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갖고 있으면 좋은 점은 이런 거지. 누군가가 아끼는 책이라고 말한 책을 내가 갖고 있을 때 바로 들춰 볼 수 있어 그 책에 대한 궁금증을 빨리 해소할 수 있다는 거지. 이럴 때 기분이 좋다. 경향신문(2월 5일자)에서 어느 출판사 대표가 “지난해 내 인생 최고의 책이었다. 이번 설 연휴 때 또 읽으려고 한다. 이성복 시인의 인생과 시를 정리한 글로, 나에겐 ‘삶의 경전’과도 같았다.”라는 말로 <무한화서>를 꼽은 것을 보고 이 책을 바로 들춰 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얘기다.
이성복 저, <무한화서>에서 내가 밑줄을 그어 놓은 글을 몇 개 옮기고 내 생각을 달아 봤다.
손님이 나가자마자 문을 쾅 닫아버리면 예禮가 아니지요. 친구 차에서 내리자마자 문 닫고 가버리면 예가 아니지요. 하지만 떠나는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는 그 짧은 순간은 인간의 시간이에요. 우리는 본래 자기중심적이지만, 조금이라도 덜 박절迫切해지려고 입술을 깨무는 것, 아름다움은 그런 것 아닐까 해요.(155쪽)
손님이 나가자마자 문을 쾅 닫아버리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워야만 아는 건 아니다. 상대에 대해 각별한 마음이 있다면 또는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마음이 있다면 상대가 가자마자 곧바로 문을 쾅 닫지 않게 된다. 저절로 그렇게 된다.
삶과 글은 일치해요. 바르게 써야 바르게 살 수 있어요. 평생 할 일은 이 공부밖에 없어요. (...) 젠체 안 하고 남 무시 안 하려면 계속 공부해야 해요. 늘 문제되는 것은 재주와 능력이 아니라, 태도와 방향이에요.(167쪽)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작가 지망생들에게 중요한 게 재주와 능력만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으리라. 언제나 중요한 것은 ‘올바름’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아는 것은 참 적어요. 뭘 좀 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아는 것 가지고 폼 잡지 말고, 모르는 걸 불편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모른다고 하면 더 밑으로 떨어질 데가 없잖아요. 몰라서 삼가면 나도 남도 덜 다쳐요. 한 편의 시는 ‘오직 모를 뿐!’이라는 경고예요.(168쪽)
글에서 끝맺음을 하려는데 결론을 어떻게 내야 할지 모를 때 가장 안전한 장치는 ‘잘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것임을 언제부턴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말로 끝맺을 때가 많았다. ‘~인 게 아닐까’, ‘~인 것 같다’, ‘어쩌면 ~일지 모른다’ 등. 이런 말로 끝맺으면 확신하지 않음을 나타내어 안심이 되었다.
시로 인해 우리는 하나가 여럿이라는 것과, 하나가 여럿을 가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요. 또한 인생에는 선과 악이 아니라, 성숙과 미성숙이 있을 뿐이라는 것도 알게 되지요. 그것이 바로 ‘성숙’이에요.(171쪽)
못된 짓으로 자신을 화나게 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가 악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미성숙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 보라. 그러면 화가 조금 풀린다. 아무리 악하게 여겨지는 친구라도 그 마음 안에는 선과 악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뛰어난 문학 작품일수록 선한 사람 속의 ‘악’을 그리고 악한 사람 속의 ‘선’을 그려서 인간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게 다 이유가 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약점을 옮기고 다니면 내가 약하다는 증거예요. 그 사람의 비밀을 지켜줘야 그 사람을 싫어할 자격이 있어요.(178쪽)
앞으로 누군가가 싫어지면 그를 싫어할 자격을 얻기 위해서라도 그의 약점을 옮기고 다니는 짓은 하지 말아야겠군. 치사한 짓을 하지 말아야겠군.
여기서 끝내자니 섭섭해서 쓰는 것..........................................................
잡담 1.
커피가 골다공증을 유발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커피를 끊어야 하나,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제 티브이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커피를 하루 한두 잔 마시는 건 오히려 뼈 건강에 이롭다고 한다. 커피를 많이 마실수록 골다공증 위험도가 줄어드는 것으로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 소식이다. 연구팀은 커피에 들어 있는 일부 성분이 뼈 건강을 유지해 줘 골밀도가 높게 나온 것으로 추정했다고 한다.
내 추정은 이렇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마시는 사람이 골다공증 위험이 적은 것은 그 사람의 성격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 커피가 몸에 해롭다고 해도 대범하게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스트레스에도 잘 견뎌서 건강하다는 것. 반대로 커피가 몸에 해롭다고 마시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소심한 성격은 스트레스에도 취약해 덜 건강하다는 것. 또 커피를 즐길 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건강할 수밖에 없다는 것. 어디까지나 내 마음대로 해 본 추정이다.
어쨌든 커피를 좋아하는 나로선 반가운 소식이다. 몸의 건강을 위해 커피를 끊었다면 억울할 뻔했다. (그러나 커피를 하루 세 잔 이상 마시면 몸에 해롭다고 하니 하루 한두 잔만 마실 것.)
잡담 2.
잠을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바뀌는 영화가 있나 보다. 어느 서재에서 그런 영화의 리뷰를 읽고 내가 댓글을 쓴 적이 있다. 댓글을 쓰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미래엔 그런 시대가 올지 모른다. 지금의 ‘보톡스 시술법’보다 더 간편하게 눈을 크게 만들었다가 작게 만들고, 코도 높게 만들었다가 낮게 만들고 하는 게 가능한 시대가 올지 모른다. 개인용 주사 하나로 말이다. 나는 미래에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어떤 시대라도 오는 게 가능하다고 보는 쪽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그런 시대를 대비해서 예측해 보는 영화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처음부터 비행기가 날아다닐 거라고 생각했겠는가. 누가 처음부터 먼 거리에서도 얼굴을 보고 통화를 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 예측이나 했겠는가. 누가 처음부터 내비게이션이 길을 찾아 주는 시대가 올 거라고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염색약도, 보톡스 시술법도 인간이 발명해 낸 것인바, 앞으로 어떤 발명이 탄생할지 모르는 일이다. 지금은 얼굴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시대가 ‘괴물 시대’처럼 생각되지만 막상 그런 시대가 되고 나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 없이 예전엔 어떻게 살았지, 하면서 의아해 할지 모른다. 지금 우리가 예전엔 스마트폰 없이 어떻게 살았지, 하면서 의아해 하는 것처럼. 그래서 조지 오웰의 <1984년>이 미래를 예언한 소설이 되었듯이, 이 영화가 미래를 예언한 영화로 평가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해 봤다.
잡담 3.
이것도 어느 서재에서 댓글을 쓰다가 생각한 것.
누구나 노력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책들이 많다. 노골적으로 글쓰기를 부추기는 책도 있다. 나는 독서는 모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글쓰기는 모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 국민이 글을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글을 잘 써서 책을 내는 일에만 몰두한다면 오히려 큰일이라고 본다. 정치는 누가 하나? 기업은 누가 키우나? 국가 대표선수는 누가 하나? 가수는 누가 하나? 노래 잘 부르는 가수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기술이 뛰어난 운동선수나 발레리나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는 점, 그리고 각기 다른 재능을 타고나기 때문에 이 세상이 잘 굴러 간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본다. 글쓰기가 유익한 일임엔 틀림없지만 모든 국민이 글을 잘 쓸 필요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 국민이 글을 다 잘 써서 다른 능력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글만 쓰려고 할까 봐 걱정이다. 이것이 과장된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