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래전,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다. 모 문화센터에서 문학 강좌를 수강하던 때였다. 나보다 몇 살 더 먹은 여자 수강생이 나를 자꾸 밟는다는 걸 느꼈다. 그의 악의를 느꼈다. 한번은 어두운 색상의 옷을 입고 문화센터에 갔더니 여러 사람 앞에서 내가 봄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다며 나의 ‘센스 없음’을 지적했다. 봄에는 꼭 밝은 색상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한다. 자기 딸의 이름을 바꾼 다음부터 딸의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며 나에게 이름을 바꾸라고 그러면 팔자가 좋아진다는 말도 했는데, 그게 한두 번이면 웃고 넘어갈 일이지만 여러 번 반복되는 것에 짜증이 나서 내가 한마디 했다. “제 팔자가 어때서요? 저는 제 팔자에 만족해요.”라고. 그런데 그 다음에도 그 얘기를 계속했다. 이 외에도 여러 사람들과 얘기하는 자리에서 내가 말하면 꼬투리를 잡아 무안을 주었다.

 

 

어느 날 집에서 밥을 먹다가그 사람이 생각났고 곧바로 밥이 얹히고 말았다. 그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로 밥이 얹히자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전화 수화기를 들고 그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의 내 기억으로 말하면) 내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저, 문화센터 그만둘까요? 제가 그만두길 바라시고 저를 괴롭히시는 거죠? 제가 그만두면 되겠습니까?”

 

 

야구로 말하면 공을 느린 변화구로 던지지 않고 빠른 직구로 던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던지고 나자 그의 대답이 참 궁금해졌는데 (지금의 내 기억으로 말하면)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아니에요. 오해세요. 제가 000 씨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앞으로는 안 그럴게요.”

 

 

의외였다. 앞으로는 안 그러겠다는 말이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는 말인 것 같아 내 기분이 풀렸다. 나를 좋아한다는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말한 사실만이 중요했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는 가해자를 용서하게 되는 것이다.

 

 

그다음부터 나를 괴롭히는 일이 없었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가 나를 괴롭히지 않는 대신 다른 수강생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어떤 이의 말에 따르면 그는 자기로 하여금 시샘이 나게 하는 사람만 괴롭히며 그렇게 괴롭힌 상대가 열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에겐 아마도 괴롭힐 누군가가 꼭 한 명은 있어야 했나 보다. 인간의 못된 구석에 눈살을 찌푸렸던 경험이었다.

 

 

 

 

 

 

2.
지난주에 깜짝 놀랄 일이 있었다. 친구가 보낸 한 통의 이메일에서 내가 그 친구의 마음을 아프게 한 가해자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당시 내가 가해자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건 아닌데 지금에 와서 그때의 일을 생각하니 그동안 잊고 있던 것, 나의 못된 구석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를 나는 잊었고 그 친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해 내가 ‘무심코’가 아니라 ‘악의’로 말했을 것이다. 

 

 

가끔 착각한다. 내가 착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세상 사람들이 다 나와 같다면 좋은 세상이 될 거라고 착각한다. 나는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사람이 아닌 줄 안다. 나는 늘 가해자 쪽이 아니라 피해자 쪽에만 서 있는 줄 안다. 그러다가 나의 못된 구석을 발견할 때면 내가 나를 잘못 보고 있구나, 깨닫게 된다. 자기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런데 애석하게도 자기 자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이라고 말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말을 상기해 본다.

 

 

 

 

 

 

3.
나의 못된 구석이 또 발동할 뻔했다. 며칠 전이다. 어느 서재에 들어갔다가 악성 댓글을 발견했다. ‘책을 많이 읽지도 않으면서 많이 읽는 척하지 마라. 기분 나쁘다.’ 대충 이런 뜻의 댓글이다.

 

 

순간, 확 눌러 버리고 싶었다. 그 악성 댓글을 쓴 사람의 서재에 들어가서 나도 악성 댓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충동만 느꼈다. 강하게 충동만 느끼고 실천하지는 못했다.

 

 

이렇게 쓰고 싶었다.

 

 

‘남이야 전봇대로 이를 쑤시든 말든 무슨 상관이십니까? 책을 많이 읽지 않으면서 많이 읽은 척해서 기분 나빴나요? 그러면 그 서재에 들어가지 않으시면 되지요. 해결책이 있는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이곳 알라딘 서재는 어떤 곳인가? 다른 데에서 책 얘기를 하면 잘난 척한다고 오해받을 수 있지만 이곳에선 아무리 책 얘기를 많이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 것, 이게 이곳의 장점이 아닌가? 왜냐하면 책 얘기를 하는 곳이니까. 난 그렇게 알고 있고 그런 점이 좋다. 그런데 책 읽는 척 좀 했다고 그게 뭐 그리 큰 죄라고 (나 같으면 상처 받았을) 그런 댓글을 받아야 하는가?

 

 

“왜 남의 일에 제가 흥분하냐고요?”

 

 

“흥분하게 되더라고요. 남에게 상처 주기 위한 댓글 같았거든요.”

 

 

그 악성 댓글을 받은 사람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4.
....................
“신부님! 은그릇이 없어졌어요. 어제 쓰고 나서 찬장에 분명히 넣어 뒀는데……. 그 사람도 사라졌어요. 그 사람이 훔쳐 간 게 분명해요!“
하녀가 야단스레 말했다. 그때 누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보니 경찰 세 명이 장 발장을 붙들고 서 있었다.
“신부님, 이 사람이 하도 수상해서 붙잡아 배낭을 뒤져 보니.......”
경찰 한 사람이 신부에게 말을 하자, 신부가 경찰의 말을 잘랐다.
“당신이군요! 마침 잘 왔소. 왜 은촛대는 두고 가셨소? 내가 은그릇하고 같이 가져가라고 했잖소.”
신부가 둘러댔다. 장 발장은 말없이 신부를 바라보기만 했다.
“배낭에 들어 있는 은그릇이 신부님이 쓰시던 물건인 것 같아 끌고 왔는데…….”
경찰들은 신부의 말을 듣고 맥이 풀리는 것 같았다.
“당신들이 오해를 했군요. 그 은그릇은 내가 이 사람에게 준 것이오. 그러니 그만 돌아들 가십시오.”
경찰들은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돌아갔다. 
장 발장은 경찰들이 돌아가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에서.
....................

 

 

배고픔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 가족을 위해 빵을 훔쳤고 또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그리하여 19년 동안이나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장 발장이 미리엘 신부를 만나 또 도둑질을 하여 벌어진 광경이다. 미리엘 신부는 은촛대를 잃어버린 자신의 마음보다 다시 감옥에 가게 될 장 발장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 그를 감싸 준다. 장 발장은 신부의 따뜻한 배려에 감동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만약 신부가 장 발장을 배려해 주지 않았다면 장 발장은 다시 감옥에 가게 되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증오심이 생겨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지 모른다.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가 감옥에 가게 되는 일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까? 아니면 자신이 누군가에게 감화를 주어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까?

 

 

물론 언제나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용서하고 싶지 않을 만큼 분노할 때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상대를 용서할 수만 있다면, 그런 넉넉한 마음은 상대만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자신까지도 행복하게 해 주는 힘이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다시 말해 타인에 대한 배려는 상대만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자신까지도 행복하게 해 주는 힘이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어쩌면 용서나 배려는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필요할 것이다. 용서나 배려는 우리로 하여금 마음 편안한 행복의 길로 이르게 할 테니까.

 

 

 

 

 

 

5.
용서와 배려는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리라.

 

 

....................
마음의 창

 

밤이 긴 겨울이라서 그런지 유독 어린 시절이 자주 떠오른다. 그 시절에도 겨울을 잘 나기 위해서는 세심하게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방문에 창을 내는 것이었다. 방문에 창이라니. 별 건 아니다. 겨울에는 방문을 한 번 열었다 닫는 순간 거대한 손이 방안을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삽시간에 온기가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마당에서 개라도 짖으면 시골 사람들은 방문을 열지 않고는 못 배긴다. 손님이라도 찾아왔다면 어쩔 것인가. 방문도 열어보지 않는다며 무례를 탓해도 변명할 말이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개가 짖을 때마다 방문을 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바로 창이었다. 앉았을 때 눈이 닿을 만한 높이의 문풍지를 조금 도려낸 뒤 거기에 투명한 비닐이나 유리를 대면 훌륭한 창이 완성되었다. (...) 그 창은 손바닥보다 작았지만 낯익은 것들의 감춰진 아름다움을 드러내기에는 충분할 만큼 컸다. 사실 창의 크기는 상관이 없었다. 아무리 작은 창일지라도 우리가 그 창에 눈을 가까이 대면 세상을 모두 볼 수가 있다. 마음에도 창이 있다면 그럴 것이다. 그 창을 통해 마음을 온전히 들여다보고 싶다면 눈을 가까이 가져다 대야 한다.

 

- 손홍규, <다정한 편견>, 46~47쪽. 
....................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남의 상처에 무심한 사람이 되지 않을 것 같다.

 

 

 

 

 

 

6.
우리가 만약 어떤 친구와 둘이 음식점에서 밥을 먹게 되었을 때 서로 상대보다 빨리 밥값을 내려고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이 돈이 많아서인가? 부자라서 과시하고 싶어서인가? 부자는 아니지만 부자인 체하며 과시하고 싶어서인가? 돈 쓰기를 좋아해서인가? 모두 아니다. 다만 한 가지다. 그 친구가 1인분을 먹었는데 2인분의 밥값을 냄으로써 갖게 될 경제적 손실을 헤아려서다. 자신의 경제적 이득에 집중하지 않고 상대의 경제적 손실에 집중한 결과다. 타인을 배려함으로써 넉넉한 마음을 드러내게 된 결과다.

 

 

내가 가진 편견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편견에 대해 말하기 전에 우선 절약과 인색함을 구별해야겠다. 겨울에 난방 비용을 적게 하기 위해 보일러가 가동되는 시간을 줄인다든지 여름에 냉방 비용을 적게 하기 위해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사용하는 것은 ‘절약’에 속한다. 하지만 자신에겐 돈이 절약되는 일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남에게 경제적 손실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인색함’이 된다.

 

 

돈을 쓰는 데에 인색해서 구설수에 오르는 사람을 볼 때가 있다. 남에게 얻어먹기를 좋아하고 남에게 좀처럼 돈을 쓰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돈을 쓰는 데에 인색한 사람은 마음을 쓰는 데에도 인색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 편견으로 사람을 볼 때가 많다. 왜냐하면 사람을 만날 때 자신의 이득이 아닌 타인의 손실을 먼저 헤아리게 되면 저절로 구두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앞으로 누군가와의 만남에서 돈을 쓰는 데 인색하지만 마음은 넉넉한 사람을 보게 된다면 내 편견은 깨지리라.

 

 

결국 내 편견은 한 사람 안에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이 공존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게 되어 버렸다. 이런 글이 떠오른다.

 

 

....................
원망과 감사는 함께할 수 없어요. a라는 사람을 미워하면서 동시에 b라는 사람에게 감사할 수는 없어요. 한 사람에 대한 원한은 모두에 대한 원한이고,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은 모두에 대한 사랑이에요.

 

- 이성복, <무한화서>, 178쪽.
....................
 

 


위의 글로 에리히 프롬의 글이 생각났다.

 

 

....................
만약 내가 한 사람을 진실하게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세계를 사랑하고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당신을 통해서 세계를 사랑하며, 당신을 통해서 나 자신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54쪽
....................

 

 

이상적인 인간은 그런 것인가? 한 사람을 사랑하면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경지에 가게 되는 그런 사람인 것인가?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불완전한 존재여서 그렇지 못한 것인가? 불완전한 존재이다 보니 불완전한 사랑밖에 할 수 없는 것인가?

 

 

....................
이기심과 자기애는 동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의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을 너무 많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적게 사랑하고 있다. 사실상 그는 자기 자신을 혐오한다. (...)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배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사실 그는 자신의 진실한 자아를 돌보는 데 실패한 사실을 은폐하고 보상하기 위해 비성공적인 노력을 하고 있을 뿐이다. (...) 이기적 인간이 남을 사랑할 수 없으며, 또한 자기 자신도 사랑할 수 없음은 사실이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68쪽.
....................

 

 

이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남에게 욕먹을 짓을 하지 않는다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에 남에게 욕먹고 있는 자신을 참을 수 없을 거라고.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이 되는 것인가.

 

 

 

 

 

 

 

 

 

 

 

 

 

 

 

 

 

 

 

 

 

 

 

 

7.
나는 나에게 바란다.
돈에 집착하지 않기를...
구두쇠가 되지 않기를...

 

 

....................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벵갈의 성자 라마크리슈나

 

- 달라이 라마 | 하워드 커틀러,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에서.   
....................

 

 

 

 

 

 

 

 

 

 

 

 

 

 

 

 

 

 

 

 

 

 

 

8.

누구나 이기심, 자만심, 생각 얕음,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음 등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느껴지는 것들, 후회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도 후회하는 것들이 있다. 다음의 글을 읽으면 새 출발을 할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
이번 생은 틀렸어. 다음 생에는

잘 살아볼 거야. 이렇게 투덜대던 벗이여
다음 생은 벌써 시작되었다.

 

- 손홍규, <다정한 편견>, 표지에서.
....................

 

 

위의 글을 지금 새 출발을 하기에 늦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고 새 마음으로 하루를 열어야겠다. 물론 잘못을 저지르고 반성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고, 또 잘못을 저지르고 반성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며 살겠지만, 그래도 반성과 다짐이 전혀 없는 삶보다 그게 낫겠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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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3-30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에서는 이웃분들과 책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pek0501님 좋은 저녁 시간 되세요.^^

페크pek0501 2016-03-31 14:32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책 블로그는 그래서 좋은 거죠.

오늘 오후부터 미세먼지가 없다고 해서 모처럼 기분 좋은 날입니다.
좋은 하루 보냅시당...

hnine 2016-03-31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저도 한번 생각을 해보게 되는 글이었어요.
마지막 손홍규님 인용글 `다음 생은 벌써 시작되었다`, 오늘 아침 제 마음을 깨우는 한문장이 되었습니다. 감사드려요 ^^

페크pek0501 2016-03-31 14:33   좋아요 0 | URL
안녕하셨어요?

가장 늦은 때가 사실 가장 빠른 때이죠.
무엇을 시작하든 바로 지금이 가장 빠른 때입니다.

반갑습니다.

후애(厚愛) 2016-04-01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 가득한 4월 되세요~^^

페크pek0501 2016-04-03 11:32   좋아요 0 | URL
오늘 땅이 젖었던데 비가 더 오면 좋겠어요.

님도 행복 가득한 4월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2016-04-01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ek0501님, 즐거운 저녁시간 되세요.^^

페크pek0501 2016-04-03 11:33   좋아요 1 | URL
즐거운 봄날 산책을 즐기겠습니다. 봄이 짧으니 부지런떨어야 할 것 같아요.

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성에 2016-04-02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마음 깊은 끌림을 주는 글, 최고 !

페크pek0501 2016-04-03 11:35   좋아요 0 | URL
호평에 감사드려요.

우리 초면 아닌 것 맞지요?
오랜만에 방문하신 것 같네요. 반갑습니다.

오늘은 비가 와서 미세먼지를 없애 줄 비가 더 오길 바라게 됩니다.

좋은 봄날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2016-04-05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6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6-04-28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정말 깨달음을 수도 없이 받는 글이네요. 특히 이 구절.˝가끔 착각한다. 내가 착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세상 사람들이 다 나와 같다면 좋은 세상이 될 거라고 착각한다.˝ 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제게 있어 좋은 점을 딱 하나 고르라면, 계산을 잘한다, 입니다. 마음은 개미만한데 계산만 잘해요.... 그러니까 계산 안하면서 마음이 넉넉한, 과 완전히 반대지요.

페크pek0501 2016-04-28 18:29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 님은 계산을 잘하시는 걸로 봐서 학창시절 수학 과목을 잘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의대에 몸 담고 계시는 것이겠고요...

깨달음을 주는 책이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깨달음을 주는 글을 쓰기란 쉽지 않은 일이에요. 하긴 글쓰기가 쉽다면 매력이 없겠죠?

어려운 글쓰기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겠습니당~~~
고맙습니다.


마태우스 2016-04-28 23:06   좋아요 0 | URL
앗....계산이란 게 그 계산이 아니라 모임 있을 때 하는 그 계산인데....ㅜㅜ

페크pek0501 2016-04-29 00:16   좋아요 0 | URL
하하~~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 같은데염... 님이 타산적이다, 그런 뜻 아니었어요?
다만 제가 말한 건 유머였어요. 유머를 던졌는데...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