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화 통화로 얘기를 나누던 중에 친구가 하루에 커피를 네 잔이나 마신다고 하여 좀 줄이라고 말했는데 그다음부터 하루에 한 잔 마시던 내가 한 잔 반을 마시게 되더라. ‘네 잔을 마시는 친구도 있는데 뭐.’ 하고 안심이 되었던 모양이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잠이 안 온다는 부작용이 있고 건강에 해로울 수 있어 끊고 싶지만 즐거움을 하나 잃는 게 싫어서 하루 한 잔은 매일 마셨는데 늘 더 마시고 싶다는 유혹이 있어도 잘 참아 왔다. 그런데 하루에 커피 네 잔을 마신다는 그 친구를 떠올린 다음부터 끊기는커녕 한 잔 반을 마시게 되더라는 것. 역시 친구를 닮아 가는 게 맞다고 본다. 그러나 그 친구를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를 안심시켰으니까. 즐겁게 커피를 마시게 했으니까.
2.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원래 허리 디스크가 있는데 통증을 느낀 건 오랜만이었다. 화장실에 갈 때나 부엌에 갈 때 목도리를 가지고 벨트처럼 허리를 감았다. 그랬더니 통증이 나아지는 것 같고 움직이기가 편해졌다.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주사 두 대를 맞았다. 매일 오라는 의사의 말에 매일 올 수 없다며 주 3회 오겠다고 했다.
예전에 허리 디스크로 병원에 갔을 때 초음파 검사를 했던 것 같다. 그때 무거운 걸 들지 않으면, 그것만 조심하면 평생 괜찮을 거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는데도 살다 보면 무거운 걸 들 때가 있다. 이번에 허리가 아팠던 이유는 쌀 10키로가 배달되었는데 그냥 놔두면 될 걸 얼른 싱크대 안으로 넣고 싶어서 쌀을 질질 끌고 와서(들지 않고 끌었으므로 여기까진 잘했다.) 싱크대 안으로 넣는 동안 그러니까 그 이삼초 동안 무거운 쌀을 들었던 것 때문인 것 같다. 그전부터 허리에서 좀 수상한 조짐을 느끼긴 했다. 명절(구정) 때 서울과 대구를 오가고 부엌일을 많이 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일까. 운이 나빴던 것은 쌀이 배달되던 그 시간에 왜 집에 아무도 없냐는 것이다. 내가 미련한 짓을 하고 식구들을 탓했다.
3.
허리 통증으로 누워 지내고 있는 동안 다시 말해 내가 환자로 있는 동안 편하긴 했다. 내가 집안일에서 면제되었기 때문. ‘그래, 너희 셋이 집안일을 하며 주부의 존재 가치를 깨달아 보렴.’ 이러고 있었는데 아무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이는 우리 식구들의 태연한 모습. 청소와 설거지를 딸과 남편이 분담해서 잘하는 것이다. 그것도 즐겁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난 허리가 많이 나았지만 계속 환자로 있을 예정이다.
4.
허리 디스크, 목 디스크, 팔은 테니스엘보. 이런 병을 갖고 있는 내게 딸이 묻는다.
딸 : 엄마는 아픈 데가 왜 그렇게 많아?
나 : 내가 머슴 체질이 아니고 귀족 체질이라서 일하지 말라고 아픈 데가 많나 봐. 골골대며 장수하는 형인가 봐.
딸의 물음에 내가 답한 것은 ‘내 병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이었다. 병이란 것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언제나 중요한 건 해석이다. 해석만 잘한다고 해서 모든 불행이 없었던 게 되는 건 아니지만 확실한 건 덜 불행해진다는 사실이다.
5.
이렇게 아픈 와중에 누워서만 있자니 지루해서 누운 채 폰으로 쇼핑을 했다. 돌아오는 내 생일, 돌아오는 30주년 결혼기념일, 돌아오는 어버이날로 인해 남편과 자식에게서 축하금을 받을 걸 예상해서다. 결혼 25주년 은혼식은 생략했고 결혼 50주년 금혼식 때는 내가 단명해서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고. 이런 말을 늘어놓았더니 직장에 다니는 딸이 하는 말이 반갑다. 내가 사고 싶은 것 사라고 한다. 이건 축하금을 주겠다는 뜻이겠지.
그리하여 폰으로 고른 게 있으니 14k로 된 목걸이와 팔찌다. 종로 3가에 있는 귀금속 가게의 매니저로 일하는 친구에게 내가 폰으로 쇼핑하며 고른 것들을 폰 사진으로 보냈다. 이왕 사려면 친구 가게의 매상을 올려 줄 생각으로 보낸 것. 그런데 그 친구가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한다. 으음~~. 친구 덕 좀 봐야겠다. 발품이 들지도 않고 누워서 물건을 고르고 그것도 싸게 사다니. 참 편리한 세상일세.
그런데 내가 이런 사치를 누려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파서 누워 있는 동안 우울한 마음을 떨쳐 보고자 했던 쇼핑이므로
이십 년 만에 하는 사치이므로
아주 오랜만에 누려 보는 사치이므로
욕하시는 분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고가품을 사려는 건 절대 아니다.(간이 콩알만 해서.)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0301/pimg_7179641831853126.jpg)
대단한 글도 아닌 잡담만 쓰고 나니 꽃 사진이라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