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복수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어떡하면 좋겠냐고.
내 대답은 “으음~ 그만두세요.”였다.
자기에게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것이 잘못인 줄 모르고 끝까지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 그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복수하게 되면 죄를 짓는 일이 되고 자신의 삶이 망가지니까 참아야 한다. 왜 누구 때문에 삶이 망가져야 하는가. 이미 과거의 일이니 과거의 시간 속을 그만 배회하고 미래를 향해 전진, 전진해야 한다. 우리에겐 복수 이외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복수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돈을 벌러 다니자고 그에게 말해 주고 싶다. 벌을 주는 일은 하늘에 맡기자고 그에게 말해 주고 싶다.
오래 전 나도 누군가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적이 있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생겨 먹은 그 자체가 벌인 거다. 그런 그를 맘속으로 비웃어 주면 된다. 자기를 비웃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 것, 그게 그 사람에겐 벌인 거다. 그가 좋은 인생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 것, 그게 그 사람에겐 벌인 거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당신은 그것을 압니까?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도 죄를 짓는 일이라는 것을. 그가 좋은 인생을 살 수 없기 때문이지요. 왜 그가 좋은 인생을 살 수 없냐고요? 누군가가 미워하고 있는데 그가 일이 잘 풀릴 리 없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미워하고 있는데 그가 가진 간절한 소망이, 그의 기도가 이루어질 리 없지 않습니까? 그만큼 미워했으면 이제 놓아주세요. 그가 좋은 인생을 살 수 없게 만든 자신의 죄를 생각하면서요. 그러면 이제 그를 미워하는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생길 거예요. 그를 미워함으로써 그가 좋은 인생을 살 수 없게 만든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생길 거예요.)
분노는 남에게 던지기 위해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는 것과 같다. 결국 상처를 입는 것은 나 자신이다. - 석가모니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50쪽. |
복수 또한 남에게 던지기 위해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