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해 2015년이다. 이 새해에 처음으로 올릴 첫 글을 쓴다.
시간은 이렇게 빠르게 흘러서 나를 어디에 갖다 놓을지 알 수 없구나.
1년이 흘렀고 3년이 흘렀고 5년이 흘렀다. 이러다간 10년이 흐르고 20년이 흐르겠지.
그런데 20년이 흐르고 나면 그땐 어떤 즐거움으로 살아야 하는 건가, 의문이 생기네. 설마 어떤 즐거움도 없이 사는 인생이 남아 있는 건 아니겠지.
인간은 또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서 잘 적응하며 살 거라고 믿는다.
2. 새해 계획을 세워야겠다.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하나?
2014년에 마지막으로 올린 글 <2014년에 내가 좋아했던 책 10권>을 보니 10권 중 대부분이 에세이였다. 내가 에세이를 좋아하나 보다. 에세이를 구입해야겠다고, 에세이를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닌데 내 마음이 이런 장르의 책에 끌렸나 보다. 생각해 보니 내가 쓰고 싶은 글도 에세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15년의 계획 : 2주일에 책 한 권씩 읽기.
그러면 한 달에 2권을 읽는 것이고 일 년에 24권을 읽는 것이다. 물론 그 이상이면 더 좋겠지. (그런데 이곳 알라디너들에 비하면 약한 것이겠지.ㅋ)
‘양’보단 ‘질’에 주력해서 책을 읽을 것. 그러기 위해선 그냥 읽는 게 아니라 음미하는 책 읽기가 되도록 할 것. 이걸 명심하기로 했다.
참고로, (알라딘 제공에 따르면) 2014년에 내가 올린 글은 총 77개라고 한다.
와우! 많이 올렸다. 남들에 비하면 많은 것도 아니겠지만, 나 이 글을 올리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네. 부지런을 떨었다네. 다 아시겠지만 세상살이는 글만 쓰고 살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으므로.
이번 해엔 그것보다 많이 쓰게 될지 적게 쓰게 될지 모를 일이다. 되는대로 쓰겠다. 그러나 열심히...
3. 이런 글이 좋다. 이런 글을 읽고 이런 글을 쓰는 새해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새해 첫 글에 넣는 인용문으로 다음의 글을 뽑았다.
나와 윤토는 결국 이처럼 거리가 멀어져 버렸으나 우리의 후손들은 같은 기분이리라. 굉아는 지금 수생을 그리워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들이 나같이 되지 말고, 또 모든 사람이 서로 사이가 멀어지지 말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또 그들이 나처럼 괴로움에 쫓기는 생활을 하는 것도 또 윤토처럼 괴로움에 마비된 생활을 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우리들이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생활이 있어야만 한다.
희망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윤토가 향로와 촛대를 달라고 했을 때 난 그가 우상을 숭배하여 언제까지고 잊어버리지 못하는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 말하는 희망이란 것도 나 자신이 손으로 만든 우상이 아닐까? 다만 그의 소원은 가장 가까운 데 있고, 나의 소원은 아득하고 먼 데 있을 뿐이다.
나는 몽롱해져 있었다. 눈앞에는 해변의 초록빛 모래땅이 전개되었고, 그 위의 진한 쪽빛 하늘에는 황금빛 둥근 달이 걸려 있었다. 나는 생각한다. 희망이라는 것은 원래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없거니와 없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실상 땅 위에 본래부터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되는 것이다.(‘고향’에서)
- 노신 저, <아Q 정전>, 80쪽.
내가 네 번이나 읽은 ‘고향’이란 짧은 소설에 있는 글이다. 겨울의 쓸쓸한 분위기와 어울려 인간의 쓸쓸함이 잘 나타나 있어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는 소설이다.
이번 해엔 작년처럼 에세이에 치중해서 읽지 말고 소설도 많이 읽는 한 해가 되게 만들 생각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혜원출판사의 것인데 품절이다.
이 책은 문예출판사의 것.
4. 이런 글도 좋다. ‘작은 사건’이란 소설이 있다.
화자는 인력거를 한 대 붙들어 S문까지 가자고 한다. 곧 S문 앞에 닿으려 하는 참에 갑자기 한 노파가 인력거로 인해 넘어져서 가볍게 다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무것도 아니야. 자, 가지.”라고 말하는 화자의 말에 인력거꾼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인력거꾼은 노파를 부축하면서 그 파출소 정면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이 때 돌연 일종의 야릇한 감동에 휩싸였다. 먼지투성이가 된 그의 뒷모습이 갑자기 커다랗게 느껴졌다. 그리고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점점 커져서 우러러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것같이 느껴졌다.(‘작은 사건’에서)
- 노신 저, <아Q 정전>, 53쪽.
노파에게 대하는 인력거꾼의 태도에서 화자는 큰 충격을 받는다.
이와 관련해 이런 글이 생각난다.
좋은 시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아름답게 말할 때, 그것은 지금 이 세계가 충분히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들이 이 세계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뜻이므로.
- 신형철 저, <느낌의 공동체>, 196쪽.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하찮게 생각하던 것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소설의 가치가 아닐까.
5. 알 수 없는 건 ‘인간’이다. 소설을 읽든 드라마를 시청하든 가장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인간의 모습’이다. 어떤 상황에 놓일 때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말을 하는지를 보면서 ‘아, 인간은 저렇구나.’ 하고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가장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장 모르는 것이 ‘인간’이 아닐까 한다.
예로, 드라마를 통해서 본 인간의 모습을 보자.
여자를 임신까지 시켜 놓고 결혼하기 싫다고 도망가는 남자가 있고,
이혼까지 한 마당에 아내에게 남자가 생기니까 질투를 하는 남자가 있고,
밉다고 서로의 마음을 할퀴며 살다가 남편이 아프다고 하니깐 눈물을 빼는 아내가 있고...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내가 아는 바로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음’이 인간의 특징일 것 같다. (더 알게 될 때까지 인간의 모습을 관찰하겠다.)
6. 티브이 드라마에서도 배울 게 많다. 드라마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난 드라마를 통해 인간에 대해 배우는 게 많다. 저녁에 바빠 시간을 맞춰 딱 정해진 시간에 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내가 저녁에도 한가롭다면 드라마를 시청할 것 같다.
그런데 꼼짝하지 못하고 쭉 보고 있어야 하는 게 드라마의 단점. 드라마를 보고 있을 땐 화장실에도 가지 못하겠다. 그런 점에선 드라마보다 역시 책이 좋다. 읽다가 언제든 중지해도 지장이 없는 책이 좋다.
7. 별 게 다 감사하다. 마음을 많이 비워서일까?
뭐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치아를 가짐에 감사하게 되었네. 오래전 치과에 다니며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비교하게 되네.
어머니가 내 시동생에게 줄 김장 김치와 만두를 챙겨 주셔서 남편이 시동생에게 전달해 줬다. 우리 엄마의 김장 김치는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게다가 손수 집에서 만든 만두로 만둣국을 끓이면 얼마나 맛있는지. 그래서 우리만 먹기 아까워 주는 거다.
나, 과식했도다. 과식했어도 기분이 좋았다. 이런 것들을 맘껏 먹을 수 있는 치아를 가졌음에 감사하면서...
8. 생각이 짧았다. 내가 얼마나 생각이 짧았는지를 알게 되는 것, 이것이 세월이 주는 선물일까?
늘 그게 문제다. 머릿속 많은 생각 중에서 어떤 게 옳은 것인지를 가려내는 것.
결론은 ‘모르겠음’이다.
다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알게 될 뿐이다. 육아 문제에서도 그렇고 정치 문제에서도 그렇고 내가 하는 일에서도 그렇다. 뒤늦게 어리석었음을 깨닫는다.
육아 문제에서 어리석었다. - 어릴 때 엄마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우는 아이를 꼭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줄 알고 강제로 보냈던 일 등.
정치 문제에서 어리석었다. - 저 사람이라면 훌륭한 정치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가 실망하게 되는 일 등.
내가 하는 일(직업적인 일)에서 어리석었다. - 잘못된 수업 방식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일 등.
중요한 건 더 이상 ‘어리석지 않기’인데 이것 자신이 없다. 새해에도 나는 여전히 어리석은 짓을 하며 살 듯하다. 어리석은 짓을 덜하며 사는 해가 되길 바랄 수 있을 뿐이다.
9. 내가 사랑하는 건 평범한 일상이다. 내가 이해한 ‘불행한 삶’이란 일상에 금이 가서 더 이상 평범한 일상을 살지 못하게 되는 삶이다. 예를 들면 어느 날 당뇨병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되어 커피와 빵을 마음껏 먹을 수 없게 되고 지난날의 일상과 다르게 살게 되는 것.
그렇게 되면 지루할 만큼 반복되던 지난날의 생활을 그리워하게 되리라.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이걸 깨우치는 데에 한참 걸렸다.
10. 그런 새해가 되길 바란다.
2015년에는 그들의 축제가 아닌,
우리들의 축제가 되는 날을 많이 갖게 되기를!
그런 새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