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라는 소설에 이런 글이 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모순에 찬 것이며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위선이 숨겨져 있고 고결한 정신 속에서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숨어 있고, 또 사악한 마음속에는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깃들여 있는가 등을 그 무렵의 나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 서머싯 몸 저, <달과 6펜스>, 51쪽, 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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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이렇게 바꾸어 볼 수 있겠다.
<어떤 사람이 성실하다는 것은 어느 부분에서만 그렇다는 것이고, 고결하다는 것은 어느 부분에서만 그렇다는 것이며, 불량하다는 것은 어느 부분에서만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엔 하얀 색의 수건을 걸레로 사용하는 주부가 있다. 그 집에 가면 걸레가 얼마나 깨끗한지, 걸레인지 행주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얀 걸레를 매일 빨아서 삶기 때문이다. 그런데 걸레만 보고 그 집의 청결 상태를 판단해 버리면 안 된다. 화장실에 가 보면 바닥에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기가 예사였기 때문이다. 화장실 청소는 자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이런 주부도 있다. 방 청소보다 화장실 청소를 더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자기는 바쁠 땐 방 청소를 생략하지만 화장실은 매일 청소한다고 한다. 집에서 화장실의 청결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결론은 청결하다는 것은 어느 부분에서만 그렇다는 것.
이런 사람도 있다. 살림을 알뜰하게 하는 어떤 사람은 돈이 아까워 택시를 타는 일이 전혀 없을뿐더러 마당의 화초에 주는 물도 아까워 빗물을 받아 놨다가 화초에 물을 준다. 그런데 그는 여행을 다니며 쓰는 비용에 대해선 전혀 아까워하지 않아 사계절마다 여행을 다니며 돈을 쓴다.
결론은 알뜰하다는 것은 어느 부분에서만 그렇다는 것.
나의 경우, 결벽증이라고 할 만한 버릇이 하나 있다. 책장에서 책 한 권을 뽑아서 보려 할 때 키친타올에 물을 적셔서 책의 겉면을 앞뒤로 닦은 뒤에 책을 보는 것이다. 먼지를 닦고 보기 위해서다. 이런 버릇은 책을 만진 손이 더럽다고 느낀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책을 닦아서 보는 게 좋은 버릇이라고 여기지는 않아서 애들이 보는 앞에서는 절대 하지 않고 애들 몰래 닦는다. 애들이 나를 닮는 건 싫기 때문이다.) 이런 결벽증이 있다고 해서 모든 면에서 청결할 것이라고 보면 오산이다. 청결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가령 텔레비전이나 전화기에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는 걸 보면서도 닦지 않을 때가 많다.
결론은 결벽증이 있다는 것은 어느 부분에서만 그렇다는 것.
흔히 사람들은 일부만 보고도 전체를 미루어 안다는 뜻으로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말하지만 이는 틀린 말인 것 같다. ‘열을 알고도 하나를 모르는 게 인간이다.’라는 말이 오히려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