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결혼식이 있어 갔다 왔다. 큰집 오빠의 둘째 딸이 결혼하는 것이다. 사촌 오빠의 딸이니까 내겐 조카가 된다.
그 집은 어쩌면 그렇게 일이 술술 잘 풀리냐는 우리 어머니의 말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큰 딸은 이미 결혼해서 아들 둘을 낳아 다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고 이번에 둘째 딸마저 결혼시키고 나면 이젠 오빠의 할 일은 다 끝난 거라고 여겼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 오빠가 육십이 넘은 나이인데도 어느 회사에서 '고문'이란 자리를 얻어 일을 하고 있으니 이것도 복이라고 여겼다. 본인도 퇴직해서 집에 있을 나이에 일자리가 생겨서 좋다고 말한 적이 있었으니.
그렇게 사촌 오빠는 우리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될 만했다. 그런데 결혼식이 끝나 뷔페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고 있을 때 그 오빠가 우리에게 들려준 말은 뜻밖이었다. 둘째 딸의 결혼을 처음엔 반대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우선 나이가 문제였다고 한다. 신랑이 신부보다 열두 살 많은 띠 동갑이란다. 신부가 서른 살이니 신랑의 나이는 마흔 살이 넘는다는 얘기다. 누가 늙은 사위를 좋아하랴. 그리고 신랑이 건축 설계 사무소를 가지고 일하는데 월수입이 넉넉지 못하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어머니와 나는 오빠가 결혼을 반대할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새삼 깨달았다. 겉으로 보기엔 다 행복해 보이는 집들도 집집마다 걱정거리가 있을 거라는 것을. 사람 사는 모습은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을.
거리를 걷다 보면 어느 음식점에서 외식하며 크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티브이를 통해서 해외여행을 하기 위해 공항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참, 잘도 사는군.’ 내 눈에 그들의 모습은 무척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그게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들의 생활을 깊숙이 들어가 보면 겉으로 볼 때와 달리 한숨 쉬며 우울해 하는 구석이 있으리라고 생각해 본다. 결혼식장에서 행복해 보였던 사촌 오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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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길 바랍니까?”
“자신만 걱정을 달고 사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길 바랍니다.”
“그리고 또?”
“겉모습이 평화로워 보인다고 해서 속마음까지 평화로운 건 아니니 타인에게 괴로움을 보태지 말아야 한다는 것. 우리는 모두 가여운 존재들이니 서로 잘해 줘야 한다는 것. 이런 것들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길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