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일기니깐 바쁜 분들은 보지 마시오.
시시한 것도 읽을 수 있다는 분들만 보시오.
이왕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글이라 그냥 올려야 하겠으니...
1. 2015년 7월 XX일
그런 하루가 있다. 출근하지 않는 날이라 시간이 많은 날이면서도 집안일을 하느라 보낸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고 최소한의 집안일만 하고 그렇다고 책을 읽거나 글을 써서 알찬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고 그저 빈둥거리다가 어느새 밤잠을 잘 시간이 되고 마는 하루. 그래서 돌아보면 내용이 없는 빈 일기장 같은 하루.
누구에게나 빈 일기장 같은 하루가 매일 공평하게 주어진다. 거기에다 무엇을 쓸지를 결정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쓰지 않는 날이 있다. 쓰기 싫다. 요즘 며칠 동안 그랬다.
빈 일기장 같은 하루를 보내는 게 싫지 않다. 더운 날씨 때문일까, 아니면 목감기가 들었는지 침을 삼키면 목이 아픈 증세 때문에 휴식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일까? 쉬고 싶을 뿐이다.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고 무엇에 집중해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아니다. 생각은 한다. 그렇다. 빈 일기장에 무엇을 채워 넣지는 않았지만 머릿속 생각은 늘 바빴다. 특히 내 미래에 대해서 머릿속 생각은 늘 바쁘다. 십 몇 년 동안 해 온 일, 전업을 할까 생각한다. 당장 한다는 게 아니라 몇 년 뒤의 일이지만.
빈 일기장 같은 하루를 보내면서 머릿속 빈 일기장에 가득 메운 내 생각들의 행렬을 본다.
2. 2015년 7월 XX일
내 글에 어떤 책의 글을 발췌해서 옮겨 넣을 때가 있는데 그건 그 글이 좋기 때문이지 그 저자의 팬이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이곳에 글을 쓰면서 수백 권의 책에서 발췌하여 인용문으로 사용한 것 같은데, 설마 수백 명 저자의 팬이겠는가?
3. 2015년 7월 XX일
내 닉네임을 보면 서머싯 몸이 생각난다는 분이 계셨다. 내가 서머싯 몸의 소설에서 좋은 구절을 뽑아 인용문으로 사용한 글을 많이 썼기 때문이겠다. 얼마나 인용했을까? 오늘 세어 보니 31편의 글에 서머싯 몸의 글을 인용했다. “어떻게 알았냐고요?” “서재 태그 중 서머싯 몸이란 글자를 클릭하면 알 수 있지요.” 내가 서재 태그에 작가 이름을 넣는 이유는 내가 어떤 작가의 글을 얼마나 인용했는지를 알 수 있어서다. 서머싯 몸의 책이 나로 하여금 31편의 글에 인용문을 쓰게 만들었다니, 이만 하면 서머싯 몸의 팬이 맞네.
4. 2015년 7월 XX일
어제 ‘미술 치료’ 강사와 차 한 잔 마시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나누었다. 내가 관심을 가지며 “미술 치료 수업을 하려면 어떤 학위, 어떤 자격증이 필요합니까?”라고 물었더니 조언을 해 주네. 그 강사가 맡고 있는 수업 중 어른을 상대로 하는 ‘미술 치료’ 강좌가 있는데 수강생으로 들어가 볼까 생각해 봤다. 수강생 대부분이 주부들이라고 하네. 주1회라면 가능.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니 흥미로울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니 흥미로울 듯. ‘미술 치료’ 강사. 참 좋은 직업 같다. 전업을 생각해 본다.
5. 2015년 7월 XX일
지난 5월이었던 것 같다. 알라딘에서 배달된 책 몇 권을 받았는데 그중 한 권이 구겨져 있었다. (<담론>이란 책이 구겨져 있었다.) 구겨진 정도가 심한 것은 아니지만 책 윗부분이 3백 쪽 가까이나 살짝 구겨져 있는 걸 보니 내 기분도 살짝 구겨졌다. 새 책을 받아 기분 좋을 날에 이게 뭐람. 알라딘에 교환 신청을 할까 하다가 말았다. 이유는? 첫째, 귀찮아서다. 둘째, 배달하는 사람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수고해야 하는 게 마음이 쓰여서다. 셋째, 책을 반품한 적이 있다는 기록을 남기기 싫어서다. (이거 병이지.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기록을 남기기 싫은 것, 이거 병 같다.)
“앞으로 책이 구겨지지 않도록 ‘알라딘’ 관계자들은 주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6. 2015년 8월 X일
어느 서재에 들어갔더니 음슴체의 글이 있음. 음슴체로 쓰면 글을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시간 절약과 체력 절약이 되는 장점이 있음. 나도 지금 음슴체를 쓰고 있는 것임. 이런 게 바로 음슴체임. (음슴체란 ‘-음, -했음 등으로 문장을 종결하여 쓰는 방식을 일컫는 말.’이라고 함.)
내가 알라딘 서재에서 그동안 받은 댓글을 어제 쭉 훑어보니 이런 댓글이 있음. “페크님은 꼭 논문 쓰시는 교수님 같아요.” 웃음이 나옴. 호의적인 댓글이라고 생각해서 기분 나쁘지 않았음. 그런데 이게 나의 단점이 될 수 있다고 지금은 느낌. 앞으로 논문처럼 딱딱하게 쓰지 않기 위해 노력이 필요할 것 같음. 그런데 음슴체로 쓰니까 글이 더 딱딱한 느낌이 듦. 그래서 나는 음슴체를 사용하면 안 될 것 같음.
강물처럼 부드럽게, 소프트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게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들어감.
7. 2015년 8월 X일
며칠 전, 친구에게 이메일로 안부 편지를 쓰면서 최근 일어난 알라딘 서재의 어느 댓글 사건을 잠깐 언급했다. 때로는 이곳이 마찰(충돌)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간략히 말했던 것. 남자들끼리의 마찰이라 그런지 말이 많이 거칠다고 느꼈다. 오늘 본 친구의 답장엔, 이런 저런 다른 생각들을 쓰는 게 당연한 거라고, 하나 같이 칭찬 일색이거나 비판 일색이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거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난조로 흐르는 글이 문제겠고, 그 비난을 감당할 힘이 없는 사람이 당했을 경우는 상처가 크겠다고, 그래도 오픈된 공간에 글을 올린다는 건 그 모든 걸 감당할 준비가 된 거라 보고 사람들은 댓글을 다는 거라고 봐야겠지, 라고 써 있네.
으음~~ 그런 거구나. 오픈된 공간에 글을 올린다는 건 그 모든 걸 감당할 준비가 된 거라 보고 사람들은 (때론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댓글을 다는 거구나.
난 어쩌지? ‘나처럼 그 모든 걸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글을 올리지 말아야 하나?’ 잠시 생각이 출렁였다. ‘친구’로 등록된 이들에게만 공개하는 방법이 있다는 걸 생각해내고 그 출렁임은 정지했다.
8. 2015년 8월 X일
인터넷으로 본 글.
"살인자가 반드시 나쁜 놈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사람을 죽이게끔 부추기는 악한도 있는 것이다. 그런 녀석들은 10엔짜리 땜통 정도로 끝난 것에 감지덕지해야 한다."
사노 요코 저, <사는 게 뭐라고>에 있는 글이라고 한다. (이 책은 신간이며 일기체 형식의 산문집이다.)
살인자보다 더 나쁜 것은 사람을 죽이게끔 부추기는 악한이라는 것.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악한보다 덜 나쁜 살인자가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살인자가 피해자인 경우도 있다.
이 책에 관심 있어서 장바구니에 넣어 놨다.
9. 2015년 8월 5일
조금 전, 폰으로 문자 한 통이 왔다. 내가 옷을 산 적이 있는, 의류를 파는 가게의 광고 문자인데 이렇게 써 있다. ‘영혼까지 흔들리는 가격, 60%.’ 그러니까 고객들이 60프로 세일의 옷에 영혼이 흔들린다는 거지? 맞네. 60프로 세일이라니 나 흔들리네. 그런데 이 상술에 속으면 안 되는 거지. 세일해도 비싸지. 아, 그런데 반바지가 15000원이라고 써 있네. 가까운 곳이니 한 번 들러 봐야지. 더운데 반바지 하나 사야겠어. 카키색이 있으려나. 없으면 베이지색으로.
10. 2015년 8월 5일
요즘 안구건조증 때문에 이웃 서재에 댓글을 쓰러 다니지 못했다. 그럴 시간에 내 글을 써야 돼, 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글을 열심히 쓴 것도 아니면서.
내가 오늘 쓴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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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페이퍼네요...
제가 읽은 책이면서 다시 읽어 보고 싶은 책으로 <도덕경>, <사람풍경>, <삶의 한가운데> 등이 있군요.
특히 <삶의 한가운데>는 어찌나 신선했는지 여러 번 들춰 봐서 표지가 닳았다는...
에세이 같은 소설, 또는 소설 같은 에세이로 읽었어요.
<사람의 아들>이 나왔을 당시, 이문열 저작은 거의 다 읽었었는데 이 책만 지루해서 혼났다는...
작가를 좋아할 순 없지만 몇 개의 작품은 좋았던 기억이 있는 작가예요.
가지고 있으면서 읽지 않은 책도 몇 권 보이고요. <체 게바라 평전> 같은 책이요. 앞부분을 읽다 말았어요. 다른 책을 읽느라고 그리 되었는데, 언제나 읽으려나... 내용을 대충 아니까(다른 책에서 읽어서) 좀처럼 펼치게 안 되네요.
남의 책 리스트는 참 흥미로워요.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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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오늘 어느 서재에 댓글을 남겼다. 어느 분이 추천도서 목록의 페이퍼를 올리셨기에 내가 댓글을 쓴 것이다. 남의 책 리스트가 흥미로운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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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느낀 것. 나, 번호 매기기 참 좋아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