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X일
‘동생을 잘 챙기는 언니’를 둔 친구를 보면 부럽다. 그런 친구에게 “넌 그런 형제가 있어서 좋겠다.”라고 말했더니 다른 친구가 “오히려 형제가 없는 게 좋을 수도 있어.”라고 응수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형제간에 의가 상해서 서로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이 대목에서 큰아버지가 생각났다. 큰아버지가 생전에 내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사촌들과 잘 지내라. 사촌이라도 가깝게 지내면 사는 데 의지가 된다.” 사촌들이란 당신의 딸들을 말함이다. 그때 난 “예.”라고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론 딴생각을 했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아버지를 생각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큰아버지 때문에 속상한 적이 많으셨다. 큰아버지가 사업을 했는데 잘되지 않아 아버지에게 수차례 돈을 얻어 쓰셨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어머니와 싸우신 적도 있다. 큰아버지 말고도 아버지에게 돈을 가져가는 형제가 많았다. 아버지가 그 속상함에 대해 내게 토로한 적이 있으셨다. 큰아버지에겐 ‘형제란 사는 데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지만 아버지에겐 ‘형제란 걱정을 끼치고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다 고인이 되신 큰아버지와 아버지. 두 분의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다.
TV로 어떤 드라마를 보게 됐다. 한 여자를 사랑해서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남자가 있고, 그 남자를 사랑하는 다른 여자가 있다. 삼각관계다. 그 남자가 자기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고 딴 여자와의 결혼만을 추진하려고 하자 그 여자가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 여자가 아니라 저라고요.” 이 말은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결혼을 하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나를 사랑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를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상대편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는 한,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