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제 서재의 방문자 수가 5만 명을 훌쩍 뛰어넘은 날입니다. (현재 50015명으로 되어 있군요.)
어느새 방문자의 수가 5만 명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5만 명을 기록하는 그 지점에서 그 순간을 기념할 만한 글을 올리려 했는데, 미처 준비하지도 못한 채 5만 명을 뛰어넘어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가기가 아쉬운 마음이 들어 예전에 올렸던 글을 하나 골라 올립니다. 이 글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올립니다만, 혹시 이 글을 읽었던 사람이라도 이 글을 올린 지가 1년이 넘었으니 또 읽어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은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에게 해 주고 싶은 말입니다.
제목 : 패배할 땐 웃기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만, 늘 과묵한 내가 갑자기 즈베르꼬프하고 격투를 벌인 일이 있었다. 하루는 그가 휴식 시간에 친구들과 미래의 정부(情婦)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햇볕을 쬐고 있는 강아지처럼 들뜨기 시작하더니, 자기는 영지 마을의 계집애들을 하나도 그냥 놔 두지 않겠다, 그건 - droit de seigneur(귀족의 권리)이므로 만약에 농부들이 건방지게 반항한다면 그 따위 텁석부리 악당들은 모조리 곤장을 먹인 후에 인두세를 곱절로 물리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얼빠진 동료들은 모두 박수갈채를 보냈지만 나는 달려들어 격투를 벌였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마을 계집애들과 그 아버지들을 동정해서가 아니라 이런 풋내기에게 모두들 박수를 보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운 좋게 이겼지만, 즈베르꼬프는 바보이긴 해도 쾌활하고 활달한 성격이었으므로 허허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실은 나의 승리도 완전한 것은 못 되었다. 마지막으로 웃은 것만큼 그가 덕을 본 셈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저,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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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자신이 상대의 웃음 때문에 완전한 승리자가 되지 못함을 말하고 있다. 상대편에서 보면 그 웃음 때문에 완전한 패배자가 될 뻔한 것을 면한 것이다. 그 웃음이란 바로 마음의 여유인 것이다. 즈베르꼬프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 네가 이겼다. 네가 이겼다고 인정해 주지. 그런데 그게 뭐 대단한 건가.'
그런 마음의 여유가 ‘허허’ 웃게 만든 것이리라.
(혹시 여러분은 누군가로부터 창피를 당하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에 처했을 때 그래서 패배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 때,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뛰면서 그 상대에게 분노를 느껴 화를 벌컥 낸 적이 있습니까? 그럴 땐 화내는 대신 시치미 떼고 웃어 버리는 겁니다. 오히려 그것이 자신을 초라하지 않게 만드는 방법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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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고른 이유 :
삶이란 한 번씩 찾아오는 패배감을 견디며 살 때가 많은 것이므로.
그들만의 축제를 부럽게 바라보는 구경꾼이 된 느낌으로 살 때가 많은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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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나는 언제 패배감이나 구경꾼이 된 느낌을 갖는가
- 내 나이의 숫자를 생각하면서 세상의 무대 뒤로 퇴장한 느낌이 들 때.
- 거울로 예전에 비해 생기를 잃은 얼굴을 보면서 ‘이렇게 늙어 가는구나’하고 생각할 때.
- 돈을 버는 일엔 으레 스트레스가 생기기 마련인데, 그 스트레스에 대한 해결책이 없고 그저 감내해야만 한다고 느낄 때.
- 나보다 훨씬 늦게 서재 활동을 시작한 분들의 서재에서 내 서재의 세 배쯤 되는 하루 방문자의 수를 볼 때.
- 추천 수와 댓글 수가 나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은 서재를 볼 때.
- 고등학생인 걸로 아는 블로거가 쓴 글이 나보다 더 잘 쓴 글로 느껴질 때.(그가 누구인지 짐작하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가끔 내 서재에 댓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