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로 보이는 여자손님이 약국에 감기약을 사러 들어왔다. 젊은 남자약사가 감기약을 주면서 식후에 하루 세 번 먹으라고 말했다. 손님은 약값을 지불하고 약국을 나오면서 약 포장지에 씌어져 있는 ‘온수복용’이라는 글자를 발견하곤 약사에게 되돌아가서, “꼭 따뜻한 물로 약을 먹어야 하나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약사는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꼭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손님은 한 가지를 더 물었다. “이 약, 날짜는 안 봐도 되지요?” 그러자 약사는 짜증스런 목소리로, “제가 날짜를 보여 드릴까요?”하면서 아까 약을 꺼냈던 큰 상자를 가지고 와서 상자 겉에 표기된 (유통기한)날짜를 보여 주었다. 손님은 됐다고 하면서 인사하고 약국을 나갔다. 약사의 불친절한 태도에 기분이 상했지만 참았다.


내가 본 것은 여기까지다. 난 두 사람을 보면서, 약사가 손님을 오해함으로써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서로 기분이 언짢아진 것이라고 느꼈다. 내가 느낀 대로 쓰면 이러하다.


첫째, 손님이 질문한 ‘온수복용’은, 꼭 온수로 먹어야 하는지가 단지 궁금해서 물었다. 그런데 약사는 그 약에 대해 식후에 하루 세 번 먹으라고 설명을 다 해 주었는데도, 손님이 온수복용에 대해 묻자 화가 났다. 자신이 온수복용에 대한 설명을 빠뜨린 실수를 손님이 지적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둘째, 손님이 질문한 ‘날짜’는, 혹시 유통기한 날짜가 지난 약으로 사게 될까 봐 걱정이 되어 그저 확인차 물었을 뿐이다. 그런데 약사는 자신이 유통기한 날짜가 지난 오래된 약을 주었을까 봐 손님이 의심해서 물은 것으로 생각했다. 즉 약사는 자신을 신뢰하지 않은 손님의 태도가 기분 나빴던 것이다.


내가 두 사람의 생각을 잘못 추측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와 비슷한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남이 의도한 것을 읽지 않음으로써 오해를 하고, 남이 의도하지 않은 것을 읽음으로써 오해를 한다. 우리는 왜 타인이 의도하지 않은 것까지 읽어서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까지 마음 상하게 할까. ‘타인의 마음을 제대로 읽기’,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듣는 사람이 오해하는 진실보다 더 해로운 거짓말은 없다.”(W. 제임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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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1-03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기에 표현할 때는 배려해서 표현하고
들을 때는 있는 그대로 들어야 하는데, 그게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원활한 의사소통과 설득, 또는 이해, 타협... 이보다 어려운게 있을까 싶어져요.

페크pek0501 2011-11-03 14:22   좋아요 0 | URL
동감입니다. 원활한 의사소통, 정말 어려워요. 그래서 이런 류의 글을 자꾸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모두들 의사소통만 잘 된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한 세상이 될 듯싶어요. 그런데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걸 느끼게 돼요. 연인 간에도 부부 간에도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오해함으로써 결별하는 경우가 있지요.

아이리시스 2011-11-03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약사가 뭔가 더 옳지 못해요. 소비자 입장이 우선. 여기서 칼자루를 쥔 건 소비자 같지만 실제로는 약사니까요. 입장 바꾸면 저는 친절하게 설명했을 것 같거든요. 착한 아이리시스( '')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될까봐 점점 차라리 입을 다물고 살아요. 이게 옳은 건지는 모르지만..

페크pek0501 2011-11-04 13:14   좋아요 0 | URL
저도 제가 어떤 물건을 파는 사람이라면 손님한테 친절할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건 해 봐야 알 것 같아요. 직업적 권태와 피곤함이 겹치는 날이면 손님한테 짜증내게 될지도(일 년에 서너 번쯤은)... 하하하!!!

입을 다물고 사는 건 좋지 못하죠(때로는 필요하지만요). 침묵도 그 나름의 표현이니까, 다른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지 않겠어요.

어쨌든 난 쾌활하고 맑은 아이리시스님 같은 사람이 좋더라.(나의 옛시절을 보는 듯해서인가...갸우뚱...)푸하하!!! 사람은 자기와 닮은 사람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을까요? 그래서 유류상종?

노이에자이트 2011-11-03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말투가 부드럽고 친절하답니다.엄마에게 짜증내던 아이들도 내가 안녕! 하고 손을 흔들면 헤...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고 그래요.

stella.K 2011-11-03 17:45   좋아요 0 | URL
ㅎㅎ 님은 정말 그러실 것 같아요. 한번도 뵌적은 없지만.^^

노이에자이트 2011-11-03 22:32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도 소문 났군요.

페크pek0501 2011-11-04 13:11   좋아요 0 | URL
두 분이 제 서재에서 (주인은 없는데) 주거니 받거니 하고 계시는군요. 그래서 뭐? 하하하...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종종 그래 주시면 좋죠. 썰렁한 제 서재가 덜 썰렁할 테니까요.

stella.K 2011-11-03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그 약사 성깔이 보통이 아닌가 봅니다.
저 같으면 그런 사람한테는 다시는 안갑니다.
소비자가 몰라서 물어보면 가르쳐줄 생각은 안하고
성질부터 내다니.
그래가지고 약사질 해 먹겠습니까? ㅉㅉ

페크pek0501 2011-11-04 13:1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친절은 필수지요.

혹시 모르죠. 그 약사가 원래는 친절한 사람이었는데, 그날만 그랬는지도요. ㅋㅋ

이따 댁의 서재에 놀러 갈게요.

노이에자이트 2011-11-04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모두 아름답고 고운 말을 써보아요! 착한 사람 사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

페크pek0501 2011-11-05 12:00   좋아요 0 | URL
예, 예, 예...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