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월이 되었다. 새 달이 시작되어 기분이 좋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흐르는 시간에 대해 저항감을 느꼈다. 나이 드는 게 싫은 거지. 아니 겁나는 거지. 그 이유는 늙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요 정도의 그릇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다.) 잘 생각해 보면 사실 늙어도 괜찮다. 늙어서 좋은 점도 있으니까. (가장 좋은 점은 애들이 클수록 내 시간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중요한 건 마음의 편안함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늙을 수 있다면 할머니가 된들 어떠하랴. 젊기를 바라지 않는다. 늙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오길 바랄 뿐이다.

 

 

 

 

 

 

2.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생각했다. ‘벌써 아침이라니, 더 자고 싶은데.’라고. 분명히 밤엔 이런 생각을 하겠지. ‘벌써 밤이라니, 자기 싫은데.’라고.

 

 

이렇게 생각을 바꾸어 본다.

 

 

....................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생각했다. ‘드디어 하루를 활짝 열어 주는 아침이구나.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되네.’라고. 분명히 밤엔 이런 생각을 하겠지. ‘드디어 하루를 닫는 밤이구나. 잠을 자는 휴식은 언제나 달콤하지.’라고.

....................

 

 

좋은 쪽으로 반복해서 생각하면 실지로 그런 쪽으로 생각하게 된다. 거짓말을 반복해서 하는 사람이 나중엔 거짓말인 줄 모르고 실지로 참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속아 넘어간다는 말이다.

 

 

이런 걸 알면서도 나는 내일 아침에도 ‘벌써 아침이라니, 더 자고 싶은데.’라는 생각으로 일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마는 법이니까.

 

 

 

 

 

 

3. 이처럼 인간은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마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좋은 글이 많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도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생각해 버린다면 이 책을 읽은 효과가 없는 거라고. 그러니 따로국밥처럼 내 마음 따로, 이 책의 내용 따로 분리해서 읽지 말아야겠다고. 이 책의 내용을 흡수하여 머릿속에 확실하게 입력해 놔야겠다고.

 

 

이런 생각으로 다음의 문장에 밑줄을 쳤다.

 

 

자존감을 가질 것.

 

 

강한 자존감은 당신이 전쟁에서 포로가 됐을 때 비굴해지지 않도록 해 줄 것이고, 세상에 맞서 싸울 때 당신의 행동이 옳다는 확신을 가져다 줄 것이다. _버트런드 러셀

 

자존감이란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열심히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1등이 아니어도, 빼어난 외모를 갖추지 못했어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할 수 있다면 건강한 자존감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34~35쪽.

 

 

건강을 위해 지나치게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 것.

 

 

너무 착하게 굴려고 하거나, 너무 정직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느라 진을 빼지도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심신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다. _도미니크 로로, 『지극히 적게』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179쪽.

 

 

고통은 통찰력을 심어 준다는 것.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고통은 치유될 수 있다. 고통은 통찰력을 심어 주고, 생의 아름다움을 회복시키며 , 우리를 재생시킬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딱지가 벗겨져야 새살이 돋는다. _마크 마토우세크, 『상처와 마주하라』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209쪽. 

 

 

작가에게 필요하다는 통찰력. 그런데 고통이 통찰력을 준다는 것. 온실 속의 화초보다는 비바람을 견딘 잡초 같은 인생을 산 사람이 글을 더 잘 쓰겠군.

 

 

 

고통은 통찰력을 준다니까 큰 고통을 겪게 되면 저축을 한 셈 치자.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통찰력을 얻게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견디어 보자. 또 ‘이런 큰 고통을 겪고 나면 앞으로 고통을 겪는 일이 생기더라도 두 번째는 쉬울 거야.’ 하는 생각으로 견디어 보자. 이런 게 저축인 것이다.

 

 

 

 

 

 

4. 최근에 미세먼지가 있는 날이 일주일 이상 계속되었다. 그래서 운동하러 밖에 나가지 못했다. 되도록 시장이나 슈퍼에 가는 것을 삼갔다. 햇볕을 쬐지 못했다. 실내 환기를 하지 못했다. 창문을 열고 청소하지 못했다. 이불을 털지 못했다. 음식 냄새가 날 때에도 창문을 열지 못했다. 마른 빨래들을 개킬 때에도 창문을 열지 못했다. 더러운 공기 때문에 사는 게 참 불편하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미세먼지로 인해 내 삶에서 맑은 날에 누릴 수 있는 기쁨이 하나 추가되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좋은 일일까.

 

 

인간에게는 고통과 병이 필요하다는 톨스토이의 말.

 

 

“인간에게는 고통과 병이 필요하다. 고통과 실패가 없다면 기쁨, 행복, 성공을 무엇과 비교하겠는가”라는 톨스토이의 말처럼, 삶을 더 진지하게 바라보고 가치 있게 사는 도구로 상처를 이용하라.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149쪽.

 

 

톨스토이의 말을 날씨에 적용하면 이렇게 되겠다.

 

 

‘인간에게는 더러운 공기가 있는 날이 필요하다. 더러운 공기가 없다면 맑은 공기를 무엇과 비교하겠는가. 더러운 공기가 있기에 맑은 날에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쁨을 누리지 못해도 좋으니 미세먼지가 없으면 좋겠다. 공기가 언제나 맑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기쁨을 느끼는 날’이 있기를 바라기보다 ‘스트레스를 느끼는 날’이 없기를 바란다. 나는 행복에 대해서도 행복이 있기를 바라기보다 불행이 없기를 바라는 쪽이다.

 

 

맑은 공기를 내뿜는 공장 같은 것이 만들어지는 날은 오지 않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스마트 폰과 같은 기기의 발명 대신 건강에 이로운 발명을 기다린다.

 

 

 

 

 

 

5. 신간을 다 구입해 볼 순 없지만 어떤 책이 출간되었는지, 어떤 책이 읽을 만한 책인지, 어떤 책이 좋은 평가를 받는 책인지 정도는 알고 지낸다.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책 정보를 얻는다. 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좋은 평가를 받아서가 아니고 깨달음이 담겨 있어서도 아니고 재미가 있어서도 아니다. 그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구입했다. 그리고 읽고 나서 만족했다. 

 

 

 

 

 

 

 

 

 

 

 

 

 

 

 

 

 

 

 

 

 

6. 지나간 시간이 행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는 그 시간이 행복한 줄 몰랐다. 지나간 시간이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는 그 시간이 아름다운 줄 몰랐다. 왜 시간이 지나면 다르게 여겨지는 것일까.

 

 

서머싯 몸은 그것을 이미 간파해서 이런 글을 썼다.

 

 

마침내 그는 하이델베르크를 떠났다. 석 달 동안 그는 오직 미래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그러고는 미련 없이 떠났다. 그곳의 생활이 행복했었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다.

 

- 서머싯 몸 저, <인간의 굴레에서 1>, 215쪽.

 

 

그곳의 생활이 행복했었다는 사실을 알려면 시간이 지나야 한다는 것.

 

 

 

 

 

 

7. 알라딘의 서재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게 어느덧 5년이 넘었다. 언제부터인가 서재에 글을 올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밖에 나가 엠피쓰리로 음악을 들으면서 걷는 운동을 시작한 것은 9년이 되어 간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나 미세먼지가 있는 날엔 텔레비전을 보면서 실내의 자전거로 운동을 한다. 운동도 습관이 되어 버렸다. 이 두 가지에 습관의 노예가 된 것이다. 이런 노예라면 되어도 좋지 않은가.

 

 

사제는 흡연을 혐오스러운 습관이라 생각해서, 사람이 습관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틈만 나면 말했다. 자신은 오후에 차 마시는 일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먹은 모양이다.

 

- 서머싯 몸 저, <인간의 굴레에서 1>, 230~231쪽.

 

 

조금 전에 잠을 자러 침대에 누웠었다. 그런데 아침을 먹을 때만 해도 졸려서 잠이 오겠구나, 했는데 막상 잠을 자려니까 잠이 오지 않는 거다. 왜 잠이 오지 않는 거지?, 하고 생각하다가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다. 아침을 먹고 나서 바로 커피를 마신 거였다. 커피를 마시고 잠을 청하다니. 쯔쯔... 아, 나도 아침을 먹고 나면 바로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있구나. 생각 없이 그냥.

 

 

그러고 보니 나도 습관의 노예라고 할 만한 게 꽤 있네.

 

 

(그런데 습관의 노예, 라는 말을 서머싯 몸(1874년 출생)이 자기 작품에 이미 써 놨잖아. 어마! 그렇게 오래된 말이었나. 역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구나.)

 

 

 

 

 

 

 

 

 

 

 

 

 

 

 

 

 

 

 

 

 

8. 나는 어릴 땐 수줍음이 많아서 '제발 나에게 관심 좀 갖지 말아 주세요.' 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고모가 놀러 와서 나를 빤히 쳐다보며 예뻐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손님이 집에 오는 날이면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내 그랬던 것 같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명랑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수줍음이 많이 없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수줍음이 남아 있어서인지 지금도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것을 즐기지 못한다. 그래서 옷을 살 때도 튀지 않는 옷을 고른다. 이런 내가 블로그에 공개적인 글을 쓰다니 아이러니다. 나의 성향에 반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러니는 내 삶에서뿐만 아니라 세상 곳곳에서 일어난다.

 

 

 

 

 

 

9. 남의 서재에 들어가 글을 읽다 보면 어느 한 쪽으로 깊게 들어가서 쓴 글이 있다. 그런 글은 자신이 경험하기 전엔 쓸 수 없는 글처럼 여겨지는데 그런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 식의 글이 되기 쉽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보면 ‘뭘 먹어서 그렇게 글을 잘 쓰나?’가 아니라 ‘뭘 읽어서 그렇게 글을 잘 쓰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재능과 노력이 빚어낸 결과겠지만. 

 

 

 

 

 

 

10. 얼마 전, 한 권의 책에 대해 페이퍼로 쓴 어떤 알라디너의 글을 보고 감탄해서 초면?인데도 댓글을 남겼다. 책 한 권에 대한 감상을 적은 글이었는데, 내가 “추천을 백 번쯤 누르고 싶은 글이지만 한 번만 누르고 갑니다. ^^”라는 댓글을 남겼던 것. 책의 저자를 비판하면서도 겸손의 미덕이 느껴지는 그의 글이 아주 맘에 들어 세 번 읽었다.

 

 

글을 쓰기 전에 어떤 마음의 자세로 글을 쓸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중요한 일인 것 같다. 그 마음의 자세가 고스란히 글에 담기기 때문이다.

 

 

가끔 글의 그 정직함 때문에 글 쓰는 게 두려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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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6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07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4-03-06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알라딘에 글 쓴지가 벌써 5년이 되셨나요?
저하고는 인연이 얼마 안 되신 것 같은데...ㅋ
9번에 관해서는 항상 그렇게 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유독 정말 공감을 많이하며 읽게되는 책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정말 마음의 옷을 벗고 정직해지고 싶어지죠. 언니의 말씀에 동감이어요.
또 그만큼 그런 책을 골라낼 줄 아는 감식안 같은 게 생기는 것 같아요.
물론 그래서 점점 시야가 좁아지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읽을 수 있는 책만 읽는..ㅠ
저 마지막 글월에 동감하는데 그래서 글 쓰기는 제의와 같은 것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요.;;

페크pek0501 2014-03-07 12:09   좋아요 0 | URL
저, 이제 신참 아니에요. ㅋㅋ
한 쪽으로 깊게 파기의 글이 좋기 때문에 아마도 작가들이 자전적 소설에 호평을 받는 경향이 있을 거예요. 그런 작품으로 문학상을 타는 걸 많이 봤어요.
그러니까 이런 결론도 가능하죠. 잘 아는 것에 대해서 써라... 남보다 자신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써라... 상상력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독서의 편식이 어떤 면에서 좋다고 봐요. 전문성을 갖출 수 있으니까. 어떤 한 분야에서만큼은 내가 많이 읽었다고 할 만한 게 있다면 강점이 될 수 있단 뜻이에요.

10번에서 글의 정직함... 어떤 글은 아름다움이나 착함을 추구하고 있지만
글쓴이의 오만함이 담겨 있더라고요. 물론 자신은 모를 거예요.
그래서 글쓰기가 두렵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니까 나도 모르는 나의 어떤 면을 독자는 알게 되는 그 정직함 때문에
글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가 될 것 같아요. ㅋ

세실 2014-03-07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걷기 운동을 한지 9년.....좋은 습관 가지셨네요.
노는 날 늦은 오전에 운동 나가면 참 좋던데...저녁엔 혼자 운동하기에는 좀 무서워요.
저는 중3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난뒤...그때부터 좋을거 같아요. 자유시간이 많아질테니....
어제 퇴근하는데 몸이 참 무겁더라구요. 졸립기도 하고.... 하루 1시간 40분의 운전이 막 피곤해지는 목욜이었습니다. 그럴땐, 전업주부가 참 부러워요. 자고 싶을때 잘 수 있고, 쉬고 싶을때 쉴 수 있는.....퇴직해야 그 시간이 가능하겠지요. 아...비루하여라~~
올해가 가기전에 님이랑 꼭 커피를 마셔야겠어요^^

페크pek0501 2014-03-07 12:13   좋아요 0 | URL
걷는 운동은 제가 소화 불량에 잘 걸려서 의사와 상담하니까 몸을 많이 흔들어 주라고 해서 시작된 거예요. 필요에 의해 시작한 게 습관이 된 거죠.

제가 학생들을 십 몇 년을 가르치면서 전업주부들이 부러웠다는 거죠.
얼마나 팔자가 좋으면 자신이 돈을 벌지도 않고 돈을 쓰기만 하면서 살 수 있는 건가,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그랬다는 거죠.

저는 매일 출퇴근도 아니고 그것도 오후 수업만 맡아 할 생각이기 때문에(앞으로 쭈욱~) 전업주부가 누릴 수 있는 아침잠의 자유 같은 것이 있어요.
어느 학교에서 토요일 오전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 이제는 사양할 거예요. 일찍 나가는 게 왜 그리 싫은지 모르겠어요.

저도 올해에 님과 꼭 커피 마시고 싶어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