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마당이었다. 젊은 남자와 다섯 살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각각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자전거를 탄 여자아이는 “아빠, 같이 가.”하며 젊은 남자의 자전거를 뒤따르며 활짝 웃었다. 젊은 남자는 그런 여자아이를 뒤돌아보며 흐뭇해하는 것 같았다. 젊은 아빠와 그의 딸아이가 크게 원을 그리며 다정하게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내 발걸음이 멈췄다.

 

 

그 여자아이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될지 모를 것이다. 그 아빠는 알까.

 

 

나에게도 그 여자아이처럼 부모와 함께한 시간이 있었고, 그 젊은 아빠처럼 아이와 함께한 시간이 있었지만, 그땐 그 시간들의 풍경이 나중에 그리워할 아름다운 풍경인 줄 몰랐다.

 

 

아무리 산과 들과 강이 아름답다고 해도 자연의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건 사람이 있는 풍경이리라.

 

 

 

 

 

연기

 

 

호숫가 나무들 사이 조그만 집 한 채.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연기가 없다면

집과 나무들과 호수가

얼마나 적막할까.

 

 

- 베르톨트 브레히트 저,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집과 나무들과 호수가 있는 곳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은 사람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사람이 있기에 이 풍경은 적막하지 않고 아름다운 것이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이 2013-05-16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레히트 읽고 계시는군요.
전 브레히트는 읽어본 적이 없는 (쿨럭;;;)

어린 딸과 마주하면서 이것저것 함께 하다보면 어린 제가 딸아이와 함께 노는 것만 같아서 은근 치유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육아를 하는 요즘은 춤을 추는 것처럼 은근 육아를 즐기고 있어요.

제목이 좋은데요. 책표지도.

페크pek0501 2013-05-17 18:39   좋아요 0 | URL
육아를 즐기는 건 좋은 일이죠.
저도 아이와 놀면서 정말 아이인 것처럼 수준 낮춰 놀았는데 재밌었어요. 그런데 이제 딸들이 커서 수준이 높아져 그런 놀이가 통하질 않네요. 먼 훗날 손자손녀들하고 놀아야 되려나요. ㅋㅋ
요즘 앤 님의 서재활동을 즐겁게 보고 있답니다.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좋아요.

프레이야 2013-05-16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브레히트의 다른 시집 한권이 달랑 있어요. 저 시에서만 봐도 역시 세상에 주인공은 배경이 있어야 아름답군요. 아니 어느 것이 주인공이 배경인지 경계가 모호하겠죠. 조화로운 게 아름다운 것인 거 같아요. 정말! 물론 사람도요. 사람의 얼굴도 풍경이라면 좋은 풍경 가꾸고 싶다는 생각이 오늘따라 더 들었답니다. ^^

페크pek0501 2013-05-17 18:41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은 좋은 이미지를 갖고 계시니 이미 좋은 풍경을 이루신 거죠.

아, 그런데 이 후진 글의 추천 수가 높지 않나요? 후한 점수를 받은 기분이에요. 황송해요... ^^

노이에자이트 2013-05-16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고, 자식이 커서 부모가 되죠.괴로운 옛날도 추억으로 넘기면서...

페크pek0501 2013-05-17 18:42   좋아요 0 | URL
괴로운 옛날도 추억으로 넘기면서... ㅋㅋ 추억 중엔 괴로운 추억도 있겠군요. 그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노이에자이트 2013-05-18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이 괴로울 리 있겠어요? 괴로운 옛날도 추억이 되면 아름답다 이거죠...

페크pek0501 2013-05-19 12:50   좋아요 0 | URL
그렇게 알아들었사옵니다. ^^

좋은 봄날 보내세요. ^()^

감은빛 2013-05-23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지를 걸려는 건 아니구요.
저는 순수하게 아름다운 풍경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사람이 개입하면 아름다움이 퇴색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하신 속뜻을 제 방식으로 이해하면
"(그리운 혹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풍경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다."
이렇게 이해가 되네요.

페크pek0501 2013-05-23 15:2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감은빛 님,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개인의 생각 차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니 딴지는 아닌 것 같고요.
님의 생각도 일리는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느끼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음.)

그런데 저는 유명 화가들의 그림 전시회를 보러 가도 자연 풍경보다는 사람이 있는 풍경의 그림 앞에서 발검음을 멈추어 오래 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꼭 그립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풍경이 있더라고요.

<총, 균,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이런 말을 했어요.
"모든 독자가 내 생각에 동의한다면 그건 쓰지 말았어야 할 책인 거다."
요즘 이 말에 용기를 내어 글을 쓰고 있답니다. 자신 없는 글일 때가 많거든요.
또 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