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내가 읽은 책 중에서 한 권을 뽑아 그 책의 내용을 말하라고 하면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책의 핵심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고 줄거리를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단지 어떤 책은 생각나는 문장이 있을 뿐인데 그것도 옛 추억처럼 희미하게 생각날 뿐이다. 어떤 책은 다 읽지 않은 줄 알고 펼쳤다가 끝 페이지까지 밑줄이 쳐져 있어서 ‘다 읽은 책인가?’ 하고 완독한 책들을 기록한 독서노트를 보고서야 ‘아! 다 읽은 책이네.’ 하면서 내 기억의 불완전함을 확인할 때가 있다. 읽었다고 해서 내 두뇌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이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은 ‘그렇다면 책을 읽어서 뭐하나?’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그럴 때면 씁쓸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내가 읽은 글에 대해 그것과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을 쓴다면, 내가 읽은 글 중에서 뽑아 인용문으로 사용해 글을 쓴다면 내 기억의 불완전함이 완전함 쪽을 향해 몇 걸음 다가갈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며 이 글을 쓴다.

 

 

 


1. 작가가 쓴 최고의 작품은 그 인격의 최상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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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문장은 어쩌다 우연히 쓰이지 않는다. 글에는 어떤 속임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작가가 쓴 최고의 작품은 그 인격의 최상을 나타낸다. 모든 문장은 오랜 시련의 결과다. 속표지에서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책 속에는 저자의 인품이 속속들이 배어 있다. 이는 그 글을 쓴 이라도 교정볼 수 없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소로의 일기>,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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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과 노력만으로 글을 잘 쓸 수 없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재능과 노력 이외에 필요한 것은 성숙한 안목, 그리고 또 하나는 글쓴이의 높은 인격일 것이다. 내가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이유이다.  

 

 

 

 

 

 
2. 어떤 사람을 알고 싶거든 그의 이상을 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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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비교하려거든 각자의 이상을 비교해보는 것이 가장 좋다. 실제 인간은 너무 복잡해서 다루기가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을 알고 싶거든 그를 이상화해보라. 그러면 즉시 생각이 분명해질 것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소로의 일기>, 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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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 대해 알고 싶을 때 그에게 딱 한 가지만 물을 수 있다는 조건 아래 우리는 무엇을 물을 것인가?

 

 

나는 그에게 자신이 행복으로 여기는 게 무엇인지를 물어보겠다. 권력과 재물을 행복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지, 그것과 무관한 행복을 아는지 살펴보리라. 소박한 행복을 아는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3.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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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서 가장 분명한 사건은 우리 생각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우리가 여기 머무는 동안 불어오는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소로의 일기>,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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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가 말한 것과 관련해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올바르다고 생각한 것을 실천하며 사는 일이다. 나머지 것들은 그것의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특히 부패한 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소로는 에머슨의 조언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쩌면 소로는 에머슨의 조언으로 쓰기 시작한 일기로 인해 하나의 생각이 또 다른 여러 개의 생각으로 연결되는 ‘생각의 기술’과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하는 ‘쓰기의 기술’을 발전시켰는지 모른다.

 

 

 

 

 

 

4. 위인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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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백 년 혹은 더 이전에 생각의 원리를 깨달은 사람들이 존재했고 우리는 그들을 현인이나 위인이라 부른다. 그들에겐 일상생활 속에서의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일기 쓰기다.
날마다 자신이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을 사실대로 적은 기록이 일기이지만 일기가 가진 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기를 꾸준히 쓰면 자기 생각을 보다 잘 정리할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글쓰기 능력이 향상된다. 또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이는 다시금 자신의 내면을 성숙시킬 기회로 연결된다.
 
- 김경일, <지혜의 심리학>, 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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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일기를 썼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일기 쓰기의 중요성을 알 수 있겠다.

 

 

 

 

 

 

5. 일기는 인생의 방향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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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에 지난 일과 그 일을 완성하기 위한 계획을 소상히 적다보면 불현듯 ‘이 일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란 의문이 드는 순간이 온다. 일상 속에서는 갖기 힘든 의문이다. (…)

심리치료 전문가들이 일기를 쓰는 것이 곧 인생의 방향을 찾는 데 있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연구자들은 이것이 인간의 동기와 인지를 아우르는 일기의 근본적인 목적이라고 말한다. 무슨 일이든지 이유를 제대로 알고 나면 실행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 개인에게는 일기라면 조직에게는 일지가 되고 국가에게는 기록물이 된다. 이런 측면에 힘을 쓸 줄 아는 개인과 집단이 현명하지 못한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 김경일, <지혜의 심리학>, 184~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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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쓰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며칠에 한 번씩 일기를 쓰는데 주로 한가한 시간에 쓴다. 내가 생각하는 일기의 장점은 한가함이 주는 여유로 인해 무엇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는 이것저것 따져 생각해 볼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러나 일기를 쓰는 한가한 시간에는 마치 자신과 대화를 하는 것처럼 물음을 던지고 그것에 답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어떤 계획을 세우게 되는 것 같다.

 

 

 

 

 

 

6. 고령화 사회는 위험하다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환자가 나오는 게 TV드라마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병원에서 의식이 없이 10년 가까이 누워 있는 어떤 노인에 대해 귀동냥으로 들은 적이 있다. 이런 경우 노인도 노인의 가족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최근 TV를 통해 존엄사법(연명의료 결정법)이 시행된 이후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존엄사를 택한 사람들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나니 이것이 좋은 현상으로 생각된다.

 

 

내 주위에 올해 96세에 돌아가신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던 친구가 있고 90세인 친정아버지를 현재 모시고 사는 친구가 있다. 그들은 하루 세 끼의 밥상을 차리는 일로 인해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없고, 또 노인을 모시고 자주 병원에 갔다. 그들을 생각하면 과연 장수가 축복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만약 내가 훗날 스스로 생활을 해결하지 못하고 자식에게 의지해야만 살 수 있는 노인이 된다면 난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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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이 계속 연장됨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그럴듯한 시나리오 하나. 200살이 된 한 여성이 임종의 순간을 맞아 슬픔에 찬 가족들이 그녀 곁을 지키고 있다. 180세의 아들과 딸, 거기에 그들이 낳은 150세에서 160세가량 되는 세 명의 손자 · 손녀, 다시 그들이 낳은 120세에서 130세 된 증손자 · 증손녀 등등.
감동적인 그림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치르게 되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 존 브록만 엮음, <위험한 생각들>, 361~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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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시대로 치르게 되는 비용만 생각할 게 아닌 것 같다. 앞으로 80대 자식이 100살이 넘은 부모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다시 말해 80대 노인이 100살이 넘은 노인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7. 남의 성공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영화배우, 영화감독, 방송인, 작가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은 즐겁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솔직함과 유머로 버무려서 깨달음을 주는 글을 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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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남의 성공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만약 내가 전혀 팔리지 않는 연예인인데도 아야노코지의 성공을 기뻐할 수 있다면 정말 훌륭한 사람일지 모른다. 하지만 만약 내가 뜨지 않았다면 만나서 입으로는 “잘 됐다” 정도의 말은 하겠지만, 내심 ‘웃기고 있네. 어째서 나는 못 뜨고 네가 뜨는 거야’ 하고 생각했을 게 뻔하다.
우리는 같은 시기에 이 세계에 들어와서 같이 고생을 했다. 하지만 나는 25년 전에 이미 잘 팔리는 사람이 됐다는 여유가 내 머릿속 어딘가에 있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다지 멋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떠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성공을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 것 같다.

 

- 기타노 다케시,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 99~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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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있다. 만약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지 않고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셋 중 하나일 것 같다. 자신이 바라는 만큼 성공한 사람이거나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거나 남의 성공 따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거나. 

 

 

 

 

 

 

 

8. 칭찬하는 질책이 있는가 하면 비방하는 칭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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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칭찬하는 질책이 있는가 하면 비방하는 칭찬도 있다.

 

- 라 로슈푸코, <잠언과 성찰>,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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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이런 게 아닐까. ‘그녀는 멋부리기에 관심이 많은 멋쟁이다.’라는 말은 듣기에 따라서 멋쟁이라는 말로 그녀의 장점을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그녀가 멋부릴 줄만 아는 한심한 사람임을 말함이니 칭찬하는 질책이 된다. ‘그는 쓸데없이 부지런하다.’라는 말은 듣기에 따라서 쓸데없다는 말로 그의 단점을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그가 부지런한 사람임을 말함이니 비방하는 칭찬이 된다.

 

 

 

 

 

 

9. 겸손은 거짓일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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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은 우리가 남들이 자기에게 복종하도록 만들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수단, 즉 복종하는 척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은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스스로 낮추는 오만의 술책이다. 오만은 비록 수천 가지로 변신한다고 해도, 겸손의 가면으로 자신을 숨길 때보다 더 잘 위장하고 더 잘 속이는 경우는 결코 없다.

 

- 라 로슈푸코, <잠언과 성찰>,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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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한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대중 앞에서 겸손한 자세를 보일 때 그것은 대부분 실제로 겸손한 게 아니라 겸손하고 싶은 마음이나 겸손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을 나타낼 뿐이다. 만약 자존심이 상하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나면 그는 바로 겸손의 가면을 벗고 그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말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체로 오만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위치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10. 베푸는 것도 이기심 때문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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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하게 베푸는 듯이 보이는 것은 더 큰 이익을 얻으려고 사소한 이익은 경멸하는, 위장된 야심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 라 로슈푸코, <잠언과 성찰>,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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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가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여러 번 내어 신문에 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가 나중에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의 얄팍한 계산을 읽은 것만 같아 실망스러웠던 적이 있다. 라 로슈푸코의 말처럼 그에게서 위장된 야심을 읽었던 것.  

 

 

남에게 후하게 베푸는 것에 이런 심리도 있겠다. 남을 돕고 살면 자신이 복을 받아 큰 불행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심리. 내가 연말에 자선냄비를 보면 꼭 돈을 넣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심리가 작용해서일 듯.

 

 

이런 심리에 대한 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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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가 그들에게 베푸는 혜택은 자기 자신에게 미리 베푸는 혜택인 것이다.

 

- 라 로슈푸코, <잠언과 성찰>, 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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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둘 사이에서 사랑을 하는 쪽이 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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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즐거움은 사랑하는 데 있다. 우리는 남이 자기에게 쏟는 열정보다는 자신이 품고 있는 열정으로 더 행복해진다.

 

- 라 로슈푸코, <잠언과 성찰>, 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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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즐거움은 사랑을 받기보다 사랑하는 데 있다는 것. 유치환 시인의 ‘행복’이란 시에도 이런 글귀가 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면 이런 글에 동의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결혼하기 전, 남편과 연애할 때 선물로 핸드백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보다 몇 배 더 즐거웠던 건 내가 남편에게 줄 선물로 백화점에서 스웨터를 고를 때였다. 선물로 무엇을 살까 하고 고민하는 시간, 백화점에서 선물을 고르는 시간, 그에게 주기 전까지의 시간, 그에게 주었을 때 그의 표정을 보는 시간 모두 행복했던 시간으로 아직도 기억한다.

 

 

 

 

 

 

12. 완벽하게 나쁜 사람은 없다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을 펼쳐 보니 밑줄을 친 글이 많다. 아무 데나 펼쳐서 밑줄을 친 글을 읽으니 이런 글에 마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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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완벽하게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 달라이 라마 | 하워드 커틀러,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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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는 완벽하게 나쁜 사람도 없고 완벽하게 좋은 사람도 없다.

 

 

나이를 먹으니 좋은 사람의 기준이 바뀌는 것 같다. 객관적으로 볼 때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느껴지는 게 아니라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느껴지더라는 얘기다. 친구로 예를 들면, 내 얘기를 잘 들어 주고 내가 전화를 하면 반기고 내가 도움을 청하면 언제나 도와 줄 것 같은 친구. 다시 말하면 나를 편애하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여기게 되더라는 것. 나만 그런 게 아닐 터. 그러니 정치계에서도 철학과 가치관이 달라도 같은 당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일 듯. ‘나와 생각이 다르지만 뭐 나를 좋아하는 사람 같으니 우리 당원으로 받아 주겠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 

 

 

 

 

 

 

 

13. 글쓰기란 사람의 마음을 북돋는 것

 

 

 

 

 

 

 

 

 

 

 

 

 

 

 

 

윌리엄 포크너가 쓴 ‘서문’이란 에세이에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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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란 사람의 마음을 북돋는 것. 글 쓰는 사람 모두 마찬가지다. 예술가가 되려고 애를 쓰는 사람도, 가벼운 오락거리를 쓰는 사람도, 충격을 주기 위해 쓰는 사람도, 자신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쓰는 사람도 모두 마찬가지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글을 쓰는 까닭임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알지만 부정하려는 사람도 있다. (···) 하지만 우리 모두 사람의 마음을 북돋우려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쓴다. (···)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북돋우려는 희망과 욕망을 끝까지 분석해보면 전적으로 이기적이며, 완전히 개인적이다. 글 쓰는 사람은 바로 자신을 위해 사람의 마음을 북돋우려 한다. 그렇게 해야 죽음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가 북돋우려는 마음들로 죽음을 물리치고 있다.

 

- <천천히, 스미는>, 184~185쪽, 윌리엄 포크너가 쓴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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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따르면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은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북돋기 위해서 쓰는 것이란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가 북돋우려는 마음들로 죽음을 물리치는 것이란다. 여기서 ‘죽음’을 ‘근심’이나 ‘불행’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하리라. 또는 ‘잡념’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하리라. 나의 경우 글쓰기를 즐기는 이유 중 하나는 어떤 잡념도 끼어들 여지가 없이 글에 집중하는 시간이 좋아서이다. 다시 말해 글을 씀으로써 근심을 물리치는 것이다. ‘봉사 활동’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남을 위해 애씀으로써 자신의 근심을 물리칠 힘을 얻는 것이다. 윌리엄 포크너의 표현을 빌리면, 남을 위해 봉사 활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물리치는 것이다.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돌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선이란 것도 남에게 베풀었다는 흐뭇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니까 이기적인 행동일 뿐이라고.

 

 

 

 

 

 

 

14. 유전자의 힘은 세다

 

 

 

 

 

 

 

 

 

 

 

 

 

 

 

 

<천천히, 스미는>이란 책에 따르면 버지니아 울프는 “정식 교육은 받지 않았고 아버지 서재의 책을 두루 읽으며 독서와 글쓰기를 익혔다.(22쪽)”고 한다. 정식 교육 없이도 500편이 넘는 방대하고 다양한 에세이와 비평을 남겼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 시절엔 컴퓨터가 없었으니 모르는 것을 검색해서 글을 쓸 수 있는 때도 아니었다. 유전자의 힘이 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글이 떠올라 찾아서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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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원리는 대개 비슷한데, 어떤 일의 성취에 있어서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노력의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숨겨진 의도가 없다고 할 수 없는 일반적인 주장과는 달리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다. 슬픈 일이지만, 노력 없이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고, 노력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유전자는 꽤 힘이 세다.

 

- 이승우, <사랑의 생애>,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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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를 키우면서 일찍이 나는 알았다. 유전자의 힘이 세다는 사실을 말이다. 큰아이는 내가 공부 뒷바라지를 특별히 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스스로 공부를 하며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던 반면, 작은애는 독선생을 붙였는데도 공부하기 싫다며 하지 않았다. 결국 작은애는 자기가 어떤 것에 재능이 있는지 찾아내어 우리 부부를 설득하더니 예능 쪽으로 진로를 정했다. 같은 가정 환경에서 자랐는데 유전자의 힘은 그렇게 셌다. 한 아이는 남편을 닮아 무슨 소리가 나도 잠을 잘 자고, 한 아이는 나를 닮아 무슨 소리가 나면 잠을 깬다. 유전자의 힘은 그렇게 셌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저작을 통해서 인간은 유전자의 힘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그만큼 유전자의 힘이 세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15. 질투는 사랑 때문일까, 약점 때문일까

 

 

질투심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인은 무엇일까? <사랑의 생애>에 따르면 그것은 질투하는 자의 ‘약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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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느끼는 약점의 크기를 나타내 보인다. 사랑해서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약점이 있어서 질투하는 것이다. 맹렬하게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열등감을 느껴서 맹렬하게 질투하는 것이다.

 

- 이승우, <사랑의 생애>,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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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약점의 크기를 나타내 보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라는 작품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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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에게 어필할 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언제든 질투에 빠질 잠재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편파적이지 않다. 나이, 용모, 경제력, 건강, 사회적 위치와 평판 같은 조건들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사실을 의식할 때 이런 사람을 질투 속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먹이는 것만큼이나 쉽다는 사실을 ‘오셀로’는 알려준다.

 

- 이승우, <사랑의 생애>,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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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사람에 따라 다를 듯하다. 어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사랑을 더 많이 하는 쪽이 질투가 심할 수 있고, 또 어떤 다른 두 사람 사이에서는 약점이 더 많은 쪽이 질투가 심할 수 있겠다.

 

 

나는 질투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자신의 사랑의 크기와 자신의 약점의 크기 이외에 두 가지가 더 있다고 본다. ‘자신에 대한 상대의 사랑의 크기’, 그리고 ‘상대에 대한 자신의 믿음의 크기’. 다시 말하여 자신은 상대를 사랑하는데 상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신을 주지 않을 경우에 질투가 심할 수 있고, 상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신은 주었지만 상대가 바람둥이라서 믿지 못해 질투가 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16. 상대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통찰력이 없다

 

 

 

 

 

 

 

 

 

 

 

 

 

 

 

만약 연애를 하고 있는 한 친구가 “도대체 그 남자의 마음을 모르겠어.”라고 말하며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나는 이 말 하나로 몇 가지의 정보를 얻을 수 있겠다. 첫째, 이 친구가 그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 둘째, 그 남자는 이 친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거나 태도가 애매했다는 것. 셋째, 둘의 관계는 앞으로 깨질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많다는 것.

 

 

둘의 연인 관계에서 원래 상대보다 더 자신이 상대를 사랑할 때 상대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아지는 법이다. 헤어져 집에 돌아오면 상대의 얼굴이 뚜렷이 생각나지 않고, 상대의 아까 그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고, 상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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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얼굴을 기억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남자나 여자를 바라볼 뿐인데도, 그 남자나 여자를 묘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 사랑에 빠진 사람은 형편없는 예술가이고, 그림을 그릴 수 없는 화가이며, 표현할 수 없음에 두 손을 들고 항복한 시인이다. (···) 지나친 주목은 사랑에 빠진 시선을 혼란시킨다.

 

- 알랭 핑켈크로트, <사랑의 지혜>, 50~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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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있는 자는 상대에게 집중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니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자가 된다. 그에겐 통찰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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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사람의 얼굴에 어리는 모든 것은 그의 주의를 불러일으킨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슬픈 표정과 움찔한 경련, 어렴풋한 기미와 몸 떨림, 미소와 분노. 사랑받는 얼굴은 기호(記號)의 더미이다.

 

- 알랭 핑켈크로트, <사랑의 지혜>, 5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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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둘 사이에서 더 사랑하는 자는 상대보다 우위에 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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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사랑을 바치는 대상보다 우위에 서는 일이 없다.

 

- 알랭 핑켈크로트, <사랑의 지혜>,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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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누구나 고독하게 죽는 순간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쓴 에세이를 읽으며 ‘나방’이라는 한 마리의 곤충으로도 이렇게 좋은 글을 쓸 수 있구나, 글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하고 끝은 저렇게 끝낼 수 있구나, 하고 살펴보았다. 관찰력의 힘이렷다. 나방에 대한 관찰력이 없다면 쓸 수 없는 글이렷다.

 

 

끝 문장을 옮기면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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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대로 몸을 뒤집은 나방은 이제 무척 우아하게, 아무런 불평 없이 평온하게 누워 있었다.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래요. 죽음이 저보다 강합니다.

 

- <천천히, 스미는>, 21쪽, 버지니아 울프가 쓴 ‘나방의 죽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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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맞서 투쟁을 벌이다가 마지막 저항을 하다가 마침내 죽음에 굴복하고야 마는 한 마리의 나방. 우리 인간도 언젠가는 나방과 똑같은 신세에 처하게 되리라. 가족이 지켜본다고 할지라도 기진맥진하여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는 순간은 홀로 고독하게 감당해야 하리라.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들도.

 

우리 모두 그런 존재들이다. 가엾게도...

 

 

 

 

 

 

 

 

 

 

 

 

 

 

 

예전에 독서광이었다면 지금은 책광이다.
책을 많이 읽지 못하고 그저 책을 좋아한다는 뜻에서 책광이다.

그것을 증명하는 사진이다.

책장에 책이 넘쳐 침실로까지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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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12-01 09: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일기를 쓰든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책을 읽든 무엇이든 어떤 일을 매일 하는 건 훌륭한 수양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도둑질이나 악평을 매일 한다면-_-....

질투와 사랑을 너무 스트레이트로 등치시킨 거 같은데요. 질투 자체는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물들도 쉽게 나타내니까요. 라이벌에 대한 질투 때문에 패가망신하거나(안...누구) 더나은 자기발전을 이루는 경우도 있죠. 사랑에 있어서도 비슷할 텐데 질투의 감정을 부정적으로 쓸 땐 소유욕, 집착, 관계 파괴 등으로 나타날 테고, 긍정적으로 쓸 땐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등 더 나은 자신으로 성장할 수 있겠죠.
글이 엄청 많아 중간중간 쓸 댓글을 잊어 요 정도만^^;

페크(pek0501) 2017-12-01 13:12   좋아요 2 | URL
카캬...ㅋ 도둑질이나 악평을 매일 하는 건 수양이 된다고 볼 수 없으니 예외라는 게 있다고 해야겠죠.

안 그래도 질투에 대해 쓴 글이 미흡한 것 같았으나 어제 글을 올리면서 내일 수정해야지,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수정을 했답니다. 질투의 요인으로 두 가지를 더 보충해 썼어요. 고치고 보니 고친 게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역쉬~ 글이란 자꾸 고쳐야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요. 한 방에 잘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요. ㅋ

벌써 오늘부터 12월이 시작되네요. 한 해 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그저 가는 시간이 아깝게 여겨지기만 합니다. 남은 한 달 동안 파이팅 합시다.

2017-12-01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1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12-01 1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저 사진 언니 거실이예요?
깔끔쟁이신데요?ㅎㅎ

유전자에 대해 하신 말씀 공감해요.
저는 제 바로 위 오빠는 몰라도 언니를 보면
뭘해도 어려움없이 턱턱 잘 해내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전 좀 비실거리는 게 많았죠.오래 못 버티고.
모든 걸 잘할 수 없으니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뭐든
그것에 집중하려고 해요.
늦둥이가 좋다고 하는데 저 아는 사람은 그 아이가 지금도
병치레를 한다고 늦게 애 낳을 것 아니라고 그러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사람은 결혼할 것 같으면 한 살이라고 더 젊을 때 하라고.
근거 있는 말 같기도 해요.^^

페크(pek0501) 2017-12-01 13:38   좋아요 1 | URL
거실 맞고요, 사진발입니다. ㅋ

유전자 내지 타고난 기질의 힘이 세다는 걸 살면서 느낍니다. 생긴 대로 산다고나 할까요... ㅋ 노력해서 되는 게 있고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고 그래요.
좋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는 게 일단 유리하겠지요.

결혼식에 가면 누가 누구의 자식이고 형제인지 알 정도로 어쩌면 그렇게 가족이 닮았는지 유전자의 힘을 느낍니다. ㅋ

cyrus 2017-12-01 1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장에 꽂을 수 없는 책들을 일단 탑으로 쌓아 놓았습니다. 안 그래도 방이 좁은 펀인데 책탑을 쌓을 공간도 부족합니다. ^^;;

페크(pek0501) 2017-12-02 11:57   좋아요 1 | URL
하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군요. 위의 두 번째 사진은 사실 일부만 찍었고 전제를 찍으면 책이 많아 지저분하답니다. 오른쪽 벽까지 책이 쌓여 있어요.

그래도 행복하지 않습니까? 저는 깔끔한 것을 좋아해서 거실이나 방에 뭐 늘어놓는 것을 싫어하는데 책만큼은 예외입니다. 쌓아진 탑을 보는 건 좋거든요.
댓글, 고맙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시기를...

서니데이 2017-12-02 1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좋아하기는 한데, 전에는 읽는 것을, 한 때는 사는 것을, 한 때는 모으는 것을, 이렇게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아요. 책읽는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지면 좋겠는데, 점점 느려지는 것 같아서, 조금씩 아쉬워요. 어쩌면 조금 더 부지런해지면 더 많이 읽을텐데, 하는 마음도 들 때가 있어요.
거실에 책장이 있어도 깨끗하고 공간이 넓게 보여서, 부럽습니다. 그리고 침실에 예쁘게 쌓인 책들도요.^^

pek0501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7-12-02 17:16   좋아요 1 | URL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요즘은 책을 읽기보다 모으는 재미로 사나 봐요. 탐나는 책이 있으면 우선 사고 보거든요. 읽을 책이 밀려 있으면서도 말이죠.
제가 경험한 일. - 어떤 책을 뒤늦게 사려 하니 품절이 되었더라고요. 그래서 꼭 사고 싶은 책은 사고 보자, 가 되어요. 밀렸어도 언젠가 읽을 것 같거든요. 그래도 다른 분들에 비하면 저는 적게 사는 편일 듯해요.

처음엔 책장을 방에 두고 서재를 꾸몄는데 책장이 늘어나니까 방에 다 넣을 수 없어 거실로 나왔답니다.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오른 쪽으로도 책장이 쭉 있답니다. 기역 자로 책장이 있어요. ㅋ

서니데이 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세실 2017-12-09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로의 일기랑 천천히 스미는 장바구니에 담았어요.
어쩜 이 책을 언제 다 읽으셨을까요.

제 친구는 95세 거동 불편한 시아버지 모시고 사는데...
어제 친정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시아버지 돌아가시면 친정부모님 챙겨야지 했는데 이럴수 있냐며 엉엉 우네요. ㅜㅜ
뭐라 할말이 없더라구요.

편안한 밤 되세요.

페크(pek0501) 2017-12-09 22:03   좋아요 0 | URL
아, 세실 님. 반갑습니다.
소로의 일기, 는 다 읽지 못했어요. 요즘 읽는 중인 책 중 하나입니다. 이런 책은 소설 읽듯이 빠르게 읽기보다 가끔씩 들춰보는 맛이 좋습니다.
천천히 스미는, 은 읽어 볼 만한 책입니다. 이것도 야금야금 읽었는데 어느 새 다 읽게 되더라고요.

친구 분, 참 안 됐어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사는 일이란 자기만의 슬픔을 간직하고 사는 일 같습니다.

세실 님도 굿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