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문을 닫기 시작했다 : 어젯밤에 큰애가 거실 소파에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추워. 창문 닫을래.”
이런 말을 한여름에 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남들은 무더위로 힘들어 하고 있는데 춥다니. 하지만 지금은 한여름이 아니고 늦여름이니 우리 모두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무더위를 견뎌 냈으니 우리 모두 힘든 시간을 끝낸 자의 흐뭇한 미소를 지어도 좋으리라.
그렇게 간다. 여름은 물러날 것 같지 않은 기세로 사람들을 뜨겁게 달구다가 한순간에 가듯 그렇게 맥없이 간다. 이젠 아침저녁으로 서늘함을 실은 바람이 넘실대는 시간에 와 있다. 새벽엔 이불을 자꾸 위로 끌어올려 덮게 만드는 시간에 와 있다. 여전히 낮엔 더위가 머물고 있지만 강도가 한층 약해진 더위다.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더위다.
2. ‘아,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긴 거구나.’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 내가 걷는 운동을 시작한 건 소화불량 때문이었다. 위 내시경 검사를 하고 나서 의사가 한 말은 “몸을 많이 흔들어 주세요.”였다. 그래서 걷기 시작했는데 매일 한 시간씩 걸어서인지 소화가 잘 됐다. 걸어서 좋은 점이 하나 더 있다. 걷는 동안 마음이 개운해진다는 것. 이것을 의사는 “걸으면 머릿속의 스트레스가 빠져 나갑니다.”라고 표현했다. 이젠 몸 건강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걷기’가 필요하다는 걸 안다. 결과적으로 소화불량이 생긴 건 잘된 일이었다. 나를 운동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런 일이 생긴 거구나, 하고 생각할 만하다. 만약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았다면 매일 한 시간씩 걷는 습관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니.
또 하나.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신 날이 다행히도 금요일이었다. 그래서 직장에 다니는 사촌들이 모두 장례식장에 와서 일요일 국립묘지에 안장될 때까지 함께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금요일에 돌아가셨구나, 하고 생각할 만하다. 금토일의 2박 3일이라서 가능했으니.
이런 느낌은 나만의 느낌일까? 세상에는 우리를 지배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 어떤 법칙이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시나리오가 미리 짜여 있는 것 같은 느낌. 나는 종종 이런 느낌에 사로잡히곤 한다.
3. 주문한 책을 어제 받았다 : 알라딘에 적립금과 상품권이 2만원 넘게 있어서 돈을 조금만 보태어 책 두 권을 구입하였다. <영원의 철학>과 <무의미의 축제>이다.
쭉 훑어보니 이런 글이 눈에 들어온다.
그대의 영리함을 팔아서 당혹감을 사들여라.
영리함은 의견일 뿐이지만, 당혹감은 통찰이다. - 잘랄루딘 루미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244쪽.
영리함을 나타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당혹감을 나타내는 것은 현명한 일이라는 말 같네.
진정으로 영리한 사람은 자신이 영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는 게 많아질수록 모르는 게 많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잘 짓는 개를 훌륭한 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을 잘한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장자>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366쪽.
말을 잘한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니. 하하~ 웃음이 나오네. 예전에 내가 글쓰기 강사를 뽑는 어느 면접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적이 있다. 내가 말을 잘해서 강의를 잘할 것처럼 보였다는 후문이다. 심사위원들이 나의 말빨에 속은 거다. 내가 알기론 말을 잘하는 것과 실제로 똑똑한 것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말을 잘하는 사람을 오히려 조심해야 한다. 사기꾼들이 말을 잘한다.
또 어느 면접시험에선 내가 최하 점수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원래 합격된 이유는 말해 줘도 불합격된 이유는 말해 주지 않는 거다.)
면접시험에 대한 얘기는 다 옛날 얘기다. 지금은 말빨이 죽었다.
“다르델로, 오래전부터 말해 주고 싶은 게 하나 있었어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죠. (…)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바로 당신 입으로, 완벽한, 그리고 전혀 쓸모없는 공연…… 이유도 모른 채 까르르 웃는 아이들…… 아름답지 않나요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들이마셔 봐요, 다르델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무의미를 들이마셔 봐요, 그것은 지혜의 열쇠이고, 좋은 기분의 열쇠이며…….”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146~147쪽.
내가 이런 글을 좋아해서 옮겨 봤다. 작가 이름을 보지 않고 글의 내용만 봐도 밀란 쿤데라의 글 같다. 그다운 글이다. 이런 글은 ‘도대체 뭘 말하려고 이렇게 쓴 거야?’라는 궁금증이 생겨서 좋고, 읽다 보면 작가의 생각 세계로 저절로 들어서게 만들어서 좋다.
내 생각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은(죽음마저도) 무의미하고 반대로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의미가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인간의 마음이 아름답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한 것처럼 양면성이 있다는 것이다.
4. 대충 생각하며 살려고 노력하기 : 깊이 생각하며 살면 세상살이가 고달플 것 같아서 대충 생각하며 살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뉴스에서는 전쟁, 살육, 기아, 전염병들의 사태. 계속 마음 편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이기주의와 무신경의 딱딱한 껍질! 아주 보잘것없는 자비나 인간적 유대도 마치 심장 위에 떨어진 벼락처럼 우리를 죽게 만들지 모른다.
- 미셸 투르니에 저, <외면일기>, 291쪽.
자비나 인간적 유대가 벼락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도 삶의 요령인 것 같다. 이 책을 정독하면서 글 쓰는 방법만 배우는 게 아니라 사고하는 방법까지 배운다.
5. 밝게 살려고 노력하기 : 크게 그리고 경쾌하게 목소리를 내면 밝게 사는 사람처럼 보이고 밝게 사는 사람처럼 보이면 실제로 밝게 사는 사람이 된다. (이 점을 믿지 못하시는 분은 한번 해 보시라.)
앙트완 블롱뎅 : "나는 나 자신의 문턱에서 사는 데 길이 들었다. 왜냐하면 안으로 들어가 보면 너무 어둡기 때문이다."
- 미셸 투르니에 저, <외면일기>, 249쪽.
마음 안이 어두울수록 밝은 모습으로 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6. 인간은 합리화의 명수다 : 연인에 대한 질투로 폭력을 휘두르거나 살인을 저지르고도 이런 말로 합리화하는 게 인간이다. “사랑해서 그랬어요. 내게 죄가 있다면 사랑한 죄밖에 없어요.”
462쪽에는 “살인하지 말라”고 쓰여 있고 463쪽에는 그 주석 : 사형은 ‘지극히 심한 경우에’ 정당하다는 것. 스탈린, 히틀러 그리고 폴 포트가 이 대목을 읽었더라면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자기들은 오직 그런 경우에 한하여 사형을 선고했다고 굳게 믿고 있을 테니 말이다.
- 미셸 투르니에 저, <외면일기>, 253쪽.
사형이 정당하다면 도대체 정당하지 않은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아마 자기 자신에 관해서라면 어떤 나쁜 일도 정당화하는 게 가능하리라. 그게 인간이리라.
7. 문장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 책을 읽을 땐 문장의 내용을 읽으면서 문장의 형식에도 주목한다. 글 잘 쓰는 작가들의 문장을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첫 장부터 주목하게 만든 소설이 있다.
옛 애인의 결혼식 날, 사람들은 뭘 할까?
혼자서 훌쩍 여행을 떠나버릴 수도 있겠지. 남태평양의 해변가에 누워 칵테일 주스를 한 모금 마시면서 까짓것 쿨하게 행복을 빌어주는 거다. 아니면 돌멩이가 잔뜩 든 배낭을 메고 북한산에 오르거나 걸어서 잠수교를 횡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산하는 길 위에 돌멩이를 하나씩 버리다가 혹은 찰랑이는 강물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려도 좋겠다.
- 정이현 저, <달콤한 나의 도시>, 9쪽.
나는 종결 어미를 통일해 쓰는 버릇이 있고 또 그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위의 글에서 밑줄을 친 부분을 보면 ‘있겠지 - 거다 - 것이다 - 좋겠다’로 되어 있다. 작가는 일부러 종결 어미를 통일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쓰면 어떤 점이 좋은지를 생각하면서 문장의 형식에 주목했다.
하나 더 소개.
우리는 서먹하게 서로를 비껴 지났다. 전에 서너 번 얼굴을 스친 적은 있지만 말을 나눠본 적은 없다. 저쪽에서 굳이 먼저 인사하지 않는 경우에, 거기 맞춰주자는 것이 나의 원칙이었다. 어쩌면 저 여자 역시 그런 사고방식의 소유자일지도 모른다.
우선 클렌징 폼의 거품을 많이 내어 빡빡 세수를 하고, 녹차 향 바디클렌저로 샤워를 했다.
- 정이현 저, <달콤한 나의 도시>, 36~37쪽.
내가 썼다면 아마 (집에 들어왔다. 욕실로 들어가서 우선 클렌징 폼의 거품을 많이 내어 빡빡 세수를 하고, 녹차 향 바디클렌저로 샤워를 했다.)라고 썼을 것이다. ‘집에 들어왔다. 욕실로 들어가서’는 필요 없으니 빼도 된다는 걸 배운다. 되도록 간결하게 쓰기.
글쓰기란 알고 보면 문장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좋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낱말을 선택하고 배치하면서 즐기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도 비슷하다. 문장의 낱말 선택과 배치를 어떻게 했는지를 감상하면서 즐기는 것이다. 이것을 즐길 줄 안다면 그 어떤 책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단, 잘 쓴 책이어야 한다.
8. 여름이란 군식구 같은 것 : 어머니가 젊은 주부일 때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겨울 방학이 되면 제천에 사는 (나의) 고모가 애들 셋을 데리고 온다고 한다. 고모가 자기 친정에 놀러 오는 것인데 겨울 방학이 끝날 때까지 묵는다고 한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친정에서 겨울을 나기 위함이란다. 먹을게 귀하던 시절이란다. 어머니는 갑자기 군식구가 네 명이나 생기니 처음엔 귀찮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적응이 되어 귀찮은지도 모르고 산단다. 그런데 고모가 친정에 온 지 두 달쯤 되어 그만 집에 가야겠다고 하면 섭섭해서 붙잡게 된단다. 네 식구가 빠져나가고 나면 집이 텅 빈 것처럼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단다. 그래서 어머니는 허전한 마음으로 군식구를 떠나보낸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여름이란 군식구 같은 것.
낮에만 더울 뿐,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고 밤엔 가을처럼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요즘이다. 여름은 떠났고 다만 그 일부가 남아 있다.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서인 듯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땐 여름이 군식구처럼 싫더니 막상 여름이 떠나려고 하니까 붙잡고 싶을 만큼 섭섭하다. 여름이 떠나고 나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후유증에 시달릴 것 같다.
군식구처럼 올 땐 싫고 갈 땐 섭섭한 것. 그것은 여름.
9. 여름이여 안녕 : 내가 제일 좋아하는 늦여름이 되었다. 8월 중순쯤부터 9월 중순쯤까지의 날씨를 좋아한다. 더위를 식혀 주는 서늘한 공기를 자주 만날 수 있어서 좋아한다.
조금 전, 창밖의 풍경을 보니 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다. 그 풍경이 아름다워 한참 봤다. 여름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이 시간, 여름이 떠나는 게 아쉬워서 여름으로 시작해서 여름으로 끝나는 페이퍼를 썼다.
여름이여 안녕... 내년에 만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