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주는 건 행복인가, 불행인가? 결혼은 행복을 주기도 하지만 불행도 준다. 결혼 생활엔 행복한 시간만 있는 게 아니다. 만약 행복한 시간만 있다면 이혼하는 사람들이 왜 있겠는가.
결혼 생활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단체 생활이다. 그래서 나 아닌 다른 식구를 위해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만약 상대를 배려하는 정신이 없어서 그런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잡음이 생긴다. 예를 들면 누군가가 낮잠을 잘 땐 조용히 해 줘야 하는 규칙 같은 것. 시끄럽게 해서 낮잠을 깨게 하면 안 된다. 화장실을 사용한 뒤엔 환기가 되게 해 주는 규칙 같은 것. 화장실을 사용한 뒤엔 (용변을 봐서 냄새가 나게 했든 샤워를 해서 습기가 차게 했든, 환풍기를 돌려놓든지 문을 열어 놓아서) 다음에 화장실을 사용할 식구가 불쾌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오랜만에 라면을 먹으려고 찾아보니 라면이 하나도 없었다. 슈퍼에 가서 사 갖고 오려니 귀찮았다. ‘내가 사 놓은 라면을 누가 다 먹은 거야?’ 하는 생각으로 폰을 찾아 우리 식구 네 명의 카톡방에 들어갔다. “누가 마지막 남은 라면을 먹었나요?”라고 물었더니 둘째 아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메시지를 띄웠다. “마지막 남은 라면을 먹는 사람은 ’이제 집에 라면이 없음.‘이라고 카톡으로 알릴 것.” 모두 그렇게 하겠다고 답글을 적었다. 이것으로 해결을 보았다. 단체 생활에서 규칙이 하나 추가된 것이다.
혹자는 집안일은 전적으로 주부의 몫이니까 라면을 사 놓는 일이 주부의 일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부부와 두 자녀가 함께 사는 가족인 경우에 주부가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지났다. 이제 맞벌이 부부의 시대다. 며느리 노릇하랴, 딸 노릇하랴, 살림하랴 이것만으로도 바쁜 게 주부인데 게다가 직장을 다니기까지 한다. 한마디로 주부가 고달픈 시대가 되었다. 직장에 다니는 남편만 바쁜 게 아니고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만 바쁜 게 아니고 주부도 바쁜 시대다. 그런데 네 식구가 똑같이 바쁘면서 주부만을 희생하라고 하면 잘못이다. ‘주부가 희생해서 가족이 행복하다면?’ 이런 생각은 쓸데없다. 불공평하게 희생자를 깔고 얻어지는 행복이란 ‘가치 없음’이다. 다 같이 행복할 때 값지다. 넷 중에서 한 명의 희생자만 생겨나면 그 희생자는 언젠가는 원망을 품게 될 확률이 높다. 희생이 필요하다면 넷이 서로 공평하게 나눠 희생해야 한다.
규칙을 지키고 희생을 나눠야 잘 유지되는 ‘단체 생활’ 같은 ‘결혼 생활’이 생리적으로 맞지 않는 미혼자들은 결혼에 대해 신중히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런데 미혼자들은 결혼을 앞두고 ‘단체 생활’ 같은 ‘결혼 생활’에 내가 적합한지를 생각해보기는커녕 서로 사랑하는 사이니깐 상대가 자신을 위해 뭐든 해 줄 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특히 여성들이 그런 것 같다. 글쎄, 신혼기엔 가능하려나? 아이가 태어나면 일이 많아져서 남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데 남편이 아내를 도와주지 않아 힘든 상황이 되는 걸 많이 보아 왔다. 육아 문제에 있어서 서로 돕겠다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결혼 생활이 힘들어진다.
직장에 다니는 주부들에게 이렇게 권하고 싶다. ‘주부들이여! 엄살 좀 피워라.’ 공평한 단체 생활을 위해 엄살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나의 경우엔 체력이 약한 걸로 무기 삼아 엄살을 피우며 식구들의 협조를 부탁한다. “(애들한테) 나 힘들게 하면 체력이 약해서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어. 그러면 너희 용돈이 줄겠지. 그래도 좋아?” 남편에게도 똑같이 말한다. 이렇게 하여 예전보다 협조하는 가족을 만들어 냈다.
마지막으로 힘주어 말한다. ‘주부들이여! 희생자가 되지 말라.’ 만약 주부들이 희생자가 되면 그 아들들이 자라서 주부가 당연히 희생되어야 하는 줄 알고 나중에 결혼한 뒤 자기 아내에게도 희생자가 될 것을 강요하는 상황이 벌어져 부부간에 마찰이 생긴다. 또 그 딸들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을 들게 해서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한다. 희생자인 주부가 원망을 품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부작용이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 보고 느끼는 자녀들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우리 모두 공평한 단체 생활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되기를.(끝)
.........................<후기>
나는 내 딸이 훗날 결혼할 때 가정에서 희생하고 사는 사람을 시어머니로 만나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 밑에서 자란 아들과 함께 사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기에.
“우리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사셨단 말이야. 당신은 왜 그렇게 못해?”라고 말하는 남편과 사는 아내는 얼마나 힘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