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날이 덥기도 하고 자외선이 강하기도 하여 낮에 장 보러 가는 걸 피한다. 그래서 어제도 저녁을 먹고 느지막이 마트에 가서 물건을 잔뜩 사서 내일 배달해 달라고 부탁하고, 녹을 것 같은 아이스크림만 사 들고 왔다. 붕어빵 모양의 아이스크림이 있는데 참 맛있다. 요즘 이것 먹는 재미에 빠졌다. 원래 먹성이 좋질 않고 방심하면 살이 빠지는 체질이라서 내 입에 맞는다 싶으면 꼭 사서 먹는다. 붕어빵 아이스크림을 열 개 사서 냉동실에 넣어 두니 마음이 부자가 된 느낌이다. 이렇게 차가운 것을 먹는 즐거움이 있는 건 무더운 여름의 장점이다.
2. 오늘따라 커피의 유혹이 강해서 연거푸 두 잔을 마셨다. 한 잔을 마신 뒤에 몸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아 참으려다가, 마시고 싶은 걸 참으면 스트레스가 생길 테니까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 거야, 하면서 또 한 잔을 마신 것. 그리고 난 담배와 술을 하지 않으니까 건강할 거야, 하면서 나를 안심시켰다. 이렇게 자신을 안심시키는 일이 필요할 때가 있다. 설사 그게 거짓이라 해도 자신이 그 거짓에 속아 넘어갈 수만 있다면 되는 것이다. 자신을 속인 것이 거짓이냐 진실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안심시켜서 마음이 편하게 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선 과정보단 결과에 가치가 있다. 불행을 겪게 되더라도 불행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지옥에 있더라도 그곳이 지옥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을 속이며 안심시키는 게 필요하다.
3.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느 강연에서 “사람 본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 보이지 않는 부분을 소설을 통해 만들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다른 이들도 나처럼 경험하였으되 아무도 아직 글로 표현하지 못한 것을 찾아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면 그 글은 반은 성공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런 글감을 찾는 게 쉽지 않다.
4.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 봤는데, 이 말이 헤르만 헤세 저,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에 들어 있었다. 1877년생인 헤르만 헤세가 한 말이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니, 세월을 뛰어넘는 글의 힘을 새삼 느낀다.
5. <총, 균, 쇠>, <문명의 붕괴> 등의 저자로 퓰리처상을 받기도 한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컴퓨터, 이메일, 스마트폰, 타자기 같은 것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펜으로 책을 쓴다고 한다. 7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을 펜으로 썼다니 놀라운 일이다. 70대 중반의 그는 앞으로 8년을 잡고 또 새로운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펜으로 쓴단다. 그에게서 남들이 하는 대로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삶의 방식으로 ‘나 혼자만의 길을 가겠노라’하는 고집이 느껴진다. 이런 고집이 글을 쓰는 사람에겐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총, 균, 쇠>는 최근 5년간 서울대도서관 대출 1위를 기록한 책으로 700쪽이 넘는다.)
6. 내가 무슨 말을 할 때 툭하면 남편이 “그거 책에서 본 거 얘기하는 거지?”라고 묻곤 한다. 나는 무조건 아니라고 대답한다. 설사 책에서 본 것이라 할지라도 내 머릿속에서 나온 거라고 우긴다. 그리고 남편은 “책에 있는 게 다 맞는 게 아니야.”하고 덧붙인다. 내가 책을 숭배하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책에 있는 게 다 맞는 게 아니라는 남편의 말에 동의해야 할 것 같다. 다음의 글을 읽는다면.
그렇다면 언어로 표현되는 지식이 가진 문제는 무엇일까? 첫째로 언어로 표현한 지식은 모호함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텍스트는 세상 속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명료함을 제시해 준다. 그 결과 우리가 글로 쓴 지식에 근거해서 어떤 결정을 내리면, 과도한 위험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지나치게 안심해 버리는 것이다. (…)
둘째, 나와 같은 작가를 포함해서 책을 쓰는 사람들은 책을 쓰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쓴 텍스트들을 이 세계를 대표적으로 모사(模寫)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셋째, 말은 능력에 가면을 씌워 준다. 즉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많은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
중요한 지식은 수많은 시도와 실천 안에 들어 있다. 언어에 대한 경외심을 내려놓아라. 이제 책 속에 틀어박히는 일은 그만 두고 뭔가 실제로 납득할 수 있는 일을 해라.
- 롤프 도벨리 저, <스마트한 선택들>, 105쪽~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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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글쓰기’로 말하면 이렇게 될 것 같다. ‘글을 잘 쓰려면 글을 잘 쓰는 방법에 관하여 쓴 책을 보지 말고 직접 글을 써 봐라. 쓰면서 스스로 글을 잘 쓰는 방법을 터득해라. 왜냐하면 중요한 지식은 수많은 시도와 실천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여전히 책을 숭배하겠다. 책만큼 위대한 것을 보지 못했으므로. 책만큼 매력적인 것을 보지 못했으므로. 책만큼 싫증나지 않는 것을 보지 못했으므로.
7. 행복을 길게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 행복을 느끼는 건 짧은 시간이니까. 그래도 우리는 행복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여기며 행복을 얻으려고 애쓴다.
“지혜로운 자의 목표는 행복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피하는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 롤프 도벨리 저, <스마트한 선택들>,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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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편이 또는 자식들이 내게 큰 행복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고 내가 속상할 만한 일이 일어나지만 않는다면, 나는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소한 일상의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8. 내 서재의 ‘즐겨찾기 등록’을 한 사람들이 95명이 되었다. 14명은 공개로, 나머지 81명은 비공개로 설정되어 있다. 많이 늘었다. 참 많이 늘었다. 곧 100명이 되겠지. 나는 이런 사소한 것에 기분이 좋았다. 이런 작은 일에도 기뻐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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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프 도벨리 저, <스마트한 선택들> : <스마트한 생각들>의 후편이라고 할 수 있다. ‘후회 없는 결정을 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52가지 심리 법칙’을 소개하는 책이다. “이 책에 나온 52가지 심리 법칙은 <스마트한 생각들>에서보다 더욱 일상적이고 실용적인 생각의 오류들을 집대성했다.”(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