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 김규항 아포리즘
김규항 지음, 변정수 엮음 / 알마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리뷰는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에 담겨 있는 아포리즘을 음미하면서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쓰고 나서 여섯 개의 핵심어를 뽑아 번호를 붙여 다시 정리한 것이다. 

 

 


     

1. 글쓰기

 

나는 “예술이 어때야 한다”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에 반대한다. 예술은 그런 당위에서 가장 자유로운 어떤 것이다. 그리고 당위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그런 당위에서 집중하는 예술조차 자유롭게 구가되며 존중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142쪽)

 

 

소설에 대한 리뷰를 쓸 때 소설에 대한 나의 해석이 틀린 게 아닐까 해서 고민한 적이 있는데 이젠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해석은 그저 나의 생각일 뿐임을, 나의 해석은 정답이나 오답으로 나눠지지 않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소설을 읽는다고 해서 느낀 점이나 깨달은 점이 어찌 모든 사람들이 똑같을 수 있겠는가. 각자 인생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가 다르고 삶의 경험이 다르고 환경이나 처지가 다른데도 모든 이들이 똑같이 느낀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만 명의 사람들이 만 개의 내용으로 “문학은 이런 것이다!” “예술은 이런 것이다!”라고 떠들어대는 풍경이야말로 가장 문학적이며 가장 예술적인 사회의 풍경이 아닐까.(142쪽)

 

 

이 리뷰는 만 개의 리뷰 중 하나라고 가볍게 생각하며 쓰리라. 하지만 가볍게 생각하며 쓴다고 해도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보여 주는 일이라고 믿는다. 저자에 따르면 문장에 대한 자신의 태도는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같다. 

 

 

내 삶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나라는 인간을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면
내 글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결국 문장에 대한 내 태도는
삶에 대한 내 태도와 같다.(154쪽)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날 것이다. 나 역시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연구할 때가 있는데 다음의 글을 읽고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글쓰기 책을 읽는다고 해서 글을 잘 쓸 수 있거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건 느린 독서, 고독한 사색, 인간의 이면에 대한 관심 같은 것들이다. 그것들을 대체할 방법은 없다.(49쪽)

 

 

여기서 ‘느린 독서’라 함은 꼼꼼히 읽는 것을 말할 것 같고, ‘고독한 사색’이라 함은 생각을 깊게 하는 것을 말할 것 같고, ‘인간의 이면에 대한 관심’이라 함은 사람의 겉모습을 통해 보이는 대로만 보지 않는 것을 말할 것 같다. 이것을 내가 다른 말로 표현해 보면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것은 정보와 지식의 습득 그리고 사고력과 관찰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덧붙일 변수가 있다면 ‘어떤 체험을 했느냐?’, ‘체험을 통해 무엇을 느꼈느냐,’ ‘어떤 일의 인과 관계를 분석해 본 적이 있느냐?’ 등이 되지 않을까.

 

 

고정된 진리의 말, 정의의 말 같은 건 없다. 의미를 담은 모든 말은 편견이며 우리는 이 순간 어떤 편견이 좀더 공공의 이해에 부합하는가를 유동적으로 고민할 뿐이다. 말은 잡히긴커녕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어려운, 쉬지 않고 내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과 같다.(129쪽)

 

 

나의 글 역시 나의 편견으로 가득차 있겠다. 내가 옳다고 보는 무엇이 객관적으로 볼 때도 늘 옳은 건 아닐 거라는 걸 안다.

 

 

당대를 올바로 보기란 정말 어렵다.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134쪽)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도 시대에 따라 평가가 다름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다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글을 쓰는 사람은 이런 점을 유념하여 자신의 생각이 옳음에 대해 강한 확신은 삼갈 일이다.

 

 

 

 


2. 독서

 

우리에게 독서가 필요한 이유를 뭐라고 말하면 정확한 답이 될까?

 

 

우리가 바쁘게 살면서도 굳이 남의 글을 읽거나 의견을 듣는 이유는 내 생각을 발전시키기 위해서이지, 내 생각과 같은지 다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117쪽)

 

 

내가 독서하는 이유는 첫째, 독서를 통해 지식인이라고 할 만한 저자의 생각을 ‘알고 싶기’ 때문이다. 둘째, 독서를 하는 동안 걱정과 스트레스 등 모든 걸 ‘잊기’ 때문이다. 셋째, 독서가 그냥 ‘재밌기’ 때문이다. 이 셋째 이유가 제일 중요하다. 아무리 그럴 듯한 목적이 있더라도 책을 읽는 게 재미가 없다면 그래서 인내를 가져야만 읽을 수 있다면 바쁜 일상을 살며 독서를 하는 게 쉽지 않으리라. 

 

 

 

 


3. 부모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부모로서 자격 미달’임을 느낄 때가 있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고등학생이었던 큰딸이 어느 날 친구 집에서 자고 올 테니 허락을 해 달라고 학교에서 내게 전화를 했다. 그 친구는 지방에서 올라와 학교 근처에서 자취방을 얻어 혼자서 생활하며 학교를 다니는 아이였다. 외박을 허락해 달라는 건 처음 있는 일이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서 당황스러워하며 무조건 안 된다고 하였다. 고등학생이 외박이라니, 하면서 펄쩍 뛰었다. 그런데 몇 번이고 폰 문자를 보내며 졸라대서 나중엔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아빠가 허락하면 외박을 허락할게.’라고. 그런데 그 다음에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아빠도 ‘엄마가 허락하면 허락할게.’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로에게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의 똑똑한 친구에게 의견을 물으면 된다는 것. 당장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좋은 답을 줬다. 그 친구의 어머니와 통화를 해서 그 어머니가 허락하면 자고 와도 된다고 해 보라는 것이다. 아하,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그 어머니가 허락한다면 왠지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딸에게 문자를 보내 그대로 전하며 그 어머니의 폰 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딸이, 그냥 집에 오겠다고 답장을 했다. 그 이유인 즉 그 친구의 어머니는 딸에게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얻어 주며 하나의 조건을 내세웠는데 그 조건이란 게 이런 것이었다고 한다. ‘자취방에 절대로 친구를 데리고 오지 말 것.’ 아마도 그 어머니는 딸에게 자취방을 얻어 주면서 자취방에 친구가 들락거리며 모여 놀까 봐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여고 시절이란 친구와 함께 있다면 밤을 새워 수다를 떨어도 좋을 그런 시절이 아닌가. 만약 얘기하며 노느라 밤을 새운다든지 잠을 덜 잔다든지 하면 그 다음날 수업에 지장이 있을 게 뻔한 일인데 어떤 부모가 그걸 바라겠는가. 이리하여 나의 똑똑한 친구 덕에 딸의 외박 문제가 깨끗이 종결되었다.

 

 

지금도 그때처럼 부모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좋을지 모를 때가 가끔 있다. 그럴 때마다 그 친구의 의견을 묻곤 한다.

 

 

내가 문제 있는 부모임을 알아채는 결정적인 순간은 ‘나 정도면 괜찮은 부모’라는 생각이 들 때다. 자기 확신 없는 문제는 없다.(15쪽)

 

 

이 글을 읽으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부모로서 자격 미달’을 느낄 때가 많으니 최소한 ‘문제 있는 부모’는 면한 것 같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나 역시 ‘나 정도면 괜찮은 부모’라고 자신할 때가 있다는 걸 생각해 냈다.

 

 

큰딸이 친구 집에서 자고 싶어 하는 것을 보고 그때 생각했었다. 이 아이에게도 ‘하고 싶은 그런 것이 있구나.’ 하고. 난 그저 아이가 공부에 집중하고 학교 성적에 연연해하는 아이로만 알았다. 그래서 아이가 갑자기 외박 타령을 왜 하는 건지 당황스러웠고 이럴 땐 부모로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몰라서 애먹었다.

 

 

지금은 아이들에 대해 더 모르겠다. 부모로서 자식은 마냥 어린애로만 보여서 내가 말장난을 치면 둘째딸이 이렇게 말한다. “엄마, 난 이제 어린애가 아니에요. 수준을 높여 주세요.”라고. 이럴 때 난 섭섭해진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많이 달라져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달라지는 속도를 내가 못 쫓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학교에서 처벌해야 하는 수위로 문제를 일으킨 몇 명의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아이는 그런 애가 아니에요.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렇게 된 거예요.”라고. 학원에 가지 않은 것도, 술을 마시게 된 것도, 외박을 한 것도 친구를 잘못 사귄 탓이라고 모든 학부모가 말한다면 도대체 그 학생들을 그렇게 만든 나쁜 친구는 누구인가? 그런데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다면 나도 아마 똑같이 그렇게 말할 것 같다. “우리 아이는 그런 애가 아니에요.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렇게 된 거예요.”라고. 나는 우리 아이를 제대로 정확하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는가, 하고 자문해 보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이의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란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잘 모르는 존재가 아니던가.   

 

 

아이를 보며 종종 되새겨야 한다.
‘나는 이 사람을 잘 모른다.’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데서 부모의 비극이 시작된다.(42쪽)

 

 

티브이 드라마를 통해 욕심 많은 어머니가 자식의 인생을 망쳐 버리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자식이 결혼하고 싶어 하는 여성과 부모가 며느리로 삼고 싶은 여성이 일치하는 않는 데에서 비극이 시작되고, 자식이 바라는 직업과 부모가 바라는 직업이 일치하지 않는 데에서 비극이 시작된다. 자기가 자식을 가장 사랑한다고 믿는 부모가 오히려 자식을 불행 속으로 내몰고 마는 형국을 초래한다. 이것은 부모가 자식을 잘 안다고 믿는 나머지 자식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부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종종, 아니 어쩌면 거의 언제나 ‘내 자식을 위하여’ 자식을 괴롭히고, ‘내 애인을 위하여’ 애인을 괴롭히며, 급기야 ‘내 국민을 위하여’ 국민을 괴롭힌다.(45쪽)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식을 구속하고 간섭하기보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객관적인 시각부터 가져야 할 것 같다.

 

 

자기 자식에겐 좋은 경험만 하게 만들고 싶고 좋은 것만 보여 주고 싶은 건 부모로서 갖는 당연한 욕심일 터이다. 하지만 양지의 세계와 음지의 세계가 공존하는 세상에서 양자택일이 불가능하다면 부모로서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란 어떤 것일까? 다음의 글로 정답을 헤아려 보고자 한다.

 

 

어른들이 할 일은 아이들에게
맑고 깨끗한 것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맑고 깨끗한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이다.(48쪽)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열정이 없는 사람이 좋은 부모가 될 가능성은 없다.(35쪽)

 

 

이렇게 말하는 딸이 있다.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 라고. 반면에 우리 부모님을 보면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딸이 있다.

 

 

딸은 단지 딸, 아들 하는 자식 중의 하나가 아니다. 딸은 한 남자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가장 정교하게 알아낼 수 있는(폭로하는), ‘삶의 시험지’이다. 한 남자가 ‘딸에게서 존경받는 인간’이 되려고 애쓴다면 그의 삶은 좀더 근사해질 것이다.(150쪽)

 

 

 

 

 


4. 걱정

 

아이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영어 학원에 가게 했는데 같은 반 아이가 영어 학원과 수학 학원을 다닌다는 말을 들은 학부모는 우리 아이도 수학 학원을 추가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며 걱정하기 시작한다. 늘 남과 비교하며 살다 보면 만족이 없고 걱정만 늘어난다.   

 

 

사람은 걱정이 일상화하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잊는 속성이 있다. 걱정하는 습관만 남아, 걱정을 걱정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말 그대로 ‘걱정으로 지배하는’ 체제다. 자본주의는 끝없이 걱정하게 만드는 것만으로 끝없이 지배한다.(27쪽)

 

 

이런 경험을 누구나 해 봤으리라. 걱정이 하나 있어서 그게 중대한 문제로 여겨지더니 그것보다 더 큰 걱정이 생기니까 앞의 걱정은 대수롭지 않은 게 되어 버리는 것. 예를 들면 이런 것. 누군가가 나에 대해 험담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기분이 나빠 그날 밤잠을 설쳤는데 그 다음날 아이가 머리가 아프다며 고통스러워해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동안 앞의 험담 문제는 대수롭지 않은 게 되어 버린다. 큰 걱정이 작은 걱정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걱정이 있을 때 그것보다 더 심각한 걱정을 상상해 보면 효과가 있을까?

 

 

 

 

 


5. 전쟁

 

이봐, 전쟁이 나면 총이니 폭탄이니 핵이니 이런 걸로 인해 몸을 다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저절로 죽게 돼. 왜 그런지 알아? 고혈압 환자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자네 알지? 이런 환자들은 혈압을 효과적으로 조절해 주는 고혈압 약을 매일 먹어야 한단 말이야. 그런데 전쟁으로 인해 병원 건물이 파괴되고 의약품 보급이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게. 어찌 되겠는가? 고혈압 환자들은 결국 죽겠지? 또 우울증 약을 매일 복용해야 하는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 우울증 약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을 상상해 보게. 특히 불안증이 심한 우울증 환자가 자신이 꼭 먹어야만 하는 약을 구할 수 없어 불안증이 더 심해지고 큰 공포를 느끼게 된다면 어찌 되겠는가?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그만큼 끔찍한 일을 하나 더 생각해 볼 수 있다네. 내가 다치지 않아도 말이야, 가족이나 친척이 또는 이웃 사람이 전쟁으로 인해 다쳤거나 죽었다는 소식을 계속 전해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얼마나 괴롭겠나? 그래서 난 전쟁이 나면 살아남아서 집이 무너지고 도로가 폭파되고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었다는 소식을 수시로 들으며 불행하게 살기보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네.

 

 

가장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부터라네. 전쟁 없이 늘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 중에는 평화의 소중함을 모르고 큰 욕심을 부리며 사소한 일로 고민하며 괴로움을 하소연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네. 그러다가 전쟁이 일어나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일들이 발생하면 그때 가서 평화롭던 시간들을 그리워한다네. 왜 진작 평화에 대한 감사를 할 줄 모르냔 말이야. 지금 하늘을 보니 맑고 푸르며 햇살은 눈부셔서 전깃줄에 걸쳐 있는 거미줄마저 반짝거리며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네.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난 티브이 뉴스를 통해 다른 나라에서 전쟁으로 인해 다쳐 피 흘리는 부상자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가엾게 여겨지면서 우리가 전쟁을 겪지 않으며 사는 것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네.

 

 

오늘 전쟁을 반대하는 것만이 내일 전쟁을 거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149쪽)

 

 

 

 

 


6. 감사

 

다음의 글로 이 글을 끝맺고자 한다.

 

 

기도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은 없다.
사람에겐 가진 소중한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능력이 없다.
형식이 무엇이든 기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건
위험하거나 적어도 섣부르다.(7쪽)

 

 

 

 

 

 

 

 

 

 

 


....................................................................

* 맺는말

 

(아포리즘의 뜻 : 깊은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말이나 글. 격언, 금언, 잠언, 경구 따위를 이른다.)   

 

 

이 책은 아포리즘으로 채워져 있다. 아포리즘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 압축성 있는 글이기에 마치 시를 읽듯이 한 문장, 한 문장을 음미하며 읽어야 제맛이 난다. 쓰윽 한 번 훑듯이 읽는다면, 그래서 무엇을 읽었는지 나중에 기억하지 못한다면 실패한 독서가 될 것이다. 실패한 독서가 되지 않고 성공한 독서가 되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읽었다.

 

 

소설을 읽을 땐 최소한 몇 장을 넘겨야 밑줄을 긋고 싶은 구절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책은 페이지마다 밑줄을 긋고 싶은 구절로 가득차 있어서 빨리 읽는 게 아까워 느린 독서를 했다. 이 책을 커피로 말하면 벌컥벌컥 마시는 냉커피가 아니라 호호 불며 마시는 뜨거운 커피였다. 이 책을 친구로 말하면 쉽게 사귀고 빠른 시간에 가까워진 새 친구가 아니라 어렵게 사귀고 많은 시간이 흘러서 가까워진 오래된 친구였다.

 

 

저자는 “세상이 바뀌길 바란다면 생각의 문부터 열어라.”(121쪽)라고 말하고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건 결국 나와 남이라는 구분을 해체하는 것이다.”(109쪽)라고 말한다. 저자가 걸은 사유의 길을 따라가노라면 이상적인 사회를 향해 열려 있는 문에 이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저자가 낸 책 중에서 정수만 모아 놓은 책이 아닐까 여겨질 만큼 만족스럽기도 했다. 

 

 

내가 읽은 아포리즘의 책 중에서 몇 년 뒤에 또 읽어도 좋을 책을 꼽는다면 프리드리히 니체의 <초역 니체의 말 2>, 에밀 시오랑의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의 <잠언과 성찰> 등이다. 그리고 한 권 더 추가한다면 바로 이 책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이다. 나처럼 아포리즘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주저 없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9-27 18: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에서 상대방의 리뷰를 읽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 김규항 씨가 말한 것처럼 내 생각을 발전하기 위한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장바구니를 채우기 위해서죠. ^^

페크(pek0501) 2017-09-27 18:44   좋아요 0 | URL
으음~~. 맞는 말씀 같습니다. 신간인 경우 저도 남의 리뷰를 읽고 나서 책을 구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요.
고맙습니다.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시길...

hnine 2017-09-27 2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한줄 한줄 마음에 쏙쏙 들어올수가 있나요.
리뷰든 그냥 페이퍼든, 잘 쓰고자 하는 마음은 내려놓은지 오래이고요 (^^), 다만 정직하게 쓰려고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이거 다른 사람 의견과 너무 엇나가는거 아닌가, 나만 좋다고 느낀거 아닌가, 나만 별로라고 느낀거 아닌가, 자꾸 신경쓰이고요. 그래서 정직하게 쓰다보면 그 작품의 포인트를 놓쳐 형편없는, 나중에 읽어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리뷰를 올리기도 하고요 ( 제 경우 허클베리핀, 톰소여 같은 것들이 그 예).
따님의 이야기는 저도 도움이 많이 되겠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요구에 대해서는 일단 안된다고 하는게 제 원래 성격이었는데 요즘은 일단 된다고 할때가 많아요. 제가 너그러워져서가 아니고 어차피 말을 안들을테니까요 ㅋㅋ

페크(pek0501) 2017-09-29 15:51   좋아요 1 | URL
나인 님, 저 역시 그렇습니다. 내 글이 너무 주관적인 글이 아닌가, 편견이 담긴 글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답니다. 나인 님도 그렇다니 반가운 걸요. ㅋ

이젠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만약 남들이 느끼지 못한 것을 나만 느꼈다면 그래서 작가도 놀랐다면 그거야말로 독창성이 있는 게 아닌가, 로 생각하기로 했어요. (우리 이렇게 생각하는 걸로 합시다.)ㅋ

맞아요. 저는 어차피 말을 안 들을 거면 모르는 척해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귀가가 늦을 경우 잠든 척한답니다. 잠들어서 너를 못 혼냈다는 느낌을 주려고요.

부모 노릇 하기가 쉽지 않아요. 나이는 늘어가는데 지혜는 늘지 않는군요.

댓글, 고맙습니다.

AgalmA 2017-09-29 1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쓰기 책이 주로 하는 말은 ‘정답은 없다‘와 ‘내가 한 말과 방법을 모두 잊고 당신의 길을 찾아라‘죠. 저도 동의.
아이 키우기에 관한 방책은 일종의 집단지성이군요ㅎ

페크(pek0501) 2017-09-29 15:54   좋아요 1 | URL
너만의 길을 가라... 그렇죠.
그렇다고 해도 이 책 저 책 보는 건 저로선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아이 키우기에 대해선 부모들이 ‘좋은 부모가 되는 법‘과 같은 강의를 들으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에요. 아니면 그런 책을 보든지요.

고맙습니다.

stella.K 2017-09-28 15: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오독할 자유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리고 다음에 또 한 번 읽어봐야 합니다.
그럼 화들짝 놀랄지도 몰라요.
어머, 그런 뜻이었어?
얼굴이 화끈 거릴지도 모르죠.
그래도 오독할 자유가 있어 괜찮습니다.
말씀마따나 소설에 정답은 없는 거죠.

이책 좋은가 봅니다.
몇 페이지 안 되는데도 뼈가 되고 살이 되고...^^


페크(pek0501) 2017-09-29 15:57   좋아요 2 | URL
오독할 자유, 표현이 좋습니다. 따지고 보면 오독이란 게 없는 거죠. 내가 그런 뜻으로 읽었다는데 누가 틀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완전 자유죠.

원래 예술이란 게 해석의 다양성이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잖아요. 무엇을 느끼든 오답은 없는 거예요.
우리, 자신의 해석에 대해 소심해지지 말자고요.

예, 이 책 참 좋습니다. 탁월한 구입을 한 것 같아요.
좋은 하루 되시길...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2017-10-02 18: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은 길이에 상관없이 좋겠지만, 짧은 글에서는 의미가 압축된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추석연휴가 되어 인사드리러 왔어요.
pek0501님, 즐겁고 좋은 추석연휴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7-10-07 10:23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추석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이렇게 추석 인사를 남겨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ㅋ
나를 위해 누군가가 메시지를 남긴다는 것에 대해 새로운 느낌이 드네요.

남은 연휴를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