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단 한방처방 - 이해하기 쉽다 외우기 간편하다 ㅣ 간단한방 시리즈
니미 마사노리 지음, 권승원 옮김 / 청홍(지상사)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새해에는 한의학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고, 처음 구입해서 읽은 책이다. 한의사인데 한의학을 결심까지 해가며 공부하는 것에 이루말할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움을 느낀다.
원래 자연과학을 전공했던 이과생으로서, 다시 한의대에 입학하여 공부한 한의학은 내겐 정말 어려운 학문이었다.
학부때도 그냥저냥 학점따서 졸업하기에 바빴고, 로컬에 나와 무려 11년이나 개원의로 있으면서도 정말 대충대충 환자를 보았다.
이것은 정말 의사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수 없지만, 그래도 나의 치료에 만족하고 다시 찾아준 환자들 덕분에 그럭저럭 11년이란 세월을 한의사로서 살아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내 나이도 사십 중반, 이제 정말 한의사로서 이렇게 살아가도 되나하는 회의감
에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한의학 공부를 해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래서 고른것이 "간단한방처방"
정말 어이없고 부끄럽게도 "이해하기 쉽다 외우기 간편하다"라는 카피문구에 넘어가 고른것인데...
읽고나니 생각외로 많은 도움이 된거 같아, 이렇게 서평을 남겨본다.
저자는 일본의 양의사이다. 약력을 보면 일본의 명문대학 게이오기주쿠대학의 의학부를 졸업하고, 영국옥스퍼드대학 의학부 박사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데이쿄대학의 교수이다.
잘은 모르지만, 이정도면 양방의사로도 굉장히 성공한 사람인거 같은데, 이런 사람이 어떻게 한의학에 빠져서, 책까지 내었는지 궁금했다.
저자는 임상에서 환자를 볼때, 서양의학의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의학적으로는 병이 없는데도
'불편함'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대할때 마다, 의사로서 자괴감이 들어, 그 돌파구로 한의학을 찾았다고 한다.
저자 자신도 10년전에만 해도, 한의학을 미신으로 치부했다는 것을 밝힌다.
책자체는 한의사가 보기에, 학부생수준에도 못미치는 피상적인 내용이지만, 저자가 독자로 고려한 대상은 일반인도 한의사도 아닌 무려 양방의사들이다.
양방의사들이 어떻게 한의학에 접근하고, 마지막에는 환자를 치료하는데 있어 한약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 기초부터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인상적인 내용은
"서양의학은 숲을 보지 않고 나무를 본다. 나무하나하나가 병들면 바로 치료하는데 능숙하지만, 숲전체가 왜 망가지고 있는지 그 근본적인 것을 치료하는 것은 힘이 든다. 그러나 한의학은 숲전체를 보고,숲을 치료하여, 나무를 살리는 방법이다."
일본의 양의사가 한의학에 대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참 놀라왔다.
또한 한의사들이 말하는 병인병리, 그리고 변증에 대하여, 모호함과 통일성이 없음을 지적하였는데, 이것은 한의사로서 공감가는 바이다.
한 환자를 보았을때 열명의 한의사가 내놓는 병리기전과 변증, 그리고 처방이 가지각색이고, 체질을 판별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가지각색이다. 한의학이 양방의학에 비해 임상토론이 격렬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그것은 현대적인 진단기기가 없던 시대의 아날로그적인 진단방법(설진,맥진,복진등)으로 만들어진 것이 한의학인지라, 의사마다 다를 수 밖에 없는데 중요한 것은 병리기전과 변증에 연연하지 말고, 환자를 보라는 것이다.
머리속에서 그려진 가상의 병리기전으로 환자의 몸을 해석하여 그 병리를 치료할수 있다면, 그것
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뭐 공감되는 내용도 있고, 반박하고 싶은 말도 있긴 하지만, 어느정도 진실을 담고 있는 말이다.
내가 한의학을 공부할때도 가장 당혹스러워 했던 부분인지라, 글을 읽으면서 꽤나 공감할 수가
있었다.
저자는 한의학이 궁극적으로 서양의학의 보조적인 치료법으로 계속 살아남기를 바란다.
내가 보기엔 우리나라의 상황, 아니 전세계적인 서양의 헤게모니에 의해 이미 한의학은
갈 곳을 잃은것 같다. 그것은 비단 의학뿐만이 아니라, 사회 모든 정치 , 경제 , 사람들의 인식과 문화에서 서양이 동양을 잠식한지 일백여년이 넘은 지금의 현대사회에서, 불가피한 결론이 아닐까 생각된다.
양의사들의 한의사 폄하. 일반인들의 인식. 비록 우리한의사들이 대외적인 홍보능력이 부족한
탓이기도 하지만, 모두가 총을 들고 싸우는 전쟁터에서 칼을 들고 싸우는 것은 힘든일이다.
진단기기를 우리가 가져 온다면 또다른 싸움이 되겠지만, 그런날이 올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게되면, 좀 암울해지긴 하지만, 어쨌든 한의사로서 최선을 다하기위해서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그것이 공부가 되었던, 임상이 되었던, 나에게 찾아오는
환자하나하나의 불편함을 없애주기위해서....
환자가 오면 이렇게 물어봐야겠다.
"어디 불편한데 없으세요?"
저자는 임상에서 이 질문을 하기 위해 한의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서양의학으로는 환자의
'불편함'을 없애주지 못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