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인간 (Of Gods And Men), 자비에 보브와, 2010 

 

 

우리는 사실, 이 영화가 어떻게 끝나게 되는지 이미 알고 있다. 영화 포스터 뒷면에 있는 영화 배경 설명. "1991년, 알제리 정부와 반정부 이슬람 단체 사이의 무력충돌로 시작된 알제리 내전은 무고한 언론인과 외국인은 물론 민간인들에 이르기까지, 약 20만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참혹한 전쟁이었다. 영화의 배경인 1996년은 양 측의 대립이 최고조에 다다른 때로, 무차별적인 테러와 폭력의 난무로 인해 누가 언제 어디서 목숨을 잃을지 알 수 없는 긴장과 불안이 팽배해져 있었고 사건은 바로 그 때 일어났다. 1996년 3월 27일 새벽 1시 15분, 약 20명의 무장 괴한들이 티브히린의 수도원에 침입하여 일곱명의 프랑스 수도사들을 납치했고, 두 달 뒤 메데아의 한적한 길가에서 그들의 수급만이 발견되었다. 영화 <신과 인간>은 실제로 있었던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초점을 맞출 질문은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되는가?"는 아니다. 그렇다면, 필요한 질문은 "왜 그들이 그런 선택, 즉 피신하지 않고 수도원에 남는 선택을 하는가?"일까. 글쎄, 잘 모르겠다. 그것을 알 수 있을까. 즉 우리가 그들의 선택에 대한 이유를 듣는다해도, 우리가 그 답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즉 우리가 그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면, 2시간 동안 그들의 선택에 따른 고뇌를 보고 있을 이유가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를 선택해야 했던 수도사들과 마찬가지로 감독 자비에 보브와에게는 한 가지 선택이 필요했다. 그것은 이들을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 라는 영화적인 해석의 선택이다. 먼저 그것을 위해서 감독은 몇 가지의 세부적인 곁가지들(그러나 어떻게 보면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일 수 있는 것들)을 쳐낸다. 그 곁가지에 해당하는 질문들은 이런 것이다. 알제리 정부와 반군 중 어느 쪽이 선에 가까운가, 어떻게 보면 식민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이들 프랑스 수도사가 여기에 남는다는 것은 어떤 '정치적인' 문제가 있는가, 이 수도사들과 이 마을 사람들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등등의 질문들. 그러나 감독은 영화에서 그런 것을 묻지도, 파고들어 그려내지도 않는다. 대신 외부의 모든 것을 차단하고, 모든 것을 그들의 내면으로 집중시킨다. 수도사들에게 이곳을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의 문제는 누구의 강요나 권유로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외부적인 상황에 따른 선택이 아닌, 그들의 내면이 지시하는 선택이다. 즉 간단하게 말해서 그것은 영화의 제목대로 이들에게 신인가, 인간인가라는 두 가지의 선택지만 주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것은 이 부분이다. 영화의 제목은 '신과 인간 Of Gods And Men'이지만 영화의 방점은 내내 인간에 찍혀 있기 때문이다. 몇몇 힌트가 될 만한 장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영화의 첫 시작에 신에게 경배를 드리고, 성경 공부를 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한없이 엄숙하게 표현될 수 있는 장면이지만, 영화에서 선택된 장면은 누군가 헛기침을 하고, 하품을 하는 장면이다. 많은 경우의 수 중에 굳이 이 장면의 선택으로 영화의 시작을 여는 것의 의미. 수도사들이 납치범에게 끌려가는 극적인 순간에도 그러한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데, 가장 나이든 수도사가 살기 위해 침대 밑으로 숨어들어가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나, 뒤늦게 수도원에 온 수도사가 납치범들에게 나는 오늘 왔다(그러니 나는 잡아가지 말라)고 항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러한 선택의 하나일 것이다. 물론 가장 극적이고 대표적인 장면은 그들이 다가올 파국을 예감하고 최후의 만찬을 하는 장면이다. 감독 자비에 보브와의 선택은 이 마지막에서 그들에게 '백조의 호수'를 배경음악으로 들으면서, 어딘가에 고이 숨겨두었던 와인을 꺼내와 마시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 되고자 하는 백조들의 한맺힌 아름다움이 담겨 있는 음악을 들으며, 최후의 만찬을 엹은 미소와 함께 즐기는 이들의 모습은 영화 속 어떤 모습보다도 인간적이다. (그러므로 이 장면에서 꼼꼼한 장면 설계와 엄숙한 카메라워킹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장면은 인간적으로 보이면서도, 절대 가벼워서는 안되는, 숭고한 양식미를 갖춘 장면이어야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전체적인 샷의 구성도 흥미로워 보이는데, 예를 들어 영화 속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얼굴 클로즈업 같은 것이 그것이다. 물론 인물을 클로즈업하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고뇌를 드러내기 위해 영화 속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관습적인 샷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의 클로즈업은 부수적이면서도 중요해보이는 다른 효과를 가져오는데, 그것은 그들의 육체성을 드러내보이는 효과이다. 나이든 수도사들의 주름지고 깊게 패인 피부를 그대로 가까이에서 드러내보이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그들의 위치를 매번 환기시킨다. 이러한 클로즈업은 그들이 고뇌에 빠졌을 때 자주 활용되지만, 반면 그들이 고뇌를 표면 아래로 가라앉히고 미사를 드리거나, 신에게 경배를 표현할 때는 카메라는 늘 뒤로 빠진다. 이 신에게 경배를 드리는 그들을 뒤에서 보는 이 시선은 누구의 시선인가. 그들을 바라보는 신의 시선인가? 예를 들어 그들이 다가오는 헬리콥터 소리에 겁을 먹고 신에게 경배를 드릴 때, 카메라는 위에서 본 (부감)샷으로 그들과 수도원을 찍는다. 물론 이는 헬리콥터에서 본 시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어쩌면 신의 시선은 아닐까. 그리고 헬리콥터는, 아니 신은 그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어디론가로 떠나버린다. 오직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신이 아니라, 그 신에게 경배를 드리는 인간의 고뇌일 뿐이다.

 

 

 

자비에 보브와는 영화의 첫머리에 한 성경 말씀을 인용한다. 시편 82장 6, 7절. "너희는 신이며 높으신 분의 아들이다. 허나, 사람들처럼, 대관들처럼 죽으리라." 이것은 사실 자비에 보브와가 이 영화를 보는 법을 미리 관객들에게 일러두는 것이기도 하며, 그가 영화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거의 모든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처럼, 대관들처럼 죽는 것. 그러므로 이것은 순교가 아니다. 영화 속에서 그들 스스로가 말하는 것처럼, 그들은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며, 마지막까지 그 죽음에 저항하려고 했다. 그들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자신들을 믿고 따르는 마을 사람들을 버리고 떠났을 때의 부담감, 양심의 가책을 이길 자신이 없었던 것이며, 어쩌면 어떤 수도사의 고백처럼 갈 곳이 없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그들이 순교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납치범의 지시대로 그들의 메시지를 순순히 녹음기에 대고 읽어줄 이유가 있을 것인가. 이것을 다른 말로 하자면 순교는 신이 되려는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인간이든간에 다른 인간에게 '무엇을 위해 죽으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로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은 신일 것이다. 아마도 파괴의 신. 영화 속에서(혹은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죽고자 하는(혹은 죽음을 강요하는) 이들, 그래서 신에 가깝게 가려는 자들을 늘 조심하여야만 했다. 이들 수도사들은 신이거나, 신에 가까운 무엇인가여서 죽은 것이 아니라, 오직 인간이기 때문에 죽었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수도사가 수도사들의 리더인 크리스티앙에게 "이것은 가치 없는 죽음이 아닐까요?"라고 물을 때, 크리스티앙이 아니, 이것은 가치가 있는 죽음이며, 순교라고 말하지 않고, 최후까지 죽음을 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가치 없는 죽음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다른 말로, '가치 있는 죽음'이라는 것이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죽음'이란 없다(고 믿는다). 어떤 죽음이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오로지 파괴의 신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여기에서 처음의 질문, - 두시간 동안 이들의 '이해되지 않는 선택'에 따른 고뇌를 보려 애쓸 이유가 있는가 - 에 대한 답을 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그 이유는 '그 고뇌를 보려고 애쓰는 것'이야 말로 같은 인간인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신은 아마도 그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그들의 선택을 앞둔 고뇌를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직 신만이, 그리고 신에 가까워지려는 인간만이 죽음 앞에서 초연하며, 무엇인가를 위해 죽으라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우리는 적어도 그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들의 선택을 앞둔 고뇌를 이해할 수는 있으며, 어느 누구도 무엇인가를 위해서 죽을 수는 없다고 믿으며, 그렇게 말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은 철저히 인간으로서 선택을 했고,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인간 이상의 무엇인가에 가까워졌다. 그래서 그들은 마지막 우리에게 그런 편지를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결코 그런 죽음을 원치 않았으며, 무관심하게 버려진 자신들은, 모든 이를, 어쩌면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감사를 보내며, 심지어는 그들의 죽음 곁에 가까이 있었던 그들에게마저도 감사를 보낸다고. 물론 그들은 인간이니 결코 그 모두를 사랑할 수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까지도 그들이 '사랑하기 위해 애썼다'고 믿는다. 오로지 인간만이 애쓸 수 있으므로, 신은 결코 애쓰지 않으므로.

 

 

 

 

 

덧.

 

이 영화를 보며 자주 들었던 생각은 그 근원에 있는 것들이었다. 종교의 근원에 있는 것. 당신은 왜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까. 카톨릭 사제이면서도, 코란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상대방을 늘 이해하려 애쓰며, 이슬람과 카톨릭을 구분하지 않고, 말끝에 항상 아멘과 인샬라를 빠뜨리지 않는 이들을 보며, 종교의 근원에 있는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이는 종교만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아니 나는 왜 특정 정당을 지지하며, 어떤 철학을 공부하고, 어떤 소설들을 읽습니까. 그 근원에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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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4-09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영화.. 보고싶어요. 종교관련 영화들은 항상 흥미로워요. 종교에 적을 둔 적은 없지만 종교의 근원을 묻는 영화나 종교의 역할에 대한 영화에 항상 끌려요. 생각한 것보다는 더 스토리가 강하네요. 첫 문단은 몰랐던 내용인데요, 제목은 참 별로인 것 같아요. 신..........인간.......... 단조롭고 부담 백배.

주말 잘 보내셨죠?^^

맥거핀 2012-04-09 23:31   좋아요 0 | URL
아이리시스님 오랜만요.^^ 이 영화는 종교인들이 나오는 영화이긴합니다만, 특정 종교색이 강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영화같아요. 종교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인간으로서의 선택이란 것의 근원에 있는 가치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리뷰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것을 신념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구요.

근데 제목 저는 괜찮은 거 같아요. 단조로운 제목이긴합니다만, 심플하고 단적인 이 제목이 간단하면서도 묵직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이 영화에 어울리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이리시스님이 한 번 보시고 좋은 제목 추천해보세요.^^
 

1.

주말에는 주로 밀려있는 <씨네21>과 <한겨레21>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씨네21>을 한 권 다 읽고, 다시 <한겨레21>을 한 권 다 읽고, 다시 <씨네21>을 다 읽고, 다시 <한겨레21>을 다 읽고...주간지라는 것을 그렇게 읽어야할 의무란 없을 테지만, 이상하게 집어들면 처음부터 빼놓지 않고 모든 기사를 꼼꼼이 읽어야겠다는 이상한 의무감이 생겨난다. 어렸을 때 매일매일 신문을 장시간 읽었었는데, 그러고보면 예전에 신문을 읽을 때에도 나는 신문 1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차례차례 모든 기사를 읽었던 것 같다. 중간에 있는 경제면들 기사는 정말 재미가 없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모든 기사를 빠짐없이 읽고나면 이상한 만족감이 생겼고, 뭔가를 많이 알게된 듯한 착각에 휩싸이곤 했다. 뭐 글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주간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빼놓지 않고 읽는다고 해도, 그 중 기억에 남는 꼭지는 몇 개 뿐이지만, 나는 나머지 것들도 어딘가 머리 뒤쪽 잘 안보이는 틈에 조금씩은 들어가게 된다고 믿는 편이다. 그렇게 단편적으로 기억된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나중에 뭔가를 이야기하거나, 글을 쓰게 될 때 힘을 발휘하게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럴 때에는 처음 빛나게 기억했던 것들은 모두 그 빛을 잃어버리게 되고, 차곡차곡 쌓인 것들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그런데 요즘은 또 온라인 상으로 많이 글들을 읽게 되니 머리가 점점 다르게 재조직되는 것 같다. 도대체 온라인 상에 있는 글들은 어떻게 읽어야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읽어야 되는 것인지, 아니면 중간에 다른 색으로 강조되어 있는 부분을 먼저 보아야 하는 것인지, 사진이 들어간 부분을 먼저 읽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 밑에 댓글부터 먼저 읽어야 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굳이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반짝반짝하는 것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것들을 먼저 읽어버리게 되고, 글의 전체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점점 요원해진다. 아니, 어쩌면 내가 아직도 온라인 상에서의 글들을 조직하는 법에 대해 익숙치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PC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스마트폰이 나오고, 그리고 그 안에서도 트위터가 있고, 카톡이 있고, 사진으로 말하기(카카오스토리) 같은 것이 있으니 점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새로운 것에 익숙해질 즈음에 늘 또다른 새로운 것이 나와 그 익숙함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 좋은걸까, 나쁜걸까.

 

2.

지나간 <씨네21>을 읽는 것은 늘 힘들게 만든다. 놓쳐버린 좋은 영화들이 너무 많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예를 들어 <워 호스>에 대한 평에서 이 영화는 반드시 필름으로 보아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진가를 맛볼 기회를 (잠재적으로) 영원히 놓쳐버리고 말았다. 이제 집에서 DVD나 컴퓨터 파일로 본들, 도대체 그 '진가'라는 것은 알 수가 없게 되버린 것이다. 물론 사실 조금 이해가 안되기는 한다. 필름으로만 맛볼 수 있는 진가란 게 도대체 뭐지? (뭐 예를 들어 MP3로는 절대 체험할 수 없는 극상의 경험이라든가, 수입산 냉동육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맛이라는 글들을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 필름으로 보면 디지털로는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보일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그 무엇인가가 도대체 무엇일까. 예를 들어 필름으로 보면 말갈기의 미세한 털들이 더 선명하게 보이게 되고, 그 와중에 그 털들의 오묘한 물결무늬들이 뭔가 깨달음을 주는걸까. 그건 아닐 것 같은데, 말갈기의 털 같은 건 디지털로 도리어 더 잘 보일텐데. 아무튼 가까이에는 디지털밖에 없고, MP3밖에 없고, 물론 수입산 냉동육밖에 없다. '그 맛'이나 그 '극상의 경험'은 어떤 몇 사람을 거친 후, 그저그런 언어들로 마모되어 도대체 처음의 형태를 알 수 없는 거친 입자로만 나에게 전달된다.

 

반면 지나간 <한겨레21>을 읽는 것은 재미있다. 지나간 기사들은 몇 주 후의 전망을 하고 있는 경우들이 상당히 많은데, 나는 이미 그 전망이 현실이 되어 도래한 세계에 살고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몇 주 후에 와있는 느낌이다. 예를 들어 몇 주 전의 <한겨레 21>에서는 불법사찰이 김종익 씨나, 남경필 전의원의 경우 등 몇몇 한정된 범위에서가 아니라 보다 큰 범위로 행해졌을 가능성에 대해 미세한 희망을 걸고 있는데, 아니나다를까 불법사찰은 보다 대규모로 저질러져 왔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선거 전망도 그런 측면에서는 재미있고, 선거가 끝난 이후에 이 전망의 기사들을 보는 것도 꽤나 재밌으리란 생각이 든다. 아무튼 간에 나는 아직 어느 정당을 지지할지 정하지 못했다. 지역구 의원의 경우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정통민주당 3명의 후보 밖에 없으니 비교적 선택이 쉬운데, 정당의 경우 어느 정당에 한 표를 던질지 고민스럽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 녹색당 3당을 놓고 '열린 마음으로' 고민하고 있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너무 비슷비슷한 이름의 정당들이 많아 계속 헷갈리고 있다. 순전히 이름만 놓고 비슷한 계열로 묶어보면 민주통합당-정통민주당이 있고, 새누리당-한나라당이 있고, 통합진보당-진보신당이 있고, 국민생각-국민의 힘-국민행복당이 있고, 친박연합-미래연합이 있다. (그리고 양쪽 모두가 펄쩍 뛸 일이지만, 기독자유민주당과 불교연합당도 같은 계열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도대체 뭐가뭔지 알 수가 없고, 5호16국 시대를 보는 느낌에 참 애매하고 어지럽다. 이거 뭐 애정남에 질문이라도 올려야 하나.

 

3.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곧 개봉하게 될 영화 <인류멸망보고서>에 대해 보았더니 매우 흥미가 생긴다. 7년 동안 고이 잠자고 있다가 2012년 지구멸망에 맞춰 지각 개봉하게 된, 마야인이나 꿀벌에게 고마워해야 할 영화. 세 개의 스토리가 있는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인데, 하나는 역시 어김없이 등장한 좀비 이야기이지만 나머지 두 개는 꽤 흥미롭다. 하나는 인터넷으로 정체모를 사이트에서 당구공을 주문했다가 전 지구를 멸망 위기에 빠뜨리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절의 가이드 로봇이었다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무려!) 설법을 하게 되는 로봇에 대한 이야기란다. 나도 매일 설법을 하시는 공자봇을 가까이 모시고 있는데 어찌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있으랴. (예를 들어 트위터의 공자봇이 어느날 공자님 말씀만을 그대로 줄줄이 읊다가 깨달음을 얻어 스스로 새로운 말씀들을 창조해내기 시작하는 이야기라면 어떨까.)

 

최근에 단기적으로 관람 1순위로 놓고 있는 영화는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마이 백 페이지>인데(츠마부키 사토시와 마츠야마 켄이치를 보는 것도 물론 당연히 중요하다. 그거 무시 못한다. 누가 소녀들의 미남 사랑을 욕하랴), 이 영화도 동등하게 올려놓아야 겠다. 이와 별개로 중기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영화는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 프리퀄 <프로메테우스>이고, 장기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영화는 아오야마 신지의 <도쿄 공원>이다. 아오야마 신지의 모든 영화를 최대한 찾아서 봐야겠다..그래야겠다..고 한지가 3년째인데, 아직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

 

4.

주말에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보고, 내친 김에 <하나 그리고 둘>을 보려다가 이것마저 보게 되면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애써 참았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257분짜리 영화인 이 영화는 늘 25.7분짜리 영화로 느껴지고, 2570분 후유증이 간다. 

 

5.

<한겨레21>에서 본, 미 앨라모고도 폭격장에서 실시된 인류 역사상 첫 핵폭탄 실험을 참관한 토머스 프랜시스 패럴 미 육군 준장의 당시 상황 보고.

 

"(핵폭발의) 결과는 전례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장엄하고, 아름다웠고, 엄청났으며, 두렵기도 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에 이 정도로 엄청난 힘을 가진 현상을 전에는 본 적이 없다. ...주변의 모든 봉우리와 크레바스와 산등성이에 불이 밝혀졌다. 직접 목도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묘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투명하고 아름다운 빛깔이었다. 폭발 직후 엄청난 후폭풍이 실험 참관자들에게 불어닥쳤다. 거의 동시에 소름 끼칠 정도로 강력한 천둥 소리가 이어졌다. 마치 심판의 날을 경고하는 듯했다. 우리 나약한 인간들이 신이 독점해온 힘을 탐하는 불경을 저지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오펜하이머의 탄식 "이제 나는 죽음, 곧 세계의 파괴자가 되고 말았다."

 

(주: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이어지는 기사의 한 대목.

 

"그해 8월 6일 새벽 2시 45분 에뇰라 게이를 몰고 티니언섬을 출발한 티베츠 대령은 같은 날 아침 8시 15분께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서 '소년'(리틀보이)이란 암호명으로 불린 폭탄을 떨어뜨렸다. 폭탄에는 패럴 준장(주:위의 그 '패럴'이다)이 직접 써 넣은 글귀가 있었단다. '히로히토에게, 사랑을 담아서. T. F. 패럴.'"

 

이 부분을 읽다가 뭔가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된다.

 

6.

키보드가 문자들을 씹어먹어서 더 이상 길게 쓰지 못하겠다. 특히 'ㄴ'자를 자주 잡아먹는 걸로 봐서 이게 맛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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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2-04-04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가 좋다' 봤는데 그주에 소개하는 영화가 거의 대동소이하네요.
인류멸망보고서는 잘 만들면 괜찮을 것 같은데 소재의 신선함을 잘 살리지 못할 확률이 커보여요. 예고편으론 낚이지 않는데 김지운이래니까 동하기도 하고. 은교랑 건축학개론이 보고 싶던데요.

저도 신문이랑 잡지 다 읽으려는 편이에요. 맥거핀님이랑 비슷한 의도도 있고, 실제로 뭔가 남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같기도'가 문제지만. 씨네21에선 김혜리 기자의 영화일기랑 김영진 평론가 글이 참 좋아요.

맥거핀 2012-04-03 21:24   좋아요 0 | URL
그럴까요? 이거 잘 살리면 정말 괜찮은 영화- 흔히 말해서 철학적이고 우주적인 세계관을 담았다고 하는 -그런 영화가 나올듯도 한데요.^^ 저는 건축학개론은 영 마음이 동하지가 않지만, 은교는 보고 싶기는 해요.

전 씨네21에서라면 정한석이나 김도훈 기자, 남다은 평론가 글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 사람들 글을 읽으면 이름을 보지 않더라도 아..이 사람이 썼군, 하고 알 수 있을 것 같아요(뭐 하다못해 배우 인터뷰 같은 걸 해도). 김혜리 씨도 본인만의 특징적인 글쓰기가 있는 편이죠.

2012-04-03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이 글 재밌어요. / 신문을 첨부터 끝까지 다 읽으면 한시간 반 ~ 두시간 걸리던데... 매일 이렇게 읽으면 뭘로든 도통할 것 같아요. / 필름으로 영화보기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극상의 체험같은 건 혼자 해봐야 외로움의 극치일 뿐이라 자랑은 커녕 자괴의 대상이더라구요. 예를 들어 시사회 당첨되어 혼자 봤는데 넘 재밌었던 어떤 영화는(나의 아름다운 비밀인가 하는 제목인데..) 이후 개봉을 안 해서 시사회장의 소수 낯선이들과 수입업자, 이렇게만 본 영환데요. 이런 경험 극상으로 해봤자 허무 쓸쓸만 합디다. 영화는 어쨌든 소통과 공유가 최고던데요?! 아니, 필름에서만 보이는 말갈기 빛깔에 깨달음이 숨어있을지 모르지요..ㅎㅎ

맥거핀 2012-04-03 21:31   좋아요 0 | URL
그래요? 아무도 잘 모르는 영화보면 좋을 것 같은데..시사회에서 보고, 결국 개봉하지 않은 영화..어째 멋있지 않나요? 소통과 공유의 재미도 좋지만, 혼자서만 알게 되는 비밀 같은 거도 좋아요. 아..근데 시사회는 어째 혼자서 못가겠더라구요. 표 줄 때 물어보잖아요. 그 때 1장이요, 그러면 왠지 민망해서.

예를 들어 시사주간지를 매주 한권씩 정독하면, 어느 정도 평균 이상의 상식들을 갖추게되기는 하는 것 같아요. 시사주간지는 정치에 경제에, 외교에, 문화에 조금씩 조금씩 다 다루기는 하니까. 뭐 딱히 써먹을 데가 없어서, 술자리에서 구라+썰을 풀 때 뿐이라는게 아쉬운 일이기는 하지만.

<워 호스>를 보게 되면 말갈기를 집중해서 보겠습니다.

Shining 2012-04-03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지금 -볼 수 있는 영화 중- 보고 싶은 영화는 <디어 한나>. 시네테크에서 상영중인데
다음주 주말에 갈 수 있음 보는데 그날 놓치면 못봐요ㅠ 그제는 <만추>를 다시 봤습니다.
전 이 영화가 왜 이렇게 좋을까요?-_-

필름2.0 폐간의 충격 이후 영화잡지를 통 안 봤네요. 지금이라도 재창간 안될까요ㅠ

2012-04-03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03 11:57   좋아요 0 | URL
동시에 이 글을 보고 있었군요-ㅎㅎ 저도 필름2.0 이후론 영화잡지구독계에서 길을 잃었져.. 씨네는 가끔 사서 봐도 재미가 없어요~.

맥거핀 2012-04-03 21:35   좋아요 0 | URL
저도 <만추>가 좋아요. 아..근데 이거 DVD나 IPTV에 나왔나보군요. 요즘에 <만추>를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있는 거 보면. 1년이 넘도록 DVD가 안나와 도대체 안나오는 이유가 뭐냐면서 많은 분들의 애를 태웠던 영환데.

저도 필름2.0도 보고, DVD2.0도 (부록 좋을 때만) 사서 보고, 아주 가끔은 스포츠2.0도 봤어요. 필름2.0이든 키노든, 뭐 다른 거든 좋으니, 영화담론을 다루는 잡지들이 많아졌음 하는 바람입니다. (Shinging님이 나중에 재창간을 직접 추진해 보심 어떨지..)

2012-04-03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2-04-03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사인과 한겨레 신문 구독자입니다만,
이 즐거운 시기에 제대로 읽지 못 하고 수북하게 쌓여있는 중입니다. 아쉬워라...
예전에 시네21과 한겨레21도 같이 구독했는데 도저히 다 읽지 못 하겠고, 시네21이 당최 저랑 맞지를 않아서 포기했답니다. 책이랑 영화는 다른건가봐 이렇게 결론내리구요. ^^

집에 못 본 DVD가 몇장인지 모르겠습니다.... ㅠㅠ.

필름으로 본다, 음, 꼬옥 집에 장비 마련할만한 돈을 버셔서, 집에서도 보실 수 있기를.
맥거핀님의 리뷰와 열정으로 볼 때,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으시니까요.
저에겐, 돼지목에 진주목걸이지만 말이죠... 아하하.

맥거핀 2012-04-03 21:46   좋아요 0 | URL
저도 시사인과 한겨레21을 놓고 조심스레 저울질을 했었는데요. 시사인이 탈락된 것은 그 크기 때문이에요. 웃기죠, 별것도 아닌 크기가 이유라니. 근데 그 어정쩡한 크기는 보관하기가 너무 애매해서요. 시사인은 표지가 마음에 들 때 가끔 사봐요.

글쿤요. 하긴 요즘 너무 바쁘셔서 책 볼 시간도 많이 없으실 것 같아요. 그래도 글에 쓰신대로 가끔 릴렉스하시고 여러 것들도 좀 즐기시고..물론 DVD도 와구와구.

필름은 정말 돈이 많이 드는 물건이니 제가 필름으로 볼려면 제가 로또가 2번쯤 되야할듯..ㅋㅋ 지금으로서는 괜찮은 홈씨어터 장비만 있어도 감지덕지입니다. 하기는 괜찮은 홈씨어터 장비와 룸을 갖추려면 돈을 꽤 벌어야 할테고, 그 정도 돈을 벌려면 영화에 대한 관심이 사라질 수도 있고, 시간이 안날 수도 있으니 이거 참 딜레마군요.

반딧불이 2012-04-03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재미있는 페이퍼네요. 저는 그냥 맥거핀님에게서 종종 잠이 달아나기를 바라겠어요.

오펜하이머의 저 말이 저는 E=mc2 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좀 이해가 되었는데 한편 짠하더라구요.

맥거핀 2012-04-03 21:51   좋아요 0 | URL
네..반딧불이 님의 기대에 부응해드리는 차원에서 오늘도 커피를 잔뜩 마셨습니다만, 어제 무리했더니 오늘은 잠이 잘 올 것 같아요.ㅋ

아..저도 저 책 본 기억이 납니다. 상대방이 먼저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오펜하이머 씨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만, 인류가 괴물을 만들어낸 것은 그의 책임이 꽤 있다고 생각해요.

현대인류의 특질 중의 하나는 '사용법을 잘 알지도 모르는 물건을 만들어낸다'는 것 아닐까요. 그 대표적인 게 바로 핵무기일 것이고,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인류는 아직 파멸 가까이에 있는 것 같습니다.

2012-04-03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아,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그렇게 좋나요~. 중국여행 갔다가 불법복제 디비디로 사왔는데 아직 안 봤어요. 빨리 봐야겠네요. 그래봐야 본가에 내려가야 볼 수 있지만...

맥거핀 2012-04-05 18:57   좋아요 0 | URL
좋다고 해야하나..마음이 복잡해지는 영화입니다. 음악도 좋고..왕가위 감독 영화들에 나왔던 장첸의 어린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구요. 긴 시간을 투자해볼만한 영화입니다.

프레이야 2012-04-04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맥거핀님, 마이백페이지는 패스하면 후회할까요? ㅎㅎ
봄이긴 한데 바람이 차가워요.
목련은 또 왜그래 초췌하게 져버렸대요.
허접한 사랑이야기처럼.

맥거핀 2012-04-05 18:59   좋아요 0 | URL
마이백페이지는 놓치면 아쉬운 영화라고 생각해요. 저는 계속 시간이 지독하게 안맞네요.(지금 서울에서도 개봉하는데가 1군데 뿐이라..) 저도 지금이 봄인가 계속 되묻고 있어요. 이러다 갑자기 봄은 건너뛰고 여름이 오지 않을까 싶고..서울은 오늘 바람이 심한 날입니다. 그나마 있던 꽃잎들도 다 떨어지겠어요.

cyrus 2012-04-04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랑 비슷하네요. 요즘 신문을 보수, 진보 진영 번갈아 읽고 있는데
항싱 다 읽고나면 신문 속 모든 내용을 다 아는듯한 생각(or 착각)에 빠질대도 있거든요.
그리고 요즘에는 온라인 글들은 핵심적인 내용만 읽는 편이에요. 하루에 두 세 분 이상
글 한 글자 한 글자 읽는 것도 힘드네요. 한번은 새벽에 알라딘 블로그에 글 읽다가
깜빡 졸뻔하기도 한 적도 있었어요. 너무 컴퓨터 앞에서 글 읽으니 눈이 더 침침해지게
되고요. ^^;;

맥거핀 2012-04-05 19:04   좋아요 0 | URL
알라딘 글들은 가볍게 읽을 글들도 있지만, 감성과 이성이 필요한 글들이 있어서요. 저도 되도록 시간이 좀 날때만 들어와서 차분히 읽으려고 합니다만, 요새 들어서 글이 잘 안들어오는 것도 사실이네요.

저도 요새 이것저것 생각해요. 선거와 관련해서도 그렇고..보수니 진보니 반MB니 반노무현이니 하는 그런 것 보담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선택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하는 때이겠구요. 그럼에도 요새 여러 정당에서 현란한 레토릭들을 사용해서 쉬이 현혹되곤 하는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정보 과잉이 차분한 생각을 가로막고 있는다는 생각도 있어요.
 
내가 왜 이러고 있나

 

 

 

 

독립영화, 인디영화를 주로 (유료로) 다운받아 볼 수 있는 '인디플러그' 사이트에서 영화 <Jam Docu 강정>을 이례적으로 무료로 공개중입니다. (인디플러그에 감사드립니다.) 해군기지 건설과 그에 따른 반대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경계 도시>의 홍형숙 감독, <레드 마리아>의 경순 감독, <오월愛>의 김태일 감독 등 총 8명의 독립영화 감독들이 각각 카메라에 담아낸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입니다.

 

아래의 곳으로 가시면 되고, 회원가입만 하시면, 결제과정 없이 고화질로 다운 가능합니다.

 

http://www.indieplug.net/movie/view.php?cat=1&sq=1616

 

여야 모두가 선거니, 공천이니 정신없게 만드는 와중에 구럼비는 계속 파괴되고 있고, 강정은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강정에 대해 다시 한번쯤 생각해보시는 것은 어떨는지요.

 

덧.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시면 제 시덥잖은 리뷰를 참고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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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2-03-29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전부터 보고 싶었고 맥거핀님 리뷰보고 더 보고 싶었는데 감사합니다.
독립 영화 상영하는 곳이 있군요.

맥거핀 2012-03-29 22:33   좋아요 0 | URL
^^ 반갑습니다. Arch님. 이런 영화는 보다 많은 분들이 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찬성이나 반대를 떠나서 일단 그곳이 어떤 곳인지,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으면서 차분히 생각을 해보았으면 좋겠네요.

2012-03-29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맥거핀 2012-03-29 22:34   좋아요 0 | URL
즐감하셔용. (물론 보는 도중에 마냥 즐겁지는 않겠습니다만..^^;)

cyrus 2012-03-29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정보를 제가 자주 드나드는
온라인 카페에도 알리고 싶은데 퍼가겠습니다. (퍼간다는 단어가 좀 어색하네요 ^^;;)

맥거핀 2012-03-31 00:02   좋아요 0 | URL
불펌, 무한펌 환영합니다.^^

리처드 2012-04-20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상 최대의 멍청하고 억지스러운 쓰레기 영화군요.

또 근거없이 감성이나 팔아대려는 낌새가

방금 막 내린 멧되지의 뜨끈뜨끈한 설사가 뿜어내는 갈색빛 김처럼 뿜어져 나오네요.

지금 저렇게 근거없는 비방 하시는 분들이 몇년전에는

뭐 개 줘 까튼 광우병 좀비라고 대가리에 닭 동맥같은 핏줄 새워가며

했겠지마는 그 인간들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아직도 저러는게 참...

맥거핀 2012-04-21 01:00   좋아요 0 | URL
표현은 재밌습니다만(방금 막내린 멧돼지의 설사라..^^ 뭐 저는 그건 본 적이 없습니다만), 솔직히 말해서 제가 독해력이 떨어지는지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네요. 광우병 좀비는 무슨 맥락이신지..;

다락방 2012-04-26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맥거핀님.
저도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독립영화, 인디영화를 주로 다운 받을 수 있는 사이트라니, 저는 이런게 있는줄도 몰랐거든요. 방금 막 링크 따라가서 즐겨찾기 추가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제겐 정말 유용한 정보에요.
:)

맥거핀 2012-04-26 22:19   좋아요 0 | URL
네..안녕하세요.^^ 아무래도 요새 인디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들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온라인 상에서 인디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들은 여전히 부족한데요, 그런면에서 최근 화제가 된 인디영화들이 어느정도 망라되어 있는 사이트라고 생각해요. 다운로드 받으면 또 그 금액중 일부가 민간 독립영화전용관 기금으로 마련된다고도 하구요.^^ (뭐 이번에 인디스페이스가 재개관한다고는 합니다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다면, 저 또한 즐겁습니다.

열매 2012-04-2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방금 알라딘 페이퍼를 쓰다가 잼 다큐 <강정> 포스터를 찾으려고 검색하던 중에 맥거핀님의 서재에 들어오게 됐어요. 전 이 영화 이미 봤는데요, 주소 복사해가서 제 서재에 올려도 될까요?? 3월에 읽은 책 목록 밑에 영화 포스트 사진과 주소 올려 놓고 싶어서요. 무료로 볼 수 있다니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저는 책 읽고 토론하는 모임에서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는 책을 읽은 후에 이 영화를 함께 봤었는데, 돈 내고 봤답니다^^;;

맥거핀 2012-04-29 00:0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물론 좋으실대로 퍼가셔도 됩니다. 많은 분들이 보시도록 무료로 배포할텐데, 저도 일조할 수 있으면 좋죠. 그만큼 보고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보구요. 아..그리고 보니까, 네이버에서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더라구요. (아마도, 다른 합법다운로드 사이트들에서도 무료배포일듯 한데, 확인해보진 못했습니다.)
 

 

U.F.O., 공귀현, 2011.

 

한 여고생이 산에서 실종된다. 범인으로 지목된 것은 'UFO 출몰지'로 잘 알려진 그 산에 UFO를 보러 갔던 한 무리의 남고생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은 UFO에 납치되었다가 풀려났으며, 그 여고생의 실종 역시 외계인들의 소행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증거로 자신들의 가슴에 새겨진 이상한 표식을 내미는데...정도면 이야기로서는 흥미로운 시작이고, 뒷이야기가 상당히 궁금해지는 설정이다. 그런데 공귀현의 영화 <U.F.O.>는 이 흥미로운 설정을 제대로 살리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보고 평들을 찾아보니 대체로 호의적인 평들이 많은데, 글쎄...내 생각에는 고민이 조금 덜한 듯한, 왠지 만들다 만듯한 영화로 느껴진다.

호의적인 평들을 보면, 독특한 상상력, 장르의 다변화, (나름) 반전의 제시...등등이 그 이유로 제시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일단 반전부터 생각해보면, 이 반전의 설득력은 상당히 약하다는 인상이다. 기본적으로 영화에서 반전을 다루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고, 감독의 치밀한 계산들이 필수적이다. 반전은 보통 다른 기본적인 이야기보다 훨씬 더한 강도의 설득력을 가질 필요가 있는데, 반전은 말 그대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관객들이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야기적 믿음을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 반전은 그저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망쳐놓은 '뻘짓'밖에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전이 제대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영화 중간에 계산된 치밀한 복선들을 깔아놓고, 그간 관객의 머리속에 쌓아놓은 이 치밀한 복선들 스스로가 마지막 후반부에 이르러 관객의 머리통을 알아서 때려내기를 기대해야만 한다(물론 이 복선들을 역이용할 수도 있다). 즉 반전영화에서 관객을 감탄하게 만드는 것은 반전된 내용 자체의 묵직함과 쾌감이 아니라, 그 반전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관객 몰래 쌓아두었던 복선의 구조와 치밀함의 정도이다. 그러나 이 반전은 복선들이 앞에서 거의 제시되지 않은데다가, 그 자체로서의 설득력도 약하다. 즉 복선들이 충분치 않았다면, 반전 그 자체로서의 행동들에 대한 심리적 설득력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결정적인 행동들은 그 이유가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이 사건에서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동기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답할 수가 있을까. 그것이 이유라고 했을때, 바로 '그것'이 우리를 맥이 풀리게 만들지 않는가.

이 영화 <U.F.O.>는 한국의 많은 장르영화가 그렇듯, 사회적인 메시지를 그 안에 담아내고자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왜 한국의 장르영화들은 장르 그 자체에 철저히 충실하지 못하는가. 나쁘다는 힐난이 아니라, 순수한 궁금증이다). 예를 들어 외계인과 UFO라는 불확실한 것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과 매스컴들을 보여주는 연이은 컷들(이 영화의 시작은 방송에서 UFO에 대한 인터뷰를 하는 소년의 씬이다), 그리고 단적으로 영화의 시작과 함께 제시되는 비트겐슈타인의 메시지,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해야만 한다." 영화가 이러한 것을 제시한다는 것은 관련하여 무엇인가 얘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즉 메시지를 제시하고자 하면 그것을 영화의 전체 장르적 이야기와 유기적으로 혼합하여 전개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이러한 것은 단지 배경으로 그칠 뿐 풍자나 비판, 고찰에까지 가닿지 못한다. 즉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이 영화가 조금 더 나아지려면,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해야만 한다."는 선언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단지 그것만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것은 검은 배경에 흰 자막으로 그 메시지를 보여주는 자체가 더 효과적이다. 즉 이 메시지 이후의 영화는 선언 이상의 것, 예를 들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하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뭐지, 라는 데에까지는 적어도 나아가야 한다. 이 영화에서라면 그것은 UFO라는 불확실한 것을 믿고, 말했던 이(그리고 우리)들이 결국 무엇을 파괴시켰나라는 질문에 이 영화는 무엇이라고 답하고 있는가라는 질문. 그 질문에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  

또한 영화의 한 축에서 또 하나의 사회적 메시지로서 등장하는 것은 이 UFO에 등장하는 주인공 소년들의 배경이다. 자칭 '사대천왕'이라는 이들은 주인공의 형이 명쾌하게 이야기하였듯 네 명의 왕따일 뿐이다. 이 넷은 왜 왕따가 되었을까. 그와 관련하여 영화에서 강조하여 제시하는 것은 이 넷의 배경이다. 어렸을 때 UFO에 납치되었다고 주장하며, 모든 것을 UFO와 관련하여 사고하는 아이, 그리고 목사의 아들로,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하나님과 기독교로만 해석하려 드는 아이(기독교와 UFO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이 재미있다. 그와 관련하여 또하나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제대로 사고하는 것처럼 보여지는 주인공의 형이 합리적, 과학적 사고를 하려는 인물이라는 점.), 그들보다 한살이 많은, 뭔가 사고를 쳐서 이 학교로 오게 된 아이, 그리고 혼자 떡볶이를 사먹는 모범생 소년(이 소년이 그나마 정상으로 보이는 이유는 물론 이 배경들을 서술하는 화자가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영화에서 보여주는 방식은 이들 행동의 특이성만을 강조하여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들이 왕따가 된 이유는 어떤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이 특이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동을 단지 그들 개개인의 특이성으로만 소구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온당한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영화에서 또하나 주목할 것은 이 영화에는 (스쳐지나가는 인물 외에) 변변한 어른들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인공 모범생 소년만 미약한 보호자, 즉 그다지 어른으로 볼 수 없는 형이 등장할 뿐, 이 영화에는 그들의 행동을 컨트롤할 어른, 부모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부모들은 오로지 그들의 대화 속에서만 등장할 뿐, 그들 곁에는 당연히 있어야할 때 - 예를 들어 병원 - 마저 그 자신들 외에는 아무도 없다. 즉 이 영화는 또다른 <15소년 표류기>이다. 아들을 찾아다니는 아버지라는 액자를 영화에 굳이 덧씌웠던 <파수꾼>과도 연관지어볼 부분이 있다.) 그런 그들 넷은 뭉쳐서 한 팀이 되고, 이들은 산에서 또다른 왕따 소녀를 만난다. .... 그러므로 이 결말을 우리는 이러한 배경들과 관련하여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이 영화에 마음을 붙일 수 없게 만들어주는 것은 이 영화가 성장담의 형식을 가지고 있되, 성장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물론 가슴이 따듯해지는 이야기만이 성장담이 될 자격을 갖춘 것은 아니다. 성장은 헤세가 이야기한대로, 수레바퀴 밑에서 견뎌내는 것이고, 알이든 다른 무엇이든, 무엇인가를 깨뜨리면서, 부리에서 피를 흘리면서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앞에서 이야기한 영화 <파수꾼>도 마저도 그것을 성장담으로 볼 수 있는 여지는 있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아이들은 결코 성장하지 못한다. 아니 성장이 아니라 다시 퇴화하여 버린다. 그들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그들 주위에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단단한 벽을 만들어버리고 기꺼이 자신들의 모습을 가리는 가면을 뒤집어 썼다. 어쩌면 그것이 영화 속에서 어른들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즉 이 사회는 수많은 퇴화한 자들이 만들어낸 사회이며, 그 어느 곳에도 어른은 없다는 것. 그러한 사회에서 아이들은 성장의 방식보다도 늘 퇴화의 방식을 먼저 습득하게 된다. 퇴화한 자들이 가득찬 사회에서 모두의 우위에 서는 방법은 누구보다도 빨리 퇴화하는 것이니까. (그들이 UFO에 잡혀갔다온 증거가 무엇인가라는 점이 이와 관련된다. 즉 이 퇴화된 사회에서는 무엇이 증거가 되는가.) 그런 것을 젊은 감독이 만든 이 아이들만이 나오는 영화에서 봐야할까. 잘 모르겠다. (물론 이 마저도 그저 우리 사회의 충실한 반영이라고 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침묵해야만 하니까.)


덧.
하기는 방송사마다 세상에 이런 일이니, 진실 혹은 거짓이니, 그것이 알고 싶다니 하면서 괴담들을 양산하는 사회이다. 우리 사회에서 괴담들을 만들어내는 자들은 누구인가. 물론 당연히 그것이 만연되어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현혹하는 사이에, 이득을 보는 자들일 것이다. 아이들은 단지 그 효과적인 방식을 보고 배울 뿐이다.

주인공 모범생 소년 역할로 나온 이주승이라는 배우는 어디서 본 적이 있다 싶었는데, CINDI에서 본 <간증>에 나왔던 배우. 그 영화에서는 도리어 광신적인 기독교 신자로 나왔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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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2-03-25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는 말씀 하신 주인공들이 모두 '미확인 비행 물체'처럼 보이네요. 어떤 것으로도 정의할 수 없으니까 이름을 만들고 주민번호를 만들고..면허증을 만들고... 왕따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이거 너무 부정적인가요?

맥거핀 2012-03-26 21:04   좋아요 0 | URL
댓글을 읽다보니까, 제가 영화에 제시된 UFO의 비유를 너무 간과했던 듯도 싶어요. 흔히 외계인이라고 하는 alien이라는 말이 '다른, 이질적인'이라는 어원에서 온 말이 아니겠습니까. 다름, 이질성이 강조된 영화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또다른 의미의 alien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이 영화는 alien들이 alien을 찾아 헤매는 그런 영화가 되겠군요. 그런 의미에서 결말을 생각해보면 더욱 씁쓸해지는 영화가 될 수도 있겠네요. (결말을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군요.^^)

마녀고양이 2012-03-26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들어보지 못 한 영화가 참으로 많구나, 잠시 감탄하고...

좋은 영화 페이퍼라서,
제가 보지 못 한 관계로 무어라 공감할 수 없다는 점이 조금 안타까와집니다.
확실한 것은 보고싶게, 궁금하게 만드시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맥거핀님~ ^^

맥거핀 2012-03-26 21:09   좋아요 0 | URL
제 글의 목적은 거의 항상 '그 영화를 보게 만드는 것'이니 그런 말씀을 들으니 반갑네요.

사실 이 영화는 정식개봉도 안한 영화니까요.(이번에 씨네큐브에서 한국영화 신작을 미리보는 기획전을 하길래 보고 온 영화입니다.) 제 글들이 주로 영화를, 그리고 종종 덜 알려진 영화들이 대상이니 제가 생각해도 글을 읽다가 쉽게 공감들이 잘 안될 것 같아요(그러니 글을 읽어주는 분들이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로서는 보시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겼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아이리시스 2012-03-28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리뷰는요, 언제나 항상, 영화와는 따로 존재하는 거예요, 맥거핀님!!

이 영화는 정말로 처음 들어보는데, 하나님, 기독교, UFO, 아.. 뭔가 신기하네요. 영화가. 요 앞 영화는 궁금하지만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는데 이건 보고 싶어지네요. 뭐 나중에..꼭........!!

맥거핀 2012-03-28 18:28   좋아요 0 | URL
네..저는 깠(?)지만 한번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이 됩니다. 아무래도 장편으로서는 첫 영화니까요. 발전가능성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신선하다는 측면에서는 꽤 점수를 줄 수 있어요.

근데 영화리뷰가 영화와 따로 존재한다는 게 무슨 얘기에요? 뭔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아리송..

아이리시스 2012-03-29 18:05   좋아요 0 | URL
그..뭐..그뜻 맞을걸요!!! 영상론 전공에 영화평론과정 있더라고요. 책리뷰나 시리뷰는 그런 거 없잖아요. 그래서 영화는 보여주는 예술이고, 영화를 글로 옮기는 건 글로 하는 예술인데, 둘은 완전 따로다, 이렇게 생각해버렸죠..

여기까지는 제 생각이고,
어느 평론가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저는 듣고 돌아서면 누군가의 말인지 까먹기 땜에 그건 기억이 안나요. 미안해요. 헛소리해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맥거핀 2012-03-29 22:39   좋아요 0 | URL
아니, 저도 잘 알 수가 없어서요. 일단 영화리뷰(평론)라는 게 다른 것보다 좀 특수한 양상을 가지고, 나름의 특유의 형식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시나 책이나 하는 것은 글을 글로서 이야기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영화비평은 영상을 글로 풀어내야하니, 반드시 그 와중에 어떤 괴리가 생겨날 수밖에 없으니..(그래서 컷이니, 숏이니 하는 특유의 용어들이 필요한 것이겠구요.) 또한 뭐 이건 사운드나 이야기도 통합되어 있는 복잡한 거지요. 그러니 또 나름 전문적인 과정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것이 그렇듯이 '배움'으로만 갖출 수 없는 게 이 영화비평의 세계에도 있기는 한 거 같구요.)
 

 

 

 

 

로맨스조, 이광국, 2011

 

300만 관객을 동원하여 스타감독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 이감독. 이감독은 새로운 시나리오 집필을 위해 프로듀서에게 떠밀리듯 허름한 시골 여관에 머무르게 되고, 심심풀이로 부른 다방 레지에게서 '로맨스 조'의 기묘한 러브스토리를 듣게 된다.

 

인기 여배우 우주현이 스스로 목숨을 끊던 날. 그녀가 출연한 마지막 영화의 조감독이었던 '로맨스 조'는 영화를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시골로 내려간 '로맨스 조'는 우연히 다방 레지와 마주치게 되고,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첫사랑 초희를 떠올린다.

 

이것은 영화 <로맨스조>의 포스터에 나와있는 짤막한 줄거리이다. 이 줄거리를 조금이라도 주의깊게 읽은 분들은 하나 약간 흥미로운 점을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첫번째 문단과 두번째 문단 사이의 어떤 것. 즉, 영화의 제목도 '로맨스 조'인 것으로 보아, 하고 싶은 이야기도 '로맨스 조'의 이야기인 듯한데, 굳이 앞의 액자 즉, '이감독이 다방 레지에게 이야기를 듣는다'라는 액자가 필요할까,라는 질문이다. (그것도 조금은 더 수상쩍게 만드는 것은 이 두 문장 사이의 어떤 유사한 점이다. 앞에 나오는 '이감독'과 뒤에 나오는 '로맨스조'라는 전직 조감독이 둘다 감독인 것으로 봐서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 물론 영화가 이것은 누군가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짐짓 의뭉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것은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굳이 오랜 과거로 거슬러오르지 않더라도 최근의 작품인 손영성의 <약탈자들>은 오로지 이야기만으로만 이루어진 영화였으며, 이 영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도(이 영화를 만든 이광국 감독은 홍상수 감독의 조감독이었다) 액자를 덧씌우거나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붙이는 것은 이미 시도되었다(<극장전>, <하하하> 등). 그러나 이 영화는 <약탈자들>이나 <하하하>의 이야기들과 같이 여러 사람의 이야기, 진술로만 이루어진 영화이면서도, 전자의 영화들처럼 같은 인물과 같은 사건을 보는, 인물들 사이의 기억의 혼재, 그 반복과 차이와 미로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극중인물인 다방 레지(신동미)의 표현처럼) '새로운 서사전략'을 구축하고 있다. 그것은 이것이 이야기이되, 고정적인 소실점이 없는 이야기라는 점, 이 이야기들은 연결되기는 하지만, 뭔가 기묘한 형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 이야기들은 시간의 축이나 인물들의 연결점을 미세하게 어그러뜨리고 있으며, 다중적으로 이야기들을 연결짓고 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영화를 볼 때 기대게 되는 본질적인 고정선이 묘하게 뒤집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며, 기대하지 않았던 새로운 서사가 생겨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즉 이 영화의 흥미는 이야기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구조화하는 방식의 새로움에서 생겨나며, 감독이 보아 주기를 바라는 것은 이야기의 내용보다도, 그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 자체와 그 방식인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영화의 결말과도 연결되는데, 여타의 이런 류의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의 결말은 보다 직접적이고, 직설적이다. 사실 이 결말은 어떻게보면 사족이라고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극중 로맨스조(김영필)는 한번도 이야기밖으로 나아간 적, 즉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형태로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결국 그 이야기 속의 인물임을 강조하여 보여주는 이 결말은 과잉된 친절인 것처럼도 보이고, 불필요한 이야기인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두 번째 질문이 필요하다. 이 결말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지금까지의 내용을 다시 잘 요약하여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그를 이야기 속 그 자리로 다시 돌려보내는 데에 더 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닐까. 즉 그 내용이 아니라, 그 전달하는 방식을 보려주려고 했던 첫번째 질문의 의도와 같은 형태로, '이야기 속의 인물'이라는 그 내용이 아니라 그 끝을 내는 방식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목적은 아니었을까.

 

 

그것은 두 가지와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하나는 굳이 그 끝을 내어 보여주는 것은 그의 시작을 떠올리게 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모든 것이 끝이 있다는 것은 그 시작이 있다는 이야기도 되니까. 그 이야기들의 시작, 기원에 있는 것.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영화 속 모든 이야기들은 불쑥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듣고자하는 자의 간청으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영화 속 모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그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들려줄 것을 요청하였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즉 모든 이야기들은 누군가 듣고자 하는 간절한 바램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왜 이야기를 요청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의 존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위에 이야기하였듯이 영화 속 모든 이야기들은 묘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의 이야기의 존재가 다른 이야기의 논거가 된다. 즉 그물망처럼 연결된 이 이야기들 중 어느 하나라도 존재하지 않으면, 전체 이야기에는 큰 구멍이 생기고, 다른 이야기들도 그 존재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동시에 이야기의 존재근거가 사라지는 것은 그 이야기를 하는 자신이 사라지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그러므로 마지막 로맨스조의 이야기를 전하는 다방 레지가 순간적으로 프레임에서 증발한 것처럼 보이는 컷은 의미심장하다. 로맨스조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버리면, 그녀 역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야 하니까.) 그러므로 동시에 이야기의 기원을 찾는 것은 곧 나의 존재의 기원을 찾는 것이 되기도 하며, 역으로 이야기를 망가뜨리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망가뜨리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초희(이채은)는 자신의 이야기를 어린 로맨스조(이다윗)가 한 것을 보았을 때 자신의 존재를 희미하게 떠올리며, 웃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파괴되지 않고 조금은 남아있는 것을 보았으니까.)

 

두번째는 결국 처음의 질문과도 연관되는데,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 사실 우리가 어떤 영화를 놓고 '이야기로만 이루어진 영화'라고 하는 것은 결국 내용보다는 그 방식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이야기로 이루어지지 않은 영화가 있던가. 문제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는가, 어떠한 방식으로 만들어내는가,이다. 로맨스조가 영화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없다고 한탄하는 것은, 이야기 자체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야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는 단순히 매개체로만 보였던 다방 레지에게도 전화 씬을 부여하며, 그녀에게도 자신의 이야기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풀어내는 것, 그것은 예를 들어 영화 속 초희를 그토록 괴롭혔던 소문들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소문들이 단지 무가치한 소문이고, 그것이 때로 파괴적인 속성을 가지는 것은, 그 내용이 사실이고 아니고서를 떠나서, 그것이 만들어지고, 전달되고, 유통되는 방식에 있다. 영화가 이야기를 무신경한 방법, 잘못된 방식으로 풀어낼 때, 때로 영화는 뜬소문보다 훨씬 더한 공격무기가 되고, 사람들의 정신을 망가뜨린다.

 

즉 이야기를 한다는 그 자체와 그 이야기를 적절한 방식, 적합한 방식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는 것, 이 두 가지의 질문을 하고 있는 영화는 그것이 영화의 본질에 가닿으려는 질문들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있다. 이야기가 빈곤해지는 것은 이야기 자체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이야기들을 마치 소문들이 소비되는 것처럼 낭비하여 소비하려고만 드는 것에 이유가 있다. 영화는 어떠한 이야기를 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어떠한 방식으로 할 것인가(동시에 어떻게 끝맺을 것인가)의 문제를 계속 고민하여야 하며, 노력해야만 한다는 점을 이 영화는 다시 상기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의 내용 자체로서는 사실 빈곤하다고까지 볼 수 있는 이 이야기에 손을 내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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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3-19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월이 아카데미의 달이었다면, 3월은 좋은 한국영화들의 달인가..

아이리시스 2012-03-19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떠한 이야기를 할 것인가 보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는 이제 실력의 차이이기도 한데 말이에요. 그걸 빼면 대체 영화에 뭐가 남을까요. 시나리오 쓸 때부터, 촬영에 나가 동선을 맞추는 모든 과정에서 영화는 어쩔 수 없는 공동작업인 것 같아요. 소설은 그게 사실이 아니라도 작가가 그냥 이상하구나, 하고 말면 되는데 영화는 나쁠 수록 이상하게 소문과 파급효과가 커져요. 그리고 영화가 나쁘면 관객들은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려는 말이 이게 아니라,

다방 레지가 로맨스조랑 마주치는 건 액자 속인거죠? 자꾸 느낌상 이감독이 다방 레지에게 로맨스조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 나서 다시 로맨스조가 레지랑 만나면 어떨까 싶어가지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맥거핀 2012-03-20 00:24   좋아요 0 | URL
제가 이 글 쓰고 몇 개 리뷰를 읽다왔는데, 재밌는 것은 리뷰들마다 이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게 조금씩 미묘하게 다르네요. 그니까..이 줄거리를 뭐라고 해야하나..에고. 그니까 로맨스조가 레지랑 만나기는 하는데, 어떻게 보면 만나는 것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고 해야하나..(이게 뭔 소린가 싶죠..? 영화를 보세요!)

그죠. 맞는 얘기죠. 근데 아직도 많은 영화들이 그냥 신선한 소재, 혹은 이정도 이야기면 뭐 그냥 죽 지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근데 2시간 동안 인간을 집중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고, 아주 치밀한 계산이 필요한 작업이잖아요. 이야기하는 방식이 무신경한 영화는 보다가 슬슬 짜증이 나요. 근데 아직도 그런 영화들이 대세인 것을 보면, 역시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영화는 그저 시간을, 혹은 다른 무엇인가를 소비하게 하는 도구구나 싶어요. 즉 2시간 영화를 보는 거나, 2시간 자극적인 인터넷 기사들을 클릭질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아진다는 거죠. 영화관에 겨우 돈과 팝콘과 자극과 무신경을 소비하러 가는 것인가...관객들이 그것을 치열하게 묻지 않는 이상 그런 영화들은 계속 양산될테고, 점점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꽃도둑 2012-03-20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상수 감독밑에 있던 조감독의 영화라니...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 또한 닮아 있을 것 같아요...액자형식부터...같은 영화를 보고도 이해와 해석이 분분하니..이를 어쩐다지요?
영화도 파편~ 영화평도 파편화를 이루니..성공한 셈인가요?.,..ㅎㅎ

맥거핀 2012-03-21 22:35   좋아요 0 | URL
감독 인터뷰를 좀 보니까, 에셔의 손 그림에서 힌트를 얻으셨다고 하더라구요. 이야기가 이야기를 그리고, 다시 그 이야기가 돌아서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는 특이한 영화입니다. 스토리 구조에 관심있으시면 한번쯤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이 됩니다. 뭐 그럼에도 아주 판타지로 가버리지 않는 것 또한 인상적이구요.

2012-03-23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리뷰네요.

- 이야기의 끝은 시작을 보게 한다.
- 이야기는 듣고자 하는 간청으로 시작된다.
- 한 이야기의 존재 근거는 다른 이야기이다. (이야기끼리 그 존재들을 떠받친다.)
- 이야기의 기원을 찾는 것은 나의 존재의 기원을 찾는 것이고, 이야기를 망가뜨리는 것은 나의 존재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못한다.(예를 들어 영화 속에서 매개체로만 보이던 다방 레지도 자신의 이야기가 있음을 영화는 슬쩍 보여준다.)
- 소문은 이야기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무신경한, 잘못된 방식이 문제이다.

이런 것들이 흥미로워요. 좋은 생각거리, 고맙습니다.^^

맥거핀 2012-03-23 21:34   좋아요 0 | URL
글 꼼꼼하게 읽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들을 가르는 기준이 매우 많겠지만, 저는 그 중의 하나가 컷(씬)들이 얼마나 의미있게 쓰이고 있는가, 즉 의미없이 버려지는 컷들이 얼마가 되는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각 컷들이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활용되고 있으면 있을수록 좋은 영화에 가까워지는 거겠죠(그런 의미에서 의미 없는 컷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은 에코의 말대로 포르노에 가까워지는 것일 것이구요). 그런데 이 영화는 각 컷들이 각각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전체적으로 최종의 메시지로 잘 달려가고 있다는 인상이었어요.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이 됩니다.

2012-03-23 23:01   좋아요 0 | URL
아, 이 댓글도 좋아요. 또 한 수 배웁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