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울증은 흔한 병이 되었다. 내 주위에도 우울증 약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친구 중에도 있고, 고모와 사촌도 현재 이 약을 먹고 있다. 우리 친정어머니도 한때 이 약을 먹었다.
친정어머니는 함께 살던 외할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마음의 병을 앓았다. 그 충격과 허전함을 이기지 못해 병원에 다니며 우울증 약을 먹게 되었다. 그것도 한참 동안이나. 그때 나는 고등학생이어서 잘 몰랐고, 나중에야 듣고 알았다. 어머니가 방에서 멍하니 앉아 있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어머니의 병이 감기인 줄 알고, 그 감기가 너무 오래 간다고만 여겼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는 내가 당신을 닮아서 부모님이 다 세상을 떠난 뒤에 내가 우울증에 걸리게 될까 봐 걱정이다. 그걸 대비해서 아예 우울증 약으로 뭐가 좋은지를 가르쳐 주기까지 한다. 우울증 약도 종류가 많은 모양이다.
사람마다 저항력이 약한 정도가 다 다를 것이다. 어머니는 우울증이라는 병에 약한 것이다. “암환자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40% 이상이라고 한다.”(이승혁 저, <고정관념을 깨면 암은 정복된다>에서.) 그러니까 암환자가 되는 불행을 겪는다고 해서 모두 우울증에 걸리는 게 아니라, 100명 중에서 40명쯤만이 우울증에 걸린다는 것. 이들이 우울증에 취약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머니가 바로 이 40%에 해당하는 셈이다.
병뿐만이 아니라, 무엇이든 그것에 대한 사람의 반응은 제각기 다르다. 똑같이 불행한 환경 속에 있더라도 누구는 그것을 극복하고 누구는 그것에 좌절한다. 이것은 그들이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리라. 예를 들면, 명랑한 사람은 작은 일에서도 즐거움을 느끼는가 하면, 우울한 사람은 작은 일에서도 비극의 렌즈를 끼고 본다. 그러니 자연히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인식하는 불행의 크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건강에 관심이 많아서 건강과 관련한 책을 읽고, 또 심리학 분야의 책을 즐겨 읽어서 우울증에 대한 글을 많이 보게 된다. 또 주위에 우울증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니 우울증에 관심이 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우울함을 느낄 때가 있는데, 왜 누구는 우울증 환자가 되고 누구는 우울증과 무관하게 사는 것일까. 또 어떻게 하면 우울증이라는 병을 예방할 수 있을까. 이런 게 궁금했다.
1. 착각을 즐겨라
허태균 저, <가끔은 제정신>은 행복하기 위해선 착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회심리학자 테일러와 브라운의 연구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정확하게 지각하면서 비현실적 낙관성을 보여주지 않는 집단, 이른바 착각을 덜 하는 사람들은 다름아니라 바로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라고 한다.”(116쪽)
“우울증에 걸려 착각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착각하지 않아서 우울해지는 것인지, 그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진 않았지만, 둘 다 말은 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본인이 원치 않아도 부정적인 생각을 자꾸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 긍정적인 착각이 힘든지도 모르겠다.”(116쪽~117쪽)
긍정적인 착각을 하지 못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므로 건강하고 행복하고 싶다면 ‘착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시 주변에 사업만 했다 하면 실패하는데 아무리 말려도 또 뭔가를 저지르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아! 내가 그래서 실패한 거야. 그것만 아니었으면 성공했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반면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더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경우는, ‘나는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해도 또 실패할 거야’라고 믿는 것이다.”(107쪽)
“심리학에는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개념이 있다. 흔히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피할 수 없거나 극복할 수 없는 실패를 많이 경험하면 무기력해져서, 자신이 충분히 할 수 있는 다른 일조차 아예 노력하지 않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106쪽)
이 현상의 핵심은 흔히 생각하듯이 실패를 겪는 것이 아니라, 통제감을 잃는 것이라고 한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자신이 실패한 이유를 명확히 알면 무기력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만 고치면 성공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2. 무력감을 경계하라
셀리그만의 ‘학습된 무기력’ 이론에 대해 서민 저,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은 이렇게 설명한다.
“개를 방에 두고 전기충격을 주면 옆방으로 도망간다. 그런데 개를 묶어 놓고 하루 동안 전기충격을 준 뒤 다음날 자유롭게 풀어 준 상태에서 전기충격을 주면, 개는 옆방으로 도망갈 수 있음에도 그 자리에 서서 전기충격을 다 받는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좌절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은 무력감이 학습되어 상황 변화를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111쪽)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은 긍정적 사고와 부정적 사고가 1.6 : 1.0으로 황금비율을 이루지만, 우울증 환자에서는 이 균형이 무너져 부정적 생각이 압도적으로 많이 관철된다”(111쪽)고 하는 것도 무력감 때문이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살하는 비율은 세계 5위에 달하고, 사망 원인 중 자살이 차지하는 비율 또한 경쟁한 여러 암들을 제치고 10위 안에 랭크되어 있다. <건강프리즘>(홍혜걸)에 나온 통계에 따르면 자살하는 사람 2명 중 한 명은 우울증이라고 하는데, (…)”(113쪽) 이것은 우울증이라는 병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우울증을 흔히 ‘정신의 감기’라고 부르는데, ‘감기’로 죽는 사람이 거의 없는 현실을 보면 우울증을 그냥 ‘감기’라고 생각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이 병의 심각성을 강조한다.
3. 감정은 믿을 게 못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데이비드 번즈 저, <우울한 현대인에게 주는 번즈 박사의 충고>라는 책에선 중요한 사실을 밝혀 낸다. 인간의 사고(思考)가 감정과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 감정과 기분이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간략히 말하면 사고가 감정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중요한 건 ‘사고’이다.
“기분 변화를 초래한 것은 실제 사건이 아니라 당신의 지각이다.”(41쪽)라고 보는 것이다. 즉 “당신의 기분은 사고들에 의해 창조된 것이지, 실제 사건들에 의한 것이 아니다. 모든 경험은 당신이 어떠한 정서적 반응을 체험하기도 전에 두뇌를 통해 처리되고 의식적 의미가 주어지는 게 틀림없다.”(41쪽)는 것이다.
“당신을 자신의 정서적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킬 열쇠는 무엇인가? 단순하게도 다음과 같다. 당신 사고는 당신 정서를 창조한다. 고로 당신 정서는 당신 사고가 정확하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불쾌한 느낌은 단지 당신이 뭔가 부정적인 것을 생각하고 있음을 나타낼 뿐이다. 당신의 정서는 마치 꼬마 녀석이 제 엄마를 뒤쫓아다니듯이 당신의 사고를 뒤쫓는다.”(62쪽) 그러므로 정서(감정)는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우울증 환자의 잘못된 사고를 바로잡을 수 있다면 우울증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이겠다.
4. 상실감을 극복하라
실제로 우울증에 걸려 본 적 있는 사람이 쓴 책이 있다. 윌리엄 스타이런 저, <보이는 어둠>이란 책이다. 이 책은 영화 <소피의 선택>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스타이런이 직접 경험한 우울증에 대한 보고서이다.
우울증의 원인은 대단히 다양해서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는데, 저자는 자기 우울증의 원인을 지독한 상실의 경험에서 찾고 있다. 저자가 자신이 우울증에 걸린 원인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것들을 열거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느닷없이 술을 끊게 된 것, 막 예순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에 심한 타격을 받은 것, 작가로서 느낀 무기력의 습격,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질(그의 아버지는 상당 기간 우울증과 싸웠다.), 열세 살 때 겪어야 했던 어머니의 죽음 등이다. 이런 이유들은 다른 이들이 우울증에 걸리게 된 이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 저자는 하나의 사건이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기보다 그것이 ‘잠재되어 있는 우울증’을 드러나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참고로, 이 책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로맹가리와 까뮈의 우울증에 대한 얘기도 흥미롭게 전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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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소개한 네 권의 책들은 우울증을 예방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익할 것이다. 그리고 우울증과 관련 없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다. 주위에 우울증 환자가 있을 수 있으므로 그들을 돕기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5. 많이 웃어라
우울증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중 하나가 기질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많이 웃는 사람들과 적게 웃는 사람들 중에서 적게 웃는 사람들이 우울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확실하다. 또 웃음이 우울증 치료약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억지로 웃는 웃음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진짜 웃음이든 가짜 웃음이든 웃음으로써 근육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똑같이 우리의 몸에 좋은 엔돌핀이 분비되어, 억지로라도 많이 웃는 것이 우울증의 예방과 치료에 좋다고 한다.
쇼펜하우어 저, <쇼펜하우어 인생론>. 쇼펜하우어는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기질이 우울하고 마음이 어두울 수 있다고 하며, 이는 타고나는 것이며,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인용한다.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천성적인 기질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신은 괴이한 인간들을 많이도 만들었다. 어떤 사람은 눈을 껌벅이며 그다지 우습지도 않은 피리 소리에도 앵무새처럼 웃어 댄다. 또 어떤 사람은 몹시 언짢은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 네스토르가 우습다고 하는 농담에도 웃지 않는다.
- A. 쇼펜하우어 저, <쇼펜하우어 인생론>,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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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우습지도 않은 피리 소리에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낮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울증을 예방하려면 우스운 농담에도 웃지 않는 사람이 되지 말고, 우습지도 않은 피리 소리에도 웃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결국 웃을 마음이 준비되어 있는 사람만이 웃을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이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분명 있을 것이다.
추신 : 웃기 위해서 텔레비전을 통해 개그 프로그램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도 우울증 예방에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