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라가 꿈꾸는 세상 레인보우 북클럽 6
카시미라 셰트 지음, 부희령 옮김, 최경원 그림 / 을파소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문득 관습과 전통의 차이가 뭘까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전통이란 '한 집단에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것'(보리국어사전)이라고 정의되어 있고 네이버에서 찾아본 사전에는 거기에 사상, 관습, 행동 따위가 있다고 덧붙여져 있다. 또한 관습이란 '한 사회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굳어진 풍습이나 방식'(보리국어사전)이라고 되어 있다. 주관적으로 느끼기에 전통이라는 말에는 긍정적인 것들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반면 관습에는 긍정적인 것도 있고 부정적인 것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위의 정의대로라면 꼬이기 시작한다. 전통에 관습이 포함된다고 보면 내가 생각하던 의미가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 명시된 관습은 긍정적인 의미의 관습일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 역시도 주관적인 생각이다. 

왜 이렇게 관습과 전통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느냐면 이 책의 이야기가 시종일관 그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느 나라에서는-물론 우리나라도 포함된다-옳지 않은 관습을 전통으로 착각하고 계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20세기 초 인도에서 카스트 제도가 엄격히 시행될 때를 배경으로 하는 이 이야기가 있잖은가. 하지만 이 이야기는 카스트 제도에 대한 부당함을 이야기한다기 보다 남녀차별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당시 인도의 여자는 이른 나이에 부모가 맺어준 사람과 결혼을 하고 남자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하며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여기던 시대였다. 그 뿐만 아니라 남편이 죽으면 여자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하긴 어디 그게 인도만의 모습이라고 하겠는가. 많은 나라에서 신분제도가 있고 여자는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곤 했으니까. 

주인공 릴라는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어리광부리고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브라만 계급의 열세 살 소녀다. 결혼을 앞두고 꿈에 부풀어 있던 릴라의 행복은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아홉 살에 결혼식을 치렀지만 정식으로 남편집으로 가서 살기 전에 남편이 죽어버리자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일 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생활을 해야 하고 옷차림도 남들과 달라야 하며 부당한 욕을 먹는 일만이 릴라에게 펼쳐질 미래다. 그러나 릴라는 결코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처음에는 자포자기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지만 오빠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결국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열게 된 것이다.  

만약 릴라에게 오빠가 없었다면 그런 변화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만약 오빠가 시골 동네에서 그냥 남들과 같은 방식대로 살았다면 세상에 눈을 뜨지 못했을 것이고 동생의 불행을 그대로, 그야말로 관습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릴라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릴라 오빠는 도시로 나가 새로운 사상을 접했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거기에는 간디의 영향이 컸음은 말할 것도 없다(이야기는 줄곧 간디의 행적을 따라가며 당시 인도의 상황을 함께 서술한다). 그런데 아들을 더 넓은 곳으로 보내 교육시키려고 하고 영국의 횡포에 반대하는 릴라 부모는 어느 정도 의식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즉 비록 관습에 얽매여 살고 있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충분히 변화가능한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미망인인 릴라가 도시로 공부할 수 있게 허락을 한 것이다. 

릴라는 자신의 처지가 불행하게 되고부터 왜 남자와 여자가 차별을 받아야하는지, 왜 계급에 따라 행동이 달라야 하는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릴라의 고민은 자기 안에만 머물렀다(그것은 결국 릴라의 입을 빌어 이야기한 작가의 문제의식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남자는 가능한(아니 당연한) 재혼이 왜 여자는 불가능한지, 또 다른 계급은 여자라도 재혼이 가능한데 왜 브라만은 안 되는지에 대해서만 부당하다고 느낀 것이다. 계급 자체에 대한 회의보다 자신은 높은 계급인데 낮은 계급 사람보다 못 누리는 것에만 집착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샤니와 릴라 자신이 다른 찻잔으로 차를 마시는 것만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것을 바꿀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부당한 관습(그냥 관습이라 하면 긍정적인 의미의 관습도 포함되므로 반드시 '부당한' 이라는 말을 붙여야겠다.)과 맞서 싸우는 릴라의 모습이 멋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아쉽다. 물론 그 단계에서는 이 정도의 변화만으로도 굉장한 것이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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