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오는 날 생각한 것 : 비오는 날은 무조건 좋다. 마치 만나고 싶었던 손님이라도 방문한 양 반갑다. 도대체 왜 나는 비가 오는 게 좋은 걸까.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냥 좋다고 할 수밖에. 굳이 생각해 내자면 비오는 풍경을 창밖으로 볼 수 있어 좋고,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어 좋고, 먼지 없이 깨끗한, 촉촉한 세상이 되어서 좋은 건지 모르겠다.

 

 

창을 통해 아름다운 ‘비오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죽음’을 생각했다. 비오는 날에 내가 아는 누군가가 죽는다면 큰일이구나 싶었다. 그러면 비오는 날에 장례식장에 가게 될 것이고, 그 뒤로는 비만 오면 그 죽은 사람이 떠올라서 비오는 날이 슬픈 날이 되어 버릴 것이고, 자연 비오는 날을 지금처럼 마음껏 좋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을 마음껏 좋아할 수 없다는 것은 나로선 큰 즐거움을 잃는 일이다. 아니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여전히 비를 좋아할 수도 있겠다. 어떤 쪽이든 불행하긴 마찬가지일 터. 결국 내가 비를 좋아할 수 있는 조건이 하나 있는 셈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비오는 날엔 죽지 않을 것, 그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이기적이다.)

 

 

 

 

2. 해피엔딩이 없는 이유, 연인의 죽음 : 남는 자들은 죽어가는 사람이 덜 고통 받고 죽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죽는 사람도 남겨지는 사람들을 위해 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죽는 자의 의무란 남겨진 사람들을 덜 슬프게 만들어 놓고 떠나야 하는 것.

 

 

죽는 사람이, “나 고통스럽지 않아. 편안히 떠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해 준다면 남겨지는 사람들은 덜 슬플 것이다. 그래서 암 같이 심각한 병으로 투병중인 환자는 육체적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외에 남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까지 감당해야 한다.

 

 

마르크 베르나르 저, <연인의 죽음>이란 소설이 있다. 여기엔 사별한 연인이 있다. 죽음의 순간은 이렇게 찾아왔다.

 

 

 

 

우리의 서른한 해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세계로 우리를 몰아넣는 그 순간에 당도했다. 한 순간만 지나면 곧 우리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이전보다도 더 낯설게 될 것이었다.

 

 

- 마르크 베르나르, <연인의 죽음>에서.

 

 

 

 

서른 한 해를 아내로 살았던 여자 엘스가 죽었다. 홀로 남은 남자는 앞으로 불행한 삶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남자는 죽은 엘스를 몹시 그리워한다.

 

 

 

 

그러면 나로 하여금 그녀가 더 이상 속해 있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가게 하는 이 사랑은 무엇인가?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그녀를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녀의 분신이라 해도 그녀를 정말로 빼닮은 여자는 찾지 못할 것이다. 어떤 여자도 시간을 보기 위하여 그토록 기이하게 손목을 돌리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한들거리며 걷지 않을 것이며, 그녀만큼 용기와 유머를 갖지 못할 것이며, 그녀의 말처럼 ‘정돈된 무질서’의 재주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다면!” 어떤 여자도 엘스가 될 수는 없다.

 

 

- 마르크 베르나르, <연인의 죽음>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다음엔 그 누구도 그를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할지 모른다. 그런 절망은 사랑하는 연인 관계에서 흔한 일이다. 언젠가는 어느 한쪽이 먼저 죽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에 해피엔딩은 없다. 그 이유를 헤밍웨이는 이렇게 정리한 바 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가 없다. 죽음이란 반드시 찾아들어 남겨진 자는 사랑을 잃어야 하기 때문이다.

 

 

- 어네스트 헤밍웨이, <오후의 죽음>에서.

 

 

 

 

연인 간에서뿐만 아니라 가족 간에서도 해피엔딩의 삶이란 없다. 가족이 있는 한, 누군가는 남겨져서 사별의 아픔을 겪어야 하는 게 인생이니까.

 

 

 

 

 

 

 

 

 

 

 

 

3. 해피엔딩이 없는 이유, 아들의 죽음 : 연인의 죽음 못지않게 슬픈 게 자식의 죽음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더 큰 슬픔일 것이다.

 

 

 

 

원태야, 원태야, 우리 원태야,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하느님도 너무하십니다. 그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년 5개월밖에 안 됐습니다. 병 한 번 치른 적이 없고, 청동기처럼 단단한 다리와 매달리고 싶은 든든한 어깨와 짙은 눈썹과 우뚝한 코와 익살 부리는 입을 가진 준수한 청년입니다. 걔는 또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젊은 의사였습니다. 그 아이를 데려가시다니요. 하느님 당신도 실수를 하는군요. 그럼 하느님도 아니지요.

 

 

- 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이처럼 우리의 일반적인 시각은 죽음은 단지 ‘슬픈 죽음’일 뿐이다. 때로 억울하고 때로 안타깝고 때로 분노하게 만드는 슬픈 죽음이다.

 

 

 

 

 

 

 

 

 

 

 

 

4. 죽음에 대한 몽테뉴의 태도 : 하지만 많은 위대한 인물들은 죽음에 대한 태도가 달랐다. 몽테뉴는 죽음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졌을까.

 

 

 

 

장사는 젊은이들의 낭비가 없으면 되지 않는다. 농사꾼은 곡식이 비싸야 하며, 건축가는 집이 헐어 무너져야 하고, 재판관은 사람들이 소송 싸움을 해야 된다. 그리고 성직자들의 명예와 직무마저도 우리의 죽음과 악덕(惡德)이 있어야 존립한다.

 

 

고대 그리스의 희극 작가는, 의사는 자기 친구가 건강한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며, 군인은 자기 도시의 평화조차도 탐탁치 않게 여긴다고 언급했다. 다른 일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더 언짢은 일은, 우리 각자가 스스로 내부를 파헤쳐 보면, 우리 마음속의 소원은 대부분이 타인에게는 손해가 되게끔 싹터서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에서.

 

 

 

 

요즘 인간의 수명이 길어져서 고령화 문제가 사회 문제가 되어 버렸다. 만약 인간이 죽지 않는다면, 그래서 인간의 새로운 탄생만 있고 소멸이 없다면 이 지구는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죽음은 우리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 몽테뉴의 말처럼 어떤 사람들이 덕을 보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리하여 한쪽의 해로움이 다른 한쪽의 이로움을 만드는 것, 그게 우리의 삶이다.

 

 

 

 

 

 

 

 

 

 

 

 

5. 죽음에 대한 장자의 태도 : 장자는 죽음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졌을까.

 

 

장자의 아내가 죽어, 혜자가 문상을 갔다. 그때 장자는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가 장자에게, 아내가 죽었는데 곡을 하지 않는 것은 너무한 일이라며, 거기다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까지 하다니 너무 심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장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네. 아내가 죽었을 때 나라고 어찌 슬퍼하는 마음이 없었겠나? 그러나 그 시작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 본래 삶이란 게 없었네. 본래 삶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형체도 없었던 것이지. 본래 형체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본래 기(氣)가 없었던 것이지. 그저 흐릿하고 어두운 속에 섞여 있다가 그것이 변하여 기가 되고, 기가 변하여 형체가 되었고, 형체가 변하여 삶이 되었지. 이제 다시 변해 죽음이 된 것인데, 이것은 마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철의 흐름과 맞먹는 일. 아내는 지금 ‘큰 방’에 편안히 누워 있지. 내가 시끄럽게 따라가며 울고불고한다는 것은 스스로 운명을 모르는 일이라, 그래서 울기를 그만둔 것이지.”

 

 

- 오강남 풀이, <장자>에서.

 

 

 

 

 

 

 

 

 

 

 

 

 

 

 

6. 나는 : 밤에 전화벨이 울리면 깜짝 놀란다. 혹시 친정에서 걸려온 전화가 아닐까 해서다. 아버지가 연로하신데다 지병까지 있으셔서, 자식으로서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게 된다. 난 이런 상상으로 근심하곤 한다.

 

 

‘깊은 밤 갑자기 울리는 불길한 전화벨, 이어서 어머니의 울음 섞인 목소리, 이어서 병원 응급실에서의 공포와 초조함, 이어서 장례식장의 깊은 슬픔, 그리고 홀로 남은 어머니를 위로하며 우울하게 사는 나.’

 

 

‘삶’이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것이라면, ‘죽음’은 무대 뒤에 꾸민 배경 같다. 그만큼 삶 가까이에 죽음이 있다. 무대에 있는 사람은 살면서 배경을 의식하며 살 수도 있고, 잊고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배경 없이 무대를 만들 수 없듯이 죽음 없이 삶은 없다. 그러므로 죽음을 자연스럽게, 긍정적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그게 어렵다. 누군가가 부재하는 고통을 견뎌야 하니까.

 

 

누군가가 죽게 될 때, 죽은 자와 남겨진 자 중에서 누가 더 불행할까.

 

 

 

 

7. 죽기 전에 후회하는 것 : 우리는 죽기 전에 무엇을 후회할까. 이에 대해 다섯 가지로 정리한 글이 있다.

 

 

 

 

 

죽기 전에 후회하는 다섯 가지.

 

내 뜻대로 살 걸,

일 좀 덜할 걸,

화 좀 더 낼 걸,

친구들 챙길 걸,

도전하며 살 걸.

 

 

- 이의수,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에서.

 

 

 

 

이것을 이렇게 해석해 본다.

 

 

(나를 위해) 내 뜻대로 살 걸. 내 맘대로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나를 위해) 일 좀 덜할 걸. 즐기며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나를 위해) 화 좀 더 낼 걸. 참기만 하고 화내며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나를 위해) 친구들 챙길 걸. 친구와 재미있게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나를 위해) 도전하며 살 걸. 도전하는 삶을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반대로 자신만을 위해 산 사람은 ‘좀 남을 위해 살 걸.’하고 후회하지 않을까. 내 생각엔 어떻게 살든 후회가 따를 것만 같다.

 

 

 

 

 

 

 

 

 

 

 

 

8. 맺는말 : 꽃이 아름다운 건 피어 있는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제한적이며, 그래서 삶은 소중한 것이다.

 

 

죽음에 대한 성찰 없이는 좋은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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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3-17 0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이란 나쁜 일이 아니기에, 근심할 일은 없다고 느껴요.
<아나스타시아>라는 책을 한번 찬찬히 읽어 보셔요.
내 생각에 따라 내 삶과 내 좋은 이웃들 삶이 달라지잖아요.

페크pek0501 2012-03-17 19:13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에 감사 드립니다.
그런데 그 새벽에 일어나신 거예요? 으음~~너무 부지런하신 것 같은데요.

글을 너무 안 올린 것 같아 어제 급히 써서 올린 글이랍니다. 이 글이 후진 이유입니다. ㅋ ㅋ

노이에자이트 2012-03-17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남에게 성질 부리고 화내는 사람도 자기는 늘 참으며 산다고 여기더군요.적당히 새겨들어야죠.

페크pek0501 2012-03-17 19:14   좋아요 0 | URL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성질 부리는 사람도 자기는 많이 참아서 그 정도만 성질 부린 거라고 생각해요. ㅋ 다 주관적인 생각에 빠져 살죠.


stella.K 2012-03-17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다섯 가지 중 전 해당사항이 없는 것도 있어요.
일 좀 덜 할 것. 전 일을 좀 더 해야하는데.
화 좀 덜 낼 걸. 점점 줄어 들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 참아 병 되는 건 아닐지 모르겠어요.
친구들 챙길 걸. 난 챙기고 싶은데 친구들이 거부하는 것 같더라구요.
친구도 한때 친군가 봐요.ㅠ

페크pek0501 2012-03-17 19:15   좋아요 1 | URL
스텔라님, 저 빵 터졌어요. 다 웃겨요.

전 일을 좀 더 해야하는데.
너무 참아 병 되는 건 아닐지 모르겠어요.
난 챙기고 싶은데 친구들이 거부하는 것 같더라구요 - 다 웃겨 웃겨. ㅋㅋ

stella.K 2012-03-18 13:48   좋아요 1 | URL
ㅋㅋㅋ 언닛! 저는 이 댓글 달 때 나름 우울하고 심각했단 말예요!
그런데 언니가 웃으시니까 나도 따라 웃게 되잖아욧!
내가 너무 내 분위기에 빠져 심각했었나요?ㅋㅋㅋㅋㅋ
근데 진짜예요. 믿어 주세요.ㅠㅠ

페크pek0501 2012-03-19 13:34   좋아요 1 | URL
ㅋㅋ 믿겠습니다. 나름 우울하고 심각했단 말을...
근데 누군 우울한 적 없고 심각한 적이 없겠습니까. 인간은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합니다. ㅋ(인간은 고독과 근심을 숙명처럼 달고 사는 존재인데, 어찌 우울한 적이 없겠습니까.)
혹시 제가 스텔라님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 알고 있다면 님의 기분이 좋아질지 모르니, 응원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겠어요. ㅋ(실제로 제가 추천도 많이 눌러 주고 있습니다.ㅋ)

요즘 좀 바빠서 여기저기 서재 마실을 자주 다니지 못하고 있어요. ㅋ
좀 이따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신지 2012-03-18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과는 좀 다른 애기지만, 결혼식, 장례식에 갈 때마다 저는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 죽음은 가족의 일이다. 장례식은 가족의 행사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한 것이 나는 좋다" (소노 아야코)
그런데 친구들과 가끔 애기를 나눠보면 이런 생각은 아직은 너무 소수여서, 사회적 인식과 불화랄까요...번번히..

오랜만에 첫번째로 추천했는데 이것저것 하다가 이제 들렀습니다 모처럼 날씨가 따뜻한데 편안한 휴일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2-03-19 13:36   좋아요 0 | URL
아, 신지님이 첫 추천을 누르셨군요. (정중하게~)고맙습니다. 어느 천사가 추천만 누르고 흔적도 안 남기고 갔는지, 늘 궁금했는데, 바로 신지님 같으신 분이겠군요.

“~ 아무도 모르게 조용한 것이 나는 좋다" (소노 아야코) - 생각해 볼 만한 일이네요. 신지님은 좋은 말을 많이 알고 계시는 것 같아요. 으음~~ 독서광이신 듯해요.

날씨, 어제 하루종일 밖에 있었는데, 낮에 포근하더니 해 지고 나니까 찬 바람 불더라고요. 님도 편안한 봄날 보내세요.

마녀고양이 2012-03-20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득,
이별이 무서워서 아예 만남도 피하는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죽음이라는 이별은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것이니, 미래를 생각하고 현재를 포기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요... 물론 언니의 글은 절대 그런 의도가 아니셨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참 다양한거 같아요, 그죠.... 이별이 있으니 지금 열심히 살아야겠다가 답일텐데, 요즘, 이별이 있어서 무서워서 혼자 지낼래 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런 생각을 했나봐요...

페크 언니, 잘 계시죠...? ^^

페크pek0501 2012-03-21 11:15   좋아요 0 | URL
예,예,예, 잘 지내고 있어요.^^ 반가운 마고님...ㅋ

한동안 새 글을 안 올리시기에 바쁘긴 바쁜가 보다 했어요. 공부 잘 되고 있겠죠? 가장 아깝지 않은 투자는 공부, 라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결국 공부한 것들은 재산이라는 생각이에요. 요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공부시간이란 참 좋은 거구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마고님 힘 내시라고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