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신경숙 작가도 이십 대엔 오정희 작가와 이청준 작가의 소설을 노트에 베껴 썼다고 한다.(내 기억이 맞다면.)
나도 예전 삼십 대 초반엔 책을 읽으며 좋은 문장을 뽑아 노트에 베껴 쓰는 게 하나의 취미였다. <톨스토이 인생론>, <팡세>, <생활의 발견> 등을 베꼈고 박완서 작가의 여러 단편 소설을 베꼈다. 요즘도 마음먹고 베낄 때가 있지만 좋은 문장을 여러 번 읽는 걸로 대치하는 경우가 많다. 쓰는 게 시간이 걸리다 보니 손으로 베끼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베끼는 것이다. 손으로 베끼든 마음으로 베끼든 좋은 글을 반복해서 읽는 것은 좋은 공부라고 생각한다. 창조적인 글쓰기는 모방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최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재밌게 읽었다. 술술 읽히는 책이라서 3일만에 다 읽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을 소개하는데,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 좋을 책으로 세 권을 권하고 있다. 책 세 권을 두세 번이 아니라 열 번 정도 읽어보기를 권한다고 한다.
저자가 권하는 책 세 권은 다음과 같다.
박경리, <토지> : “어휘를 늘리는 동시에 단어와 문장의 자연스러운 어울림을 즐기고 익힐 수 있는 책으로는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 읽기가 부담스럽다면 1부 네 권만 읽어도 된다. 2부 다섯 권까지 읽으면 더 좋다. (...) 굳이 단어나 문장을 암기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읽고 잊어버리고, 다시 읽고 또 잊어버리고, 그렇게 다섯 번 열 번을 반복하면 박경리 선생이 쓴 단어, 단어와 단어의 어울림,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저절로 뇌에 ‘입력’된다. 그리고 글을 쓸 때 그 단어와 문장을 자기도 모르게 ‘출력’하게 된다.”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137~138쪽.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 “<자유론>에서 밀은 단 하나의 질문을 다루었다. 어떤 경우에 국가나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정당한가? <자유론>은 놀라운 책이다. 우선 내용이 놀라울 만큼 훌륭하다. 개인의 자유와 관련한 중대한 쟁점을 철학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해명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점은 그 훌륭한 내용을 사회에 대한 기초 지식과 평범한 수준의 독해력만 있으면 누구나 어려움 없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썼다는 것이다. 밀은 아무리 심오한 철학이라도 지극히 평범한 어휘와 읽기 쉬운 문장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책을 거듭 읽으면 밀이 구사한 어휘와 문장, 그가 펼친 논리와 철학적 안목을 힘들지 않게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자유론>과 같은 인문학 고전과 교양서를 많이 읽어야 한다.“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145쪽.
칼 세이건, <코스모스> : “칼 세이건 박사는 <코스모스>에 1980년대까지 인간과 생명, 지구와 우주에 대해서 인류가 알아낸 거의 모든 것을 압축해서 담았다. (...) 비록 최신 연구 결과를 반영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은 언론에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그것이 야기한 정치적 · 윤리적 · 사회적 논쟁을 이해하는 데 충분한 기초 지식을 제공한다. 여러 번 읽으면 책이 담고 있는 모든 개념, 어휘, 개념의 상호 관계, 새로운 과학적 사실에 대한 해석, 간결하고 품위 있는 문장을 한꺼번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책 한 권이 때로는 기적이라 해도 좋을 만한 정신의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코스모스>가 바로 그런 책이라고 생각한다.”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149~150쪽.
저자는 그밖에도 좋은 책을 많이 소개하고 있는데, 책을 고르는 기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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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을 고르는 기준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인간, 사회, 문화, 역사, 생명, 자연, 우주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개념과 지식을 담은 책이다. 이런 책을 읽어야 글을 쓰는 데 꼭 필요한 지식과 어휘를 배울 수 있으며 독해력을 빠르게 개선할 수 있다.
둘째는 정확하고 바른 문장을 구사한 책이다. 이런 책을 읽어야 자기의 생각을 효과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문장 구사 능력을 키울 수 있다. 한국인이 쓴 것이든 외국 도서를 번역한 것이든 다르지 않다.
셋째는 지적 긴장과 흥미를 일으키는 책이다. 이런 책이라야 즐겁게 읽을 수 있고 논리의 힘과 멋을 느낄 수 있다. 좋은 문장에 훌륭한 내용이 담긴 책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으면 지식과 어휘와 문장과 논리 구사 능력을 한꺼번에 얻게 된다.
- 유시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136~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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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관심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