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스케줄은 뭐지?
이러면서 아침에 일어났다.
맘에 드는 날이다. 특별한 스케줄이 없기 때문이다. 어제 다 해 놔서 집안일도 할 게 없고 학교 수업도 없는 날이다. 병원에도 친정에도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다.
이 글을 쓰고 나서 많이 걷고 들어와야겠다. 집에 오면 책이나 많이 읽어야지.
이런 날도 있으니 살 만하다. 매일 바쁘다면 어찌 살꼬?
내가 좋아하는 시간은?
아직 손상되지 않은 하루가 있음에 기분 좋은 아침,
커피 한 잔 들고
컴퓨터를 켜는 한가한 시간.
2.
한 편의 글을 완결해서 쓰던 시절이 있었다. 원고지 분량으로 말하면 15매 내외의 수필을 줄곧 썼다.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언제부턴가 완결된 글 한 편 쓰는 게 어려워졌고 헝겊 같은 단상 쪼가리만 쓰고 있다. 혹시 내가 단상 쪼가리들이 모여 언젠가 근사한 옷 한 벌 지을 수 있길 기대하고 있는 건가?
아마 그런가 보다. 정확히 말하면 단상 쪼가리들을 쓰면서 ‘생각’이란 놈이 무럭무럭 자라길 바라는 거겠지. 글쓰기에서 중요한 건 ‘생각’이므로.
글 잘 쓰는 작가는 완결된 글 한 편을 어떻게 쓸까?
이걸 알아보고 싶어졌고 그래서 구입하고 싶은 책이 생겼다. 고 박완서 님의 산문집이다.
박완서 산문집 세트 - 전7권
집에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가 있는데 ‘<쑥스러운 고백>-박완서 산문집 1’과 겹치는 게 많다. (‘<쑥스러운 고백>-박완서 산문집 1’에는 39편의 산문이 실려 있는데 그중 내가 읽은 것이 31편이었다. 그렇다면 구입하지도 않은 신간 <쑥스러운 고백>을 내가 거의 읽었다는 얘기가 되네. 그래서 1권은 빼고 2권부터 구입해야 되겠네.)
산문 하나 소개.
<쑥스러운 고백>이란 책에 ‘주말농장’이란 산문이 있는데 나는 이것을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라는 책으로 읽었다. 저자는 주말농장을 갖고 있는 친구를 따라 가 보고서 ‘주말농장’의 실상을 알게 되어 이런 산문을 쓰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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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들이 한여름의 폭양을 무릅쓰고 몇 뙈기의 밭, 몇 마지기의 논에 목숨을 매달고 농사를 짓는 옆에서 오락삼아 취미삼아 농사짓기 놀이를 벌인다는 건 농사꾼에 대한 얼마나 큰 모욕이요, 그들의 성실에 대한 얼마나 철딱서니 없는 유린일까. 저녁 나절 농사꾼들이 넓혀 놓은 농로(農路)로 자가용을 몰아 그 골짜기 마을을 벗어나면서 우리가 그날 하루 얼마나 큰 해독을 그 마을에 뿌리고 떠나나 하고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 박완서 저, ‘주말농장’이란 산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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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일 주일에 한 번쯤 나가서 농사 흉내를 하고 돌아온다는 게 도시의 아이들을 위해서도 결코 이로울 게 없을 줄 안다. 아이들은 순진한 것만큼 철딱서니도 없다. 아이들다운 직감으로 먹는 것, 입는 것, 생활 양식의 격차를 단박에 알아차리고 우월감과 특권 의식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하다. (...) 결국 주말 농장을 통한 도시 아이들과 농촌 아이들과의 만남이란 한쪽에는 부질없는 우월감을, 한쪽에는 상처를 주는 결과밖에 못 남길지도 모르겠다. (...) 도시에서 각종 공해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듯 농촌에선 주말 농장이라는 새로운 공해가 농민들의 정신 건강을 해친다면 어쩔 것인가.
- 박완서 저, ‘주말농장’이란 산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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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농장’을 비판한 이 글은 우리로 하여금 반성적 사고를 하도록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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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그때의 기억은 나로서는 꽤 충격적인 것이어서 ‘주말농장’이란 제목으로 소설화하기까지 했다.
- 박완서 저, ‘주말농장’이란 산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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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주말농장>이란 단편소설을 읽었는데 이 작품은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단편 소설집에 들어 있다.
같은 제목으로 산문 형식으로도 쓰고 소설 형식으로도 쓴 저자의 역량에 새삼 감탄한다.
산문집을 읽고 배울 생각에 설렌다.
고운 단풍잎 같은 설렘 하나 흔들리는 어느 겨울날의 시간 속에 있다.
3.
어느 책에서 읽었던가? 일본의 유명한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말했다. 가장 좋은 문체는 간결체라고.
내가 읽기에도 간결체는 잘 읽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있고 멋스럽기까지 하다.
내가 닮고 싶은 문체도 간결체이다. 그래서 간결한 글을 만들기 위해 글을 쓰고 나서 썩은 나뭇가지 자르듯이 확 확 쳐내면서 수정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헤어스타일로 말하면 숏커트가 되겠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어느 정도로 간결체를 쓰는지 갑자기 궁금해져서 집에 있는 책으로 찾아봤다. '어느 바보의 일생'이란 단편 소설에 이런 글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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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들
그들은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커다란 파초 잎이 뻗은 그늘에서-그들의 집은 동경에서 기차로 딱 1시간이 걸리는 어느 해안 마을에 있었기 때문에.
16. 베개
그는 장미 잎의 냄새가 나는 회의주의를 베개 삼아, 아나톨 프랑스의 책을 읽고 있었다. 하지만 그 베개 속에도 반신반마의 신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20. 족쇄
그들 부부는 그의 양부모와 한집에 살게 됐다. 그것은 그가 어느 신문사에 입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노란 종이에 쓴 한 장의 계약서에 힘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계약서는 나중에 보니 신문사는 아무런 의무도 없고, 그에게만 의무가 있는 것이었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저, <아쿠타가와 대표단편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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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읽은 것 같은데 다시 보니 낯설다. (그러니 책은 읽어서 뭐하나요? 생각도 나지 않는데... ㅋ)
4.
어제 알라딘에 들어와서 댓글 하나 썼다. 어느 님이 쓴 페이퍼를 읽고서다. 그 님은 하고 싶은 일이 없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단다.
초라함. 이건 나와 가까운 친구가 아닌가.
그 님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이런 댓글을 남겼다. 나중에 생각하니 웃긴 댓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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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하고 싶은 일이 아주 많습니다.
다만 능력이 따라주지 않아 시작을 못할 뿐이에요.ㅋ
능력만 따라준다면,
예를 들면, 일간지 논설위원, 칼럼니스트, 드라마 작가, 소설가, 에세이스트 등등...
아, 쓰고 보니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되고 싶은 거네요...
제가 웃겼나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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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내겐 어떤 직업이 제일 잘 어울리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내가 쓴 수필과 독후감 여러 편을 모두 읽으신 어느 국문과 교수님이 수필보다 독후감이 훨씬 낫다면서 창작을 하지 말고 평론을 공부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하셨는데, 그때 기분 나쁘게 들었었다.
‘흥, 내가 글을 못 쓴다는 거지? 두고 봐. 그 말씀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고 말 테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 말씀이 옳았다. 난 창작엔 소질이 없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부족한 모양이다. 평론을 공부했다면 어땠을까?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능력이 있다면)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 <결혼의 여신>같은 작품을 쓴다면 멋지겠다. 거기서 남상미가 맡아 연기한 ‘송지혜’라는 인물이 매력적이었다.
결혼은 하지 않겠다. 시댁에 봉사할 의무, 가족에게 밥해 줄 의무가 없어야 작가로 성공할 것 같아서다.
남자 친구는 있는 게 좋겠다. 하지만 결혼하자고 조르면 안 되니깐 혼자 살고 싶어 하는 남자면 좋을 듯. 입양해서 아이 하나 키우는 것도 좋겠다. 단, 아이 봐 줄 사람 하나 있어야겠지.
아, 그렇게 키울 거라면 입양할 자격이 없겠네.
5.
요즘 머리맡에 두고 읽고 있는 책이다. 다 훑어본 페이지들을 다시 들춰 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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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기대하는 마음은 기대하는 대상을 조금씩 갉아먹어 가면서 무너뜨리며 동시에 자신도 무너져 내리게 한다. (…) 기대하는 무엇은, 애초부터 먼 곳에 있다면야 손쉬운 포기도 가능할 터인데, 팔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곳에서 깃발처럼 펄럭인다. 그렇지만 도착하고 나면 늘 거기에 없다.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나서 다시 다가오라고 손짓한다. 늪처럼, 허우적거리면 거릴수록 더 깊이 빠져들게 한다.(173쪽)
- 김소연 저, <마음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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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기대의 이러한 특성을 이미 알아버렸나 보다. 그래서 바라고 있는 것에 대해 별로 기대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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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걱정은 유대의 힘을 엄청나게 발휘한다. 같은 고민거리를 지닌 자들은 머리를 맞대로 도원결의한다. 해결책이 나오면 안 된다. 영원히 보류되는 해결책 아래에서 그 유대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 대한민국의 모든 주부들이 대동단결하여 바쁜 것은, 자녀 교육과 시댁 이야기와 저녁 반찬 걱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걱정은 속수무책이고 대안이 없고 영원히 지속된다.(153쪽)
- 김소연 저, <마음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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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닐진대 걱정을 그림자처럼 달고 사는 우리.
삶이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보내는 시간 같아서 이런 글을 뽑아 봤다.
걱정이 끝나는 날은?
그 날은 삶을 마감하는 날이겠지.
그러니 삶을 사는 한, 걱정을 달고 살아야겠지.
그러므로 걱정을 달고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겠다. 그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