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대학 동창인 친구가 불러내어 나간 자리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두 사람이 나와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내 친구의 고교 동창이란다. 그 두 명 중 한 사람이 고등학생 시절에 글을 잘 쓰는 애로 유명했다고 한다. 친구가 내게 “니 블로그 얘한테 말해 줘. 얘가 글을 잘 쓰는 애거든.”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래전에 소설을 쓴 적이 있는데 그건 옛일일 뿐 지금은 전혀 글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은 직장에 다니느라 글 쓸 여유가 없을뿐더러 아예 글쓰기를 잊고 산다고 한다. 나는 그런 그에게 내 블로그의 주소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때 나는 왜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아마 글을 써서 그의 삶에 득이 될 것 같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고, 그가 지금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면 굳이 글을 써서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인 것 같다. 말하자면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버는 당신은 현재 가고 있는 길을 그냥 가시오. 괜히 실속 없는 글쓰기에 기웃거리지 말고.’하는 마음으로 내 블로그에 들어올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나중에 깨달았다. ‘아, 나는 글쓰기를 실속 없이 에너지만 소모하는 일로 알고 있구나.’라고. ‘그리고 이건 내가 글쓰기의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기 때문이야.’라고. 만약 내가 글쓰기 재능을 타고났다면 나는 벌써 책을 냈을 것이고, 어쩌면 성공했을 것이고, 꼭 성공을 거두지 못했더라도 어떤 보람이나 성취욕으로 만족했을 것이고, 그러면 글을 쓴 적이 있는 사람에게 글을 써 보라고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글을 잘 쓴다는 그가 내 글쓰기에 대해 물었을 때 나는 이런 대답을 했다. “저는 직업이 따로 있고요, 글 쓰는 건 그냥 취미예요.” 이렇게 대답한 이유는, 상대가 재능이 없는 일을 오랫동안 붙들고 사는 나를 한심하게 볼까 봐 내가 먼저 나에 대한 방어를 한 것이리라.
요즘 생각하는 것인데, 나는 글 쓰는 걸 직업으로 갖고 있지 않음에 감사한다. 만약 글을 쓰는 걸로 돈을 벌어야 하는 작가였다면 좋은 글이 써지지 않을 때 어쩔 뻔했을까. 작가가 되기보단 지금처럼 작가를 흠모하고 글 쓰는 취미를 즐기며 돈벌이 직업을 따로 갖고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테니스 선수보다 테니스를 취미로 가진 사람이 낫고 골프 선수보다 골프를 취미로 가진 사람이 나은 이유가 두 가지 있다. 그것을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싫증이 나면 언제든지 부담 없이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물론 취미보다 직업인 게 나은 이유도 있겠지만 여기선 생략함.)
테니스나 골프의 취미를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공을 잘 칠 수 있을까, 연구한다고 한다. 나도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연구하곤 한다.
그래서 이런 책들을 찜해 놓았다.
<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 : 학교와 직장 등에서 당장의 글쓰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 그중에서도 특히 언론인을 목표로 논술 시험 등을 준비하는 이들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기본적인 글쓰기 원칙을 담고 있다. (…) 한국일보 임철순 고문은 제목 짓기와 바른 우리말 사용을 다양한 예시를 통해 강조한다.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은 시각(insight) 제시의 중요성을 주요 이슈를 다룬 본인의 글을 통해 보여준다. - (알라딘, 책소개)에서.
<5000만의 글쓰기> : 저자는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를 정작 글을 많이 쓰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지만, '글쓰기는 만견이 불여일작'이라는 말이다. 이 책에는 레토릭의 3요소(인성, 감성, 지성)를 활용하는 수사학적 글쓰기 노하우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 (알라딘, 책소개)에서.
<글쓰기의 공중부양> : 베스트셀러 소설가 이외수가 전격적으로 공개하는 글쓰기 비법서. 2006년 출간되었던 <글쓰기의 공중부양>의 개정판이다. 실제적인 어휘·문장 연습과 함께 작가 특유의 위트와 유머를 가미한 사례들이 풍부하게 소개되어 있어 읽는이들이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 (알라딘, 책소개)에서.
이 책들을 사 보면서 초심으로 돌아가 공부하는 자세를 가지려 한다. 이런 자세를 갖는다는 것은 공부의 결과를 떠나서 그 자체로도 기분 좋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추신........................
시나 소설을 쓰는 작가보다 칼럼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주제 파악을 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수업하는 논술 강사라는 직업에 만족한다.ㅋ)
나의 약점은 예술적 감수성이 뛰어나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문학적 묘사를 잘하지 못한다. 그런데 칼럼엔 그런 게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쪽으로 마음이 쏠렸던 것 같다. 정치나 경제보다는 사회나 문화에 대한 글을 선호한다. 요즘도 신문에서 좋은 칼럼을 발견하면 가위로 오려서 여러 번 읽어 보는 습관이 있다. 일종의 취미 생활이다.
한 편의 칼럼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선사하는 것 같다. 그런 칼럼을 좋아한다.
그런 칼럼을 좋아하는 한, 나의 글쓰기는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