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전적으로 어른은 뒤로 물러나 있는 것도 아니다. 상담 선생님이 중간 역할을 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선입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밖에 없는 학교 선생님과 달리 새로 오신 상담 선생님은-물론 직업 자체가 그렇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모든 아이들을 똑같이 생각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건주의 담임 선생님이 건주만 상담을 받으면 된다고 고집부리는데도 굳이 은찬이까지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우겼던 것일 게다. 문제가 발생하면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잘못이란 없는 법이니까. 그러나 담임은 끝까지 은찬이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 마지막에 시우의 커밍아웃(?)으로 은찬이의 본 모습을 알았겠지. 그렇지만 여기서는 은찬이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는다. 주인공은 건주와 시우니까. 

초등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소위 말해서 문제아가 나오는 이야기는 많았지만 이처럼 상담 교사가 갈등을 해결하는 이야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이 더 주목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을 읽을 때부터 루이스 새커의 <못 믿겠다고?>가 생각났다. 그 책도 역시 상담 선생님이 문제아인 브래들리를 변화시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상담 교사가 아이에게 다가가는 방식이나 아이의 행동은 비슷하지만 아이가 변하는 계기는 차이가 있다. 그 책에서는 순전히 상담 교사와 아이의 신뢰관계가 아이를 변화시키지만, 여기서는 상담 교사의 진심을 건주가 우연히 엿듣고 난 후 변했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고 보니 이 책에서는 우연히 엿듣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결정적인 부분에서는 모두(건주도 시우도) 우연히 엿듣게 되는데 그게 좀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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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교사와 수의사가 함께 만든 과학 병원 38.5
권태성 글 그림, 오승섭 감수 / 맑은소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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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강아지를 처음 데려왔을 때가 생각났다. 데리고 온 이튿날 나는 멀리 외출했는데 강아지가 토하고 서지도 못할 정도로 기운이 없다는 것이다. 급한 마음에 아이에게 가까운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라고 했다. 배탈이 났는데 혹시 세균에 감염되었을지도 모르므로 검사를 했으면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일단 전화를 했던 것이다. 어린 강아지들은 간단한 배탈로도 치사율이 엄청나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어찌 그냥 넘어갈 수가 있겠나. 다행히 감염은 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예전에 부모님이 시골에서 기를 때는 개가 아픈 것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았지만 막상 데리고 와서 키우려니 조금만 아픈 기색이 보여도 걱정이 된다. 그러니 만약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 사람이나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이 책을 본다면 개나 고양이가 아픈데 웬 호들갑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직접 그 상황이 되면 어떻게든 살려야겠다는 생각만 들 것이다. 그 후로도 뭔가를 삼킨 것 같아 병원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던 경험도 있다. 다행히 다시 뱉어내서 안도하기도 했다. 

이 책은 동물을 키우는 사람에게 많은 도움이 되겠다. 강아지 뿐만 아니라 고양이나 악어와 같은 동물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그래도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강아지다. 또한 해당 기관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그에 상응하는 사람의 장기에 대해서도 설명이 나오므로 동물과 사람을 비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물에 집중해서 그런지 사람의 장기 설명보다는 동물에 대한 설명이 훨씬 재미있고 머리에 잘 들어왔다. 

그리고 중성화 수술에 대한 글을 읽어 보니 그동안 내가 오해하고 있었나 보다. 방금 전에도 영역 표시를 해서 한바탕 소동을 피웠다. 진작에 해줄까도 생각했다가 아무래도 사람 위주로 개를 판단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그만두었는데 다시 고민된다. 지금이라도 시켜야하나 하고 말이다. 새로운 물건을 거실 바닥에 두면 영락없이 영역표시를 해서 곤욕을 치룬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아예 새로운 물건이 있으면 되도록 빨리 정리한다. 강아지가 미리 찜하기 전에 말이다. 

애완동물이 응급상황일 때 어떻게 처치를 해야 하는지 만화를 통해서 알 수 있고 길들이는 방법이나 애완동물의 마음을 읽고 대처하는 방법은 줄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렇듯 재미있으면서도 직접적인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다. 특히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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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데려가도 될까요?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60
베니 몽트레소 그림, 베아트리체 솅크 드 레그니에스 글, 장미란 옮김 / 시공주니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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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그림책을 읽고 공부할 때 제목과 표지만 많이 보았던 책이다. 아마도 칼데콧 상 받은 책을 정리하면서도 보았던 것 같고 이론서를 읽으면서도 보았던 것 같다. 지금이야 그림책이 다양하기도 하고 수준이 상당히 높지만 이 책이 나왔을 당시(미국에서 1964년에 출간되어 1965년에 칼데콧 상 수상)만 해도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지금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일단 감안해야겠다. 

비록 색감은 오래전 책이라는 것이 느껴지지만 내용만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4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읽히고 있는 것일 게다.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히 찾게 되겠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시대가 변해도 아이들이 이 책을 집어드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이 나오고 순수한 아이가 등장하며 아이를 그대로 봐주는 어른이 등장하기 때문은 아닐런지. 게다가 어린이 책에서 자주 쓰이는 반복적인 구성은 유아들에게 다음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궁금하게 만들기도 한다. 

왕과 왕비가 주인공을 궁전으로 초대한다고 하지만 화자가 나로 표현되기 때문에 어린 독자들은 자신을 주인공으로 생각하며 읽을 것이다. 왕과 왕비가 자신을 초대한 것도 굉장한 일인데 며칠간 새로운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초대한다니 얼마나 설렐까. 게다가 친구를 데려가도 되냐고 물어보면 흔쾌히 허락을 하니 친구에게 면목도 서고. 그러다 마지막에는 임금님과 왕비를 동물원으로 초대해서 함께 차를 마시기까지 한다. 이처럼 임금님과 왕비님을 '내'가 초대할 때까지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아이들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딴지 걸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야기에 빠져서 반복된다고 지루해하지도 않는다.)가 계속 반복된다. 아이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어른의 모습은 진정 아이들이 바라는 부모의 모습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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