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지대 (No Man's Zone), 후지와라 토시, 2011
동경공원 (Tokyo Koen), 아오야마 신지, 2011

 

 



영화는 거의 완전히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후쿠시마의 해변을 길고 느리게 패닝하며 시작한다. 거기에 애초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시설물들, 그것은 거의 복구의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다. 부러진 목재들과 콘크리트들, 여러가지 잡동사니들, 자동차들, 부러진 잔해들, 그리고...그 밑의 어딘가에 아직 있을지도 모를 시체들. 그리고 영화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것은 좀 흥미로운 구조다. 화면은 재앙이 일어난 후 거의 텅빈 후쿠시마를 비추고 있지만, 화면의 현장음은 거의 배제되어 있고, 두 가지의 다른 음성이 깔린다. 하나는 감독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는 영어 나레이션이다. 이 영화 <무인지대>의 감독 후지와라 토시는 할 말이 무척 많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심지어 이례적으로 영화 시작전 발언을 자청해 관객에게 이 영화를 '이런이런 식으로 봐달라'고 '호소'했다.) 나레이션은 매우 직접적이고, 좀 많은 편이며, 더구나 중언부언하는 경향마저 있다. 다른 하나는 이 화면을 보는 어떤 사람들의 목소리이다. 처음에는 이들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보다보면 이 목소리는 감독이 찍은 이 영상을 뒤늦게 (대피소 같은 곳에서) 보고 있는 후쿠시마 주민들의 것임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의 발언은 "아..저기는 이게 있었는데..", "저것은 누구의 집이 있던 자리였는데.." 등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화 중간에 (감독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나레이션과 맞물려 어떤 효과를 낸다. 나레이션은 말한다. 이것을 어떤 '스펙터클', '파괴의 현장'으로 보지 말 것. 그보다는 그 파괴 전에 있었던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볼 것. 즉 우리는 재난을 대부분 어떤 거대한 파괴, 가공할만한 힘, 거대한 비극의 현장으로만 받아들인다. 아마도 후쿠시마의 해변을 패닝하는 첫 장면을 대부분의 관객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참 쓰나미란 무서운 거구나, 저런 엄청난 파괴를 불러 일으키는 자연의 힘이란 게 정말 가공할 만한 것이구나. 그런데 흥미롭게도 후쿠시마의 무인지대의 공간들에 주민들의 목소리를 오버랩해서 보여주던 감독은 다시 영화의 중반부, 그러니까 굳이 나누자면 1부가 끝나가는 시점에 다시 처음의 그 패닝 장면을 붙인다. 이것을 보는 관객들의 시선은 처음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중간에 우리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완벽한 파괴의 공간, 깡그리 사라져버린 듯한 무의 공간에서도 필사적으로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있었다. 저긴 뭐가 있던 자리인데, 누군가가 살던 공간인데. 그러므로 우리는 그 짧은 패닝의 과정에서, 그 엄청난 잔해의 스펙터클 속에서도 무엇인가를 찾아내게, 상상하게 된다. 저 자리는 뭐가 있었던 자리 같은데, 라고 말이다. 그리고 영화는 2부로(영화 상에서 명확하게 1, 2부를 구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넘어가 이타야 같은 후쿠시마 주변지역, 다시 말해서 소거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사실 어디에도 갈만한 곳이 없으며, 갑자기 자신의 생활터전을 버릴 수 없기 때문에 그곳에 아직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것에 담겨 있는 질문은 사실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아직 이 근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목숨이 아까운 줄도 모르는 멍청한 사람들, 일본 정부의 '안전하다'는 무대책한 주장에 속아넘어간 사람들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곳에서 만난 상당수의 사람들은 일본 정부의 안전하다는 식의 주장이 아무 근거가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그곳에서 만난 한 어민은 그런 주장들이 대부분 말도 안되는 것임을 간단하게 설명한다. 정부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조업을 금지했으나, 그 곳에서 불과 몇 백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물고기를 잡아도 된다고 허가했고, 이는 그의 입장에서 보면(당연히 우리의 입장에서도) 웃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닷물에 어떤 구획선이 그어져 있지 않음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의 주장을 인간의 경우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후쿠시마는 사고 직후 출입이 제한되었고, 근방 몇 킬로미터의 주민들에게 모두 소거 명령이 내려졌는데, 그 곳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이타야 같은 곳에서는 살아도 된다? 이것은 산 자에게 물을 수도 있지만, 죽은 자에게 물을 수도 있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후쿠시마는 사고 직후 출입이 통제되어 75일 만에 구조와 복구 활동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즉 혹시라도 운이 좋게 살아 있었을 어떤 사람들은 무려 75일 간이나 죽음을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다. 

아마 두 가지 정도를 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인간이라는 동물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물건을 만들어낸다는 것. 후쿠시마가 무서운 것은 그것이 우리 자신의 능력에서 어쩔 수 없는 거대한 자연재해와 같은 것에서 전적으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전혀 콘트롤할 수 없는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고 직후 일본 정부의 대응은 거의 무대책에 가까웠고, 그것은 일본 정부가 유달리 무능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그 사고에 대한 대응 자체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일의 범위 안에 들어가 있지 않았으며, 사고 이후에 이어질 일들도 '통제 가능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우리 인간이 정말 무서운 점은 그것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자신이 통제할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어떤 일을 시작해버린다, 만들어버린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다른 하나는 영화(필름)의 임무 중의 하나는 기록한다는 것, 그래서 그것이 있었던 일이라는 점을 후세의 누군가에게 기억하게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나레이션에도 나오지만, 거의 후쿠시마와 비견될 정도의 참혹한 재해들은 예전에도 있었으나 그것은 거의 기록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대부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즉 기록되지 않은 것은 기억에서 사라지며 때로는 조작된다. 예를 들어 어쩌면 광주민주화운동이 실재했었다고 우리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에는 몇 개의 희미한 기록필름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기록은 두 가지의 임무를 가진다. 하나는 그 기록된 것을 보는 사람에게 그 기록되지 않은 나머지, 혹은 기록의 이면에 있는 것을 상상하게 할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을 되풀이되지 않게 할 것. 그것을 어떻게든 기록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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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본 영화는 기다렸던 아오야마 신지의 <동경공원>. 사실 솔직히 말해서 생각했던 것보다는 조금은 평범하다는 인상이 짙었지만, 사실 아오야마 신지에 대해서 가지는 인상은 그의 <헬프리스>, <유레카>, <새드 배케이션>의 이른바 '가족 3부작'을 보고 가지게 된 것이 전부이고 그의 그 가족 3부작이 워낙 수작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영화는 흔한 일본식 청춘물의 외피를 두르고, 그 안의 과육을 보여줄듯 말듯 하다가 결국 안보여주고 끝나는 듯한 느낌인데 전체적으로는 느린 호흡으로 차분히 관조할 수 있게 만드는 영화였다. 

영화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제목에도 있는 '공원'이라는 공간이다. 사실 현대사회에서 공원이라는 공간은 조금은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왜냐하면 공원이란 사실 현대의 도시 공간에서 거의 유일하게 출입자격을 묻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출입료를 받는 어떤 빌어먹을 공원들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공간들은 사실 제각각의 출입의 자격과 지위를 규정하고 있고, 때로는 물리적으로, 때로는 묵시적으로 해당되지 않은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공원은 거의 유일하게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며, 따라서 누구나 쉽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무료한 할아버지들이 주로 드나드는 탑골공원이나, 실직자들이 공원에 가는 당연한 클리세를 떠올려보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공원이 무질서의 공간이나, 아무런 규칙도 없는 곳은 아니다. 모든 공원에는 암묵적으로 따라야할 규정들이 있으며, 그것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자유롭긴 하나 어느정도 제한된 자유만을 허한다.

아마도 이러한 공원과 같은 것이 하나의 비유로서 등장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영화 중간에 한 남자의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마치 이 공원과 같은 사회가 되는 것이 아오야마 신지가 믿는 현대 사회가 지향할 지점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전작 <새드 배케이션>에 그려졌던 '마미야 월드'의 명맥을 잇는 것으로, 여러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을 모두 포용하는 공간, 최소한도의 규칙만 지키면 서로를 보호하며 터치하지 않는 공간으로서의 공원이자 사회의 모습이다. 즉 딱딱한 건물 안에만 있다가 넓은 공원에 가면 모두들 약간은 정신이 말랑말랑해지는 것처럼, 사회는 조금 더 말랑말랑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고, 공원은 아니 사회는 그런 다양한 인물을 감싸 안아야만 한다. 영화 <동경공원>은 그런만큼 다양한 인간군상을 그려내는데, 여기에는 아내를 의심하는 의처증환자이자 치과의사, 바를 운영하는 게이, 모든 것을 영화로 비유하는 영화광, 서로를 좋아하지만 자신들의 한계를 알고 있는 의붓남매, 심지어는 죽었는데도 이승에 머물고 있는 유령마저 포함된다. 이들은 때로는 자신을 인정하지 못해 괴로워하고, 상대방을 의심하고, 자신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해 힘들어하지만, 감독이 결국 이들 손에 쥐어주는 것은 작은 카메라 뿐이다.

즉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간들, 이들을 넓은 공원에서 맨눈으로 넓게 보면 좋겠지만, 그렇게 도저히 할 수 없으면 작은 카메라를 손에 들고 그 작은 사각의 창안에 담긴 피사체로 이들을 볼 것. 왜냐하면 우리는 적어도 자신이 가진 그 작은 사각의 창안에 담긴 피사체에는 애정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 드넓은 공원 속에서 모든 인물을 우리는 우리의 맨눈으로 모두 담아낼 수는 없다. (인간에게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자신의 가까이에 있는 인물들부터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며 관계를 쌓으려고 노력할 것. 작은 카메라는 먼 곳을 찍으라고 발명된 물건이 아니다. 먼 곳에 초점을 맞추면 가까운 데는 흐려지게 마련. 그렇게 우리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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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9-11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도쿄공원]을 전에 봤는데요. 유령 너무 귀여웠어요. [유레카]를 만든 감독이란 건 몰랐고 여배우를 좋아해서 그냥 보기 시작했는데, 계속 공원에 있는 여자를 감시(?)하는 남자애가 지루해져서 중간에 끈 것 같은데, 저 감독이라면 이런 얘기를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무인지대]라는 영화는 일본이 만들 수 있는 다큐영화를 짐작케하는 정점처럼 느껴지네요, 이 나라는(제가 일본영화광은 아니지만) 늘 무언가의 가해자 입장이 훨씬 강하다보니까 어떤 기록영화를 만들어도 타국의 관객 입장에선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힘들 듯한데, 저만 그런가요.. 일본문화를 좋아하는 어떤 지점의 이야기가 분명히 있는데 완전히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아요. 왜 일본 것만 두개예요, 기록 2탄도 있는 거겠죠? :)

맥거핀 2012-09-13 00:32   좋아요 0 | URL
전 사실 <도쿄공원>은 너무 부드럽게 끝나버려서 약간 어리둥절했어요. 뭔가 좀 더 센 얘기를 기대했었던 모양. 여배우는 그 영화광으로 나온 배우 말인가요, 아님 그 남주 누나? 그 남주 누나로 나온 배우는 예전에 '춤추는 대수사선'보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얼굴봐서 반가웠어요.; 암튼 일본 영화는 뭔가 약간 손발이 오그라드는 특유의 무언가가 있어요. 그것은 아마도 제가 한국인이니 느끼는 거겠죠.

뭐 근데 아무튼 거대한 재난이 일본에서 일어난 것은 사실이고, 그것은 분명히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었죠. 이 영화는 우리가 피해자다, 도와달라는 식이 아니라, 이 일을 기록해둔다, 하나의 본보기로 해둔다는 느낌이 강해요. 근데 우리나라에서 요새 원전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보면, 이렇게 큰 경고가 있는데도 재앙에 대해선 아무 생각이 없는 모양. 위에도 썼지만, 재앙이 일어나면 이는 '대책' 따위로는 해결할 수가 없는 일인데도요.

2탄도 조만간 써야죠.:)
 

 

 

 

이것이 90년대 레트로~! 금요일 오후의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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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2-09-07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님, 가위!

Arch 2012-09-07 21:00   좋아요 0 | URL
금요일인데 저는 아직 회사에요. 내일 쉰다는 것만으로 무척 달뜨는 금요일이에요.

맥거핀 2012-09-08 23:51   좋아요 0 | URL
금요일인데 그렇게 늦게까지 잡아두는 회사는 참 안좋군요. 잘 쉬고 계시는지 모르겠네요. 좋은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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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태풍으로 비가 쏟아지는 날 이사를 했다. 오기로 했던 포장이사 업체에서는 늦었고, 예정했던 인원보다 사람이 덜 왔으며, 그래서 그랬는지 일을 대충처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건 몰라도 책짐에는 신경을 써달라고 얘기했으나 책의 상당부분이 물에 젖고 말았다. 며칠동안 책의 물기를 닦아내고 다시 정리하자니 짜증도 나고, 포장이사 업체 사람들에게 (속으로) 욕도 퍼부었는데, 계속 정리하면서 주섬주섬 책을 읽다보니 다 부질없는 화처럼 느껴진다. 책으로 인해 화가 나고, 책으로 인해 마음이 가라앉는다. 마음은 가라앉았는데, 날씨는 여전히 흐릿하다. 날씨든 뭐든 흐릿한 날들이 지나야 맑은 날이 오는 법.

 

 

 

역사의 증인 재일 조선인 - 한일 젊은 세대를 위한 서경식의 바른 역사 강의 / 서경식 / 반비

 

이 책은 그간 디아스포라라는 주제로 여러 이야기를 꾸준히 얘기해온 서경식 선생이 일제강점기 이후 재일 조선인의 역사에 대해 서술한 글이다. 책은 먼저 '재일조선인'이라는 용어부터 정확히 규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왜냐하면 '재일조선인'이라는 말이 가지는 이미지에는 우리가 흔히 가지는 어떤 편견들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우경화문제, 친일과 극일, 반일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로 가득한 한일관계의 문제 외에도 조선족 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우리사회에도 다른 의미에서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다. 물론 서경식 선생의 책이라는 점에서도 닥추.

 

 

탐욕과 생존 - 영화, 분쟁을 말하다 / 김용성 / 책보세

 

영화는 작은 카메라로 오랫동안 거대한 것에 대해서 말해왔다. 그 중 하나는 거대한 분쟁이나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인데, 많은 전쟁영화들은 전쟁 그 자체의 스펙타클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 전쟁의 특정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그 폭력에 맞서서 자신과 주위사람을 지키려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물론 그럼으로써 모든 전쟁을 다루는 영화, 분쟁을 다루는 영화는 (편파적인) 특정의 관점을 담기 마련인데, 각 영화에 담긴 특정의 관점이 어떠한 것인지를 살펴보는 것에서도 흥미로울 것 같다.

 

 

20세기의 매체철학 -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 심혜련 / 그린비

 

20세기는 또한 '매체'의 시대이기도 했다. 마셜 맥루한이 말했듯 이른바 '구텐베르크 은하계'가 종말하며, 20세기에는 온갖 새로운 매체가 출현하였으며, 21세기는 그보다 인간에게 밀착된 다른 매체들이 출현을 대기중이다. 지하철에 있는 사람의 최소 50% 이상이 타인이나 풍경이 아니라 자신의 손안의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 있는 이 때, 인간이 매체를 벗어날 수 있는가, 혹은 가상과 실재를 구분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은 거의 무의미한 것처럼 여겨진다. 이제 곧 새로운 매체들의 공습이 시작될 이 때, 지나간 20세기의 매체들을 둘러싼 질문들을 살펴보는 것은 앞으로 올 우리의 고민들을 덜어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영화 이론 - 1945~1995년의 영화 이론 / 프란체스코 카세티 / 한국문화사

 

사실 지난 50년 동안의 영화에 대한 이론들을 한 권에 몰아넣는 것은 무모한 시도에 가깝다. (그 앞과 뒤를 충분히 덜어냈는데도 그렇다.) 영화는 흔히 얘기하듯이 종합예술로서 현존하는 거의 모든 예술과 그 예술의 이론들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대중예술로서 철학이나 심리학, 사회학 등과도 깊숙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보다 더 무모한 시도는 이 책을 추천도서에 집어넣는 것일 것이다.

 

 

오감으로 쉽게 찾는 우리 나무 / 이동혁 / 이비락

 

현대인의 삭막한 눈에는 사실 모든 나무가 그게 그걸로 보이기는 한다. 이 책은 사계절에 걸쳐 우리나라에 주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오감(五感)을 이용하여 구분할 수 있도록 충분한 도판과 함께 일별한 책이다. 저 멀리에 있는 자동차는 어디 회사의 몇년식인지 잘도 구분하고, 옷과 가방은 어디 메이커의 이월상품인지 아닌지도 잘도 찾아내면서 우리는 나무에 대해서는 거의 까막눈에 가깝다. 이제 가을이니 나무도 보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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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09-04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주 토요일에 대구미술관에 하는 서경식씨의 강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맨 처음 소개된 서경식 씨의 신간이 반갑네요. ^^

맥거핀 2012-09-04 16:39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저도 서경식 씨 책이 나오면 늘 읽었었는데(예전에 cyrus님께도 한 권 받았었죠..^^), 강연에 참석해보면 좋겠네요. 이제 cyrus님 개학이시니 또 바빠지시겠어요.

2012-09-04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경식 씨의 글은 서늘해서 좋아요. (<소년의 눈물>하고 <나의 서양미술 순례> 두권만 읽어봤지만..)이제 영화 관련 책 막 추천하는군요.ㅎㅎ 여튼 추천 책의 분야가 매우 다양합니다요~.
그나저나 책을 적시다니, 그거 포장이사 변상 대상이 아닌가요? ㅠ.ㅜ

맥거핀 2012-09-06 00:06   좋아요 0 | URL
네..얼마 안남았으니까 그냥 이것저것 재지말고 내가 읽고 싶은 책 막 추천하기로 했습니다.^^

근데 뭐 문제가 생겨도 참 보상받을려고 해도 귀찮은 일이라..다만 사람이 덜 온 부분은 확실한 계약 위반이라, 그 부분만 조금 돈을 적게 주는 걸로 했습니다. 뭐 어쩔 수 없지요.

프레이야 2012-09-05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필 태풍 온 날 이사하시게 됐군요. 일자가 정해져 있어 변경하기도 어려우셨을테고요.ㅠㅠ 책이 젖어 어째요.ㅠ 책을 제일 싫어하더라고요, 포장이사업체 사람들이요. 두 가지 책을 담아갑니다. ^^

맥거핀 2012-09-06 00:08   좋아요 0 | URL
이사라는 게 한 번 날짜가 정해지면 여러 가지가 걸려있어서 그냥 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죠. 아마 이사업체 사람들로서도 비오는 날씨에 책도 많고 해서 여러모로 짜증이 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여러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죠.^^ (덕분에 재정리하면서 있는지도 몰랐던 책들을 다시 챙기게 되었습니다.) 관심을 가지실 만한 책이 있다니 좋군요.

Shining 2012-09-05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섬님 말씀에 공감. 책이 젖으면 보상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음, 저는 그래본 적이 없어서 모르지만; 아마 그래야 할 것 같은데_- 책이 젖다니! 이건 재앙이잖아요!

눈이 오는 날 이사해본 적은 있는데 태풍이라니; 고생 많으셨습니다(꾸벅).

아, 맥거핀님. 저 영화책 좀 추천해주세요! 부담 갖지 말고 그냥 소개해주시는 마음으로 부탁드릴게요 :)

맥거핀 2012-09-06 00:2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원래 일기예보에는 볼라벤이 지나가고 다음이라서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지 못하게 태풍 하나가 따라올라 오더군요. 일이 뭐 안되려면 별 일이 다 일어나는 법이죠. 암튼 위로 감사합니다.^^

영화책은 뭐 저도 많이 모르기는 한데, 요 옆에 '마이리스트' 눌러보시면 예전에 '씨네21'에서 영화책 추천한 것을 제가 리스트로 만들어둔게 있어요. 거기에 책을 저도 다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자크 오몽의 <영화와 모더니티> 같은 것은 필수적으로 읽어봐야할 책이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책은 하스미 시게히코 외에 몇몇 사람들이 쓴 <나루세 미키오> 같은 것들 좋았구요. 이 책이 들어가 있는 '한나래 씨네마' 시리즈도 괜찮은데, 그 중에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는 정말 재미있고, 영화에 대해 새롭게 보는 시각을 상당히 길러주는 책이라고 봅니다. 정말 기존에 가지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들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구요..(근데 문제는 이 책이 절판이고, 상당히 구하기 어렵다는 점..저도 도서관에서 봤습니다.^^;)

최근에 봤던 책으로는 <필름메이커의 눈> 같은 책들이 여러 촬영기법들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맥스무비에서인가 나온 씨네마톡 모아놓은 책도 재미있었고요. 근데 뭐 이미 이 책들 거의 보시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제가 괜히 쓸데없이 긴 말 늘어놓지 않았나 싶네요. 추천이라기 보다는 그냥 제가 재미있게 읽었다, 그 얘깁니다.^^;

Shining 2012-09-06 11:56   좋아요 0 | URL
하하^^ 저를 과대평가 하고 계시군요(후후후후후). 말씀하신 책은 거의 읽지 않았습니다!(자랑은 아닌데...) 영화책은 예전에만 좀 읽은데다 요새는 거의 특정 감독이나 배우에 대한 책만 읽은 것 같습니다. 마이리스트에 목록은 전에 본 적 있습니다. 말씀 안 드리고 몰래 컨닝했어요*-_-*

제가 다니는 도서관은 다른 건 다 좋은데 예술분야 책이 너무 적어요. 수요가 없어서 공급도 없는 식인데 뭐, 수요가 없으니 책 상태만은 엄청 좋지만요^^

추천, 이라는 말은 좀 막연하고 짜증스러운 표현이라 사실 쓰고 좀 갸우뚱했는데(소심합니다 저) 좋았던 거, 골라주시니 좋군요. 또 생각나는 거 있음 말씀해주세요 :)

맥거핀 2012-09-06 22:00   좋아요 0 | URL
아..저는 이사오기 전에는 도서관이 바로 옆에 있는 상당히 좋은 환경에서 살았었는데, 이사오고 난 후에는 상당히 도서관이 멀어서, 예전처럼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게 될는지는 모르겠네요. 근데 서울의 큰 도서관의 책들은 대체로 상태가 그다지 좋지가 않아요. 말씀드렸던 <히치콕과의 대화> 그 책도, 특정 영화에 대한 부분이 다 누가 뜯어갔더군요.

지금 당장은 생각나는 책이 없으니, 생각나면 또 말씀드릴께요. 근데 사실 영화에 대해서는 고전에 대한 글들도 좋지만, 최신 영화잡지 같은 것에 실린 따끈따끈한 글들을 죽 읽는 것도 괜찮은 것 같기는 해요. 시간나시면 도서관 잡지 코너에서 <씨네21>이나 <무비위크>, 혹은 <영화평론>의 평론글들만 죽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키노>가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아..매년 나오는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시리즈도 있어요.^^;) 소설도 단행본으로 나온 것보다 계간지에 실린 소설들 중에 진짜 좋은 것들 많지 않나요..

아이리시스 2012-09-06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그.. 저도 저거랑 저거..저는 그냥 제가 사서.. 서경식..맨날 들었다놨다 하다가 이젠 좀 읽어보려고요. 근데 이번 책은 시작하기에 뭔가 심하게 학술적인데.. 제가 하는 게 다 그렇죠 뭐.

p.s. 조만간 두 분 영화평론 등단하는 겁니까? (좋겠다 좋겠다)
그러면 저도 마이리스트 훔쳐보러-_-;;

맥거핀 2012-09-06 22:26   좋아요 0 | URL
열심히 훔쳐보고 계심? (저는 아니고, 아무래도 Shining님이 등단욕심이 있으신 모양...;;)

근데 서경식 선생님 책 저거는 제목만 저렇지 그렇게 학술적이지는 않을거에요. 아마도. 어렵고 무거운 얘기를 상당히 쉽게 하시는 재주가 있으신 분이라,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생각합니다.

Shining 2012-09-07 01:16   좋아요 0 | URL
어머어머. 아이님, 맥거핀님이 은근슬쩍 저한테 떠넘기고 계세요~(이른다ㅋ)

등단욕심, 가당치도 않으십니다-_ㅠ 필름 2.0폐간 후엔 가끔씩 씨네21만 읽는데 (이상하게) 성에 차진 않아요;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이 시리즈 재밌죠ㅋ 저도 도서관서 몰아서 읽었어요 :)

키노, 진짜 그리운 이름이네요.

맥거핀 2012-09-07 03:00   좋아요 0 | URL
네..자고로 뭐든지 일단 떠넘기는 게 진리라고, 어떤 직장선배가 몰래 가르쳐줘서 열심히 실천중입니다..; (물론 가르치면서 그가 나에게 '쓸데없는 것을 가르치기'라는 걸 떠넘기기는 했습니다만..)

뭐 사실 씨네21은 요새는 거의 문화잡지 비스무리하게 되버려서, 영화에 대한 좋은 글이 그다지 많지는 않습니다만, 아직 전영객잔은 그래도 쓸만해요. 김혜리 씨나 정한석 씨 글도 좋고..저는 사실 이상하게 필름 2.0에는 그다지 정을 못 붙여서..
 

1.

최근에 몇 권의 책을 샀다. 일반서점에서도 샀고, 온라인으로도 샀고, 알라딘 중고서점에서도 구매했다. 곧 이사를 가야할 상황이라 있는 짐도 줄여야할 상황인데, 자꾸 책 짐만 늘어나고 있으니 문제는 문제다. 여러 권의 책 중에서 가볍게 짬짬이 읽고 있는 책은 중고서점에서 산 <내 인생의 영화>라는 책이다. 사회 각계각층의 유명인사들(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은 문화계쪽)이 선정한 각자 나름의 '내 인생의 영화'들과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묶은 책인데, 예전에 <씨네21>에서 연재될 때 조금씩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렇게 한데 모아 읽으니 꽤 새롭고, 이 사람이 이런 영화를 선정했네, 싶은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소설가 배수아 씨는 심플해서 무시무시했던 영화 <헨리: 연쇄살인범의 초상>을, 시트콤의 대부 김병욱 PD는 <월하의 공동묘지>와 <흐르는 강물처럼>을 내 인생의 영화라고 꼽았다. (이 두 영화의 유일한 공통점은 제목이 일곱자라는 것 외에는 없는 것 같다. 이 두 개의 영화는 김병욱 시트콤의 이질적인 두 개의 필수적인 요소의 결합, 특징 있는 캐릭터와 기묘한 슬픔의 결합을 연상시킨다.)

 

읽다보니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의 영화가 아니라, 내 인생의 영화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는데, 여러 영화가 스쳐 지나가는데 딱히 이거다 싶은 영화는 없다. 아니 그것을 어떤 기준으로 정해야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영화를 내 인생의 영화라고 말해야하는 것일까, 삶의 기억할 만한 순간 속에서 우연히 스쳤던 영화를 내 인생의 영화라고 말해야하는 것일까(예를 들어 여자친구와의 첫 데이트에서 보았던 영화같은 것),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영화를 내 인생의 영화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다만 기억할 수 있다면 말이다). 어쩌면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해서 어쩌면 '내 인생의 영화'라고 불릴만한 영화를 만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아직 나에게는 '내 인생의 영화'를 만날 기회가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대단한 행운이 아직 남아있다고 믿고 싶다.

 

2.

올림픽이 끝났다. 어쩌다보니 올림픽을 화면보다는 뉴스로 더 자주 접했는데, 올림픽 기간의 언론은 일종의 자기분열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예를 들어 올림픽에서 메달의 가치는 어떠한 것으로도 바꿀 수 없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태연하게 메달리스트들이 앞으로 받게 될 포상금이나 여러가지 혜택에 관해 면밀하게 조사한 리포트를 늘어놓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으며, 올림픽은 전세계인의 축제, 지구촌의 화합의 장이라고 말하면서, 재빨리 경기에 진 상대편 나라의 언론이나 네티즌들의 반응을 살며시 조롱조로 늘어놓는 것이 그들의 몫이었다. (즉 한 경기에서 이겼을 때 우리는 승리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 상대방의 소위 '멘붕'을 즐긴다. 반대의 경우라면 그러므로 당연히 패배에 대한 과도한 비난이 이어진다. 이 비난의 이유는 간단하다. 나에게 '멘붕'이 오게 만들었다는 것. 나를 '기분나쁘게' 만들었다는 것. 나를 기분나쁘게 했으니까, 너는 욕을 먹어라, 이 얼마나 저열한 이야기인가. 동시에 언론들이 이를 '성숙치 못한 반응'이라며 매도할 때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 미성숙을 누가 부추기고 있는지.) 물론 이런 자기분열은 그리 새로울 것은 못된다. (예를 들어 '진품명품'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돈으로 살 수 없는 문화재의 가치 어쩌구 한 다음에 바로 그 물품의 가격을 매긴다.) 그러나 올림픽이라는 그들의 명대로라면 '화합의 장',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태도로 비추어 볼 때) '준전시체제'가 우리 머리 속의 다른 무엇인가를 작동시키는 모양이다.

 

확실히 올림픽이라는, 나라의 대표 선수들을 내보내놓고 벌이는 총성없는 대리전은 우리 안의 다른 무엇인가를 작동시키기는 한다. 그 중의 하나는 예를 들어 집단방어의식 같은 것이 아닐까. 예전 미국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이 한국계인 것이 밝혀졌을 때 이상한 사죄의 논리같은 것이 빗발쳤었다. 그 때 누군가가 이는 한국인의 집단방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글을 썼었는데, 올림픽에 대한 몇몇 특이한 반응들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배드민턴의 져주기논란과 같은 것들 말이다. 이번 배드민턴 경기에서 져주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져주기로 인해 좋은 경기를 관람할 권리를 관객 및 시청자들이 놓치기 때문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에 관계된 다른 선수들이 경기진행상에서 피해를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과도한 비난에는 때로 다른 것들이 스며들어가 있다. 한국인으로서 부끄럽다, 나라 망신을 시켰다, 는 식의 논리가 그것이다. 올림픽이라는 국가 간의 경쟁에 한 국가집단으로서의 사고는 어느 정도 피할 수 없겠지만 이런 것은 조금 지나친 것이 아닐까. 이런 것에 현 정부에서 늘 강조하는 '국격'같은 것에서 풍겨나오는 구린 냄새가 연상된다면 내가 지나친 것일까.

 

3.

개인적으로 올림픽에 대해서 흥미로웠던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올림픽을 둘러싼 언론들의 반응이나 담론들은 근대적인데 비하여(그래서 '근대올림픽'이라고 불리는지도), 경기에 대한 부분들은 다른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서는 것 같다. 이번 올림픽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거의 모든 경기에 전자적인 판정, 비디오 판정 같은 것이 도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격이나 펜싱, 육상, 수영과 같이 기계장치에 의존해왔던 스포츠들도 그렇고, 그간 인간 심판의 판정에만 의존해왔던 레슬링, 하키, 태권도 같은 종목들에도 비디오에 의한 판정이 당연시되고 있다는 점. 이는 어떤 경계선상에 놓여 있다는 느낌이다. 즉 인간심판이 비디오를 보고 자신의 판정을 수정하는 현재의 형태는 필연적으로 점점 인간심판을 배제시킬 것이고, 언젠가는 완전히 전자적인 장치만으로 모든 스포츠의 판정을 내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인간 심판이 먼저 판정을 내리고, 비디오를 보고 판정을 수정하는 현재는 그 과도기의 어떤 중간지점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궁금해지는 것은 그 먼 미래가 되면, 그 때는 오심논쟁이 사라질 것인가라는 부분이다. 그 때가 되면 그 전자장치의 조작여부를 가지고 오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그러므로 신아람 선수 사건은 일종의 전조인 것이다.) 하루키던가 다른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새롭게 나타난 편리함은 늘 부수적인 다른 불편함을 야기시킨다고. 아마 판정의 기술은 현대적이 되어도, 그 판정의 기술을 보는 우리는 근대적이므로 (새로운 형태의) 오심논쟁은 또 이어질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이 올림픽 영상들의 미학적인 부분이다. 엑스포와 마찬가지로 올림픽은 근대적인 경쟁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기술적으로는 늘 새로운 발전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예를 들어 중계기술의 발달과도 관련이 되는데, 그것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다른 많은 관련된 부분, 예를 들어 영화같은 것에도 상당히 영향을 미쳤다. 이번 올림픽에서 인상에 남는 장면 중의 하나는 단연 양학선 선수의 체조 경기에서 보여준 두 개의 시점을 고속카메라로 이어붙이는 장면일 것이다. 기존의 슬로비디오가 시간의 한계를 보는 이에게 극복하게 해주었고, 여러 시점에서 다양하게 한 순간을 촬영한 분할화면이 공간의 한계를 보는 이에게 극복하게 해주었다면, 이 장면은 동일한 시간의 두 개의 이질적인 시점을 느리고 부드럽게 이어붙임으로써 시공간의 한계를 보는 이가 단번에 극복하도록 해주었다. 즉 그 장면을 집안에서 관람하는 시청자들은 현장성이라는 특권을 포기하는 반면에, 시공간을 뛰어넘는 기이한 체험을 할 특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새로운 기술의 체험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의 체험만이 아니라 새로운 미학의 가능성에 대한 체험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기존의 단순한 화면이 아니라 새로운 화면을 통해서 우리는 '양1' 기술의 아름다움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3D로 인해 우리가 새롭게 얻게 된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기술은 미학을 이끌고, 미학은 기술을 성찰(반성)하게 하여 새로운 방식의 기술을 불러낸다.

 

4.

그러고보니 최근에 영화에 대해 거의 이야기를 못했다. 사실 본 영화가 거의 없는 탓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몇 개의 영화는 챙겨보긴 했다. <도둑들>도 봤고, <다크나이트 라이즈>도 봤고, 그 사이에 <락 오브 에이지>도 봤다. <도둑들>과 <락 오브 에이지>는 비슷한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다. '케이퍼 무비'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고, 또 그런 식으로 광고했던 <도둑들>에서 가장 기이한 점은 그 '케이퍼'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일단 나를 비롯한 많은 관객들이 기대했던 것은 그 다양한 캐릭터들의 적절한 조화, 그 손발이 딱딱 맞는 환상의 앙상블 아니었을까. 그러나 막상 가장 중심되는 '도둑질'은 그 예고편(미술관의 유물을 훔치는 초반 씬)의 도둑질만도 못했다. 지루한 금고따기와 갑자기 어울리지 않는 영웅본색식 총질이라니(뭐 달화 형님은 멋졌다). 반면 <락 오브 에이지>는 자신들이 해야할 것은 무엇인지 어느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 뮤지컬 영화에서 복잡한 심리게임이나 예상을 뒤엎는 반전 같은 것은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크게 문제될 건 없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유치한 스토리나 뻔한 이야기가 더 좋을 수도 있다. 문제는 춤과 노래다. 춤과 노래는 얼마나 어깨를 들썩거리게 하고, 얼마나 따라부르게 만들며, 얼마나 떠나간 옛사랑을 떠올리게 하는가. 적어도 <락 오브 에이지>는 자신의 주종목에서만큼은 최소한의 몫을 해낸다. 물론 락 넘버들이 워낙 좋은 탓이지만. 극장 안에서 'More Than Words'가 울려퍼지는데 안 따라부를 재간이 있나.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대해서는 그 전편들을 복습해보고 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전편들의 기억이 가물거린다. 라스 알굴 이야기도 <배트맨 비긴즈>에서 좀 봐야할 것 같고..다만 베인에 대해서는 좀 실망하긴 했다. 아이맥스로 결국 보지 못한 것도 아쉽고...)

 

그래서 나름 마음을 먹고 '시네마디지털 서울(CINDI)' 영화제의 영화 몇 편을 예매했다. 무엇보다도 기대되는 것은 아오야마 신지의 <도쿄 공원>. 라울 루이즈의 개막작을 놓친 것은 아쉽지만, 홍상수의 단편이나 아핏차퐁의 단편들도 기대가 된다. 늘 이럴때는 일보다는 의지나 체력이 더 큰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의지를 다지는 의미로 글을 남겨둔다.

 

5.

배가 고파서 뭔가를 더 쓰지를 못하겠다. 김밥천국에서 먹은 음식이 거의 꺼져가는 모양이다. 김밥천국의 음식은 딱 김밥천국스럽다. 그러니까, 음식모양새도 뭔가 어설퍼보이고, 다 먹고나면 왠지 배가 아플 것 같은 느낌인데, 먹다보면 의외로 먹을 만한 맛이고 느낌도 나쁘지 않지만, 여력이 있다면 다른 것을 먹는 것이 낫겠다라고 느껴지는 맛이랄까. 책으로 치자면, 저자의 이력도 신통치 않고, 책 디자인도 1980년대 풍인데 읽다보면 의외로 재미가 있는 책이지만, 그래도 구입안하고 서점에서 읽어서 다행이야, 라는 느낌이 드는 책이랄까.

 

아까 올림픽을 대하는 언론들의 자기분열에 대하여 말했지만, 정작 자기분열이 오는 것은 내가 아닐까. 잠이 오지 않는 것은 다른 이유인데, 이야기는 가장 중요한 그것을 빼고 전혀 중요하지 않은 다른 이야기만 하고 있다. 자기분열은 전혀 다른 별개가 아니라, 대부분 다른 하나를 가리기 위해 나머지 하나가 만들어지니까. 이 글도 다른 하나를 가려 잠을 자기 위함이지만 이상스레 정신만 맑아진다. 그래도 잠을 자둬야만 하겠지. 뱃속의 김밥천국도 이제 문을 닫았고, 시간은 4시를 향해서 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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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8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1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2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 맥거핀님은 아직 '내 인생의 영화'를 만날 기회를 남겨두고 있는 대단한 행운을 가지고 있으신 듯 하네요. 딱 떠올라야, 내 인생의 영화니까! (저도 아직 기회가 있어요~)
근데 태어나서 본 첫 영화, 첫데이트 때 본 영화들도 궁금하네요~?^^
<내 인생의 영화>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어요. 내가 인상적이었던 건, 포르노를 탐닉한 감독이 의외로 많더라는 것. 하드 고어 무비도 그렇지만... (기억이 맞나 모르겠네요.)

올림픽 방송의 자기 분열.. 재밌네요. 근데 말씀하신 집단 방어 의식도 그렇고, 좀 싫어요. 진짜 이런 게 창피하다니까요. 내 소속이..(근데 이것도?!)

전 <도둑들>의 그 삐걱거림이 좋았어요. 장르에 충실하지 않고, 감독이 하고 싶은 거 막 다 넣은, 그 B급무비같이 지 멋대로인 것. 그러면서 또 어떤 면에선 완전히 웰메이드이죠~. 여튼 저에겐 <도둑들>이 두 번 보고픈 오락영화였지요.

여튼 잠이 안 오는 밤은 늘 글을 쓰는 걸로 합시다~~.ㅎㅎㅎ (늘 재밌게 쓰시니까~)

맥거핀 2012-08-24 01:22   좋아요 0 | URL
늘 글을 읽고 이렇게 성실하게 댓글을 달아주시는 섬님이 계시니 글을 쓸 재미가 나는군요.^^

포르노나 하드고어 같은 것들이 아무래도 충격적으로 인상에 남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 않을까요? 내 인생의 영화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저도 처음본 제목없는 비디오 같은 것은 잘 기억하고 있어요.ㅎ 태어나서 처음본 영화는 아니지만, 처음 극장의 기억이 제대로 나는 것은 어머니 따라가서 본 구니스, 람보 동시상영관이었는데요.(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동네 재개봉관이었던 듯..람보2였던 것 같아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구니스만 보고 나와야 하는데 저희 어머니가 워낙 액션 같은 걸 좋아하시는 터라 넋을 놓고 람보를 보셔서 저도 같이 봤던 기억이 나네요. (첫 데이트 영화는 비밀로 해두지요.^^)

근데 올림픽이 특별히 유별나긴 하지만, 우리 방송 혹은 우리 사회의 자기분열은 새로울 것도 아니어서요. 예를 들어 오늘 글샘님인가 글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우리 사회의 힐링 열풍에 대해서 말이죠. 저는 '힐링, 힐링하는 거 보면 참 우리 사회에 다친 사람들이 많나보다'하는 시니컬한 쪽이었는데, 생각해보면 좀 웃기긴 해요. 그 다친 게 다 무엇 때문인지..맨날 1등 어쩌구, 경쟁 어쩌구 하니까 사람이 다쳐 나가는게 아니겠어요. 근데 그걸 바로잡을 생각은 안하고, 이제 다쳤으니까 힐링..하는 게 좀 웃기긴해요. 뭐 그런 것도 자기분열이라면 자기분열이죠.

아..그거 좋은 표현입니다. 삐걱거림. 영화가 좀 삐걱거리긴 하죠. 뭐 섬님 말씀대로 그게 좋은 측면도 있고, 좀 아닌 부분도 있긴 한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최동훈 감독이 B급 지향보다는 말그대로 잘짜인 웰메이드를 좀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도둑들>이 일종의 선물세트를 지향한다면 추석때 급조해서 파는 싸구려 종합과자선물세트가 아니라, 확실한 한우선물세트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뭐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런 능력도 있는 감독이라고 생각하구요.

요새 그럼 다시 도시로 복귀하신 모양이네요. 도시 생활은 어떤가요? 좀 도시가 삭막하기는 하죠. 새벽 가까운 시간에 지하철을 타면 늘 삭막한 기분이 들어요. <올드보이>에서 커다란 개미가 지하철에 있던 씬이 생각이 나요. 늘.

2012-08-24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맞아요. 최동훈 감독은 비급 영화 장기인 감독이기보단 웰메이드를 잘 할 감독이라고 저도 생각해요. 근데 이번에 자신감과 열정이 넘쳤던 걸까요?ㅎㅎ 다음 번엔 웰메이드로 잘 뽑힌 영화를 만들어 주려나?! 싶기도 하네요..
(한우선물세트..ㅎㅎㅎ)

저의 도시 생활은 삭막하고 붐비는 출퇴근이 없어서, 쾌적하고 좋네요. 농사일에 비하면 이 따위 직장일이야 다 노는 겁니다. 모두 같이 노는 거라니까요!ㅎㅎ -그러니까 도시 생활의 여유와 쾌적을 즐기고 있다는 말..^^

맥거핀 2012-08-26 17:49   좋아요 0 | URL
아..그것 참 다행이군요. 출퇴근이 없는 생활이라면 훨씬 낫죠. 아마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생각할텐데, 출퇴근이 직장 생활의 한 5분의 1, 어쩌면 그 이상을 잡아먹는 것 같아요. 아무튼 직장생활도 뭐 그정도라시니 참 어떤 의미에서는 부럽군요. 어디 가서나 잘 적응하시는 섬님이 대단한걸까요...

Shining 2012-08-24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님, 저 왔습니다(굽신굽신). 이렇게 재밌는 글도 안 읽다니, 전 대체 뭐하고 지냈나 싶습니다, 저 없을 때 이런 흥미진진한 글 날리시기에요?(뻔뻔합니다ㅋ) 맥거핀님 삼일에 한 번 씩은 잠 안오시면 좋겠다, 이런 글 자주자주 읽게_-*(매일 그러시면 건강 해치니까 삼사일에 한 번ㅋ)

자기분열, 올림픽, 언론 모두 공감합니다. 섬님에게 답글 달아드린 바로 윗 글에 '힐링'도 그렇구요. 저도 비슷한 생각은 하는데 저는 왜 맥거핀님처럼 조리있게 글을 못 쓰죠_- 그저 공감한다는 말만 날립니다.

저 책 몇 년 전에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보니 저도 '내 인생의 영화'는 모르겠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있겠지만 그건 '곰곰이 생각해보면'이라서요. 좋아하는 영화와 나를 꿰뚫은 영화는 다른거니까요.

신디에선 영화 많이 보셨나요? 결국 라이즈를 아이맥스로 보시지 못해 저도 안타갑네요. 오호 통재라ㅠ

맥거핀 2012-08-26 17:55   좋아요 0 | URL
옛날에 누군가가 그런 이야기한 것 같은데, '내 인생의'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영화나 음악 같은 걸로는 너무 약한 거 아니냐고 그러더군요. 근데 저는 도리어 인생의 아이스크림 같은 것은 있거든요. 예전에 군대에 있을 때 첫 휴가나왔을 때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은 거에요. 우리 동네에는 당시 베스킨라빈스도 없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버스 타고 가서 먹고왔던 기억이 나네요. (그 때 우리 누님이 얘가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지? 하고 측은한 눈길로 보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니 뭐 내 인생의 영화라는 것도 있을 수 있고, 아마도 죽기 전에 한 번은 만나겠지요. Shining님도 언젠간 아마 만나시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디에서는 몇 개의 영화를 보고 간단히 메모를 해두긴 했습니다만, 언제가 되어서야 기록에 남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아직 페막작 하나가 화요일에 남아있기는 합니다만, 태풍 크게 오면 안갈참..;;) 일단은 서평단 리뷰도 아직 밀려있는 참이라..다크나이트도 뭔가 기록을 남겨두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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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의 나날들이다. 우리나라와 세계는 올림픽 특집, 인터넷은 티아라와 애국심 특집, 홈쇼핑은 '물건은 같지만, 이름만 바꾸기' 특집, 영화는 다크나이트와 도둑들 특집, TV 프로그램은 여름 특집과 매주 반복되는 다양한 특집들. 각종 특집 속에 특별한 생각 없이 상식으로 처리되어야 할 중요한 일들이 그야말로 스페셜하게 무시되는 것이 영 마음이 쓰리기는 하지만, 나도 이 특집에 숟가락 하나 올려본다. 이름하여 '밀어드리기' 특집(...). 이번 서평단 추천 도서는 다른 분들이 추천한 책 중에 아주 주관적 기준으로 밀어드리고 싶은 책을 골라본다. 규칙은 단 하나. 오늘 다른 분들 추천페이퍼에서 처음 본 책들만 대상으로 한다는 것.

 

 

 

폭력에서 전체주의로 - 카뮈와 사르트르의 정치사상 / 에릭 베르네르 / 그린비

 

nunc님이 추천해 주신 책 중에서 한 권. 누구나 평등한 좋은 세상을 지향한다고 만들어진 사회였던 소련의 폭력적인 현실을 놓고 벌인 카뮈와 사르트르의 논쟁을 다루는 책이다. 책은 이 논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논쟁에 내재된 카뮈와 사르트르의 근본적인 관점의 차이까지 나아가는 듯 하다. 이 근본적인 관점의 차이와 관련한 문제는 nunc님의 말대로 그저 과거의 것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족 기담 - 고전이 감춰둔 은밀하고 오싹한 가족의 진실 / 유광수 / 웅진지식하우스

 

빨간바나나님이 추천해 주신 책 중에서 한 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있는 가족이 때로 무섭고 지긋지긋한 것은 요즘의 일만은 아닌 모양이다. 하기는 현대와 달리 가족이 훨씬 중심에 있던 사회이자, 때로 한 인간의 활동 범위가 오로지 가족 뿐이었던 옛날이 어쩌면 더 끔찍한 일이 많이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토스터 프로젝트 - 맨손으로 토스터를 만드는 영웅적이고도 무모한 시도에 관하여 / 토머스 트웨이츠 / 뜨인돌

 

비의딸님이 추천해 주신 책 중에서 한 권. 그러니까 이것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맨손으로 재료를 '채취해서' 토스터를 만드는 얘기다. 물론 그게 꼭 토스터일 이유는 없다. 냉장고일 수도 있고, TV일 수도 있고, 비행기일 수도 있다. 다만 시간과 노력이 더 들어갈 뿐. 중요한 건 토스터가 아니다. 중요한 건 그 과정과 그 과정들에서 제기되는 자연과 사회에 대한 의문들이다. 처음의 인류는 자연에서 도구를 창조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겪었을까.

 

 

다시 쓰는 서양 근대 철학사 - 우리의 눈으로 본 철학사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 오월의봄

 

드림모노로그님이 추천해 주신 책 중에서 한 권. 예전에 비슷한 철학개론서들은 몇 번 본적이 있지만, 최근에는 별로 본 적이 없는 듯 하다. 우리나라의 젊은 철학자들이 우리의 시선으로 서양 근대 철학사에 대해 새롭게 살펴본 책이라고 하니 다시 기본적인 개념들을 공부하고, 최근에 제기된 새로운 시각들을 살펴보는 차원에서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 피에르 바야르 / 여름언덕

 

더불어숲님이 추천해 주신 책 중에서 한 권. 솔직히 책 소개를 읽어도 약간 아리송하기는 하다. 예를 들어 책 소개에 보면 '여행에 대한 고정관념을 허물고, 불륜에서부터 절도와 살인에 이르기까지 생의 특정 순간에 특정 장소에 있었다고 꾸며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적절히 처신하는 실천적인 방법들까지 조언하며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향해 나아간다'라고 되어 있는데, 그런 것과 여행의 진정한 의미가 무슨 관계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문학 작품이 자신이 묘사하고 있는 세계와 장소와 맺는 관계에 대한 것이라니 그건 흥미로울 것 같다. 모든 문학은 결국 그 세계의 어느 곳에도 있지 않는 가상의 세계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니까.

 

 

 

덧.

서평단 추천 도서를 정하려고 그간 보관함에 넣어두었던 몇 권의 책을 골라 이리저리 재보고 있던 중에 문득 꼭 이렇게 안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내가 고르려던 책들의 상당수는 선정될 확률이 거의 없는 책들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괜히 이 책들을 추천하려다 전혀 원치 않던 책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느니 다른 분들이 추천한 책 중에서 골라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밑에는 내가 고르려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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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2-08-05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밀어주기 특집..ㅎㅎ 정말 밀어주기 특집으로 괜찮으시겠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맥거핀님이 직접 고르신 책들도 괜찮다고 여겨지는데.. 이게 아무리 추천을 많이 받아도.. 너무 비싸면 또..ㅎㅎ 출판사에다가 담당자님이 직접 협상을 하는 방식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비싸면, 또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도 출판사 사정이 안좋으면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많았던 기억이 나네요, 풋. 그러니깐 어떤 책이든 설령 추천이 별로 안되더라도 뽑히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니.. 아래 책들도 괜찮지 않을까..요?

맥거핀 2012-08-05 23:47   좋아요 0 | URL
대장님 더운 날씨에 잘 지내시나요? 네..뭐 사실 어떻게보면 가연님이 말씀하신 것과 동일한 이유입니다. 이 추천이라는 게 뭐랄까..최근에 와서는 많이 추천된다고 해서 될 확률이 상당히 낮은 것 같아서요. (아마 최근 인문쪽은 계속 그래왔던 걸로 아는데..아닌가요?) 그러니까 추천이라는 게 이미 제 손과는 별개의 시스템으로 움직인다는 느낌이랄까요.

뭐 그러니 아무튼 계속 다른 분들이 추천한 책들을 읽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아서, 그럼 차라리 좀 더 적극적으로 다른 분들이 추천한 책 중에서 골라보자, 하고 탄생된 것이 이 페이퍼입니다.^^ 그리고 뭐 위의 책이나 아래 책이나 제가 아직 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고, 위의 책들도 나름 심사숙고해서 골랐으니까요. (사실 이렇게 쓴다고 괜히 시간이 더 걸렸네요.) 저로서는 후회없는 선택입니다.ㅋ

쓸데없는 잉여짓으로 생각해주세요.ㅋ

아이리시스 2012-08-05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 맥거핀님 진짜 웃겨요ㅋㅋㅋ

맥거핀 2012-08-05 23:48   좋아요 0 | URL
웃기기라도 했으니 다행이군요.^^

프레이야 2012-08-06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님, 밀어주기 특집!! 좋은걸요.ㅎㅎ 더위를 날리는 페이퍼에요.^^
가족기담과 여행하기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저도 땡겨서
밀어드릴 수 있으면 함께 밀어드리고 싶어요. 숟가락 하나 얹기 ㅎㅎ

맥거핀 2012-08-07 16:51   좋아요 0 | URL
네..조금이라도 썰렁함을 드렸다면 만족합니다.^^
이런 여름에는 사실 딱딱한 책들은 눈에 잘 안들어와요. 에세이 팀이 부럽군요. 저도 읽고싶은 에세이 많은데..날씨가 정말 더워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기도 싫을 정도네요.;;

2012-08-06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의 서문과 컨셉도 재밌고 아이님과의 댓글도 웃겨요.
신간 추천도 '특집'화할 수 있군요. 흐흐흐

그러고보니, 안 될 거 뻔한 내 꺼 추천하느니, 남들 추천 중 내가 읽고 싶은 거 추천해서 차선책의 확률을 높이는 편이 낫겠군요.

맥거핀 2012-08-07 16:55   좋아요 0 | URL
뭐 그러나 특집은 원래 한번으로 족한 거라서, 다음번에는 원래 컨셉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근데 이상하게 원래 추천하려던 책 중에서 도리어 한권쯤 될듯한 분위기? 흐흐흐..)

시골은 여름나기가 어떤가요? 왠지 시골은 저녁에 평상에 누워 수박먹으면 더위가 다 끝날 것 같은 이미지...(이렇게 말하면 개콘에서 하는 개그처럼 "오해하지 마라. 우리도 에어컨 튼다!"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2012-08-14 08:40   좋아요 0 | URL
평상은 없지만 이웃집에서 준 수박을 먹으며, 아주 뜨거웠던 8월의 초의 열흘 정도 빼고는 시원하게 지냈어요. 물론 낮에 뜨거운 햇빛 아래 밭에서 일할 때는 더위를 피할 길 없었지만.. ("오해하지 마라" 하고 싶었지만..ㅎㅎ)
이제 시골생활도 막바지입니다. 이번 주말에 내려가요.
게다가 오늘부터 3일간 인천, 서울 다녀오고 하면 이제 밭일에선 손 뗐다고 봐야죠.. 그러니 진짜 시골 생활은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어요~~.

맥거핀 2012-08-17 03:58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시골생활이 이제 끝이군요. 시골은 가을철이 제일 좋을텐데 조금 아쉬우실지도 모르겠네요.^^

Shining 2012-08-07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가단 할 때 생각나네요^^ 처음에는 의욕있게 페이지도 다 열어보고 설레면서(?) 선정되길 기다렸는데 점점 내가 고른 책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두 번째 할 때는 다른 분들이 거의 고른 후에 페이퍼를 썼었거든요. 비정한 현실에 탄복_-

더워요 맥거핀님. 전 자동차도 안 타고 스프레이도 안 쓰니 에어컨은 조금 틀래요-_ㅠ

맥거핀 2012-08-09 15:19   좋아요 0 | URL
근데 거의 보면 모두가 원하는 1순위의 책보다는 2순위나 3순위의 책들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현실상의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기도 하겠습니다만, 어쩌면 세상일이라는 게 다 그런걸지도 모르겠구요. 근데 책 탓할 것도 없는게 요즘에는 거의 모든 게 무의욕중이라..책은 필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보고, 영화는 거의 보지를 못하고 있네요. 날씨도 날씨지만 마음상태가 역시 중요해요.^^

으헉..그러고보니 저는 지구온난화의 거의 주범격..-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