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박훈정, 2013 

    

 

(글에 영화의 결말에 대한 부분이 들어 있습니다.)

 

 

 

영화, 특히 남자들의 세계를 그린 영화들을 즐겨 보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몇 가지의 참조 목록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유위강, 맥조휘의 <무간도> 시리즈, 크로넨버그의 <이스턴 프라미스>, 코폴라의 <대부>, 두기봉의 <흑사회>, 그리고 그 외 수많은 누아르 영화들.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영화는 그런 수많은 영화들의 영향을 받았음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으며, 그 몇몇의 설정들과 이야기의 전개 구도, 그리고 씬의 구성에서까지 그 입김들을 드러내 보인다. (<씨네21> 893호 박훈정 인터뷰 "그런 영화들과 비교되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장르영화라면 어차피 그 장르의 이야기틀에서 벗어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틀 안에서 훌륭하게 잘 만들었다는 말을 들어보고 싶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 영화가 말 그대로 '신세계'인가, 아닌가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즉 그 영화들과 이 <신세계>가 얼마나 비슷한지, 혹은 얼마나 다른지가 아니라, 얼마나 그 세계를 잘 그려내고 있는지, 그 신세계가 얼마나 잘 짜여진 세계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되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아직까지는 영화감독으로서가 아니라,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 등의 시나리오 작가로서 더 알려진 박훈정 감독은 이 영화 <신세계>에서 예의 그 장기를 잘 펼쳐보인다. 시나리오로서 이 영화가 가지는 몇 가지 강점들이 있다. 먼저 하나는 <부당거래> 등에서도 잘 보여줬듯이 여러 겹의 꼬인 이야기를 상당히 이해하기 쉽도록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부당거래><신세계>에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은 여러 관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통상 이런 이야기에서는 둘 중의 하나, 즉 캐릭터나 이야기 중의 하나는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두 영화에서 모두 개별의 캐릭터는 살아 있고, 인물들의 구조화된 관계는 특징적인 씬과 몇 가지 장치들에 의해 훌륭하게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예를 들어 정청(황정민)이 처음 등장하는 씬을 보면, 정청과 이자성(이정재)이라는 캐릭터와 이 두 사람의 역학관계를 동시에 잘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또 하나의 좋은 점은 관객에게 미리 공개를 해야할 패와 숨겨놓아야 할 패를 상당히 영리하게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 영화에서 관객이 이 전체 구도, '신세계' 작전의 전모를 깨닫게 되는 것은 영화의 중반부가 한참 지나서이다. 시나리오를 하나의 건물이라고 생각해본다면, 관객은 그 건물 안에서 완전히 길을 잃지 않을 일정 정도의 지도를 확보해야 하지만, 건물안에 총 몇 개의 방이 있고, 몇 층 구조로 되어 있는지 알 필요는 없다. 그것마저 다 알게 된다면 관객은 그 건물에 대한 탐험을 중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점은 감독이 이야기를 조급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보인다는 점이다. 할 이야기가 많은 영화들에서 때로 보이는 악수 중의 하나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초반에 털어내려고 하는 방식이다. 즉 많은 배경과 많은 이야기들을 초반 30-40분 안에 쏟아 부은 후, 나머지 시간들은 그 이야기를 수습하는 데 소모하고, 관객은 그 소모전을 보느라 지쳐간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사건은 단계적으로 드러나고, 인물들의 숨겨진 역학 관계는 하나씩 차근차근 그 패를 드러내 보인다. 그렇다면 이 느긋함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박훈정 감독이 이 전체 이야기를 영화에서 보여준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미리 구조화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박훈정 감독의 말대로라면 이 <신세계>는 전체 이야기에서 중반부에 해당하며, 속편이 제작된다면 아마 이 앞이나 뒤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즉 이 앞에는 이자성이 정청과 손을 잡고, 정청과 이자성이 이 정도 위치에 오르기까지의 나름 파란만장한 이야기(그러니까 여기에 '왜 정청이 끝내 이자성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는가'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가 들어있을 것이다)가 있으며, 이 뒤에는 이자성이라는 새 수장을 맞은 골드문과 경찰의 반격이 있다. (물론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무간도> 시리즈의 진한 그림자를 볼 수 있다. <무간도> 시리즈 역시 1탄은 중간의 이야기였으며, 2탄은 그 이전, 3탄은 그 이후의 이야기였다.)

 

 

좋은 이야기를 했으니, 몇 가지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해야겠다. 먼저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박훈정이 아니라, 감독으로서의 박훈정. 영화의 어떤 촬영스타일이나 편집으로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서도 최근 한국영화들의 어떤 고질병 같은 것이 드러나는 것 같다. 그것은 클로즈업의 남발과 필요 이상의 숏나누기인데, 이 영화에서 클로즈업은 상당히 많으며, 때로는 상당히 익스트림한 클로즈업까지 서슴치 않는다. 물론 이 영화는 액션 영화가 아니라 누아르 영화이고, 이런 누아르 영화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배우의 실제 액션이 아니라, 액션의 전과 후, 그 액션의 전조와 여운을 잡아내는 것이며, 따라서 상당한 클로즈업이 필요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영화의 클로즈업은 필요 이상이라는 인상을 주며, 화면 구도를 계속 답답하게 느끼게 한다. 모든 장면에 방점을 찍으려는 것은 어떠한 장면에도 방점을 찍지 않는 것과 같다. 또한 그것은 최근 영화들의 특유의 숏나누기와 결합되어 조금 더 관객을 몰아붙이는데, 이 영화도 역시 숏을 잘게 나눔으로써 영화의 리듬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어떤 최근의 착시 경향들에 보조를 맞추는 것 같다. 그러나 리듬이 일종의 강박적이고 기계적인 메트로놈이 되는 순간, 그것은 실제로 리듬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영화의 어떤 이상한 소실점. 영화의 시작부, '신세계' 작전에 대해 영화는 배우의 입을 통해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 시나리오가 좋군, 한 번 해봐.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영화의 결말을 알고 있으니, 이 작전에 대해 이제 이야기할 수 있다. 시나리오는 좋았고, 작전은 거의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마지막에 결국 이 작전은 어떻게 되었는가. 최종적으로 보면 작전은 실패하였고, 그 작전은 실패를 넘어서 그 시나리오를 써내려간 작가, 그러니까 강과장(최민식)을 잡아먹었다. 그것은 어쩌면 시나리오가 너무 잘 짜여졌기 때문이 아닐까. 즉 강과장이나 고국장(주진모)은 그 시나리오의 완벽함에 스스로가 너무 도취된 것은 아닐까. 그런데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이 이야기는 단지 '신세계'라는 작전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 영화 자체에 대입해도 그렇게 틀려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거의 완벽하게 짜여져 있지만, 그 완벽한 시나리오가 어딘지 모르게 너무 잘 들어맞는다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이야기가 너무 잘 맞아들어 갔을 때 우리는 대체로 이렇게 묻는다. 이거 짜도 너무 짠 거 아냐? 다시 말해서, 이야기에는 하나의 딜레마가 있다. 즉 이야기는 '짠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너무 짠 것'처럼 보여서는 안된다. 즉 이야기가 최종적으로 성공하는 순간은 그것이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는 순간이다.

 

다시 반복하자면 우리는 여기에서 '개연성'이라는 하나의 장벽을 만난다. 즉 이야기가 너무 잘 짜여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인상을 주는 순간, 그것은 도리어 이야기가 잘 짜여져 있지 않다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너무 잘 짜인 이야기는 실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도 예를 들어 몇 가지의 질문을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세부적인 부분에서도 그렇고, 보다 큰 부분에서도 그렇다. 보다 큰 부분에서의 질문이라면 이러한 것들일텐데, 이중구(박성웅)는 그 자신이 그것이 독배였음을 너무 잘 알고 있었음에도 왜 그 독배를 기꺼이 마셨는가. 혹은, 정청은 왜 이자성의 정체를 끝내 밝히지 않았는가. 아니면, 강과장은 자신이 그토록 몰아치면, 이자성이 어떻게 나올지를 정말 몰랐을까. 강과장 정도의 캐릭터라면, 뭔가 어떤 대비책을 만들어 놓았어야 하지 않을까, 같은 질문들. 즉 이 영화는 묘하게도 저건 영화네, 하는 인식을 우리에게 심어주는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형사들이 몰아닥쳤을 때, 여자의 양수가 터지는 부분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이 시나리오에 감독 자신이 너무 취한 결과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좋은 시나리오는 '신세계' 작전처럼 때로 감독 자신을 잡아먹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많은 참조목록을 가지고 있는 이 영화 <신세계>는 아쉽게도 그 참조목록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양쪽의 일종의 아버지들을 등장시켜, 마치 거대한 두 세계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였던 <무간도>를 넘지 못하고(<신세계>의 강과장과 이자성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기보다는, 사이 엄청 안좋은 직장선후배처럼 보일 뿐), 인간의 정체성, 악의 기원에 대한 탐구, 어떤 종교성에 대한 질문에서는 <이스턴 프라미스>에 미치지 못하고, <대부>의 묘한 숭고함과 절제미나 <흑사회>의 잔인한 비정함에는 꽤나 모자르다. 그러나 뭐 그렇게 실망할 것도 없다. 위에 든 영화들은 누아르의 대표격인 작품들이고, 거장의 작품들이 아닌가. 박훈정 감독은 이제 고작 이 영화로 두 번째 작품을 만들었을 뿐이고, 나는 영화는 찍으면 찍을수록 크게 나아질 수 있으나, 이야기를 직조하는 능력에 대해서는 어떤 천부적인 능력이 중요하다고 믿는 편이고, 그것에 대해서는 이미 박훈정 감독의 능력은 어느 정도 검증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세계>는 잔재주가 아닌, 이야기의 구조로서 승부하려는 스트레이트한 영화이고, 그 스트레이트한 주먹의 상당 부분은 아직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웃음기 없이 이만한 크기로 직선으로 밀어붙이는 한국 누아르 영화는 적어도 최근에는 없었다. (감독 말대로 이 영화들이 같이 언급된 자체가 영광이 아닐까?) 감독의 다음 펀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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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3-02-28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독은 좋겠다, 맥거핀님 칭찬 막 받고 기대까지 받아..@.@ (이제 감독까지 질투함)

그랬구나. [부당거래]는 류승완 감독이 각본을 쓴 게 아니었구나. 뭔가 달랐어. 음, 두 감독이 함께 맞붙어서 비슷하게 가고 있다면 다행일까요. 배우들이 A급이니까 둘 다 평타 이상을 칠 것 같긴 했지만요. 예전에 페이퍼에 베를린 보러 가겠다고 썼을 때 감독이 류승완인 줄 몰랐어요. 네, 저는 대부분 모르고 가요. 언젠가는 그걸 다 꿰고 있을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냥 보는 걸로 벅차요. 일단 양을 넣자는 주의로 변함. 저는 말이죠, 통틀어 류승완 감독 영화가 좋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래서 더 어릴 때는 내가 남자들이 좋아하는 세계를 겉핥기로도 이해를 못하는건가 싶기도 했는데 이제와서 보면 모두의 공감을 자아낼 티끌만큼의 무언가가 류승완에게 늘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냥 내 취향으로 퉁치면 좋겠지만 적어도 항상 오르막에서 확 오르지 못하고 주저앉고마니까 기대치가 높은데 그걸 충족시키지 못하는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요.

[무간도]는 함부로 따라하면 안되는 건데, (저 완전 팬이에요ㅠㅠ) 따라하고도 욕 안 먹고 칭찬 받으니까 이 감독의 펀치는 저도 기대돼요. 역시 찍는 것보다는 이야기가 먼저여야 해요. 꼬인 거 보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게 티가 나는 것 같아요. 그나저나 액션+느와르 리뷰는 어느 경지의 리뷰입니까? 저는 드라마말고는 영화리뷰 거의 다 패스하고 지나가는 게 안쓰는 건 줄 알았는데 못 쓰는 거였어요. 리뷰가 아니라 초딩 감상문 같아서요(눈물난다..)..

2013-02-28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맥거핀 2013-03-01 13:14   좋아요 0 | URL
저는 류승완 감독 영화는 나름 좋아하기는 하는데, 뭐랄까 영화들에 매니악한 부분이 있어서, 보다보면 조금 약간 몰입이 안되는 부분들이 있기는 하죠. 글쎄..아마도 본인이 막 그런 걸 넣고 싶은가봐요. 남들 보기에는 아..이거 아닌데, 싶어도 이 장면은 그래도 넣어야돼 뭐 그런거요. 그런데 사실 보면 그런게 더 매력적이기는 해요. 매끄러운 무엇인가가 있지만, 감독의 특유의 냄새랄까 그런 게 없는 영화들이 요새 많은데(저는 감독의 능력의 문제라기 보다는,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 보다는 뭔가 껄끄러운 부분이 있는게 낫죠.

저도 <무간도> 엄청 좋아해요. 예전에 <무간도> DVD 박스세트 처음 나왔을 때 돈은 없는데, 그게 막 지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먹을 거 줄여가면서 질렀어요. <무간도> 얘기하니까 아무래도 비교를 조금은 하게 되는데, 무엇보다도 이정재 씨가 양조위보다 너무 연기를 못해요. 물론 이정재 씨도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미안하지만 아직도 약간 발연기를...물론 제가 양조위를 심하게 좋아하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요.

리뷰는 그냥 막 쓰세요. 뭐든지 다 쓰다보면 좋아지겠죠, (라고 사실은 저한테 말합니다.)

2013-03-01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28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난일까 했는데, 다 읽고 보니 칭찬이군요.^^
전 좀 뻔한 영환가 해서 안 볼 뻔.. (근데 시간 없어서 못 볼지도요. 일단 스토커와 라스트 스탠드 먼저 기회를 줘야 하고, 그리고 직장도 다녀야 하니까...-_-)
여튼 리뷰를 읽고 보니, 영화가 보고 싶어집니다.
(디파티드는 보고, 무간도는 아직 안 본 어이없는 이력도 빨리 청산을 해야겠고요~ㅎㅎ)

맥거핀 2013-03-01 13:23   좋아요 0 | URL
디파티드는 무간도를 리메이크 했다고는 하지만, 도리어 설정이 상당히 다른 부분도 있으니까요. 다른 영화라고 볼 수도 있겠죠. 무간도보다 디파티드가 더 좋다는 사람들도 있고..

그리고 열심히 깠는데...일단 글 제목부터가 공격적이잖아요.ㅋ

아카데미도 있고 해서, 원래 2월에 좋은 영화가 많이 나오는 달이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유달리 한 가락 하는 감독들의 영화가 많이 나오네요. 홍상수와 김지운과 박찬욱의 영화가 거의 동시에 나오는 이런 때는 거의 못 본 것 같은데..

네오 2013-02-28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훈정 감독의 대해서 그냥 생각나서 하는 말입니다만,,2010년 김지운의 <악마를 보았다>에 시나리오작가로 처음 접한 뒤,,대한민국의 부조리한 법현실에 대해서 잘 말해주는 것 같아서 그에 대해서 관심이 많이 생겼습니다만,,마치 과거의 데이빗 마맷의 초롱초롱한 글빨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만,,류승완의 <부당거래>를 처음보고,,아 이 작가 대단히 영민하다고 생각했어요,,그러나,,그때 류승완의 <짝패>가 저희 거의 홀릭정도의 페어버릿 필름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찍지 않는 그에 대해서 맹렬히 비난했지만, ,최근의 다시 <부당거래>를 보고 (이미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 법률시스템에 특히 검사에 대해서,,대해서 열렬한 관심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거의 명작에 가까운 냄새를 맡았습니다,,정말 좋던군요,,다시 박훈정으로 돌아와서 그의 데뷔작이 <혈투>였지요,,인기가 거의 없어서 흥행에 참패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이렇게 <신세계>로 각광받다니 어리둥절 하군요,,그는 우리나라 시나리오 작가 중에서 플래쉬 백 효과를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작가 같더군요,,<혈투>의 시대적 배경은 아직도 논란중인 토론거리인 광해군의 북벌파견이라,,관심 있게 지켜보았는데,,사실 지루한 감도 있었죠,,이야기 인물이 세명이니깐요,,아무튼 <신세계>는 황정민의 깡패연기를 다시 볼수 있다니깐,,기대해봅니다,,

맥거핀 2013-03-01 13:33   좋아요 0 | URL
감독의 얘기를 보니까, <혈투>는 여러가지 여건상 하고 싶은 것은 별로 하지 못했다는 말이 있더라구요. 다른 기사에 보니 <혈투> 때 대기업의 투자를 일부러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암튼 감독 입장에서는 투자사의 입김에 휘둘리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여러모로 예산상에서 아쉬움이 남는 모양입니다. (뭐 모든 영화들이 어느정도는 다 그렇지만)

그래서 제가 알기로는 원래 시나리오에서 영화가 많이 줄어든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더 좁은 공간의 이야기로 축소된 면도 있구요. 영화에서 공간의 문제는 예산상의 문제로 제약을 받을 수 있지만, 말씀하신 플래시백 같은 것은 뭐 감독의 역량이 된다면 저예산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니까요. 플래시백하니까 생각나는데, 이번 영화에 붙은 마지막 사족이 생각이 나는군요. 저는 마지막에 왜 그런 사족이 붙었을까 의아했어요. 감독도 이게 사족이라는 걸 알텐데, 마지막에 그런 걸 붙이는 것은...속편에 대한 의지일까요?

황정민의 연기는 요새 충무로 배우 중에는 거의 원탑급인듯 합니다. 약간 과잉된 면이 없잖아 있지만, 뭐 그런 건 할 수 있는 때 해야죠. 이 영화는 황정민보고 지르라고 하는 영화니까요. 최민식은 이번 영화에서만큼은 톤을 바꿔서 상당히 절제하는 것 같고...이정재가 상당히 못 받춰주는 와중에서도 연기는 좋았어요.

넙치 2013-03-01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다르시군요.ㅋ
상업영화는 상업영화만의 규율이 있다고 가정해요. 현실감이 없어도 괜찮다,뭐 이런..그래서 맥거핀님이 지적하신 너무 잘짜여진 아귀도 좋아요. 어차피 우연없는 이야기는 없으니까요. 개연성 부족이 과할 정도는 아니게 보여요.
카메라 움직임이나 편집술도 저는 너무 훌륭하게 봤어요.액션씬을 제거한 대신 속도감을 유지한 게 빠른 교차 편집인데 이게 의미없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이 영화에서는 아주아주 유의미한 거 같아요.생략에서 나오는 쇼트간 파생 의미 생산으로 저는 해석. 익스트림 클로즈업도 전 강조로 보지 않았어요. 쓰러져가는 건물 외경 샷 그리고 이어지는 건물 안 벽과 인물만을 확대해서 잡아내는 방식은 인물이 어디에 있는지 있게하는 효과가 있더라구요. 누가 궁금하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저는 왜 제 생각을 길게 쓰고 있는지.쩝. 쓰고나니 뻘쭘.

맥거핀 2013-03-01 13:50   좋아요 0 | URL
생각듣는 거 재밌고 좋은데요. 언제도 좋으니 생각을 많이 나눠주세요.^^

저는 마지막을 맞춰놓고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즉 그 마지막을 주기 위해 이야기가 중간에 조금 개연성이 없어진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정청이 이자성을 덮는거나, 강과장이 그대로 당하는 것이 그래서 조금 걸렸어요. 물론 박훈정 감독이 후속작을 꿈꾸는 것 같으니, 그 이야기들이 후속작의 중요한 지점이 될 수도 있겠죠. 즉 정청과 이자성의 덮을 수밖에 없는 숨겨진 관계나 강과장이 마련했던 대비책이 나중에는 중요하게 등장할 수 있겠죠.

저는 속도의 문제는 글쎄요...빠르게 한다고 해서 긴박감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예를 들어 <흑사회> 같은 영화보면 사실 중요부분에서 매우 느리게 숏이 연결되는데, 그 때 엄청난 긴장감이 나오니까요. 어차피 이 영화도 액션이 중요한 영화가 아니니까요. 중요한 액션을 감독 스스로가 제거할 정도니까.

아..그리고 말씀하신 건물 외경 샷과 인물이 연결되는 씬이 어디서 나왔었죠? 따지는 게 아니라 궁금해서요.ㅋ

넙치 2013-03-02 11:12   좋아요 0 | URL
강과장과 이자성이 접선하는 건물에서요. 두 사람의 만남 중 몇 번째 만남이었는지는 비루한 기억력 탓에 모르겠고, 암튼 두 사람의 접선 중인데요. 외경을 역시나 비스듬한 부감으로 자리잡고 있다가 이자성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면서 카메라가 이자성을 따라들어가고 강과장이 등장하는데 어느 순간, 강과장의 얼굴과 연두색 벽만 잡는 샷에서 저는 감동을.ㅋ 그 뭐랄까, 강과장과 이자성의 정체성 혼돈, 나아가 선과 악의 경계의 모호함까지도 함축하는 느낌까지도 확대 해석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또 하나는, 건물 외경이 아니라 이자성의 집안에서 이자성 아내가 유산 후 아내의 얼굴 잠시 보여주고 이자성의 얼굴이 문을 배경으로 클로즈업된 후 문을 열자 며칠 전 있던 전투의 상흔으로 똘마니들이 얼굴에 반창고를 죄다 붙이고 있는 장면에서 감독의 연출력에 후한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더라구요. 문의 본래 기능이 공간 분리인데 문을 열기 전에 이자성의 얼굴 클로즈업에서 잠깐 집이란 걸 잊고 문을 열면 집 밖이란 걸 알게 하는..내면과 외면, 뭐 이런 함축을 달아 봅니다.하하.

맥거핀 2013-03-03 00:59   좋아요 0 | URL
아..영화를 상당히 세밀하게 보시는군요. 저는 사실 중간부분부터 리듬을 잃고 좀 루즈하게 본 것도 있고, 원래 대강 보는 것도 있고 해서 말씀하신 첫번째 장면은 사실 잘 기억이 안나네요. 아무튼 다른 인터뷰에서도 보니까 감독이 공간의 문제에 많이 신경을 쓴 것 같기는 하더라구요. 예를 들어 강과장에게 낚시터를 부여하고, 접선장소로 바둑교실을 부여하는 것 같은 것 말이죠. 부감 얘기하니까 생각나기는 하는데, 요새 한국영화가 부감을 좀 과하게 쓰는 듯 하는 인상도 있어요. (물론 부감이 잘 쓰면 상당히 좋은 그림이 나오기는 합니다만..)

두번째 말씀하신 장면은 생각이 나는데, 아마 그게 마지막 휘몰아치기 직전이었죠. 저는 사실 그 장면에서 아내의 표정이 너무 의미심장해서 공간에 그렇게 주목해서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공간을 쓰실 요량이면 좀 클로즈업은 자제하시지, 하고 저는 여전히 투덜투덜...^^ (말씀하신 부분들을 생각해보니 공간의 문제에 주목해서 한 번 더 봤으면 좋겠네요. <파우스트>도 꽤 오래전에 봤는데 공간문제를 주목해서 다시 한 번 봐야겠다..그랬는데, 그것도 못 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꽃도둑 2013-03-04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선 진득하니 댓글까지 다 읽었어요,,^^
영화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인지 용어들은 여전히 생소하군요,
하지만 재밌어요,,ㅎ

맥거핀 2013-03-06 15:34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뵈니 반가워요~. 댓글까지 차분하게 읽어주시고..뭐 지식은 없어도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그걸로 좋죠.

이제 봄인데 꽃향기도 맞고, 따스한 햇볕도 느낄 수 있는 좋은 데 많이 가셨으면 좋겠네요. 뭐 이건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또 다른 길>, <다이하드: 굿 데이 투 다이>, <1999, 면회>에 대한 약간의 스포 있음)

 

 

최근에 본 영화들에 대한 리뷰라기보다는 수다성 잡담 혹은 잡담성 수다.

 

 

 

 

 

 

 

 

 

 

 

또 다른 길, 카롤리 마크, 야노스 크산투스, 1982

 

1957, 실질적으로 소련의 지배를 받는 공산국가였던 헝가리를 배경으로 오직 자유를 꿈꿨던 한 레즈비언 기자의 이야기를 그린 카롤리 마크와 야노스 크산투스가 만든 헝가리 영화 <또 다른 길>은 두 가지의 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에바와 그 에바에게 이끌린 리비아의 사랑 이야기라는 감성적인 축,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각종 검열과 거짓과 프로파간다와 억압이 존재하던 당시 헝가리의 분위기와 특히 언론인들의 진실된 보도를 향한 갈망이라는 이성적인 축. 헝가리 국민들은 스탈린의 충실한 개였던 지도자 라코시를 1956년의 봉기로 끌어내고, 잠깐 '부다페스트의 봄'을 맞이하였으나, 그해 11월 소련 지도부는 부다페스트로 전차를 진격시켰고, 새로 지도자가 된 임레 너지는 소련에 반기를 든 대가로 처형당했다. 그러므로 그런 1957년의 헝가리에서 자유로운 보도를 갈망하는 레즈비언 기자인 에바는 영화 속의 표현대로 허리 위에서나 허리 아래에서나 일종의 바이러스와 같은 존재였고, 그러므로 이 영화 속에서 이런 감성과 이성의 문제는 여기자 에바의 안에서 하나로 통합된다.

 

이것을 일종의 정치적인 멜로라는 하나의 비유로서 생각해 볼 수도 있는데, 이 에바라는 자유로운 영혼의 바이러스는, 아무 것도 모른 상태에서 군인 남편과 함께 이것이 당연한 삶이라고 여기며 살아가던 리비아, 그러니까 군부를 등에 업은 독재의 억압 속에서 살아가던 일반 국민들에게 침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에바와 함께 도피를 꿈꾸던 리비아는 결국 그 군인의 총탄을 받고 살아있으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며, 이것은 다시 소련의 전차의 침공을 받은 헝가리의 상태를 하나의 비유로서 보여준다. 즉 헝가리의 국민들, 더 나아가 이 헝가리라는 하나의 나라는 존재하고 있으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소련의 지배를 받는 일종의 괴뢰 국가와 마찬가지였던 대외적인 상태로서도 그렇고, 대내적으로도 당시의 사람들은 겉으로는 자유롭게 존재했으나 속으로는 철저하게 자유가 억압된 상태였다. 그것을 영화 속 에바와 리비아가 취재하게 되는 협동농장의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자발적인 농민들의 참여로 이루어졌다고 선전된 협동 농장이 강요와 억압 속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그들은 취재하면서 알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듯이, 공산주의 사회는 혁명으로 시작하였지만, 그 혁명은 구호로서만 존재하였고, 혁명의 실질적인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상 금기되었다. 그러므로 그 혁명의 바이러스를 잔뜩 담고 있던 에바는 당연히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공산주의 사회를 만들어냈던 많은 혁명가들이 그 공산주의 사회에 의해 제거된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 속에서 두 가지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영화 속 후배 기자들의 갈망과 상부의 억압 속에서 고뇌하는 늙은 편집장과 관련된 일화. 이 편집장은 오래전 어떤 이유로, 아마도 뭔가 정부에 밉보일만한 기사들을 썼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사형 직전에 사형선고는 취소되었고, 그 사형집행인이 지금까지 이 모든 것이 농담이었다고, 죽는 것보다는 농담이 낫잖소?,라고 말했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공산주의 사회의 어떤 비인간성, 즉 아마 혹 그대로 죽었어도 그것은 그대로 농담으로만 치부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 다른 하나는 진실된 기사를 쓰지 말라고, 그 내용을 듣기 좋은 다른 이야기로 바꾸어 실으라고 억압하는 상부의 사람에게 그 편집장이 들려주는 이야기. 한 소년이 사소한 버릇을 고치기 위해 병원에 갔다. 의사는 최면 요법을 통해 그 소년을 치료했고,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그 버릇은 놀랍게도 사라졌다. 그러나 몇 달 후, 그 버릇은 사라졌지만 그 소년에게는 다른 증상이 생겼다. 바로 시도때도 없이 심한 경련을 하는 증상이. 그것은 비단 1957년의 헝가리의 경우만일까. (서울아트시네마)

 

 

 

 

 

 

 

 

 

 

 

 

다이하드: 굿 데이 투 다이, 존 무어, 2013

 

쇠락해가는 시리즈를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더욱 슬픈 것은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 전작들에게 엿을 먹이는 것을 보는 일이다. 이 마지막 작품(그렇다, 나는 이것이 마지막이리라고 확신한다. 이것이 조금 나았더라면 어땠을지 모르지만, 이 상태로는 후사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운명이었던 것처럼 보이는데, 강약, 중강약을 구사하던 전작들의 액션 리듬은 사라졌고(영화의 구조로서 가장 이상해보이는 점은 그나마 가장 매력적이고, 거대한 액션을 영화의 초반부에 배치해놓고, 뒤에는 심심한 잔재주들로 채운다는 부분), 매력적인 악인들은 자취를 감췄다. 아니, 알아서 자취를 감춰주신다. 존 맥클레인의 부루퉁한 유머는 약간은 살아있으나, 이제 그는 땀과 피에 절은 러닝셔츠를 입고 뛰기는 힘들어 보이고, 뜀박질은 그 대신 그의 차와 헬리콥터, 혹은 그의 아들이 대신해준다

 

가장 무엇보다도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이 영화가 존 맥클레인의 캐릭터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4탄에서 맥클레인은 왜 이렇게 거대한 적에 맞서는지 그냥 도망가자는 제안에 대답한다. 이거는 귀찮고, 힘들고, 한 마디로 할 거 못되는 짜증나는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되는 거라고. 그게 바로 NYPD 존 맥클레인의 매력이었다. 아이, 정말 하기 싫어 죽겠네,가 얼굴에 가득 쓰여져 있지만(그는 항상 술이 약간 덜 깬듯한 얼굴이다), 그래도 그거 안하면 많은 사람이 죽으니까,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살려야 하니까 해야한다는 뭐 그런 닭살돋는 거. 그리고 그것은 한편으로 이 <다이하드> 시리즈의 매력이기도 했다. 아니 고작 너 따위가 내 적수가 되냐는 식의 악당들의 태도, 그리고 그에 맞서는 마누라에게 구박당하고, 상관에게 욕먹는 존 맥클레인, 그리고 그 옆에서 같이 뛰고, 때로는 권총 한 자루로 맞서는 다른 경찰들. (좀 다른 얘기지만, 드라마 <24>에서 가장 슬펐던 장면 중의 하나는 잭을 도와주던 스쳐 지나가던 어떤 여경찰의 죽음이었다.) 그래서 존 맥클레인은 그래도 그나마 최대한 시민의 피해를 줄이려 한다. 그것이 경찰의 임무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존 맥클레인은 3탄에서 어쩌다가 같이 임무에 뛰어든 제우스(사무엘 잭슨)가 공중전화를 오래 쓰는 여자에게 강제로 전화를 끊게 하자, 그에게 화를 낸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부루퉁한 뉴욕경찰 존 맥클레인의 예의있는 매력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맥클레인 씨, 이번에는 안면 하나 없는 러시아로 날아가고, 그 덕분에 이제 그는 뉴욕경찰이 아니라 자식새끼 건사하려 애쓰는 휴가나온 아버지가 되었다. 그리고 아들의 말마따나 잘 돌아갈 수 있는 작전을 이상하게 망가뜨리는 민폐 캐릭터로 전락한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도 달아나는 나쁜놈을 쫓기 위해 시민의 차를 빼앗으면서 그 시민에게 주먹질을 날리는 존 맥클레인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영화 속에서 볼 만한 순간들은 존 맥클레인이 나는 단지 휴가왔을 뿐이라며 징징댈 때와 루시 맥클레인이 특별출연할 때 뿐. 나는 루시 맥클레인으로 나오는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이 배우 좋아한다우.

 

아무튼 맥클레인 씨, 지금까지 수고하셨고, 이제 그만 세 가족 함께 휴가 즐기세요. (CGV 대학로)

 

 

 

 

 

 

 

 

 

 

 

 

1999, 면회, 김태곤, 2013

 

그러니까 1999년에 두 친구가 한 친구의 군대 면회를 가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그 두 가지, 1999년이라는 시간과 '면회'라는 것을 만들어내는 그 독특한 공간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마 재수를 하고 있는 친구가 수능을 보았다는 이야기로 미루어 볼 때, 이들은 아마도 98학번 세대이고, 이때는 1999년 초인 듯하다. 이들과 매우 가까이에서 대학을 다닌 내 입장에서 당시 대학에 다녔던, 혹은 대학을 준비했던 젊은이들을 생각해 볼 때, 1997년은 전년의 통칭 '연대사태'와 한총련 이적단체 규정으로 지도부 구속 및 잠적 등으로 이념이 위태로운 시기였고, 1998년은 1997년말 벌어진 소위 'IMF 사태'로 경제가 위태로운 시기였으며, 1999년은 9라는 숫자가 꽉찬, 그야말로 한 세기가 끝나는 혼돈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한 세기가 위태로운 시기였다. 우리는 그 이전에는 술자리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가끔은 공동의 적에 대해서 이야기했었으나, 1998년 이후로는 모두들 1차를 '간단히' 처리한 후 컴퓨터 앞으로 자리를 옮겨 개별의 가상의 적을 맞이하였다. 모두들 2차를 가자고 할 용기는 없었고, 용기는 각자의 PC방 값과 집에 돌아갈 차비만큼만 주머니 속에 남아있었다. 김대중 정부의 출범으로 오래된 적들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고, IMF라는 경제적 적은 뉴스에만 존재할 뿐 어디에서도 그 실체가 보이지 않았으므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테란이니, 저그니 하는 가상의 적들을 만들어 전쟁에 몰두했는지도 모르겠다.

 

공간은 어떨까. 영화 속에서도 묘사되는 군인이 외박을 나와서 맞이하는 군대 주변의 공간들(위수 지역이 있으므로 먼 곳으로는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으니)은 참으로 이상해 보인다. 그곳은 군대의 울타리 밖에 있는 공간이지만, 이상하게도 군대의 일부처럼 보인다. 그 곳에서는 백골부대 마크가 선명히 붙어있는 식당에서 고기를 먹을 수도 있고, '오바로크'를 칠 수도 있으며, 여전히 선임에게 조인트를 까일 수도 있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군인들이 먹여살리는 그곳은 군대가 아님을 애써 항변하고 있지만(예를 들어 '서울다방' 혹은 '부산마트'라는 그 곳의 미스테리한 명칭의 간판들을 보라), 마치 군대의 거대한 일부처럼 보이고, 때로는 강원도 전체가 군대의 거대한 주둔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군대에 간 친구를 만나기 위해 향하는 두 (남자) 친구의 여정은 마치 빠져나올 수 없는 구멍으로 스스로 기어들어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부 미국영화에서 보이는 중서부의 드넓은 평원이 마치 빠져나올 수 없는 거대한 그물처럼 보일 때처럼 말이다. 하룻밤의 여정을 다루는 이 <1999, 면회>는 그러므로 빠져나올 수 없는 여정이 계속되는, 낯선 마을에서 일이 점점 꼬여가는 것처럼 보였던 <유턴>과 같은 영화처럼 이야기가 이어진다. 두 친구는 친구를 전기가 통하지 않는 철조망안에 되돌려놓고 무사히 서울로 돌아갈 수 있을까?

 

결국 세 친구는 그 곳에서 자의든 타의든 한 가지씩을 잃어버린다. 대학생 친구는 동정을 잃었고, 재수생 친구는 카메라를 잃었고, 군인 친구는 사랑을 잃었다. 그 때는 그렇게 무엇인가를 잃어야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아니, 이건 허세고, 무엇인가를 잃어야 조금이라도 덜 찌질해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때로는 억지로 잃었고, 때로는 기꺼이 버렸다. 그리고 그대신 기꺼이 우정을 얻었다, 라고 쓰고도 싶지만, 대신 그들은 그 이후에 이상한 것들을 얻었다. 그 이상한 것들을 얻게된 2013년의 남자들은 이제 떼를 쓴다. 차라리 찌질한 자신으로 되돌아 갈 수 없을까, 이 이상한 것들을 버릴테니, 제발 찌질한 자신으로 되돌려달라고 애타게 울부짖는다. 그것이 어쩌면 <건축학개론>이나 <응답하라 1997>, 혹은 <1999, 면회> 등에 남아있는 밑바닥의 정서가 아닐까. 예를 들어 실제의 적이 보이지 않으니 가상의 적을 만들어 그들과의 싸움을 했었던 찌질한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 지금은 그런 찌질함마저 없어져버렸으니까, 찌질한 자는 콩알만큼이라도 염치가 있으니 찌질해지는 것이니까. 적어도 몰염치, 혹은 파렴치하지는 않으니까.

 

영화적으로 볼 때는 너무 도식적인, 있음직한 사건의 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 이 영화를 리얼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경험에서 비추어진 리얼함인지, 혹은 들은 리얼함, 만들어진 리얼함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는 우리가 그것이 리얼한 것이기를 바라는 그런 종류의 리얼함이 아닐까.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내가 불일치할 때,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조작함으로써 맞춰나갈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하지 않고 조작되지 않은 과거의 나의 어떤 부분을 절실하게 끄집어내는 순간, 그것은 현재의 나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초가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은 안타깝게도 상당히 어려워보인다. (CGV 대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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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0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죽는 것보다는 이 모든 것이 농담이었다,고 하는 게 낫다는 얘기. 인상적이네요. 현실사회주의는 그 찬란한 이상과 현실 재현의 간극이 너무도 커서 진짜 차라리 농담같은 면이 있는 것 같아요.(<굿바이 레닌>이 왠지 생각나네요. 물론 다르지만..) 물론 얼굴에 철판을 깐 자본주의는 그런 간극은 없지만, 파국적 비극이지요.

2. 다이하드4 관람기 읽으니, 전작들의 매력이 도리어 확 다가오네요.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다." 피천득의 <인연>, 마지막 문장이 생각나는군요.- 흐흐 근데 이 글 무척 재밌어요!

3. 1999, 면회 관람기. 무척 설득력 있는 글이에요.
무언가를 잃어야 어른이 되는 줄 알았고, 무언가를 기꺼이 잃으면서 대신 이상한 것을 얻었고, 그런 어른이 된 현재 차라리 무언가를 잃기 전의 찌질이가 되고 싶어한다. -맞는 말 같은데,, 이걸 영화 속에서 도식화하면 또 상투적이다, 이 또한 설득력 있어요. 사람들이 건축학개론과 응답하라1997의 회고주의를 비난했던 게 이런 부분 아닌가 싶네요. 상투적인 구도.
"쉽게 파악되지 않는 과거를 포착할 때, 현재의 나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초가 된다. 그런데 이건 어려워 보인다." 이런 '인식'에 대한 조심스러움은 이전의 김종관 글 인용과 통하는 면이 있구요.

맥거핀 2013-02-21 14:36   좋아요 0 | URL
장문의 댓글을 보니 좋군요.^^

공산주의 국가에서 어린시절부터 자라난 사람과 또 외부에서 보는 시선은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공산권 국가의 작가들의 글이나, 그곳에서 만들어진 영화 등을 보면 어떤 인식 자체가 뼛속깊이 자본주의인 우리와 확실히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이상을 꿈꿨던 사람들이 현실 공산주의 사회를 보고 또 한편으로 절망했던 부분들을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제 입장에서)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인 듯 합니다.

<1999, 면회>를 비롯한 예전으로의 타임머신을 보내는 작품들을 보면, 결국 중요한 질문은 '왜' 지금 90년대를 돌아보는가,라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 때를 돌아봄으로써 현재의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살펴봐야겠지요. 그저 좋았던 옛일..로 끝나는 것은 현재의 나를 기만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소위 '운동권 회고담'을 보는 불편한 시선 같은 것 말이죠.)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를 교묘하게 분리시키려는 시도들은 위험하죠.

<다이하드>는 이제 그만 나왔으면 좋겠어요. 저는 존 맥클레인을 보고 싶지 맥클레인의 탈을 쓴 다른 인물이 나와서 하는 것은 별로 보고 싶지가 않거든요. 아니면 루시 맥클레인을 주인공으로 해서 하면...

최근에 1-2 사이에 관심있는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이더군요. 김지운의 <라스트 스탠드>, 박찬욱의 <스토커>, 박훈정의 <신세계>, 홍상수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분노의 윤리학>이나 임순례 감독 영화도 관심이 있기는 한데..몇 편이나 볼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일단 박찬욱의 <스토커>는 어떻게든 보게 될 것 같기는 합니다.

2013-02-22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훗 '장문의 댓글'을 부르는 글을 쓰시니까. + 흠. '또 댓글'을 부르는 긴 답글이군요.

음. 그렇겠군요. 사회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자란 사람과 뼛속 깊이 다른 인간, 다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겠어요. (생각 못해 봤네요.) 그런 시각의 차이를 보여주는 영화가 뭐가 있을까요? 전 동구권 감독 영화 본 거 두 편 정도 생각나는데(철의 사나이, 붉은 시편), 둘 다 그 적당한 예는 아닌 것 같고...

흠. 그러네효. 왜 지금 90년대인가,라는 질문이 더 핵심이겠어요. 근데 모든 복고주의는 뻔한 것 같아요. 현재에 대한 손쉬운 도피, 그때가 좋았어.. 라는 것. 그나저나 저야말로 엄청 회고적인 인간인데요. 복고와 회고는 다르지만, 여하튼 상투적인 건 모두 나빠요.ㅎ

루시 맥클레인 떔에 <다이하드4>를 보고 싶을 정도로 찬양하시는군요~. 하지만 그외 요소의 데미지가 너무 클 것 같아, 포기.ㅋㅋ

흠. 저도 당연히 라스트 스탠드, 스토커! 그리고 홍상수 신작은 아마 접근 불가로 못 볼 것이고. 분노의 윤리학은 시간 되면 보려고요... (되게 볼 것 같이 썼는데, 사실 요즘 영화 진짜 안 봐요. <베를린> 이전 본 게 한 달 전의 <파이 이야기>?!) 그리고 '남쪽~튀어'는 내일 예매해놨어요.

맥거핀 2013-02-22 14:37   좋아요 0 | URL
글쎄요..그런 영화가 뭐가 있을까요? 저도 막상 물어보시니 뭐가 있을지..(말씀하신 두 영화는 모두 제목만 알아요. 미클로시 얀초의 영화가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만..) 뭐 꼭 어떤 영화의 내용같은 것 보다도, 러시아 문학, 러시아 영화, 예를 들어 타르코프스키나 최근의 알렉산더 소쿠로프 등에서 보이는 인간 본연의 탐구, 어떤 거대한 질문 같은 것을 보면, 정확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러시아정교나 어떤 대륙적인 기질 외에도 이 공산주의, 사회주의 같은 것이 어떤 작용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중국 영화나 지아장커의 다큐 등에서 인민복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를 볼 때의 어떤 이질적인 감정 같은 것도 말이죠.

저는 그 배우,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영화는 거의 챙겨봤거든요. 으하..너무 매력적이예요. 작년에 내한했었을 때 한 번 가볼까, 심각하게 고민을..루시 맥클레인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경찰이 되어 하는 걸로 했으면 좋겠네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예고편만 봐서는 그냥 예전 영화들의 재반복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과연 또 그안에서 무엇을 변주해낼지 궁금하구요. <스토커>나 <라스트 스탠드>는 감독 본연의 스타일을 헐리우드와 어떻게 혼합해냈을지..걱정반 기대반이고..<남쪽으로 튀어>는 제가 좋아할 스타일의 영화인 것 같은데, 일단 보고나서 감상 전해주세요. 평은 나쁘지 않던데..(근데 저도 생각보다 별로 못봐요.)

2013-02-23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미클로시 얀초의 <붉은 시편> 좋았어요.
흠 저는 모르는 배우네요.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남쪽으로 튀어>는 별로였어요. 모든 요소가 삐걱대는 느낌. 재미없어서 졸았어요. 임순례 감독은 영화를 못 만드는구나, 하고 혼자의 결론을 내렸어요. (데뷔작 <세 친구>도 호평에 비해 영화가 재미없었던 기억이..)

맥거핀 2013-02-25 21:17   좋아요 0 | URL
이런 답글이 늦었네요. 아마 얼굴 보시면 아..이 사람,하고 기억이 나실지도 모르겠네요. 하기는 그렇게 탑스타라고 하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연기파라고 하기에도 뭣하죠.

아..그런가요. 저는 임순례 감독을 상당히 신뢰하는 편인데. 감독으로서의 특유의 정서가 있어요, 임순례 감독은.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어떤 독특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랄까요. 좀 덜 대중적인 면이 있기는 하죠. 특히 이번 영화는 만드는 과정에서 약간의 삐걱거림도 있었으니 그런 면도 조금은 감안을 해야할 겁니다. 아무튼 그래도 <와이키키 브라더스>만한 게 그 이후로 없는 것 같기는 합니다.

감은빛 2013-03-12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위에 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맥거핀님의 글을 읽으면서 앞선 다이하드 시리즈가 그랬구나.
존 맥클레인이 그런 캐릭터였구나 하고 되새겨 보았습니다.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가 누군지 검색해봤더니,
데쓰 푸르프에 나왔던 미녀로군요.
제가 본 건 그 영화 뿐인데 그 미모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들과 매우 가까이에서 대학을 다닌 내 입장에서'로 시작해서
'가상의 적들을 만들어 전쟁에 몰두했는지도 모르겠다.'로 끝나는 부분,
정말 인상적이네요!
늘 느끼지만 맥거핀님 글 솜씨가 거의 예술입니다.
이렇게 잘 쓴 글을 얼마만에 읽어보나 싶은 기분이 들어서,
그 부분만 여러번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좋은 글, 재밌는 글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맥거핀 2013-03-13 16:38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여담입니다만, 글에는 그렇게 쓰기는 했지만, 그때 한창 '스타' 열풍이 불었는데, 사실 저는 '스타'를 잘 하지도 못하고, '스타'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도 늘 '피파'를 했었어요. 저는 당시에나 지금에나 늘 간단한 걸 좋아합니다. 골을 넣고 이긴다, 뭐 그런거요. 암튼 당시에 또하나 기억나는 건 그 수많았던 학교앞 비디오방들이 상당수 PC방들로 명함을 바꿔 달았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이후로 또 그 수많은 PC방들은 또다른 무엇이 되었습니다. 그 사라진 수많은 PC들과 그 주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런 게 궁금하기는 합니다.

아..'데쓰 프루프'를 보셨군요. 네. 그 영화에 나와서 장렬한 죽음을 맞이했지요. 최근의 '다이하드'에서 보니 그 때보다 몸이 좀 불었더군요. '데쓰 프루프'는 영화보다도 그 OST를 참 좋아합니다. 영화 개봉 후 몇 년인데, 아직까지 그 OST는 제 기계 안에 들어있어요.
 

 

 

어제 밤을 거의 샜더니 졸려서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라, 잠 좀 깨려고 간단한 정보성(?) 글 하나 적어봅니다. 얼마전 알라딘 전자책 서비스 오류(http://blog.aladin.co.kr/cscenter/6124342)로 전자책 이용자들에게 적립금 2000원씩이 주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게 유효기간이 내일, 그러니까 2월 15일까지군요.

 

2000원이 주어져서 좋긴한데, 뭘 사야할지 모르겠고, 그렇다고 내 돈 들이기는 아깝다, 하시는 분은 '살림지식총서' 시리즈 중에 하나를 고르심이 어떨까 싶네요. 전자책 '살림지식총서' 시리즈 구간은 1900원이라 가격이 딱 맞더군요. 내용도 다양하니 선택의 여지도 많고요. (아..참고로 살림 출판사와는 전혀 이해관계 없습니다.)

 

 

저는 이걸 샀습니다. 뭐 어차피 이걸 읽어도 가스통 바슐라르에 대해서는 겉핥기로 알게 될 뿐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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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3-02-14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거 좋네요. 책샀다고 자랑하면서 1900원짜리 쿠폰으로 저 어려운 책을 겉핥기하다니! 그런데 왜 어제는 밤을 샜어요? (눈 초롱초롱 0('o')0) :)

맥거핀 2013-02-15 20:46   좋아요 0 | URL
뭐 먹고 살려다보니 가끔 밤도 새고 그래야죠.-_- 지금 한 3장인가 봤는데, 아직 뭔 말인지 잘 모르겠음..^^;

가연 2013-02-22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 시리즈가 은근히 좋은 것 같더군요ㅋ 저도 여기 있는 시리즈 중 한 권을 적립금으로 샀었답니다.

맥거핀 2013-02-22 14:25   좋아요 0 | URL
흐흐흐. 네..5만원을 채워야 사은품 받을 수 있는데, 애매하게 한 2-3천원 남을 때 이 시리즈를 자주 활용합니다. 그냥 왔다갔다 할 때 읽기 좋아요.^^
 

 

 

출처: http://www.kmdb.or.kr/indie/board/column_list.asp?seq=83&GotoPage=1

 

언제나 윤리의 편에서서

 

- 글: 김종관 (영화감독)

 

 

프로파간다는 상업영화의 전략이 되었다. 잔혹한 살인과 인신매매를 일삼는 악한의 내장을 뜯고 눈알을 파내는 잘 생긴 남자가 나오는 영웅담이 흥행이 된 것처럼 (동시에 개봉했던 두 개의 잔혹한 액션 영화 <아저씨>와 <악마를 보았다>, 같은 잔혹성에도 확실한 주적이 있는 아저씨는 흥행했고 주적을 찾을 수 없는 악마를 보았다는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사회의 모순과 무조건적인 악의를 겨냥한 호전적인 영화들이 상업영화의 진영에서 달려들고 있다. 그들은 우라까이 액션영화처럼 단순하고 저돌적인 힘을 추구하기 위해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만들고 사회 저편의 절대적인 악을 설정해 놓고 그들과 치열하게 싸운다. 타깃화 된 이념, 그룹, 종교는 단순화되고 그 특징적인 단면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분노케 한다. 사람들의 마음은 뜨겁게 움직인다. 아무도 영화에서 이성적인 균형감을 원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싸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화를 내고 있다. SNS에 관심이 있다면 우리의 분노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그 분노는 일리 있고 현명할 때도 있지만 상당수는 그렇지 못하다. 커다란 강물처럼 흘러가는 트윗의 타임라인에서 사람들은 분노에 가장 많이 모여든다. 어떤 범죄, 어떤 진영, 어리석은 식견과 아둔한 실언들은 공분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모여든 사람 중 누군가는 연대하기 위해, 한편의 무리에 섞이기 위해 분노를 이용한다. 또 누군가는 자기 안의 결함을 사회적인 분노로 치환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분노의 뇌선을 건드려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대중들이 확보된 셈이다. 사회의 의식을 겨냥한 영화, 특히 화를 내는 방식의 영화는 대중영화로써 요소를 가지고 있게 된 것이다. 독립영화는 그보다 현명하고 다양한 시선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노골적으로 화를 내는 영화도 심심치 않게 본다.

먼저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우리'라는 굳건한 범주 안에서 화를 내고 논쟁하며 연대를 만들어 간다. 어찌 보면 많은 창작자들도 창작물들로 열심히 싸우고 있다. 여기까지는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새 많은 이들 그중에 창작자들이 윤리의 편에 서고 있다. 자기 혹은 자기를 지탱하는 테두리의 사람들을 선한 위치에 두고 저 건너에 비판을 둔다. 그들은 저 멀리의 괴물을 본다. 스스로의 괴물, 스스로의 모순에는 눈을 두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돼 버렸다. 상업영화는 대중을 위해 화를 내고 몇몇의 독립영화를 포함한 작가주의 영화들은 예술적 보상을 위해 무척 단순한 방식으로 화를 낸다. 상업영화가 애초에 대중적 기호에 맞춰간다 판단을 하더라도, 균형 없는 독립영화는 보는 이들에게 더욱더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좋은 예술가는 자기 안의 모순을 응시하면서 성장하고 성취한다. 가면을 걷어내고 옷을 벗고 자기 안의 추醜를 꺼내어 해부해야 한다.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부 마쓰모토 세이초는 매우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둔 소설을 쓰지만, 그가 메스를 들고 도려내는 것은 그 스스로의 개인적 욕망에서 반추한 인간의 속성들이다. 그는 악인의 범행을 차갑게 기술하지만 욕망을 자기 안에서 찾고 대입하기에 세월이 지나도 그 이해의 깊이가 훼손되지 않는다.

그처럼 창작자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균형을 가지려고 노력한다면 예술적 가치가 완성될 것이다. 하지만 내부에 대한 응시 없이 비판의 날만 휘두르는 창작자들을 많아지는 것은 하품만 나오는 일이다. 오늘날 정의롭지만 비겁한 문학과 영화들이 종종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 편협한 속성에 이질감을 느낀다. 그런 창작물들이 피곤하다. 창작자가 윤리의 편에 서서 악을 단순화하는 것도 재미없거니와 모든 개인의 악행 이면에 사회적인 현상이 있더라는 식의 시류 적이며 쉬운 결론도 재미없다. 조직이 아니라 사람,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부를 자각하는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길 바라고 나 스스로도 그러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세월이 지나 이 재미없는 시류에 돋보이는 창작물들이, 칼날을 스스로에게 돌려 결국은 세상을 찌르는 이야기들이 독립영화 안에 있었으면 좋겠다. 

 

 

<폴라로이드 작동법>, <연인들>, <조금만 더 가까이> 등의 영화로 주목받았던 김종관 감독의 글. 요즘 우리 영화들 사이에서 떠돌고 있는 분노의 유령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이다. 아니 분노보다 기이한 것은, 대부분 이 분노의 유령들은 결국 깊은 허무와 승리의 (혹은 패배의) 자기기만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분노로 시작되어 허무로 끝나는 lose-lose 게임들. 이 글의 제목은 최근 개봉하는 어떤 영화를 연상케 하기도 하는데, 그 영화는 정말 '분노의 윤리학'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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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3-02-12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이나 예나 영화를 많이 보진 않지만 요새 언뜻 보는 한국 영화들은 노골적으로 사회적인 분노를 표출해요. 그런 영화들을 보면서 사회의식이 있네란 생각이 반복될수록 영화에서 받은 감흥이랄까 문제의식이 조금씩 희석되는 것 같기도 하구요. 마지막 문단이 참 좋은데요.

맥거핀 2013-02-13 00:21   좋아요 0 | URL
마지막 문단에 그런 말이 있잖아요. 정의롭지만 비겁하다. 형식과 내용이라는 문제로 말하자면, 그것은 정의로운 내용을 표방하고 있지만, 정의롭지 않은, 비겁한 방식으로 표현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는데요. 가끔 조금 이상한 이물감이 들때가 있어요. 그렇게 영화에서 내용과 형식이 분리되어 존재할 때.

창작자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도 자기 안의 무엇인가를 찌를 수가 있어야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위에서 얘기한 대로 쉬운 결론을 피하는 것이기도 할테지요.

2013-02-13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요. 뭐라 덧붙일 말 없이 공감! / 김종관 감독이 최근에(?) 책 낸 거 같던데, 읽어보셨남요?

맥거핀 2013-02-14 13:27   좋아요 0 | URL
아..책을 내셨는지 몰랐는데, 찾아보니 있군요. 이 글에서도 느껴지지만 좋은 생각을 하시는 분 같은데,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Mephistopheles 2013-02-13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정당한 분노"와 "확고한 도덕심" 마저도 깊이 없이 쌈마이화 되가는 것 같은 느낌이네요.

맥거핀 2013-02-14 13:30   좋아요 0 | URL
사실 영화라는 것은 어떤 사회의 무의식의 총체라고 볼 수도 있을텐데, 영화에서 깊은 성찰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겠죠. 물론 좋은 예술가는 그 와중에서도 그 물결을 거스르려는 사람일테고요.
 

 

 

 

 

 

 

 

 

 

 

베를린, 류승완, 2013

 

 


(영화의 내용이 약간 들어 있습니다.)


 


액션 영화는 다른 무엇보다도 액션이 좋아야 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이 액션'만' 좋아도 된다도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액션 영화는 액션 영화이기 이전에 영화이기 때문이다. 즉 이 액션들은 액션이기는 하되 이야기로 이어지는 액션이어야만 하고, 2시간 동안 그것을 앉아서 볼 동력을 제공해주는 액션이어야 한다. 단절적인 액션만이 중요한 것이라면 굳이 그것을 2시간이라는 긴 시간으로 묶어서 영화로 볼 이유가 있는가. 상당수의 평들에서 지적하듯이 영화 <베를린>이 아쉬움을 주는 부분은 액션이 아니라, 액션 이외의 나머지 부분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많은 평들에서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을 전달하는 북한 리학수 대사(이경영)의 대사가 잘 안들렸다, 발음이 좋지 않았다, 사투리를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등등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사실 발음이나 사투리가 아니라, 그것을 굳이 설명하는 이야기로 풀어내려고 한다는 점이다. 설명을 특정전략으로 구사한다면 모를까, 대체로 이야기의 이러한 기본 구조를 한 인물의 대사로 풀어낸다는 것은 감독이 그것을 효과적으로 잘 드러낼 자신이 없거나(즉 이야기가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후적 처치이자 고백이거나), 혹은 사실은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다는 뜻이고, 류승완의 선택은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그렇다면 의문이 남는다.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는데, 왜 이렇게 이야기를 복잡한 것처럼 보이려 할까. 그게 아니라면 이야기를 잘 풀어내려 했지만, 그것에 실패한 것일까.

도리어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복잡한 것처럼 꾸며낼 이유가 있을까. 좋은 액션 영화에서 이야기는 도리어 상당히 간결하다. 이 영화와 자주 비교되는 '본 씨리즈'의 핵심도 사실은 간단한, 그러니까 기억과 정체성을 잃어버린 본 요원이 자신의 정체성을, 그러니까 아이덴티티를 찾아나가는 이야기이다. 그 주 플롯은 영화의 처음부터 관객들에게 제시되며, 세부적인 다른 플롯은 본 요원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익스큐즈'된다. 즉 (영리하게도)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도, 이유도 없고 처음부터 관객은 본 요원과 마찬가지로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아무 것도 모른 채 이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보게 된다. 이 영화 <베를린>의 주 플롯은 뭘까. 처음에 얽혀 있는 여러 개의 플롯 중에서 마지막까지 살아 남는 플롯은, 그러니까 일종의 주 플롯은 북한 내부의 권력 암투와 그것이 주독 북한 대사관의 요원들의 시효 만료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 플롯은 영화의 중반부까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통상 액션 영화가 아니라 미스터리나 스릴러 영화가 쓰는 전략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이 영화 <베를린>은 액션을 보여주고자 하는 영화 같은데, 이상하게도 미스터리나 스릴러 영화인 척 한다. 물론 그럼으로써 어떤 이야기에서 얻게 되는 쾌감을 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라는 매체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얻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잃는 것은 캐릭터를 구체화할 시간이다. 영화의 중반부 북한 요원 표종성(하정우)과 남한 요원 정진수(한석규)는 서로에게 묻는다. 도대체 니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이 일에 매달리는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문제는 그게 서로 모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객마저도 잘 모르게 된다는 데에 있다. 즉 이야기를 설명하느라 영화의 시간을 소비함으로써 캐릭터를 구축할 시간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따라서 그럴 수록 캐릭터는 평면화된다. 한석규나 하정우가 좋은 배우들이고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것 같기는 하나, 그들에게 자주 어떤 기시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 영화에서 캐릭터를 관객 안에 구축시킬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다보니 관객은 그 캐릭터를 자기 스스로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그들에게서 비슷한 과거의 캐릭터들을, 그러니까 한석규에게는 <쉬리>의 요원이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형사, 하정우에게는 <황해>의 조선족 남자 등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한편으로 그 '중요하게 보이려는' 액션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액션 영화에서 액션의 합 못지 않게 한편으로 중요한 것은 그 액션을 행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즉 '어떻게' 액션을 하는가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누가' 액션을 하는가이며 그 '누가'라는 캐릭터는 액션의 형태와 관객의 쾌감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미션 임파서블>의 '이단 헌트'에게 바라는 액션과 <스카이 폴>의 '제임스 본드'에게 바라는 액션은 다르며, 그것은 그동안 충분히 구축된 캐릭터의 힘인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질문할 수밖에 없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복잡한 것처럼 꾸며낼 이유가 있을까.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감독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야기보다는 액션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를 들어 이 영화에 내내 비장하게 깔리는 배경음악으로도 유추해 볼 수 있는데, 이 비장한 배경음악은 유독 액션씬이 등장할 때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감독은 우리에게 이 액션씬을 비장한 어떤 것으로, 예를 들어 오우삼 영화 속의 어떤 비장함처럼 보아주길 바라는 중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캐릭터들이, 즉 성냥개비를 잘근잘근 씹는 그 쌍권총의 사나이들이 없으니 어쩌나. 즉 이상하게도 이 비장한 음악이 깔리는 액션씬들은 영화의 이야기들과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애써 설명하려던 이야기들은 이것이 사실 그저 소모품 버리기임을,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사실적으로' 보기를 원한다. 그러나 액션씬에서 이것은 갑자기 비장한 생존투쟁이 된다. 지금까지 이 생존투쟁이 비장한 것이 아니었음을 애써 설명한 다음, 다시 그것이 비장하게 등장할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차피 많은 액션 영화에서 이야기는 브릿지에 불과한 것이고, 그것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이면 된다. 그러므로 이 필요 이상의 많은 이야기가 붙은 이 이야기에서 남는 것은 잉여적인 몇 가지의 질문일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스파이 첩보 영화일까, 아닐까. 그렇다면 굳이 베를린이라는 분단의 상징과 같은 도시를 배경이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없을까. 아니 어쩌면 (사실은 아니지만) 남북한이 얽힌 복잡한 스파이 영화인 척 하는 것, 바로 이것에 정성일의 말대로 무의식적인 메시지가 들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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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3-02-06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부당거래의 연속선상에서 이 영화를 봤어요. 권력 때문에 희생되는 개인의 이야기에서 캐릭터는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았어요. 영화는 짧고 담을 이야기는 많기 때문에 인물이 평면적으로 그려지는건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이야기를 간소화하자니 애초의 의도를 못살릴 것 같고. 감독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데 저는 그게 과히 나쁘지 않았어요.

맥거핀 2013-02-07 01:08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대로 <부당거래>와 연관지어보면 조직과 개인 간의 관계 속에서 개인의 생존투쟁 같은 측면을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 영화는 <부당거래>와 장르적인 위치가 좀 다르니까요. 장르가 다르면 어느정도 접근방식이 달라야 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류승완 감독이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했다고 생각해요. 제작사나 투자사의 입김인지도 모르지만, 휘뚜루마뚜루 해치우려는 느낌이랄까. 저는 류승완 감독이 잘하는 걸 좀 더 살리면 좋을 것 같아요. 잘하는 게 커지면 못하는 건 자연히 줄어들어 보이게 마련이죠.

Arch 2013-02-07 09:36   좋아요 0 | URL
며칠 전에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봤는데요. 분명히 괜찮은 소재인데 너무 뻔하게 풀어낸게 안타까웠어요. 이렇게 하면, 저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은 아쉬움이 막 남더라구요. 분명히 베를린도 그런 아쉬움이 남는데 저는 그냥 류승완 감독이라니까 그래도 괜찮다가 돼버렸어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감독은 잘 모르지만 베를린의 감독은 잘 안다, 이런거? 좋은 선입관은 아니죠.

휘뚜루마뚜루는 처음 들어본 말인데 막 활용하고 싶어요. 이 말의 연관검색어는 하춘화이던데요.


맥거핀 2013-02-07 14:30   좋아요 0 | URL
아..저도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봤어요. 뭐 거의 내용을 다 보여줘서 안 봐도 될 정도.

하춘화씨 최근 발표곡이죠, 아마? 하춘화 씨 얘기하니까 갑자기 한가지 일이 떠오르는데, 별로 듣고 싶지 않으실지 모르지만 그냥 적어볼께요. 제가 군대에서 장교로 복무를 했거든요. 장교들은 돌아가며 당직을 서는데, 하루는 한 병사가 오더니, 오늘 하루만 밤에 TV볼 게 있는데 여기 당직사관실에서 보면 안되겠냐고 간청하는거예요.(원래 병들은 10시 이후에는 취침해야 하니까.) 그래서 그게 도대체 뭔데?,그랬더니 하춘화 디너쇼라고 자기는 하춘화 팬이라는거예요. 한 21살이나 22살 정도 되었을까 한 친구가, 소녀시대도 아니고 하춘화라니..이게 뭔가 싶어서 벙쪘죠. 벙쪄서 그래 뭐 봐라, 하고 틀어줬더니 신나서 열심히 보더군요. 막 노래도 흥얼거리면서. 그 친구와 그 밤에 하춘화 디너쇼를 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나네요.

정말로 구라 아니고, 그냥 하춘화 얘기하시니 갑자기 생각나서 적어봤어요. 하춘화 좋아하던 그 친구는 잘 살고 있는지...

Mephistopheles 2013-02-07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류승완 감독의 영화는 짝패 이후에는 본것이 없다보니 (아 다찌마와 리 빼고) 뭐라 평가할 입장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간간히 그냥 아무생각없이 봐도 무방한 다찌마와 리 같은 영화가 가장 류승완다운 영화같이 느껴지곤 합니다.

맥거핀 2013-02-07 14:33   좋아요 0 | URL
다찌마와 리 같은 영화야 말로 아이러니하게도 류승완의 어떤 작가적 자의식이랄까, 같은 게 잘 드러난 작품이었죠. 이 영화 <베를린>은 어떤 공산품 같은 느낌 같은 게 있어요. 최근 CJ표 영화들에서 어떤 공산품들 냄새가 좀 나는데, 위험해 보여요.

Mephistopheles 2013-02-07 20:53   좋아요 0 | URL
조만간 한계가 분명 오겠죠.

맥거핀 2013-02-08 13:11   좋아요 0 | URL
영화와 자본을 분리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CJ가 꼭 자본주의적으로 굴러가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예를 들어 저는 이번에 <타워>의 감독이 김지훈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김지훈 감독의 밥줄을 끊어야 된다, 그런게 아니라 <7광구>같은 엄청난 자본이 투입된 영화에서 완전한 실패를 보여줬는데, 또 그런 큰 돈을 덥썩 맡기다니..일반 회사에서도 좀 큰 프로젝트 실패하면 맡게되는 프로젝트 크기가 줄어들고 하는 것은 당연한데도 말이죠. CJ에 다른 감독이 없는 것도 아니고...

2013-02-07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07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02-07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본' 시리즈의 원작소설인 로버트 러들럼,<잃어버린 얼굴>은 국제물 첩보물 소설 특유의 분위기가 있죠.이 분야가 국제분쟁이나 외교 등 상당히 복잡한 문제를 다루잖아요.두툼한 소설이니까 그런 복잡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지만 영화화하려니 그걸 빼고 액션 위주로 만들었죠.그래서 스파이물이라기 보다는 재밌는 활극영화가 되었고요.
맥거핀 님의 평을 읽으니 '베를린'은 액션물에 스파이물 특유의 고뇌를 다 담으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맥거핀 2013-02-08 13:19   좋아요 0 | URL
네..본 시리즈의 영리한 부분이 아마도 그런 부분이겠죠. 그리고 많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부분도 이야기보다는 액션을 만들어가는 방식이나 촬영 스타일 같은 부분이 더 컷구요. 이 <베를린>에서도 예를 들어 유리천장으로 추락하는 씬 같은 부분에서 본 씨리즈를 상당히 벤치마킹한 듯이 보이더군요.

근데 사실 <베를린>은 첩보물인 척 하지만, 저는 첩보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배경만 따고, 그저 액션물로 스트레이트하게 밀어붙이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그리고 이 영화가 최근 톰 롭 스미스의 소설 <차일드44>와 이야기가 너무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더군요. 혹시 그 소설은 보셨는지..

노이에자이트 2013-02-09 17:53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도 <차일드 44>가 많이 거론되고 있다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2013-02-08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있군요.
엄청난 예산을 받고도 자유롭게 자기 스타일을 살리면서 그 예산을 감당해내는 감독은 잘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치면 엄청난 예산 자체가 족쇄 혹은 걸림돌...

맥거핀 2013-02-11 22:07   좋아요 0 | URL
섬님, 설은 잘 보내셨어요? 제가 댓글이 좀 늦었네요.

그렇죠. 영화에서 자본과의 결합은 일종의 필요악이라고 할까, 아무튼 많은 예산을 준다는 것은 그만큼 기회이지만, 그만큼 감독에게는 큰 위험부담이 되기는 하죠. 그런 면에서 큰 예산으로 아주 재미있는, 그러면서도 좋은 영화를 뽑는 스필버그 감독 같은 사람이 대단해보이기는 하죠.

노이에자이트 2013-02-09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춘화 씨는 젊은 연예인 많이 나오는 오락프로그램에서도 잘 하더라고요.함께 어울리는 느낌...이번에 엠넷 채널의 <비틀즈 코드>에 소녀시대와 함께 나오는데 주거니 받거니 잘해요.예순이 내일 모레인데도...한 번 다시보기로 보세요.웃음 폭발입니다.

맥거핀 2013-02-11 22:08   좋아요 0 | URL
네..노이에자이트님도 좋은 설 보내고 계신지 모르겠네요. 저도 예전에 다른 오락프로그램에서 하춘화 씨가 나오는 것 보고, 젊은 감각에 비교적 잘 맞춘다 싶었어요. 말씀해주신 것 못봤는데 챙겨보겠습니다. 소녀시대도 볼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