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아프거나 불행한 일을 겪게 되면 그동안 지내온 평범한 일상이 그리워지고, 행복한 생활이란 대단한 게 아니라 그저 ‘별일 없음’의 상태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인생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한 가지 사물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물일지라도 달라 보이는 경험을 하며 산다. 최근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해석의 중요성이다.


여러분은 무엇에 대하여 ‘사실과 다른 해석’을 한 적이 없는가.


다음에 열거한 책들은 각각 다른 성격의 책들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사실과 다른 해석’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보았다.



1.

요즘 내 관심을 끈 책은 카스 R. 선스타인 저,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라는 책이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함께 토론하고 나서 평소에 자기들이 생각해 온 것보다 더 극단적인 생각을 갖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하는 책이다.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심각한 인종적 편견을 가진 백인들은 자기들끼리 의견을 교환한 다음 편견이 더 심해졌고, 반대로 인종적 편견이 약한 백인들은 자기들끼리 의견을 교환한 다음 편견이 더 줄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빠져드는 집단사고의 위험성을 경고한다”는 책이다.
 



이 책에 의하면, 사람은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래서 서로 생각이 같은 집단 속에 들어가면 극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극단화가 되는 원인 중 하나가 인터넷이다.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와 주장만 선택하는 자기 선택(self - selection) 과정을 거쳐 ‘집단 극단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 예로 테러리스트의 극단주의 성향을 들 수 있다. “사람들이 자기 입장과 가장 잘 들어맞는 토론방을 검색하고 선택하며,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방은 떠나면서 여러 가지 음모론이 빠르게 전파되고, 분노를 부채질한다.” 그리하여 ‘집단 극단화’ 현상이 일어난다.


이러한 ‘집단 극단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사람들이 한 가지 사물에 대해 각기 다양한 해석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중에는 ‘사실과 다른 해석’이 많을 것이다.


2.

한 가지 사물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표현한 글로 다음의 글을 뽑는다.


“강물 소리란,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나의 거처는 산중에 있었는데, 바로 문 앞에 큰 시내가 있었다. 해마다 여름철이 되어 큰 비가 한 번 지나가면, 시냇물이 갑자기 불어서 마냥 전차와 기마, 대포와 북소리를 듣게 되어, 그것이 이미 귀에 젖어 버렸다. 나는 옛날에, 문을 닫고 누운 채 그 소리를 구분해 본 적이 있었다. 깊은 소나무에서 나오는 바람 같은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청아한 까닭이며, 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흥분한 까닭이며, 뭇 개구리들이 다투어 우는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교만한 까닭이며, 수많은 축(筑)의 격한 가락인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노한 까닭이다. 그리고 우르릉 쾅쾅 하는 천둥과 벼락같은 소리는 듣는 사람이 놀란 까닭이고, 찻물이 보글보글 끓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운치 있는 성격인 까닭이고, 거문고가 궁우(宮羽)에 맞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슬픈 까닭이고, 종이창에 바람이 우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의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소리는, 올바른 소리가 아니라 다만 자기 흉중에 품고 있는 뜻대로 귀에 들리는 소리를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박지원 저, <열하일기>에서.)


3.

에릭 번 저, <심리게임>에 ‘당신만 아니었으면’ 게임이 소개된다. 부부 사이에서 가장 흔히 벌어진다는 게임이다. 이 게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남편이 자신의 사회 활동을 심하게 구속해서 춤을 배우지 못했다는 게 화이트 부인이 늘 읊어대는 불평이었다. 그런데 부인이 심리 치료를 받으며 태도가 달라지자 남편은 예전보다 누그러져서 아내에게 한결 너그러워졌다. 화이트 부인은 자신의 활동 영역을 자유롭게 넓혀 갈 수 있었다. 내친 김에 춤 강습에도 등록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자기가 무대를 병적으로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결국 춤을 배우겠다는 계획을 포기했다.


결과적으로 화이트 부인은 여러 명의 청혼자 중에서 지배적인 성격의 남자를 남편으로 골랐던 것이다. 그러면서 ‘당신만 아니었으면’ 뭐든 할 수 있었다고 불평할 수 있는 통행권을 얻었다. 그러나 춤 강습에서 드러난 결과를 보니, 부인이 불평하던 것과는 반대로 남편은 아내가 굉장히 두려워하는 무엇인가를 못하게 막음으로써, 또 아내가 자신의 두려움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사실상 보호함으로써 실질적인 서비스를 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화이트 부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사실과 다른 해석’을 했던 것이다.


4.

‘사실과 다른 해석’은 타인의 외모를 보는 시각에서도 나타난다. 우리는 잘 생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중에서 누구를 더 신뢰할까.


로버트 치알디니 저, <설득의 심리학>에는 호감의 법칙이 소개된다. 이 책에 의하면, 얼굴이 잘 생긴 사람이 사회생활에서 유리하다는 점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지만 그 유리한 점의 영향력은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크다고 한다. 그 영향력은 이러하다.  

 




외모가 잘 생긴 사람은 긴급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더 쉽게 얻고 있으며, 청중의 의견을 변화시키는 데도 더욱 설득적이라고 한다.


구인시장에서도 비슷한 효력이 발견되었다. 모의 면접 상황을 설정하였을 때 구직자들의 깔끔한 외모가 직업적인 자질보다 더 호의적인 고용 결정을 받아냈다는 연구 결과가 나타났다.


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는 잘 생긴 사람은 으레 능력 있고 친절하고 정직하며 머리가 영리할 것으로 연상한다고 한다. 더군다나 우리는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그들의 신체적 매력에 의해 우리의 평가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한 채 그들을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1974년 캐나다의 선거 결과는 신체적으로 매력적인 후보가 그렇지 못한 후보보다 무려 2.5배나 많은 유권자의 표를 받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잘 생긴 후보에 대한 이러한 편견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의 유권자들은 그들의 투표 행위가 후보들의 신체적 매력에 의해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데 있다.


신체적 매력에 끌려 투표를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신체적 매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 투표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이다. 전자는 타인에 대해 ‘사실과 다른 해석’을 했기 때문이고, 후자는 자신에 대해 ‘사실과 다른 해석’을 했기 때문이다.



5.

‘사실과 다른 해석’으로 인해 남녀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일로는 어떤 게 있을까.


복도에서 여자직원과 남자직원이 마주쳤다. 남자가 먼저 인사하기에 여자가 멋쩍게 느껴져 웃으며 인사했더니 그 남자는 여자가 자기를 좋아해서 웃었다고 해석한다. 커피 자동판매기 앞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진다. 커피를 마시려던 여자직원이 그 주위에 있는 남자직원과 눈이 마주쳐서 혼자서만 마시기가 불편해 예의상 커피를 건넸더니 그 남자는 여자가 자기를 좋아해서 커피를 주는 것으로 해석한다.



* 맺는말


“사실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해석뿐이다.”(F. W. 니체)



과연 우리는 세상일에 대해서 제대로 해석하며 살고 있을까.


무엇에 대해서든 ‘사실과 다른 해석’을 하여 그 진실을 알지 못하고 사는 게 우리의 모습이란 생각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아주 달라 보인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중요한 건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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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0-30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각자의 주관적인 세상이 있고,
주관적인 가운데서 타인과 함께 하는 타협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타인의 주관적인 세상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꼭 나와 다르다 틀렸다가 아닌
조금은 따스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봐야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만,
실천으로 가는 것은 너무 힘들어요. ㅠㅠ

페크pek0501 2011-10-31 14:45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반갑습니다.

제 글을 잘 이해하셨네요. '각자의 주관적인 세상'이 있다는 말씀, 그게 제 글의 주제가 될 수도 있겠어요. 의사소통을 하는 관계에서도 그 주관성 때문에 서로 받아들이는 게 다른 경우가 참 많아요. 위의 글 중, 같은 강물 소리를 들으면서도 제각각 다른 소리로 듣는 것처럼 말이에요. 방문과 댓글에 감사 드립니다.

프롬은 그 주관성을 '공적인 의미와는 다른 의미'라고 표현한 것 같아요.

"논리적으로 일정한 의미를 갖고 있는 관념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공적인' 의미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에리히 프롬 저, <자유로부터의 도피> 중에서.


아이리시스 2011-10-31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오셨어요. 잘 지내셨어요? 페크님 페이퍼는 두 번 읽고 세 번 읽다가 아......그랬구나, 이러게 되는 것 같아요. 일부러 심리학 책을 읽지 않는 제가 심리학 도서보다 더 재밌게 읽을 수 있게 해주시는 두 분이죠. 마고님이랑.......

아, 이상형 대답할 때 저는 정말로 얼굴은 안봐요, 이러는 사람..... 그리고 투표할 때. 실제로 그럴 수도 있지만, 인상에 대한 판단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듯 해요.

페크pek0501 2011-10-31 16:02   좋아요 0 | URL
예, 맞아요. 그 무의식이 무시할 수 없는 것이죠.

정말 오랜만이죠? ㅋㅋ 지방도 다녀오고 몸이 아파 (디스크로) 병원도 다니고 그랬어요. 이제 괜찮아요. 그런데 살이 빠져 아직 기운 없어요. 앞으로 열심히 먹어야죠.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게...

앞으로 '빈둥거리는 시간'을 많이 가지며 몸 챙기려 합니다. 책도 좀 적당히 보고요. 또 봐요!!!!!!!


노이에자이트 2011-10-31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독서할 때도 자기와 비슷한 정치성향의 책만 읽으면 안 됩니다.반대진영 논객들의 책도 읽어야 하는데, 성격상 이게 안 되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찾으니 늘 같은 부류의 논객이 쓴 글만 읽지요.당연히 폭이 좁아지고 맙니다.

페크pek0501 2011-10-31 16:09   좋아요 0 | URL
예썰...ㅋ 양면을 이해하기 위해 폭을 넓히는 독서가 필요하다는 것, 동의합니다.

2011-10-31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1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1-10-31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석'이 정말 중요하죠......
해석에 관한 엉뚱한 댓글 하나 남겨 봅니다. ㅎㅎ
* * *
이 한줄이 너의 해석을 천년 동안 기다려왔다,라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학문을 하지 말라.
- 막스 베버

페크pek0501 2011-11-01 12:55   좋아요 0 | URL
멋진 명언이네요.

저는 어떤 때는 정말 멋진 문장 한 줄을 찾기 위해 책 한 권을 읽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무슨 문학상을 탄 책을 읽는 경우에 그러는데, 아무리 반 권 정도 읽어도 왜 문학상을 탔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끝까지 읽어서 왜 상을 탔는지 알아내리라 하는 각오로 읽었는데, 어느 글 한 문단이 정말 좋았아요. 그래서 상을 탔구나 싶더라고요. (물론 그 문단을 이끌어내기 위한 그 과정의 글도 좋았겠지요.)

제 경험이 생각나서 적어 봤어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1-01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외모 덕을 많이 봐요.외모 때문에 열등감을 지닌 사람들에게 좀 미안한 마음도 들더라고요.

페크pek0501 2011-11-02 13:00   좋아요 0 | URL
푸하하... 저 정말 이렇게 웃었어요.

오늘 노이에자이트님이 10센티 더 좋아졌어요. 아, 매력적인 유머입니다. 본인은 유머가 아니라 진실이라고 할 테지만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1-11-02 16:00   좋아요 0 | URL
같은 처지에 놓이지 않은 사람이라면 왜 제가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실감하기 어렵죠.

페크pek0501 2011-11-03 14:15   좋아요 0 | URL
ㅋㅋ, 그렇군요. 그런데 "~~ 실감하기 어렵죠."와 같은 말투가 꼭 여자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제가 님이 (남자인 줄 알면서도) 여자로 착각을 하고 댓글을 쓸 때가 있답니다.

여성분인지, 아니면 훌륭한 위장술인지, 모르겠다는... ^^

덕분에 즐거웠어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노이에자이트 2011-11-03 16:25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제 글이 가끔 가다 좀 섬세하고 말랑말랑할 때가 있어요.음...몸은...지금은 어깨를 다쳐 꽤 오래 쉬고 있지만 한때 오랫동안 푸시업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가슴이 딱 벌어진 편이라 여성적인 체격은 아니에요.

페크pek0501 2011-11-04 13:22   좋아요 0 | URL
외모는 남성적, 내면은 여성적이라, 그거 아주 이상적인 타입이네요. 또한번, 푸하하...

노이에자이트 2011-11-04 16:11   좋아요 0 | URL
목소리는 부드러운 저음입니다! 이선균 목소리에서 콧소리를 빼고 거기에 한석규 목소리를 섞으면 제 목소리가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