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없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

 

 

회계원인 체르뱌코프는 객석 두 번째 줄에 앉아 오페레타 공연을 보면서 행복의 절정에 다다른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갑자기 재채기가 나와 버렸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훔친 다음에 주위를 둘러본 그는 당황스런 일이 생겼다는 걸 알았다. 첫 번째 줄에 앉아 있던 노인이 자신의 대머리와 목을 장갑으로 열심히 닦으며 투덜거리는 것을 보고 그 노인에게 침이 튀었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 노인은 운수성에 근무하는 브리잘로프 장군이었다. 사과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앞으로 몸을 숙이고 장군의 귀에 “용서하세요, 각하. 제가 침을 튀겼군요. 본의가 아니었습니다만…….”라고 속삭였다. 장군은 “괜찮아요, 괜찮아…….”라고 답했다. 그는 “제발 용서하십시오. 저는 그저…… 저도 모르게!”라고 다시 사과를 했고 장군은 “아, 앉으세요 제발! 공연 좀 봅시다!”라고 말했다. 휴식 시간에 그는 또 한번 장군에게 사과를 했고, 장군은 벌써 잊어버렸다고 말하며 신경질적으로 아랫입술을 떨었다. 그는 ‘잊어버렸다고 하지만 눈에는 원한이 담겨 있는 걸.’ 하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장군이 화가 풀리지 않았다고 여겨져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장군에게 재채기에 대한 해명을 하러 찾아갔다. 장군은 접견실에서 청원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그는 또 사과의 말을 했고 장군은 그 바쁜 와중에 또 계속되는 그의 사과에 짜증이 났다. 그래서 장군은 “여보세요, 날 놀리자는 겁니까, 뭡니까!”하고 말하고는 문을 닫았다. 그는 그 다음날에도 장군에게 찾아가 사과를 했다. 자신은 잊어버렸다고 말했는데도 필요 이상 반복되는 사과에 화가 난 장군은 급기야 소리를 빽 질렀다. “꺼져!!”라고. 이 말을 듣자 두려움에 질린 그는 속삭이듯 “뭐라고요?” 하고 물었고, 장군은 발을 구르며 되풀이 말했다. “꺼지라니까!!” 이 말을 들은 그는 뱃속에서 무언가가 터져버렸다.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집에 돌아온 그는 관복을 벗지도 않은 채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죽었다. 이것으로 이 소설은 끝난다. 안톤 체호프의 ‘관리의 죽음’이란 단편 소설이다.

 

 

 

 

 

 

 

 

 

 

 

 

 

 

 

 

 

 

 

 

 

 

 

 


1.
나는 이 소설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인 회계원의 속마음을 알기 위해 내가 ‘가상 인터뷰’를 해 보는 방식으로 써 봤다.

 

 

물음) 당신은 장군에게 한 번만 사과하고 말면 될 텐데 왜 여러 번 사과해서 장군을 짜증이 나게 했습니까?

 

 

회계원 : 저는 장군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일부러 침을 튀긴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재채기가 나와서 침을 튀기게 되었다고 정확히 말하며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그런 뜻이 사과할 때마다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서 여러 번 사과를 하게 되었던 거죠. 장군이 화가 풀리지 않은 것처럼 보여 걱정이 되었습니다.

 

 

물음) 당신은 그 사건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계원 : 그런 작은 일로 제가 죽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장군이 “꺼져!”라고 말을 하는 순간 독화살을 맞은 것처럼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장군이 한 번 더 “꺼지라니까!”라고 말하자 제 뱃속에서 무언가가 터져 버렸고 공포를 느꼈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소파에 누워 정신을 잃었나 본데 그게 죽음이었습니다.

 

 

 

 

 


2.
이번엔 장군의 속마음을 알기 위해 ‘가상 인터뷰’를 해 보는 방식으로 써 봤다.

 

 

물음) 왜 당신은 회계원이 거듭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꺼져!”라고 화를 냈습니까?

 

 

장군 : 사과를 한 번 했으면 됐지 자꾸 사과하니까 화가 났습니다. 누구나 불쾌한 일은 기억하고 싶지 않고 잊고 싶잖아요. 그런데 잊을 만하면 느닷없이 찾아와서 그 일을 상기시키니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업무 중 그가 나타나 사과를 할 땐 피곤하게 느껴지고 지치고 짜증이 무척 나더군요.

 

 

 

 

 
3.
공연장에서 재채기가 나와 버린 일로 한 남자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희극적이고도 비극적인 이 이야기에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즉 작가는 독자가 무엇을 느끼길 바랐을까?

 

 

내가 느낀 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인간은 자기가 손해 본 것을 상기시키는 말에 위로를 받기보다 불쾌감을 느낀다는 것.
- 공포를 느끼는 상상력이란 자신을 죽이기도 할 만큼 위력이 세다는 것.
- 마음의 병을 앓으면 죽음에 이르게 되기도 할 만큼 마음이란 신비롭다는 것.
- 사소한 실수라고 할 수 있는 작은 일로 죽을 수도 있는 게 인간이라는 것.
- 서로 상대를 이해하지 못해 서로를 배려할 수 없는 게 어리석은 인간의 심각한 문제라는 것.

- 인간관계에서 소통과 공감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

- 이토록 어이없는 일이 세상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 (공연을 보면서) 지금은 행복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다른 일로)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 즉 행복이란 건 (재채기라는) 작은 일로도 얼마든지 쉽게 깨질 수 있다는 것. 언제 깨질지 모르는 게 행복이라는 것.

 

 

 

*

나중에 이 소설을 다시 읽는다면 또 다른 것을 느끼게 될지 모르겠다. 소설은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므로.

 

 

 

**
‘단편 소설의 천재 작가’라서 그럴까. 체호프의 단편 중에는 어떤 매력을 가진 작품들이 많다. 그래서 그의 단편을 읽게 되면 반복해서 읽게 되고 또 다른 단편을 찾아보게 된다. 그는 한마디로 흥미롭고 개성이 있는 작품으로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다. 지루해서 단편집을 완독하기 어려운 이가 있다면 주저 없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

여러 단편이 담겨 있는 단편집의 리뷰를 쓰려니까 쉽지 않다.

그래서 하나씩 써서 나중에 한꺼번에 모아 리뷰로 올릴 계획이다.

이 글은 그 계획의 첫 걸음이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침에혹은저녁에☔ 2017-08-04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모파상의 단편이 생각 나네요

페크pek0501 2017-08-04 14:37   좋아요 0 | URL
모파상 단편집, 저도 읽었어요. 오래전에요.
리뷰를 써 놓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생각하게 되네요.
글로 정리해 놓았으면 리뷰만 봐도 다 기억날 텐데 싶어서요.
첫 댓글에 감사합니다.

cyrus 2017-08-04 1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의 글을 읽으면서 ‘어처구니 없는 죽음이 나오는 소설‘을 주제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페크pek0501 2017-08-05 15:30   좋아요 0 | URL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님이라면 충분히 그런 페이퍼를 잘 쓰실 수 있을 겁니다.
한 번 써 보세요.

오늘 무척이나 더워서 혼잣말로,날씨가 미쳤군, 하고 있어요.
책을 읽으면 더워를 잊을 수 있으려나요?
댓글, 감사합니다.

마립간 2017-08-05 1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소설 3권을 동시에 읽으면서 독서에 브레이크가 걸려 있습니다.

영어로 된 ≪Still Alice≫은 재미는 있는데, 영어라서 빨리 읽지 못하고, ≪백년동안의 고독≫은 무슨 말인지 몰라 빨리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속 소설의 역할과 감정이입과 공감의 의미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페크pek0501 2017-08-05 15:2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으음... 저 같은 경우에 동시에 읽을 땐 장르를 달리해서 읽어요. 내용이 헷갈릴 것 같아서요.

제 사견을 말씀드리면 ≪백년동안의 고독≫은 재미없고 지루한 소설입니다. 읽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ㅋ 오래전 이것을 읽었는데 왜 노벨문학상 수상작인지 모르겠더군요.( 수준의 문제일 수 있겠지만요...ㅋ)
인물이 많이 나오고 헷갈려서 도표를 그려 가며 읽었어요. 누구는 누구의 자식이고 누구는 누구의 자손이고... 뭐 이런 식으로요. 꼼꼼히 읽고 나서 읽은 걸 후회했답니다. 제가 얻은 게 없어 시간이 아까워서요.

은희경 저, <새의 선물>이나 나쓰메 소세키 저, <도련님>, 크로닌 저, <천국의 열쇠>는 다시 읽어도 좋을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단편집으로는 이문열 세계 명작산책이 10권으로 되어 있는데 저는 그중 다섯 권인가 여섯 권 읽었는데 다 괜찮았어요.
개인차가 있어서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어쨌든 마립간 님이 재밌어 할 소설을 꼭 읽게 되셔서 소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나비종 2017-08-05 1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결국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의 반응을 해석하는 존재인걸까요?

페크pek0501 2017-08-05 15:28   좋아요 1 | URL
그렇죠. 아무리 타인의 시선으로 보려 해도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고 주인공으로 생각되니까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갑네요... 고맙습니다.

AgalmA 2017-08-22 0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골이나 도선생 단편도 저런 예가 자주 나오죠. 러시아 소설에서 저런 과도한 정서와 행동으로 인한 몰락을 자주 접하는데 그 나라의 정서인가 관료제 폐해 포착인가 싶죠.

페크pek0501 2017-08-23 14:03   좋아요 1 | URL
좋은 댓글에 먼저 감사드립니다.
예전에 제가 소설 뒤에 해설서가 있는 출판사의 책들을 보던 때가 있었는데 많은 소설이 잘못된 사회 구조나 관료제 폐해를 지적하는 의미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소설에서조차도 ‘인간‘을 보게 됩니다. 인간 측면에서 보느냐, 사회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소설에 대한 느낀점은 달라지겠지요.

님의 댓글을 보니 아마도 체호프가 독자에게 가장 주고 싶은 메시지가 관료제 폐해였던 게 아닐까 생각되는군요.(시험문제에 나온다면 정답이 그거 같아요.ㅋ)
상사에겐 절대 복종해야 하고 어떤 명령도 거부해선 안 되고 심기를 불편하게 해선 안 되는 그런 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체호프가 지적한 걸로 보여요. 이런 문화가 개선되어야 최근에 뉴스 거리가 된 ‘아내 갑질‘ 사건이 일어나지 않겠지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도 사회제도나 잘못된 결혼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지만 (자식을 버리고 사랑만을 택한 여인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로 읽을 수도 있어요. 행복이란 사랑만 가지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여러 여건이 맞아떨어져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사랑에 올인하는 순간 얼마나 위태로운 삶이 되는지 잘 알 수 있는 소설로 읽어도 손색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안나의 남편의 이중성 또는 남을 의식해서 이혼을 해 주지 않는 남편의 어리석음과, 그 문화도 비판하며 읽었던 것 같아요.

님의 댓글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어 많이 배웠다고 느낍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자주 뵙기를...

AgalmA 2017-08-25 02:45   좋아요 2 | URL
소설의 인물이나 작가도 사회와 괴리될 순 없기 때문에 인간 vs 사회 구도로 나눠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어떻게 구조화해서 보여 주느냐가 더 중요하죠.
비평은 뭐랄까. 학문의 속성이 원래 그런 거지만 경향을 모아 통합해 보여 주려 해서 작품을 다양하게 읽는 걸 방해한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게 내 생각과 맞아 떨어질 때 ˝맞아, 그런 거야˝ 정답화 하려고 한단 말이죠ㅎ; 저도 자주 이러죠ㅋ 그래서 다른 사람이 미처 보지 못한 맥락, 다른 관점을 제시해 줄 때 정말 기쁘죠.
체호프에 대한 제 인상은 러시아식 부조리였어요. 참 사람 불편하게 하는 걸 잘 끄집어 낸달까. 체호프도 더많이 읽어야 더 종합적인 제 견해로 말할 수 있을 거 같아 이쯤에서 끝내야 될 거 같고요^^; <안나 카레니나>에 대해서도 아직 제 관점을 말하긴 섣불러서 뭐라 말씀드리긴 그렇네요.

별말 안했는데 장문의 댓글을 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ㅎ;
댓글로 소통할 때도 많지만 오해와 트러블이 생길 때도 많아 요즘은 댓글 잘 안 남기게 돼 댓글 뜸한 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이웃 수도 버거워서 북플 들어올 때 마침 만나게 되는 이웃 글을 보는 식이라 자주 못 오는 것도 죄송 말씀 드립니다/ 두루 돌아다니며 챙기는 분들 대단하다니까요ㅎ

페크pek0501 2017-08-27 15:34   좋아요 0 | URL
제 답글이 길 땐 댓글 내용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거나 상대에 대한 호감의 표시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주 뵙기를, 이라고 써서 제 뜻을 잘 전달했다고 생각했어요.ㅋ

늦여름의 선선함을 집에서 만끽하고 있는 일요일입니다.
좋은 날 되시기를...

긴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