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코>를 읽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코>를 읽었다. 코가 긴 것에 열등감을 가진 사람과 그를 보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케노오에 사는, 오십을 넘긴 나이구는 어릴 적부터 궁중 승려가 된 지금까지 내심 코 때문에 고민을 하였다. 코가 특이하게 생겨서다. 그의 코는 길이가 대여섯 치나 되고 가늘고 긴 순대와 같은 모양으로 얼굴의 한가운데에 덜렁 걸려 있는 것이다. 그가 코 때문에 고민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긴 코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밥을 먹을 때 누군가가 코를 떠받드는 도움 없이는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또 하나는 코로 인해 웃음거리가 되어 상처 받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상적인 이야기 중에도 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제자가 잘 아는 의사로부터 긴 코를 짧게 줄이는 방법을 배워 왔다. 그 방법이란 단지 뜨거운 물에 코를 데치고, 그 코를 사람들에게 밟게 한다는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코는 짧아졌다. 그러나 그의 짧은 코를 보는 사람들은 오히려 비웃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용건을 전하러 왔던 제자들도 얼굴을 들이대고 있을 때에는 참고 있지만, 그가 등을 돌리기만 하면 킬킬거리며 웃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같은 웃음이라도 코가 길었을 때와는 웃는 것이 어딘지 다른 것 같았다. 익숙한 긴 코보다도 익숙하지 않은 짧은 코가 우습다고 한다면 그뿐인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뭔가 다른 게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이전에는 이렇게 드러나게 웃지 않았었다.”라는 생각을 하며 불쾌했으나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작가는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이렇게 정리한다.
- 사람의 마음에는 서로 모순된 두 가지의 감정이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의 불행에 동정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불행을 본인이 어떻게 해서든 풀어 나가면, 이번에는 사람들이 왠지 허전함을 느끼는 심보가 있다. 조금 과장을 해서 말하자면 다시 한 번 그 사람을 같은 불행에 빠지게 하고 싶은 생각까지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어떤 적대감을 그 사람에게 가지게 되는 것이다. - 나이구가 이유를 알 수 없으면서도 왠지 불쾌하게 생각한 것도 이케노오의 승려들의 태도에 이런 방관자의 이기주의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저, <아쿠타가와 대표단편선>, ‘코’ 55쪽~56쪽, 인덕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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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구는 섣불리 코를 고친 것이 오히려 원망스러워졌다. 그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어느 날 코가 하룻밤 사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간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예전의 그 긴 코로 돌아오자 이젠 비웃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후련한 마음이 되었다.
2. 사촌이 땅을 사면 꼭 배가 아플까
실제로 자신의 코가 흉할 만큼 길게 생겨서 남들이 쳐다보며 웃는 것에 고통을 겪으며 사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 코를 보고 웃어야 할까. 그 코에 대해 위로를 해야 할까. 아마도 그의 코를 보고도 모른 척함으로써 그의 고통을 건드리지 않는 게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말하자면 ‘당신의 코는 그리 이상하게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난 당신의 코엔 관심이 없다’라는 태도가 가장 좋을 듯싶다.
자식을 잃었거나 배우자와 사별해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심리적으로 자신의 불행을 모른 척해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 불행한 일에 대해 누군가가 위로를 한답시고 먼저 말을 꺼낸다면 오히려 그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 되는 것이다. 상대방이 아는 척해 주길 바라는 경우는 본인 스스로 그 불행한 얘기를 먼저 꺼낼 때에 한하겠다. <코>의 주인공 역시, 일상적인 이야기 중에도 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하지 않던가.
사람이란 남의 불행이나 고통에 대하여 적지 않은 기쁨을 느낀다(E. 버어크)는 말이 사실일까. 이것이 사실이라면 남이 불행해진 것 그 자체에 대한 기쁨이라기보다 ‘나만 힘들게 사는 게 아니었어.’라는 안도감 때문일 것 같다. 사실 남의 불행 그 자체가 자신에게 행복을 주지는 않는다(떡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 불행해진 사람이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게 될지 모른다.
<코>를 읽고 나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생각났다. 이것은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한다는 뜻의 말이다. “그 불행을 본인이 어떻게 해서든 풀어 나가면, 이번에는 사람들이 왠지 허전함을 느끼는 심보가 있다.(소설에서)”는 것도 이 속담과 비슷한 심리일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게 사실일까. 알랭 드 보통(그의 저서 <불안>에서)에 의하면 우리는 모두를 질투하지 않으며, 우리 자신이 같다고(비슷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질투한다고 한다. 그래서 가장 견디기 힘든 성공은 가까운 친구들의 성공이라고 한다. 아이스킬로스도 “질투심이 조금도 없이 친구의 성공을 기뻐하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는 한 사람도 없다.”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깝게 지내는 친구나 사촌에 대해 시기심을 갖나 보다.
내 경험에 의하면 내가 배 아파도 좋으니 사촌이 땅을 샀으면 좋겠다. 아버지 형제가 일곱이다 보니 내겐 사촌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 사업을 하다가 빚만 지게 되어 어렵게 사는 사촌이 내게 돈을 꿔 달라고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너무 큰 액수의 돈을 요구해서 꿔 주지는 못하고 미안한 마음에 그냥 약간의 돈 얼마를 그의 통장에 넣어 주었다. 어느 사촌에게 들었는데, 다른 사촌들에게도 돈 얘기를 하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고 한다. 돈을 꿔 주지 못할 땐 부탁을 하는 사람이나 그 부탁을 들어 주지 못하는 사람이나 참 괴로운 일이다. 그러니 나로선 그 사촌이 잘 살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런 마음은 친구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사정에 처해 돈을 꿔 달라는 친구를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또 자신의 입장이 난처해지는 일이다. 돈을 꿔 주자니 그의 어려운 형편으로 보아 돌려받지 못 할 것 같고, 꿔 주지 않자니 인심을 잃는 일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꿔 줄 돈이 없을 때에도 마음 불편하긴 똑같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친구들이여, 사촌들이여, 땅을 사세요. 제가 배 아파하지 않을 터이니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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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내가 읽은 책은 인덕 출판의 <아쿠타가와 대표단편선>이란 책인데, 이곳 알라딘에선 찾을 수가 없었다. 오래된 책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책 다섯 권을 찾아 넣었다. 이 책들엔 <코>라는 작품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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